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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9 <95호> 행복을 껴안되 매달리지 않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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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에 수업이 없는 딸과 하루 종일 데굴거렸다. 우리는 가을에 접어들며 방안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한 햇살 안에 나란히 누워 ‘노튼’시리즈를 한 권씩 보았다. 피터 게더스가 쓴  ‘파리에 간 고양이’, ‘프로방스에 간 고양이’,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얘기이다.

빅히트를 친 고양이 이야기가 있다는 소리는 얼핏 들었다. 우연히 딸이 그 책을 빌려와 낄낄대며 읽기 시작했다.  딸이 고양이 노튼이 얼마나 영리하고 귀여운지를 떠들어댈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노튼이 죽었다고 펑펑 우는 것을 보고서 마음이 움직였다. 딸을 이해하는 차원에서라도 한 번 읽어볼까? 하는 기분이 든 것이다.


과연 품위있고 영리한 고양이였다. 사랑받을 줄 알고, 자기 값어치를 올릴 줄 아는 고양이였다. 하지만 내게는 고양이보다 저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해마다 4월이면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연말이면 10년째 프랑스 깡촌인 굴트에 가서 휴가를 즐기고, 수틀리면^^ 1년 정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3백년 묵은 돌집에 가서 사는 남자. 그는 삶의 의식을 즐기고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 마음에 또 하나의 풍경이 날아 와 꽂혔다. 부러운 것이 많은 사람은 적어도 권태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출판사의 발행인이자 작가인 저자는  서른 살에 6주 된 노튼을 선물받아 16년 동안 함께 살았다. 그는 노튼을 ‘위험할 정도로’ 사랑했다. 노튼 역시 그를 사랑했기에 이만한 작품이 탄생했을 것이다.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노튼을 유명인사<?>로 만들어, 노튼이 죽었을 때 유수한 신문의 부고란에 실릴 정도였다.


딸과 나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책을 읽었다.  가끔 각자 읽고 있는 부분에서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면 서로에게 말해 주며 키득거렸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9월의 어느 날, 방 안 가득한 가을햇살 아래  딸과 무언가를 공유하는 기분이 감미로웠다. 무언가 스멀스멀 가슴에 차오르는가 하면, 피부를 간질이는 기분이었다. 딸도 같은 기분인지,

“엄마랑 같은 거 읽으니까 좋다” 고 하는데, 문득  가슴 한 켠이 아려 온다.


지금 이 순간 역시 지나가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언제고 아이가 자기 가정을 꾸리고 우리 생활이 갈려지면, 우리가 두 어 달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할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한 때 완벽한 한 몸이었고, 지금 이렇게 가까운데 언제고 멀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소홀한 딸이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1주일에 전화 한 번 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터이니 말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시집살이하랴 학원하랴 바빠서 살갑게 아껴주지 못했다. 또 내가 좀 무뚝뚝한가. 딸도 나 닮아서 건조한 면이 있는데다가, 분노가 많은 편이라 부딪칠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런 우리가 이만한 소통과 평화를 이루어 냈으니 뿌듯하기 그지없다. 아! 인생은 아름다워. 그래. 행복을 느낄 수는 있어도 붙잡을 수는 없으리라.  순간순간을 맘껏 호흡하되 연연하지 말자. 행복을 껴안기만 하고 매달리지는 않는 거야. 내 생각이 신통해서 빙긋 웃음이 머금어지는데, 딸이 와서 내 무릎 위에 앉았다 간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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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냐..
    딸이란 그런 건가요?
    더 사랑해달라, 더 표현해달라 보채는 쩡은이가 가끔 부담스러워 외면하고 싶을떄가 있답니다.
    지금 제게 젤 힘든 것이 그것인 것 같아요.
    내 맘의 딸과의 소통....

    ps. inuit님께서 내신 책과 관련해 두 분에게 책을 미리 주신대요. 20일까지 리뷰를 쓰는데 그리뷰가 아마 마케팅 용으로 쓰이나 봐요. 언냐가 한번 해 봐 주시면 어떨까..한 번 생각 해 봤습니다. ^^ http://inuit.co.kr/1778 입니당.

    2009.09.10 00: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1인 몇 역을 하느라고 힘들겠지만,
      사랑해 달라고 보챌 때 맘껏 사랑해 주시기를!
      엄마의 인정이 없이도 잘 살아가는 때가
      생각보다 빨리 오던걸요.^^

      이누잇님 책 리뷰와 관련해서 나를 기억해 준 것은
      고맙지만, 나보다 훨씬 충실하고 열정적으로 참여할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2009.09.11 01:32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