'60초소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1.13 거리에서의 말.말.말 (13)
  2. 2008.10.22 하루에 대한 보고서 (6)
좋은 삶/새알심2008. 11.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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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난 언제까지 여자랑 같이 영화를 봐야 하는걸까?”

“그것도 여자형제랑”


-- 신촌 메가박스에서 뒤에서 들려온 말 --


“아무개는 집을 판대, 팔아서 다 쓰고 죽는대”

“..... ”


-- 산책로에서 어느 부부가 나누는 말 --


“엄마... 저 위에 가면... , 저 위에 가며언... 음, 저 위에 도착하면...

음... 뭐가 있어?”


-- 등산길에서 한 꼬맹이가 한 말 --


“한 번 하고 싶습니닷!”


-- 거리에서 커플 중 남자애가 소리친 말 --



최근에 거리에서 들은 말들이다. 이상하게 서로 연결되면서 그냥 묻어버리기엔 아까워서 기록해 본다. 영화관 뒷 좌석에서 들려온 목소리, 차마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 경쾌한 푸념에 웃음이 큭! 터져나왔다. 몇 살 터울이길래  그렇게 친한지, 살다보면 남자보다 자매가 더 좋을 때도 있을꺼구만. ^^


등산복 차림을 한  부부 중 여자가 한 말이다. 50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그들이 아는 누군가의 결정을 지지한다. 모든 것을 자식에게 베풀고, 도대체 자신을 위해서는 돈 만원도 쓸 줄 모르는 친정엄마가 떠오른다. 아들을 애인처럼 대하고, 딸들과 말섞고 싶어 애타는 엄마에게는 ‘나’라는 영역이 없다. 엄마가 다녀가고 나면 언제나 내 마음에 죄책감이 남는다.


2주 전인가, 광교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길이 좁다보니 거의 집회에 참여하려는 사람들 처럼 몰려가는 형국이었다.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아주 작은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가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데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지 아이는 자꾸 말을 멈추었다. 무슨 말이 나오려나 일부러 걸음을 늦추며 아이의 말을 들어보았다. 과연!  아이다운 천진한 물음이었다. 무작정 위로만 올라가고있는 애벌레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아이 같았다. 아이가 ‘도착’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놀라웠다. 엄마가 책을 많이 읽어주는 아이인가 보다.


어제 치과에 가는데 앞에 한 커플이 거의 붙어서 걸어가고 있었다. 유독 가랑가랑해 보이는 몸매와 허술한 차림에서 이상하게 결핍이 느껴졌다. 아주 앳되 보이기도 하고. 느릿느릿 운동화를 끌며 걷는 그 애들을 스쳐 빨리 지나가는데 남자아이가 소리치는 말이 들렸다.  드라마에서 ‘나는 아무개를 사랑합니다!’ 공개선언 하듯이 결연하고 높은 음성이었다.


한 줄의 문장에서 스토리를 느낄 정도로 오래 산 탓일까, 사람이 점점 친근하게 느껴지는 탓일까, 한 문장만 듣고도 ‘60초 소설’을 쓴 아무개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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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코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습니다.^^

    2008.11.13 08:09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저는 당최 주변머리가 없어서 블코에도 가 본 적이 없네요. 제 rss 구독자가 몇 명인지도 모른다는... ㅠ.ㅜ

      2008.11.13 10:26 [ ADDR : EDIT/ DEL ]
  2. "일본 사람들은 라면을 사랑하나봐"
    대학로 골목길에서 어떤 아가씨가 지나가면서 한 말이였는데 정말 의외이지 않냐는 듯한 그 말투가 어쩐지 웃음이 나와서 같이 가던 동행과 똑같이 따라하면서 웃었어요. 동행이 "우리나라 사람만 하겠어?"라고 했고 제가 "서로 종류는 다르지만 말이지."하고 답했지요.

    2008.11.13 09: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ㅎㅎ 전해들어도 그 아가씨의 4차원적인 말투가 느껴지는듯하네요. 이렇게 스쳐가는 말이 정겹게 들리는 날은, 어느 정도의 여유와 평화가 있는 날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기도 하구요.

      2008.11.13 10:30 [ ADDR : EDIT/ DEL ]
  3. 말 잘 못하는 저 왔어요^^
    건강하시죠?

    방금 저 책 세 권이상 엮어 문장 만들기를 해 보았어요.
    미탄님께서도 한 번 해 보실래요.

    inuit님(inuit.co.kr)께서 제안하신 건데 재미도 있고 새로움이 느껴지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08.11.13 23: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새댁님 덕분에 오늘 아침 포스팅 한 번 더 하네요.
      걍 넘어갈려구 그랬거든요. ^^

      2008.11.14 10:10 신고 [ ADDR : EDIT/ DEL ]
  4. 길에서 언뜻 귀에 들어오는 한마디가 정말 '살아있는' 얘기처럼 오래 남는 경우가 있지요. 문득 예전 경험 생각나서 초면에, 실례아닐까... 걱정하면서 트랙백 하나 걸어봅니다.
    글속의 어머니.. 많이 찡합니다. 저는 어떤 엄마가 될까.. 이제 겨우 갓난아이 하나 낳아놓고 할 걱정이 아닌 것도 같지만..
    '내 삶'이 있는 엄마가 되고싶다는 생각, 요즘 많이 하거든요.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2008.11.14 16: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실례라니요, 아는 척을 안해주셔야 실례지요. ^^
      아!
      정말 좋은 시절을 관통하고 계시는군요.
      부러버라~~

      2008.11.15 08:18 [ ADDR : EDIT/ DEL ]
    • ㅎㅎ 그런거지요?
      정말 '좋은 시절을 관통하고' 있는 거겠지요?
      때때로 '참 행복하다' 절감하면서도
      실은 얼마나 자주, 쉽게 힘들어하는지 몰라요...
      다시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미탄님의 이 날들도 아름다운 날들.. 이실거예요, 그죠?)

      2008.11.15 11:05 신고 [ ADDR : EDIT/ DEL ]
  5. ㅎㅎ 엉겹결에 대충 스토리가 나오는군요 ㅋ

    2008.11.16 19: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그렇지요? 말 한 마디에 그 사람의 인생과 상황이 묻어나네요.

      2008.11.16 22:11 [ ADDR : EDIT/ DEL ]
  6. 몇년전 버스에서 친구끼리 한말
    한 아가씨가 친구에게 "요즘은 지방도 살만하더라 대구 갔는데 그런대로 괜찮더라구."
    다른 아가씨의 대답 "시골도 괜찮아 포천정도 살면 살만 하겠더라."
    이소리를 들을때 어찌나 황당하던지... ;;;
    진짜 시골에 살다보니 가끔 이 아가씨들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2008.11.17 01: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하하, 나도 그 기분 알 것 같네요.
      지방과 시골이 받고 있는 대접이 고스란히 나타나네요.
      제 경우에는 반대로 2년 전에 대도시로 올라올 때,
      "내가 대도시에서 살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거든요.
      의외로 너무 잘 지내고 있는 거 있지요.
      아마, 농촌에 20여년 살다보니 내심 변화가 필요했었나봐요.

      2008.11.17 07:35 [ ADDR : EDIT/ DEL ]

좋은 삶/새알심2008. 10. 22. 21:37


평소처럼 6시 반 경에 눈을 떠서 쓰던 원고를 하나 고쳤다.  그런대로 마음에 들어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순식간에 오늘 할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주 천천히 걸어서 산책을 하고, 도서관에 갔다가 내가 좋아하는 제과점에서 샌드위치를 먹을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오늘 걸음걸이를 포스팅하리라, 제목은 '찰나에 비석을 세우다'  ㅎㅎ

산책은 아주 좋았다. 가을의 트레이드마크인 억새밭과 빨갛게 물든 담쟁이와 도로에 깔린 낙엽과 무엇보다도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는 선선한 날씨가 일품이었다.


핏빛으로 검붉게 물들고 있는 담쟁이들 사이에서 천연덕스럽게 새파란 색을 뽐내는 담쟁이가 꼭 철들지 않는 나 같았다. 요즘은 거울을 볼 때마다 한심하다. 나이을 잊어버리고 살다가도 거울만 보면 충격을 받는다.  단식을 해서 오킬로그램 쯤 빼고 화장술을 새로 배운다해도 이 고개를 넘어갈 일이 아득하다. ^^ 


 



촉촉하면서도 청량한 기운이 폐부를 파고 들었고, 커다란 플라타너스 잎이 너울대며 떨어졌다. 조촐한 단풍들과 눈맞추며 한없이 걸어도 좋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아까워서 서둘러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인류의 정신적 유산에 접속하는 기쁨에 전율을 느껴야 한다고 한 사람이 진중권이었든가.  그 정도는 아니라도 나는 도서관이 참 좋다.  서가 어딘가에 나와 궁합이 맞는 책이 숨어있어 내가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필받을 수 있는 책을 만나면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저자의 내공을 수혈받아 정신적인 키가 성큼 커지는 기분이다. 별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정서적인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책 덕분이다.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살면서 책에 대한 소유욕도 없어졌다. 아무리 책이 많기로 도서관보다 많을소냐.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만큼 또 가벼워졌다.

세 시간 정도 맛있게 책을 보았다. 거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빵집으로 가는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기분이 다운되기 시작했다. 가랑비 탓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엄습하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하고 공허한 느낌에 또 사로잡힌 것이다. 불가능과 부정과 의심과 의구심이 집결하여 나를 쪼아대는 시간!

남들의 사소한 몸짓을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습관도 싫고, 궁핍한 조건에 갇혀 있는 것도 너무 한심하다. 니가 나이가 몇인데 겨우 빵집에서 안분낙도를 찾는거냐. ㅠ.ㅜ


이 빵집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곳이다. 이사한 다음날 처음 들어선 순간부터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작은 규모인데도 빵 만드는 사람이 대여섯, 서빙하는 사람이 대여섯 명이 있다. 주방을 오픈해서 훤히 보인다. 이 집 빵을 먹고 나서야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 맛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았다. 빵을 직접 만드는 곳과 냉동빵의 차이를 알게 된 것이다. 산책과 도서관 뒤에 이어지는 마무리코스인데 오늘은 빵을 타이어 씹듯이 먹어야 했다. 이전에 찍은 사진 한 장.

결국 집에 와서 늘어지게 한 숨 잤다. 자면서 생각했다. 이런 식의 감정기복을 몇십 년동안 겪을 수는 없다. 더이상 이 불청객에게 놀아나며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해답은 곧바로 주어졌다. 저녁에 읽기 시작한 '60초 소설'에서 암시를 받은 것이다.  저자는 변호사 협회 기자생활을 하던 중 지루하고 상투적인 업무에서 탈출하고자 '60초 소설'의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60초 소설'은  대성공이었지만 7년간 종사하다 보니, 또 다시 얄팍하고 통속적인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을 발견하고 자문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는 뉴욕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60초 소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아이오와 주의 광활한 옥수수밭과 사막을 찾아, 소몰이꾼과 양치기 목동과 왕새우잡이 어부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아!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험을 한 지 너무 오래 되었다.

오늘의 결론이다.
너무 오래 일을 벌리지 않고 웅크리고 살았다.
프로펠러처럼 활기차게, 악어처럼 탐욕스럽게 삶을 추구하는 것만이 저 음흉스러운 공허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대학졸업도 하기 전에 농촌으로 살러 갔던 20대처럼, 맨 손으로 건물을 지었던 40대처럼 다시 한 번 겁이 없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아직은 모호하지만, 계속해서 공허와 결핍에 시달리지는 않으리라는 결심을 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갔다.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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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각만큼만 가볍게 톡톡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하루에 대한 생각의 무게는 나이와 상관이 없나 봅니다.

    저 빵집은 언젠가 선생님의 포스팅에 등장했던 그 빵집이 맞지요?
    사진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 빵집. ㅎㅎㅎ 저는 이 빵집을 그렇게 기억해요.

    이 포스트에서 가을을 담아가요.
    아직 낙엽도 못 봤는데.
    오늘은 벌써 겨울이 되어버린 느낌이었거든요.

    2008.10.22 23:55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왜?
      "의식은 현실이다" 이런 말도 있는데?
      모든 것이 생각의 산물인 것이 나는 정말 믿어져.
      가벼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가벼워지고,
      행복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행복해 질 거야. ^^

      2008.10.23 07:12 [ ADDR : EDIT/ DEL ]
  2. 간혹 김포도서관에 가는데, 주변에 마땅한 산책로가 없어서 탐색 중입니다..^^
    강화에는 산책로가 너무 많구요.
    이제 슬슬 허투루 보내는 시간을 줄여볼 생각입니다.
    조금은 짜임새있게..^^

    2008.10.23 07: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시간!
      요즘에는 그냥 앉아만 있어도 시간이 나를 스쳐 휙휙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ㅠ.ㅜ
      그렇다고 해서 조바심을 내면 금방 지치고 성과도 더 안 나와주니, 참 이 마음의 작용이란! ^^

      2008.10.23 10:29 신고 [ ADDR : EDIT/ DEL ]
  3. 제비꽃

    ㅎㅎ 재밌게 읽었어요.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같기도 하고, '생활의 발견' 같기도 하고..

    중간에 삽입된 '공허'에 대한 단상이 이 글에 힘을 실어 주네요.
    인생의 매 순간마다 행복만 있다면 날아가는 새의 발자국일지도 모르죠.
    쌤과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기쁨이 있으면 기쁨과 놀고, 공허가 있으면 공허와 놀고.

    이 공허란 놈의 장난 때문에 다시 질러보겠다는 결심도 주어진 것 같은데요.
    불청객에게도 긍정적 불씨를 발견하신, 미탄님께 응원 보냅니다.
    아자아자 홧팅! 그래, 가는거야!

    2008.10.23 09:07 [ ADDR : EDIT/ DEL : REPLY ]
    • 제비꽃님, 응원 고마워요.
      무언가 조금씩 야금야금 숨죽인 다람쥐의 발걸음처럼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은근히 지쳐서인가 이 징후를 나꿔챌 에너지가 조금 딸리네요. ㅠ.ㅜ

      2008.10.23 10:3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