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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02 <60호> 관계연습 (2)


요즘 딸과의 관계정립이 한창입니다. 성년이 된 딸을 대하는 것이 어릴 때의 딸을 대하는 것과 똑같을 수는 없겠지요. 모녀 사이라고 해도 크고 작은 갈등이 쉴새없이 일어납니다. 가령 나는 길치인데 딸애는 공간감각이 뛰어납니다. 같이 길을 나서면 내가 딸을 졸졸 따라 다녀야 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편하게 따라 다니는데, 살짝 아니꼬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틀리기도 일쑤입니다. ^^


딸이 리포트를 쓸 때는 상황이 역전됩니다. 분위기가 좋을 때는 편하게 도움을 요청해 옵니다. 엊그제는 말도 안되게 어려운 ‘노동복지’ 같은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담당교수가 쓴 책이라는데 어찌나 난삽한지 내가 읽어도 ‘요해’가 안됩니다. 심지어 한 문장이 일곱 줄에 달하는 것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딸애가 과제를 직접 하는 것이 조금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내가 읽고 대충 간추려 주었더니 딸이 감격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난기류가 흐를 때는 딸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낑낑대며 저 혼자 해결합니다.


이 정도는 애교어린 상황인데 라이프스타일이 부딪칠 때는 제법 강도 높은 긴장이 발생합니다. 딸애는 스스로 ‘치사할 정도로' 돈 계산이 빠르다고 말하는 현실파이고, 반면에 나는 현실감각이 대폭 떨어지는 낭만파이니, 가히 ‘적과의 동침’ 수준입니다. ^^


딸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남이라면 가차없이 멀리 했을 정도의 ‘차이’를 수용하고, 서로 이해하며 끝내 ‘함께’ 하는 훈련을 하고 있으니까요. 긴장이 첨예할 때는 슬쩍 밀어 놓고 냉각기를 가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운한 마음이 가시고 서로의 입장에 역지사지가 가능합니다. 그러면서 좀 더 상대를 배려하게 되고, 대화의 수준이 깊어집니다.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각자 독립된 개체로서 자기의 방을 갖고, 상대의 영역을 보듬을 따름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다 비슷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소한 차이 때문에 사람 내치지 않기, 서둘지 않고 나를 드러내기,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작은 실수는 신속하게 잊어버리기... 나는 딸과의 관계를 통해 톡톡히 관계연습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딸에게 “ 나 이렇게 사람 깊이 사귀는 것 니가 처음이야” 했더니 박장대소합니다. 딸과 내가 친밀감을 나누는 연습을 통해 좀 더 넓은 세상에서도 좋은 관계로 나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데 치유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리는 중요한 발견을 한다. 그것은 바로 친밀한 관계는 허울이 판치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성한 곳, 우리가 있는 그대로 우리 자신일 수 있는 곳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우리의 진실을 말하고 우리 내면의 갈등을 나누고 우리 자신의 허점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이런 종류의 가면 벗기는 두 영혼이 만나 서로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신성한 행위다.

- 존 웰우드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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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귀한 글 잘 보았습니다. 일상적인 관계로부터 무수히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가꾸어 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보게 되네요.. ^^

    2008.10.02 09:38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살아볼수록 중요한 것이 '관계'같습니다. 늘 성실하고 겸손하신 buckshot님의 자세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2008.10.02 21:36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