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09.04 너무 쉽고 분명한 관계론, 관계의 달인 (2)
  2. 2008.01.15 세팅 더 테이블 (2)
  3. 2007.12.06 아름다운 경영
  4. 2007.11.08 잠수복과 나비
  5. 2007.11.06 욕망의 힘
  6. 2007.10.14 행복의 조건 - Flow
 

앤드류 매튜스 글 그림, 관계의 달인 - 인생의 99%는 관계가 만든다. 북라인 2008


인생의 행복은 삶의 태도에 달려 있다.
 

이 책의 머리말 첫 줄을 읽으며 캬아~~  하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이제껏 살아온 내 경험에 비추어 이 말은 사실이다. 인생의 행복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일과 목표, 실패와 고통 같은 것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태도라는 말은 가치관이나 철학과도 비슷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치관이나 철학보다도 태도라는 말이 훨씬 실제적이다. 머리 속에 얼마나 복잡하고 체계 잡힌 철학이 들었는지 몰라도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그 사람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에  ‘삶의 태도’ 말고도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가 있다고 한다. 바로 ‘사람들’이 그것이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가슴 속이 아리다. 내가 정말 늦게 깨달은 만고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좋은 줄을 몰랐던 탓에 인생의 기쁨을 많이 놓쳤을 뿐 아니라 성장기회도 놓쳤다. 독립적인 삶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사람은 관계 안에서 살아야 한다. 이제껏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봐도 그 대답은 자명하다. 아이들이 크면서 말 배울 때, 내 말을 잘 받아주는 친구와 한 잔 할 때,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동호회와 함께 할 때 나는 행복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삶의 목표가 우정이라고 했던 연암을 닮고 싶어진다.


이 책은 그토록 중요한 관계에 대한 책이다. 원제는 Making Friends 이지만 딱히 친구 사이가 아닌 모든 인간관계에 통용되는 책이다. 친구는 물론 부모와 자식, 부부,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처럼 사람사이를 결정하는 원칙은 똑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놀랍도록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간단하고 쉬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오랜 세월 관계의 바깥에 머물러 온 내 눈으로 볼 때 이 책은 모두 옳다!


다른 사람들도 당신만큼 두려워하고 있다

사랑은 살아서 성장하는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함께 설 수 있다

아무도 당신만 바라보지 않는다

달콤한 인생은 더불어 사는 인생이다

솔직해지면 문제도 단순해진다

당신의 행동을 일일이 설명하지 마라

사람들에게 ‘네가 틀렸다’고 말하지 마라

예절이 친구를 만든다


눈에 띄는 목차를 옮겨 본 것이다. 명백한 사실 아닌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는 못하는 사실로 꽉 차 있지 않은가? 


한 고독한 여인이 레오 버스카글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내 남편이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 집 개한테 바로 그렇게 대하니까.”


우리도 언제고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나는 대학생이 된 아이들을 대할 때 자주 혼란스럽다. 어떻게 엄마역할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확신이 안 선다. 그래서 가끔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주저할 때도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의존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이 확대된다면, 나 역시 아이들 대신 애완견에게서 사랑의 결핍을 해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딸을 껴안으며 이렇게 말해 주었다.


“사람과 사람이 껴안을 때는 핏 속에 헤모글로빈이 증가한대. 헤모글로빈은 온 몸에 산소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니 정말 중요하지. 그러니 우리 자주 껴안으면서 살자. 만일 서로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그걸 저지하는 암호를 정하자. 헤모글로빈! 이라고 말하는 거야”


바로 이 책에서 배운 것이다. 딸은 일부러 ‘헤모로빈!’ 이라고 잘 못 말하며 한 번 더 웃겨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일방적으로 관계 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관계에 함몰되지 않는 주체성에 대해 누차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너무나 쉬운 문체로 어려운 관계의 비밀을 파헤친다. 가령 남편의 폭력을 용인하는 것은 아내라고 말한다. 나의 중심을 가지고 단호하게 경고하고, 그 경고대로 행동한다면 계속해서 아내를 무시할 남편은 없다. 그런데 남편의 폭력을 용인하는 아내는, 모든 핑계를 남편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자신이 무언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개척하는 위험을 피하는 대신 남편의 폭력 속에 숨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자신의 태도로써 자기가 받는 대접을 결정한다.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쉽고 간단하다. 그런데 중요한 말을 다 하고 있다. 책 전체를 통해 거의 인용을 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아래의 구절들을 읽어보라. 좋은 삶을 가져오는 원칙은 그렇게 어려울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네 살짜리 아이에게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서른 다섯의 다 큰 어른이 되었다면 스스로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나 본연의 모습을 갖추어야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지성과 재치로 상대방을 압도해야 할 필요는 없다. 공통점을 찾아내거나 진심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인간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상대방이 누구든 쉽게 대화를 할 수 있다.


말은 행동의 대용물이 될 수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행동도 말의 대용물이 될 수 없다.



인생은 자신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무례하게 굴어서도 안 되지만,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관계는 사업과 같다. 아무런 변화 없이 정체해 있는 게 아니라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는 것이다. 관계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깨닫는 바가 없음을 의미한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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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비꽃

    오랜만예요. 미탄님.
    그 넘의 '관계'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상처도 받는 저같은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네요.
    우리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실수 중에
    '관계'에 가하는 해가 가장 치명적인 것 같아요.
    그건 인간살이가 서로 연걸린 관계에 다름아니기에.
    어떤 인간도 홀로 서서 아무에게 선함도 해악도 주지 않는다면 그건 죽음이겠죠.
    마지막 인용문에 끄덕입니다.
    올해 많은 '관계의 재산'을 놓거나, 잃어버리면서 받은 아픔이 있었는데,
    그게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이겠거니 싶습니다.
    아무 갈등없는 좋은 벗이 많았다는 것이나,
    갈등을 가질 벗이 없었다는 것이나 '사업'에 있어서는 정체 그 자체로군요.^^

    2008.09.04 11:41 [ ADDR : EDIT/ DEL : REPLY ]
    • 어이쿠! 제비꽃님의 댓글이 이 책보다 더 내공이 쌓인 것 같은데요. 이 두 문장 너무 좋아요!

      어떤 인간도 홀로 서서 아무에게 선함도 해악도 주지 않는다면 그건 죽음이겠죠.


      아무 갈등없는 좋은 벗이 많았다는 것이나,
      갈등을 가질 벗이 없었다는 것이나 '사업'에 있어서는 정체 그 자체로군요.^^

      2008.09.04 11:56 신고 [ ADDR : EDIT/ DEL ]

 대니 메이어, 세팅 더 테이블, 해냄, 2007

‘행복학’에 대해 읽으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한 사람을 직접 보고 접하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성공학’에 대해 읽으면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사람들을 보고 접하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이나 성공의 영역은 ‘지식’과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각성’이 와서 질적 변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다보니, 대동소이한 내용들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 많은 성공학과 성공의 원칙이라니! 그러던 중 발견한 이 책은 군계일학이다. 뉴욕의 레스토랑 경영의 귀재가 쓴 책이지만, 모든 사업에 적용해도 좋을 원칙으로 빛난다. 경영이 직관과 창의성과 인간주의, 승부근성의 영역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하다. 언제고 자기사업을 하고 싶은가? 이 책을 보라. 성공하는 사람의 비밀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보라!


저자 대니 메이어는 1985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처음 레스토랑을 개업하여, 현재 11개의 레스토랑을 거느리는 CEO이다. 그의 레스토랑들은 뉴욕에서도 최고급이다. 두 번째 식당 그래머시 태번을 설계하고 건축하고 꾸미는 비용에 300만 달러가 들었다거나, 어느 식당인가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배경이 되어 유명해졌다거나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의 식당들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이지만, 그의 경영철학은 모두 알아들을 수 있다!


저자는 타고난 사업가이다. 부모님은 물론 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모두 뛰어난 사업가였다. 음식에 대한 저자의 감각역시 타고난 것 같다. 저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오감을 동원해서 음식을 먹었다. 네 살 때 이미 마이애미 해변의 라군 레스토랑에서 먹는 스톤크랩의 맛에 홀딱 빠져,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아무나 붙잡고 스톤크랩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댔다고 한다.


그는 모든 체험을 사업전략으로 발전시켰다. 어린날의 가족여행에서 보통여관에 머물며, 진심으로 반겨주고 사랑과 정성이 어린 음식맛을 접한 기억이, 손님을 ‘배려’하는 핵심전략으로 자리잡았다. ‘배려’에 대한 그의 철학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중요한 것은 마음, 마음이 없는 서비스는 아무리 능숙해도 곧 잊혀진다.

서비스가 어떤 상품을 기술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면, 배려는 그 상품을 전달받는 사람의 느낌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서비스는 일방적으로 서비스의 기준을 정하는 반면, 배려는 손님의 입장에서 모든 감각을 사용해서 귀를 기울이고 계속해서 사려깊고 호의적이고 적절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사업과 인생은 포옹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포옹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포옹을 해야 한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200번씩 앵무새처럼 되뇌는 소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배려는 독백이 아니다. 나는 직원들에게 우리가 손님의 편에 있다고 느끼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말한다.


그는 독창적인 최상주의자이다. 자신이 열정을 갖고 있는 것들을 서로 조합해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쁨에 몸을 맡겼다. 그래서 그의 레스토랑은 모두 실험적이고 혁신적이다.  미술관 레스토랑, 인도 레스토랑, 바비큐 전문점, 길거리음식의 레스토랑화....


무엇보다 맥락이 중요하다. 내가 어떤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은 열정과 기회<때로는 우연>와 만나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가치와 적절한 아이디어가 어우러진 적절한 맥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위한 시장 분석에는 의존하지 않으며 관심도 없다. 나 자신이 실험 대상일 뿐이다. 나는 분석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직관적이다. 만일 열정적으로 관심이 가는 뭔가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감지하면 그 일에 전력투구한다.


'직관'!  나는 왜 이 단어에 매혹되는가. 김영사의 박은주사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TV와 신문을 거의 보지 않지만, 직관을 발휘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미래산업의 정문술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객관적인 조건이 아니다~~ 싶을 때도, 물건<?>들은 뭔가 만들어내더라는 것이다.
'맥락"! 새롭게 추가되는 단어이다. 직관으로 시작하여, 맥락을 추구해가는 과정의 희열이 전해오는 듯하다.  

구미가 당기는 대상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고, 특별한 것을 추가하여 새로운 맥락context을 창조하기 위해 그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 질문을 통해, 전혀 새로운 방식의 레스토랑이 생겨나곤 했다. 그가 질문하는 방식은 아주 매혹적이다. 그는 길을 만들며 간다. 문화의 창조주이다.


고급요리는 턱시도를 입은 웨이터들이 서브를 하고 숨이 막힐 듯이 조용하고 경직된 분위기에서 먹어야만 한다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우리가 단지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훌륭한 음식과 다양한 고급 프랑스 와인을 즐기지 못하라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핫도그 수레처럼 평범한 사업으로 탁월성과 접대의 범위를 넓히면 안 된다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핫도그 수레 이상의 뭔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레스토랑 운영에 이만한 창의성과 혁신이 숨어있다니,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다. 나도 그처럼 전혀 다른 것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 나는 그에게서 질문하는 법을 배운다. 홍대앞에 카페와 병원을 접목시킨 곳도 있던데, 카페와 학습을 연결시키면 어떨까.
음식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지만, 저자도 초기에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격’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더구나 음식에 대한 이렇게 멋있는 정의도 있는데!


나에게 있어서 음식과 안정과 사랑에 대한 세 가지 기본적 욕구는 서로 얽히고 설켜 있기 때문에 한 가지를 나머지 두 가지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허기에 대해 글을 쓸 때 실제로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허기에 대해, 따뜻함과 그 따뜻함에 대한 허기에 대해, 그리고 허기가 채워졌을 때의 따뜻함과 만족과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 쓰게 된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다.

--  메리 프란시스 케네디 피셔, ‘나는 식도락가’ 중에서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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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앨리스

    자기계발서가 대동소이하다는 말씀에 동감입니다. 개인적으로 레스토랑/식당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사실 먹는 것에 대해^^)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관심이 가는 분야에다가 자기계발서 기능까지 .. 제가 정말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소개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1.16 15:29 [ ADDR : EDIT/ DEL : REPLY ]
    • 어제 절반분량을 읽고 위 글을 썼거든요.
      오늘 마저 읽었는데, 더 나은 글이 나오질 않네요.
      이 책에서 받은 직관은 절반만 읽어도 충분했다~~ 뭐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네요. ^^

      자신의 일을 찾는 사람, 현장에서 벽에 부딪친 사람, 성공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답을 줄 만한 책입니다.
      강추! 좋은 책은 삶과 따로 놀지 않는다!

      2008.01.16 20:34 신고 [ ADDR : EDIT/ DEL ]

  정문술, 아름다운 경영, 지와채, 2004

원칙적이고 인간적인 경영, 2000년 국내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 카이스트에 300억 기부 등 확실한 족적을 남긴 경영인 정문술의 인상은 지나치게 평범했다. 책 표지에 실린 사진은 보통 기술자의 모습이었다. 물론 깐깐해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런 느낌을 가진 사람은 너무 많다. 가장 보편적인 대한민국 가장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 평범해보이는 인상 어디에 정문술은 그 많은 것을 꾸려넣고 있었을까. 게다가 그는 그 많은 것을 다 어디에서 배웠을까. 자기 말마따나 어려서 공부에 뜻이 없어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보결로 들어갔고, 기술이나 경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원광대 종교철학과를 나온 사람이!


그는 육군에 근무하던 중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중앙정보부로 특채되어 18년간 근무한다. 당시 그의 보직승진이 초고속이라 주변에서는 든든한 빽이라도 있는줄 알았다고 한다. 정문술은 자신의 빽이 ‘호기심’이었다고 말한다. 군에서 접한 기획관리와 문서관리, 행정시스템의 합리성과 효율성에 매료되어 무슨 일이든 찾아서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부터 그의 특질이 드러난다. 기획관리와 문서관리에 매료될 일이 뭐가 있는가, 얼핏 봐도 매혹적인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정문술은 학과공부와 상관없는 타고난 현장성 학습인이다. 자신의 호기심에 걸려든 일에 깊이 몰입하여 따져묻고 공부하여 기어이 자기영역을 만들어 버리는 사람이다. 중앙정보부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서양화 한 점에 매료되어 시작했다는 그림공부 역시 그렇다.


그는 독학으로 자신의 감각을 키우고 그림을 사들여야 할 시점을 알아차렸다. 한 점 두 점 사모았던 그림은 회사가 어려울 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의 학습기질은 계속해서 발휘된다.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중앙정보부에서 강제해직된 정문술. 43세, 군대생활만 해보았을뿐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그는, 쭉정이 금형공장을 인수받아 퇴직금의 절반인 2천만원을 날려버린다.


그리고 1983년, 그는 반도체 분야에 뛰어든다. 가까운 미래에 반도체가 크게 각광받을만한 사업이라는 상식 정도가 사전지식의 전부였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젊은 시절 그를 사로잡았던 호기심과 열정 패기 낭만 모험심 승부근성을 공무원 서랍에서 다시 꺼내 들고, 그는 다시 겁이 없어지기로 작정한다. 다짜고짜 반도체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악전고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처음으로 개발한 ‘무인 웨이퍼 검사장비’는 실패였다. 개발을 하긴 했는데, 기계의 속도가 숙련공의 4배가 걸렸다고 한다. 18억을 삼킨 바보장비를 만든 것이다.


“죽읍시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이 없구려.”

비감한 말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준 아내. 평생에 걸친 아내의 침묵과 순종이야말로 자신의 모험심과 배짱의 진짜 배후였고 뒷심이었다며, 정문술은 책의 끝부분을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여자인 나로서는 평생을 침묵하고 순종해야 하는 배역이 영 이해되지않고 마음에도 들지 않지만, 성공하는 경영인의 입장에서는 필수적이기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동반자살의 지경까지 갔던 정문술은, ‘나는 용궁에 갔다 온 사람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촌스럽고 진부하지만 자신이 경험한 절망의 나락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비유이기 때문이다. 없음의 극한을 경험해 보았다는 것이다. 돈 때문에 죽을 고비까지 넘겨야 했던 그는 언젠가 반드시 돈을 극복해보겠다는 보복심리를 갖고 살아왔다. 신의와 의리로 여봐란 듯이 성공해서 그렇게 번 돈을 또한 아낌없이 포기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겠다, 그래서 인간이 그까짓 돈보다 얼마나 우월하고 귀한 존재인지를 끝내 증명해 보이리라, 이를 악물고 맹세해가며 버텨왔다는 것이다.


절망의 나락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학습인 정문술, 그는 정말 자신이 생각한대로 되었다. 그깟 돈이 없어서 꿈을 접어야 하는 사람들이 가여워, 인정할만한 사업계획을 갖고 오는 사람에게 아낌없는 투자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카이스트에 300억을 기부하여, 아름다운 경영과 진정한 부자의 표상을 보여주었다.

카이스트에 300억을 기부할 때도 진정 정문술은 정문술다웠다. 기부를 하더라도 열정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한창 때 하고 싶어, 자선에 대한 공부를 한 결과이다. 생명과학과 정보기술과 기계기술을 서로 융합하여 학제간 연구를 할 수 있는 첨단학과를 신설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이오시스템학과’, 나같은 문외한은 발음조차 어색하나 ‘과학콘서트’의 저자 정재승이 ‘바이오시스템학과’ 조교수인 것을 보니, 조금 친밀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정문술은 명예욕이 대단한 사람이다. IT업계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으로 ‘벤처대부’라는 칭호를 얻었거니와, 富를 제대로 쓰는 방법을 터득한 것도 그렇다. 매스컴의 떠들썩한 칭찬에 대해 그는 말한다. 추하지 않게 늙어가며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살아보겠다는 또 다른 노욕老慾의 발로일 뿐이라고. 그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 욕심이 많고 욕심의 폐부를 꿰뚫어보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욕심에 파묻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필생의 역작이자 꿈의 공간이라고까지 여겼던 ‘미래연구센터’의 준공식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은퇴했으면 온전하게 물러나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카이스트의 정문술 빌딩 준공식에도 불참한다. 기부한 것으로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고 보는 것이다. 고향사람들의 청탁을 피해 고향갈 일을 줄이느라고 부모님 산소까지 이장했다는 대목에서는 무섭다는 생각까지 든다. 자기다움을 관철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버티는 모습 앞에서, 아무 것도 지킬 것없이 허비하며 살아온 내 모습이 부끄러울 뿐이다.


나이든 자의 욕심이라 해서 정문술의 그것을 어찌 노욕老慾이라고 부르랴. 우리 사회가 나이든 사람과 동일시하고 있는 모든 탐욕과 어거지 그래서 노추老醜가 되는 것들로부터 그는 진정 멀리 있다. 젊은 누구보다 직관적이고 젊은 누구보다 자존심이 짱짱한 정문술, 한 분야에서 도통하면 다른 분야에까지 전이가 되는 것인가. 그의 문장은 평생을 글쓰는 일로 살아온 수필가의 문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거기에 뜬구름잡는 선문답이 아니라, 진흙탕 싸움에서 멋지게 승리한 경험담을 풀어놓으니, 알짜배기 인생교훈이 되었다.


보라, 정문술의 어록을, 책상 앞이 아니라 전선에서 몸을 굴려 살아남은 자만이 줄 수 있는 빛나는 교훈이다. 들어라. 젊은이여. 젊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시간은 널널하지 않다. 언젠가는 소멸되는 것이다. 미래를 향해 자신의 꿈을 위해 아낌없이 투신하지 않고는 언젠가 빈 손을 쳐다보는 막막함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래는 맞이하거나 준비하는 게 아니다. 확신을 갖고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 나이가 되었어도 나는 여전히 열정과 위험을 사랑한다. 그 아름다운 무모함을 죽는 날까지 곁에 두고 싶다.


부자를 탈피함에도 나름의 취향이 있고 기질이 있을 법하다. 나는 벤처인이다.


만사 8할만 추구할 일이다. 100%에 도달하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100%를 추구하는 많은 이들은 기껏 쌓아 온 것들마저 탕진하거나 하다 못해 세인의 빈축을 산다. 섭생攝生이 그렇고 치부致富가 그렇고 권력이 또한 그렇지 않은가.


오동나무는 세 번 잘라 줘야 하는 법이네. 기를 죽여야 크게 자라지.”


오동나무 부분에서 조금 울었다. 지금 제대로 잘려있기 때문이다. ^^ 누군가 나를 크게 키우기 위해 내 기를 죽이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정문술의 체험과 통찰이 집약된 부분을 옮기며 긴 글을 맺기로 한다. 내가 지금 이 책을 만난 것도 하나의 전조이다. 늦게나마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기 때문에 발견한 척후병이다. 나도 언젠가는 ‘정문술’ 처럼 말할 수 있겠지. ‘운이란 지독한 집중력으로 일궈내는 필연’이라고.


“아무리 사소한 트랜드라 할지라도 반드시 전조가 있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조그만 암시라도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제때 포착하기 위해서는 늘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할뿐더러 무엇보다 길목을 제대로 지키고 서 있어야만 한다. 정확한 길목을 지키고 서서 눈을 부릅뜨고 있다보면 분명 척후병이 포착된다. 척후병이란 곧 ‘조짐’이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는 길목은 특정한 매체나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주로 흘러다닐 만한 ‘요충지’를 뜻한다.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척후병을 잡게 되면 그때가 바로 결정의 순간이다


직관이란 개념도 내게는 우연이란 개념과 동류다. 일정한 트랜드를 관찰하다 머릿속에 불쑥 떠오르는 어떤 예감, 또는 복잡한 상황을 순식간에 단순화시켜 실무와 의사결정에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직관력있는 사람이다. 그는 길목을 제대로 지키고 서서 늘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직관에 대한 믿음도 생기는 것이고 그 믿음을 밑천으로 과감한 행동에 돌입할 수도 있는 것이리라.”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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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도미니크 보비, 잠수복과 나비, 동문선, 1997


불의의 사고로, 당신이 전신마비라는 불행에 처하게 된다면, 어떻게 상황에 대처할 것인가. 여기 뇌졸중으로 전신마비에 처했으면서도,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새롭게 인간성의 경험을 확장시킨 사람이 있다.


장 도미니크 보비, 그는 잡지 ‘엘르’의 편집장으로 일하던 44세에 뇌졸중으로 꼼짝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그역시 ‘뇌간’이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 날 이후, 뇌와 말단 신경을 이어주는 통로인 ‘뇌간’이 고장남으로써 환자가 내부로부터 감금당한 상태, locked-in syndrome이 15개월간 지속된다. 오직 왼쪽 눈꺼풀의 감각만 남아있을뿐 TV조차 켤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그는 잠수복을 입은 것처럼 갇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운이 좋아서 조금이라도 잠수복이 헐겁게 여겨지면, 그의 정신은 나비처럼 자유롭게 유영한다.


책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답게, 쉽게 들뜨는 상상력을 타고난 사람답게, 그는 감각을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음식을 조리하고 맛볼 수 있다. 기억이야말로 감각의 무궁무진한 보고이다. 계절의 변화를 철저하게 고려하여 가장 좋은 재료를 엄선하여, 품질보증서가 붙은 포도주를 곁들여, 기억 속의 성찬을 즐기는 그. 초기에는 결핍감 때문에 폭식을 했지만, 이제는 농가에서 직접 만든 소시지 한 줄로 만족한다는 그. 8개월간 먹은 것이라고는 레몬을 탄 물 몇 방울과 요구르트 반 숟가락이 전부일뿐, 필요한 열량은 위를 통해 직접 투여되는 처지의 그가 발굴해낸 놀이여.


TV를 켜는 것은 고도의 전략 문제라고 한다. 까딱하면 서너 시간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아 채널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눈부신 석양의 빛줄기가 정확하게 침대 머리맡에 와닿는 시간, 세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간호사가 와 주겠지... 50센티미터 앞에 앉아있는 10살된 아들의 숱많은 머리털 한 번 쓸어줄 수 없는 기분을 무어라 표현할 지 울부짖는 그. 극악무도한? 불공평한? 더러운? 끔찍한?


E S A R I N T U L O M D P C F B V H G J Q Z Y X K W
얼핏 보기에 무질서해 보이는 이 글자행렬은, 불어에서 사용되는 빈도에 따라 철자를 배치한 그의 알파벳표이다. 그는 이 알파벳표를 보고 원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박인다. 이 기호체계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라고 한다. 크로스워드나 스크래블 애호가들은 적응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여자들이 쉽게 익숙해진다.


이렇게 낱말 하나를 전하기 위해 하나 남은 눈꺼풀을 수없이 움직이는 방법으로, 우리는 이 책을 갖게 되었다. 콧등의 파리조차 쫓지 못하는 지금 생각하면 일상은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면도하기, 옷입기, 코코아 마시기는 물론, 늘씬한 갈색 머리 여인과 함께 잠을 자고 일어났으면서도 그것이 행복인지도 모르고 툴툴거리며 일어났던 날들. 그 날들에 대한 현기증나는 기억과, 잠수복 속에 갇힌 믿지못할 상황을 놀랍게도 그는 유머로 갈무리한다.


고도로 뛰어난 언어감각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자신만의 우주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운명을 바꿔놓은 불운을 농담으로 돌릴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유머가 통곡보다 더 깊은 슬픔임을 알게 된다.
세 명의 간호보조사가 자신을 침대에 누이는 동작이, 자동차의 트렁크에 방금 살해한 훼방꾼의 시체를 억지로 쑤셔넣는 추리영화 속의 갱 같다고 말하는 그. ‘식물인간’이라는 세간의 호칭에 저항하기 위하여, 자신의 지적 잠재력이 시금치나 당근의 지적 능력보다 월등하게 우수함을 증명하기 위해 책을 쓴다는 그.  오, 하느님!


편지이며 일기이며 유서인 그의 책을 평소 습관대로 빨리 읽어내려가는 것이 너무 죄스러웠다. 늘 하던대로, 책을 읽으며 어떻게 리뷰를 쓸까 궁리하는 것이 민망했다. 멀쩡한 몸을 가지고도 탁하고 무겁게 살아가는 우리들, 내 영혼의 나비는 아직도 꼬치에서 웅크리고 나올 생각을 않는데, 그는 잠수복에서 빠져나와 훨훨 날아갔다. 우리에게 살아있음이 기적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조차 기적인 것을 가르쳐주고.


“열쇠로 가득찬 이 세상에 내 잠수복을 열어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없을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줄 막강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겠다. 나는 그 곳으로 간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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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파시니, 욕망의 힘, 에코리브르


‘욕망’이라는 단어처럼 불온한 취급을 받는 단어가 또 있을까. 지인 하나가 글을 쓸 때면 무조건 ‘욕망’ 앞에 ‘불온한’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웃은 일이 있다. 나는 ‘욕망’이라는 단어에서 삶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읽는다. 이제껏 황당할 정도로 일을 벌리며 살아온 나는, 평탄한 삶에서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지루함을 읽기 때문이다. 욕망이 없이는 삶도 없다.


한세상 살아낸 지금은 그렇다. 내가 나로서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기질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겠다.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는 한도 내에서라면, 누구나 생긴대로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기질을 결정하는 요인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양식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최고의 책이었다. 모녀관계, 연인관계, 부부관계의 기저에 흐르는 ‘다름’과 ‘욕망’의 지도를 볼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이론적이되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되 품위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남과 여’에 관한 대목이다. 이 책에는 남녀간의 미묘한 차이, 연령에 따른 부부관계의 추이, 부부 간의 소통과 함정 등이 다루어져 있다. 여자들은 사랑할 때 지나치게 사랑한다. 남자들이 과장된 성행위를 통해서 한계를 넘어선다면, 여자들은 감정적 영역에서 과잉의 상태에 놓인다. 나는 여자들이 이 부분을 잘 이해하고 반응한다면 불필요한 감정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가령 남자와의 감정적 일치에 대한 기대치를 줄인다든지, 남자들의 성적 욕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젊은 날의 부부는 강한 육체적 친밀감을 기반으로 통합되어 있다. 그러나 40대 정도가 되면, 나름의 자율성을 확립해야 관계가 유지된다. 제각기 다른 취향을 인정하고 서로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상호이해를 증진할 수 있는 시기이다. 나는 이 부분을 ‘적절한 거리’로 이해했다. 노년이 되면 부부는 다시 젊은 날처럼 새로운 친밀감의 욕구를 느끼게 된다. 건강과 고독에 대한 염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부가 연령별로 적절하게 변화하고 순응할 수 있다면, 보다 탄력있는 일상생활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 본다.


부부 간에는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문제가 된다. 친밀감이 결핍되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되지만, 과도한 친밀감 역시 욕망 충족에 커다란 위험요소가 되는 것이다. 결국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자치공간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연인 간에 에로티시즘이 어떤 경로를 통해 움직이는지 하는 문제도 재미있었다. 여자는 촉감에 민감하다, 남자는 시선에 더 비중을 둔다. 목소리는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난 관능적 기관이다. 대화의 내용보다도 음색, 톤, 끊어지는 호흡이 더 중요하다. 음식을 즐기는 연인은 언제나 얘깃거리가 풍부하여, 서로에 대해 굳이 욕망이 아닌 호기심이라도 날마다 새롭게 가질 수 있다. 수도승처럼 입고다니지 않는 한, 옷은 틀림없이 욕망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민망했던 것은, 자신의 열정을 제어할 줄 모르는 성향에 대한 분석이었다. ^^ 사람과의 만남이란 어떤 경우에도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상대와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단계에서는 능숙한 처신을 보여주지만, 완만한 시간의 흐름이 필요한 순간에는 정말 미숙한 면모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연애도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치게 앞서나가거나, 항상 직설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것은 역효과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은 언제나 달아나는 것에 이끌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줄곧 곁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감정의 포화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의 심리를 읽는 것은 재미있다. 이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관계증진에 도움이 될 지 아직은 모르겠다. 좋은 것을 따라가는 ‘욕망’은 또 다시 새로운 욕망의 가지치기를 해 줄 것이다. 나는 단지 내 마음을 따라간다. 나는 욕망의 힘을 믿는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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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목적적 경험 또는 플로우는 삶의 진로를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소외감은 참여로 바뀌고, 즐거움은 지루함을 대체한다. 또 무력함이 통제감으로 전환되며, 외적 목표를 수행하는 데 소비되었던 심리 에너지는 자아를 강화하는 데 쓰인다. 경험이 내적으로 보상을 받을 때 삶은 미래의 가상적 보상에 저당 잡히는 대신 현재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flow"에서 -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내 경우에는 20대에 농촌활동에 몰입했을 때, 하던 일을 확장했을 때, 李씨 성을 가진 누군가에게 빠져 있었을 때, 그리고 글쓰기에 몰두한 지금을 들 수 있습니다.


무엇엔가 혹은 누군가에게 몰입해 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잊어버립니다.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대상과 하나가 됩니다. 이럴 때 시간은 눈깜빡할 사이에 흘러가버리기도 하고 아예 정지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이 되는거지요.


무아無我의 경지, 잠시나마 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경험입니다. 이런 최적경험optimal experience 을 하고 나면 이미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관계없이 이들과의 상호작용에 모든 심리에너지를 몰입시키면, 이전에 개별적인 자아였을 때보다 훨씬 커다란 활동체계의 일부가 됩니다. 자아가 확장된 것이지요. 제대로 사랑을 하고나면 대박성장을 하게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런 몰입을 자주 할 수 있도록 의식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저절로 행복해지겠지요. 몰입을 하지 못하는 성격부터 이야기하자면, 선천적으로 주의력이 산만한 사람도 있답니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끊임없이 신경을 쓰는 과도한 자의식도 즐거움을 누리는 데에 장애가 되겠지요. 그 다음에 자기중심적 성격을 들 수 있는데요, 자기중심적 성격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잠시 몸이 굳었습니다. 오랫동안 내가 몸담아왔던 오류를 직시하는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무엇이든 사소한 것조차도 그것이 자신의 바람과 얼마나 일치되는가를 따져서 평가한다고 합니다. 완전히 자신의 목적에 맞추어 자의식이 구조화되어 있으며,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의식 안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지요. 언어와 기질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차단되는, 내 못된 습관이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로 해서 나의 경험과 관계망은 형편없이 축소되었지요.


반면에 최적경험 - flow를 자주 접하기 위해서는 자기목적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목적이라는 말은 사회가 주입시킨 목표가 아닌 스스로의 목표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미래의 이익에 대한 기대없이 행위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일 - 부모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나 훌륭한 시민으로 키우기 위해서가 아닌,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을 즐기기 때문에 교육하는 것, 사회적 성취에 따라오는 부와 명예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절박하고 즐겁기 때문에 행하는 모든 일들이 거기에 해당됩니다.


엄청나게 확대된 물질과 선택의 자유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는군요. 즐거움을 맛볼 기회가 많아졌지만, 기회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봅니다. 사회적인 통제나 문화적인 각본이 써주는 목표에서 벗어나 나의 내면을 따르는 일, 오감을 열고 대상과 합일하는 경험에 빠져보세요. 그것이 삶이 주는 참 보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시적인 쾌락에 빠지는 것은, 우리의 자아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쾌락과 즐거움의 차이는, 우리의 자아에 복합성을 추가하여 확장을 가져다주는가의 문제입니다. 지금 당신이 빠져있는 그 행위, 혹은 그 사람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잣대가 될듯합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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