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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5 <32호> 첫 책을 쓰고 확실하게 배운 것 (2)
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4. 15. 16:05
 

벌써 4월도 중순이다. 지난 12월에 첫 책이 나온 후 한 일이라곤 글쓰기강좌를 두 번 하고 ‘라라’ 라는 이름으로 연재하고 있는 글 35편을 쓴 것이 전부이다. 글쓰기강좌는 아주 좋다.  막연한 지식을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형태로 다듬을 수 있어서 좋다. 강좌를 하면서 누구보다 많이 배우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좀 더 설득력 있는 예화를 찾아 공부를 더 하게 된다. 그런데 조각글 35편은 조금 약하다. 1년에 한 권씩 책을 펴내기 위해서는 늦어도 두세 달 안에 원고를 완성하고 출판사를 확정해야 한다.  이런! 글쓰기에 박차를 가해야 하겠는 걸.

첫 책을 펴내고 책의 주제인 ‘2막’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우연히 글쓰기강좌를 하게 되었다. 막상 해 보니 ‘2막’을 주도하기 위한 도구로 글쓰기를 전문화해도 좋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분야에 대한 책 한 권은 가져야 하리라. 마음속에서 우러났다기 보다 순전히 상황에 의해 잡은 주제였다. 그래서 초반에는 조금 재미가 없었다. 읽고 쓰다 보면 가닥이 잡히겠지 묵묵히 쓰기로 했다. 정말 그랬다.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이미 누군가 써 놓은 것을 보고 기운이 빠지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번득이는 것에 영감을 받으며 조금씩 뼈대가 갖춰지는 것을 느낀다. 35편을 쓴 지금은 ‘글쓰기’라는 주제가 재미있다. 고수도 많고 좋은 책도 많은 이 분야에 내 책을 디밀 수 있을지 흥미진진하다. 지금 이 과정도 잘 기록해 두리라.  35편이 50편이 되고, 70편이 되면서 맞이하는 변화를 잘 들여다봐야지.

이만한 시야는 졸저나마 한 권을 쓰고 나서 열린 것이다. 요즘 나는 ‘글쓰기’라는 주제에서 벗어난 글은 쓰고 싶지 않다. 어떤 상념, 어떤 독서도 주제와 연결해서 정리하고 있다. ‘주제를 갖고 써라’ 첫 책을 쓰고 나서 배운 금과옥조의 1조인 셈이다. 어느 정도의 표현력을 갖추었으면 그 다음에는 주제를 가져라. 주제 없이 산발적으로 쓰는 글, 특히 감상에 치우친 글은 아무리 써야 소용없다. 하나의 주제로 집약된 글이 모여 책이 된다. 책쓰기를 염두에 두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상을 기록하거나 스스로 위로하기 위한 글쓰기도 좋다. 그러나 글쓰기에 매료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쓰기에 욕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글쓰기를 가장 사랑하고 완성하는 방법은 책쓰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으로 쓸 만한 절실한 주제’를 잡기가 어렵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사람들은 혹시 책이 될 만한 주제가 거창하고 대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모든 책이 대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한 권의 책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다지 커다란 것이 아니다.  우리도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역작을 읽으려면 심호흡을 하고 덤벼야 하지 않는가. 그저 ‘조금’ 참신하거나 ‘조금’ 재미있거나,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 그것을 통해 마음이 따스해져서 ‘역시 인생을 살 만 한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네’하고 잠시 낯선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 책을 쓰기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저마다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것에서 하나의 주제를 잡고, 하나의 컨셉으로 좁히기만 하면 된다.


내가 읽은 책 중에 제일 단순한 책은 ‘포스트잇 라이프’라는 조그만 책이다. 이 책은 ‘Life on the refrigerator door’라는 원제에 걸맞게 바쁜 엄마와 딸이 냉장고 위의 포스트잇을 통해 소통하는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오로지 포스트잇만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딸에게 토끼를 돌볼 것을 부탁하는 등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이하고도 잔잔한 일상이 짧은 메모 속에 펼쳐진다.  천연덕스럽게 사소한 일상을 다루던 쪽지에 엄마의 유방암 발병이 알려지고, 엄마가 읽을 수 없는 마지막 메모로 이야기는 끝난다. 어찌 보면 아주 흔하고 단순한 스토리인데, 울컥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가족’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그 책이 당연히 실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소설이란다. 우리는 주로 논픽션을 겨냥하지만, 지극히 일반적인 경험도 들려주는 방식 - 컨셉에 따라 설득력있는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예로 삼아 보았다.

그대가 갖고 있는 경험과 관심을 누군가에게 해 주고 싶은 단 한 문장으로 축약해 보라. 책 한 권에 한 가지 생각이면 족하다. 컨셉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이것이 책을 쓰고 난 뒤 얻게 된 두 번 째 교훈이다.  책에 대한 인식이 ‘대단한 성과물’에서 ‘좁혀진 경험’으로 달라진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면 책쓰는 속도가 달라질 것 같다. ‘퇴근 후 3시간’의 저자 니시무라 아키라가 책을 쓰고 싶어 뜸들이는 데 10년이 걸렸고, 첫 책을 낸 다음 해에는 3권을 쓰고, 그 다음 해에는 7권, 또 그 다음 해에는 10권을 썼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나도 조금은 빨라지려나.^^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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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nayoo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
    먼저, 책 내신거 축하드리고요.
    변경연 홈페이지 통해서 소식은 보고 있어요. 저는 작년부터 정예서 선생님과 글터 모임 하고 있거든요. 연말 모임도 갈 뻔 했는데 여차저차 기회가 닿질 않네요. 책에 대해 좋은 글 올려주셔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글쓰기 모임 하시나봐요. 축하드립니다.
    좋은 기회에 인사 드리겠습니다.

    2010.04.22 15:41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손만 뻗치면 닿을 곳에 계셨네요. 반갑습니다.
      언제고 한 울타리에 놓이게 되면 꼭 아는 척 해주시기
      부탁드려요.
      꽃들이 릴레이하듯 피어나는 봄날, 맘껏 가벼워지고 화사해지셔서 훨훨 날아오르시기를!!

      2010.04.22 20:43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