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2.12 <5호> 직관을 따르라 (3)
  2. 2008.07.17 <37호> 직관을 직관답게 하는 것 (2)
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2. 12. 20:40
 

1975년, 고인돌 세대처럼 아득한 대학 새내기 시절, 수많은 철학자들을 주워섬기는 나른한 교수님 목소리에 까닥까닥 졸던 철학개론 시간, 졸음을 뚫고 내 귀에 날아와 박힌 단어가 있었으니, “그 단독자!” 였습니다. 키에르케고르였던 것 같기도 한 철학자의 묘비명이 “그 단독자!”라는 설명이 마치 내 귀에 대고 확성기로 말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지금보다도 더 어리버리하던 내게 ‘독자적인 삶’에 대한 동경이 싹트기도 전이었지요. 그런데도 거의 소음이나 자장가에 다름없던 교수님의 강의를 뚫고 내게 각인된 “그 단독자!- That Individual!"의 강령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게는 이런 기억이 많습니다. 79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동아리를 같이 하던 친구가 번역서를 내놓은 일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불문과였는데 졸업 직후라 놀랐고, 책이 너무 두꺼워서 한 번 더 놀란 기억이 나네요. 한 여성이 성장해가는 내용을 다룬 그 책 중에 이런 대화가 있었습니다.

 

“너는 해방되었구나”

 

주인공의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한 말이었는데요, 인습에 매여 주어진 삶을 살아온 자신과 다르게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딸에게 부러움 반 시새움 반 섞인 심정을 내비친 것이겠지요.

 

“너는 해방되었구나”

이 문장 역시 그 두꺼운 책 중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불거져 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불어권 책이었는데도 그 문장에만 영문이 덧붙여 있었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You are liberated."

 

그 뒤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 단독자!”, 혹은 “I am liberated." 이 두 개의 문장을 머리에 떠올리곤 했습니다. 이 문장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이 들어가는 나와 늘 함께 있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만트라’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네요. 이 두 개의 경지는 지금도 여전히 내가 추구하는 정점입니다.

 

그 뒤에도 나는 번번이 우연 속에서 내 길을 알아채곤 했습니다. 1986년 ‘마당’이라는 잡지에서 풀무학교에 대한 소개 글을 보고 홍성으로 내려가서 정착하는 식이었지요. 풀무학교의 개교이념인 “사람이 공부만 하면 도깨비요, 일만 하면 짐승이다”는 문장 한 줄에 매혹되어서 말입니다.

 

8년간 전업주부로 아이들 키우며 농사를 거들다가 처음으로 내 일을 시작하던 때도 그랬지요. 저는 신문에서 ‘글쓰기과외가 성업중’이라는 조그만 기사 하나를 보고 글쓰기교실을 창업했습니다. 초등학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학원은 꽤 잘 되어서, 4년 후에는 종합학원으로 확장했지요. 기질이 이렇다보니 제가 직관적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어떤 이득보다도 내 마음에 일어나는 반향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기꺼이 따라가기! 이런 성향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의기소침한 적이 없지 않았지만, 글쓰기에 마음을 두면서부터는 달라졌습니다. 전후좌우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합리성은 부족하지만, 늘 마음을 중요시하는 자기중심성이 제 글쓰기의 원천입니다.

 

누군가 합리적인 마음을 컴퓨터에 비유했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컴퓨터와 같아서 논리적이긴 해도 입력되지 않은 결과를 내놓지는 못한다, 그러니 현실적인 판단에는 유용하더라도 실험적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에 우리는 직관을 통해 무의식 혹은 보다 큰 존재와 연결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살다보면 더러 기운이 빠지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수행해 온 역할과 책임에 지치기 때문이지요. 이럴 때 나의 내면에 있되 아직 발현되지 않은 소질을 하나 더 개발할 수 있다면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요. 융의 용어로 말하자면 ‘그림자’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하나 꺼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작업이 합리적인 사고로 가능하겠습니까? 우연 속에 섬광처럼 다가오는 일, 본능적인 이끌림, 이성보다는 직관을 통해 다가오지 않겠습니까?

 

직관을 따르면 삶에 생기가 돕니다. 직관을 따르는 최대의 보상은 생동감입니다. 만일 그대의 삶에 활기가 부족하다면, 오랫동안 직관을 도외시한 탓인지도 모릅니다. 오래 전에 일어났지만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 어쩐지 마음이 가고 설레는 일을 돌이켜 보세요. 그 일이 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기울여 보세요. 직관을 살아내세요. 그리고 그것을 글로 써 보세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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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

    직관을 따르면 삶에 생기가 돈다, 깊이 공감합니다.

    2010.02.15 02:50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초록님.
      조금씩 수위를 높여 가며 마음을 따라 가 보세요.
      그것도 습관이더라구요.^^

      2010.02.15 12:21 신고 [ ADDR : EDIT/ DEL ]
  2. 직관.....?????.......

    2010.02.16 10: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카이스트에 3백억을 기부하여 ‘바이오시스템학과’를 신설하게 만든 정문술을 아시지요? 그의 책 “아름다운 경영”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이런 것입니다. 그는 1983년, 46세의 나이에 반도체 분야에 뛰어드는데요, ‘반도체’가 가까운 미래에 크게 각광받을만한 사업이라는 상식 정도가 사전지식의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다짜고짜 반도체 공부를 시작하고, 가족동반자살을 결심할 정도의 극심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결국 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둡니다. ‘벤처대부’요 ‘아름다운 부자’로서 굵직한 족적을 남깁니다.

스팀청소기로 유명한 한경희도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그녀는 어느날 청소를 하던 중에, 스팀이 나오는 걸레가 달린 청소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MBA 출신이긴 해도 기술분야에는 문외한이었던 그녀는 그때부터 스팀청소기를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시댁과 친정집을 저당잡힌 돈까지 연구비에 쏟아넣으면서 몇 년을 매달린 끝에 그녀역시 성공합니다. ‘한경희생활과학’,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내걸만 합니다.

이처럼 성공하는 사람들 중에는 순간적인 직관을 붙들고 늘어져 무언가 이루어낸 사람이 많습니다. 전구에 가장 적합한 재료를 찾기까지 10,000번이나 실험을 시도한 에디슨까지 가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사실 보통사람들도 정문술이나 한경희가 가졌던 것과 같은 정도의 직관을 수시로 맛보지 않습니까?  순간적인 예감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못하고 흘려버려서 탈이지만요.

어떤 직관이 가치있는 생각이었다고 증명되는 것은, 실천을 통해 세상에 드러날 때 뿐입니다. 끊임없는 인내와 실행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직관과 ‘지르기’를 판가름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이 직관적이라는 것은, 섬광같은 아이디어를 관철해내는 실행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인내를 따를 만한 것은 없다. 재능도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재능이 있음에도 실패한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천재성도 대신할 수 없다. 써먹지 않은 천재성은 케케묵은 격언이나 진배없다.

교육만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세상은 고등교육을 받은 낙오자들로 가득 차 있다

인내와 결단력만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 잭 D. 핫지, 습관의 힘--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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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거 퍼가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ㅎ

    2008.07.22 06:26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내가 너무 늦게 깨달은 인생의 비밀 1호... ㅠ.ㅜ

      2008.07.22 08:41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