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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7 <1호> 지금부터의 삶이 진짜 삶이다 (4)

어려서 스케이트를 배울 때의 일입니다. 나는 겁이 없고 성격이 급해서 쭉쭉 밀고 나가지만, 자주 넘어졌습니다. 두 살 위인 언니는 조심하느라 속도는 못내도, 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뒤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람의 기질은 변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언니는 전형적인 현모양처로 깔끔하고 바지런하게 자기 것을 지키고 삽니다. 친정어머니께서 언니 집에 가면 할 일이 없다고 하실 정도입니다.

반면에 저는 20대에 농활에 미친 이후로 '황당한' 일만 골라서 한 것 같습니다. 세상을 다 가질 것 처럼 내달은 적도 있지만, 사정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내 것'만 챙기는 삶을 재미없다고 생각합니다. 언니를 포함해서 야무지고 실질적인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너는 그렇게 걷는 게 멋인 줄 아니?"
건들건들 걷는 나를 걱정하는 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30년을 훌쩍 뛰어넘어 언니는 아직도 나를 걱정합니다.  이제껏 살아온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더 이상 무슨 일을 겪으랴 싶을 정도로 골고루 저지르며 살아왔는데도,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좌충우돌의 체험으로 단련되어 조금은 철든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긴 안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끈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삶에 도달하고 싶다는 절박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맛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생애의 어느 순간보다 살아갈 준비가 된 지금이 진짜 삶이 아닐까요?
처음 40년은 워밍업이요, 다음 40년이 본론인거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너무 빨리 퇴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시력이 안 좋아졌다거나 주름살이 늘었다거나 하는 사소한 조짐을 너무 확대해석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나는 이제 겨우 사람같아졌습니다.  한 번 진짜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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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비꽃

    저도 많은 사람을 만나며,
    천 명의 사람과 천 명의 그들만의 상황과 대처를 보며 배웁니다.
    아직도 내가 얼마나 편협한 '내 안의 우물'에서 노니는 지를.

    미탄님의 글을 읽으며,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숙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그게 곧 죽음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08.05.07 23:37 [ ADDR : EDIT/ DEL : REPLY ]
    • 자신이 더 이상 무엇으론가 변화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 때부터 쇠퇴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내 경우에는 '우물'을 넘어 거의 '동굴'에서 사는 지경인데요, 뭐. ^^

      2008.05.08 05:48 신고 [ ADDR : EDIT/ DEL ]
  2. 언제든 다음에 할 일은 남아있다 생각합니다. 돌아가시기 한두해 전의 인터뷰에서 기억력을 잃지 않기 위해 산이름을 외운다는 서정주 시인이 생각납니다. 새로와지기를 포기하면 그때 참다운 인생은 끝이 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는한 '이미 늦은' 때는 없다 생각합니다.

    쓰고나니 제비꽃님과 미탄님의 말을 달리 표현한 것 뿐이네요 ^^;;

    2008.05.20 02: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많지는 않다는 거지요. 쉐아르님도 이미 혁신적인 그룹에 속하는 거지요. 우리 모두 언제고 시작하고 언제까지나 배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08.05.20 07:36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