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4. 13. 08:34
 

아들이 휴학을 했다. 전공에 대한 확신이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1년 정도 쉬면서 생각을 좀 해봐야겠단다. 해 보고 싶은 일이라곤 한옥건축 밖에 없다는 소리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79년 대학을 졸업하던 때, 농촌활동 말고는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나는 활동 다니던 지역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농사꾼과 결혼까지 했다.

결혼은 15년 만에 거대한 오류로 판명되었다.  ‘불과’ 15년 만에 ‘어떻게 그런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들이 내 결혼처럼 황당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한옥건축’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비경쟁, 비주류, 비현실, 낭만, 자연... 인생이 아이러니한 농담처럼 반복된다더니 사실이었다. 다만 시간이 재주를 부려 이번에는 내가 부모 역할이었다. 순간적으로 장면이 바뀌어 30년 세월이 흐른 영화나 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아들이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고스란히 답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살면서 깨달은 것을 아들에게 강요하게 될까봐 자제해야 했다. 그래도 알려주고 싶었다. 필요한 정보를 뇌에 입력하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이란 참으로 더디고 미욱한 동물이다. 어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인생의 문제를 일일이 몸으로 부딪쳐가며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풀어가니 말이다. 그렇게 아프게 배운 것만이 내 것이 된다고 말하기엔 너무 안타깝다. 내가 유독 시간을 많이 낭비한 탓일 것이다. 그 많은 시간과 기회를 날려버린 생각을 하면 기운이 쫙 빠진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사람이 나처럼 어렵게 배우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한 번 살아본 것처럼 야무지게 자기 갈 길을 간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전에 학원 할 때 자수성가한 동료원장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의 경우에는 삶의 가혹함을 미리 깨달은 것이 득이 되었을 것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은 아직도 유효하다.  만일 돈 주고도 고생을 살 수 없었다면 미리 인생을 맛보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성장소설을 읽는 것이다.

러셀 베이커는 어린 시절, 자신의 존재가 어머니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싫었다. 자신이 어머니의 미래인 것도 못마땅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미래였던 시간들을 모두 과거로 치워 없애고 스스로 시간을 창조했다. 그리고나서 자신의 약동하던 미래가 자기 아이들에게 따분한 과거가 되고 마는 것을 줄곧 지켜보아야 했다. 인생이 소름끼치도록 반복되는 춤동작 같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는 인생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든이 되어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모습에 정확하게 오버랩되는 자신을 보았을 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피와 뼈를 나눠준 한 세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마치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통증으로 감지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의 자전소설 ‘성장’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 책은 자신을 키워준 시공간에 대한 읍소이며, 자기 하나를 키우기 위해 등장해 준 인물들에 대한 경배다. 그는 지나간 것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사라지는 것에 대한 뜨거운 연민으로 한 장면 한 장면을 되살려냈다. 자기 인생을 책 한 권에 완벽하게 재현하며,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마치 삶이 끝난 것처럼 바닥모를 허무에 젖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이 책은 사람을 끌어 당긴다. 책을 다 읽고 삶이 두려워 펑펑 울어버렸을 정도이다. 

이 책의 여파는 컸다. 나는 친정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심했다. 엄마는 서걱거리는 며느리와의 생활을 힘들어하셔서 딸들 집을 오가고 계셨다. 이미 노화의 징조는 엄마를 점령해 버렸다. 솜씨 좋고 활달하던 장년의 엄마가 아니다. 이제 어디에도 자신이 주도할 세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엄마는 빠른 속도로 자식들에게 순응해 왔다.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자꾸 한정된다. 엄마는 똑같은 이야기만을 하고 또 하신다. 일흔 여섯, 오래지않아  엄마의 총기가 불시에 흐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기만 해도 무섭다.

그런데 엄마를 돌보는 것이 내 삶에 대한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껏 하고 싶은 일을 모조리 하며 살아 왔다. 한 번도 남을 위해 희생한 적이 없고, 뼈 빠지게 일한 적도 없다. 무엇엔가 열중하여 밤을 새워본 적도 거의 없고, 코피를 흘려 본 적도 없다. 심지어 연애다운 연애를 해 본 적도 없다. 이렇게 밋밋하고 데면데면한 삶에 치열함 하나를 더하고 싶었다. 이것은 노인을 모시는 일이 끔찍하고 처절한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다.  엄마를 모시겠다고 결심한 순간, 나는 아이들보다 엄마 편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아이들이 힘들어 하거나 심지어 반대한다 해도 내 결정을 관철하겠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얼마든지 자기네 힘으로 살 수 있을 테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머물러야 하겠다.

나는 러셀 베이커의 ‘성장’을 읽고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그 책 속에서 미리 보아버린 소멸이 나를 비장하게 만들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고, 아직 겪지 않은 일에 맞설 수 있게 되었다. 성장소설에는 삶이 들어 있다. 삶의 저 편에 미리 가 볼 때 우리는 부쩍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은 아들처럼 젊은 친구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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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0.08.02 22:29 [ ADDR : EDIT/ DEL : REPLY ]
    • ㅎㅎ 혼자 생각만 벅찼을 뿐, 엄마가 허락하지를 않지요. 그러리라고 짐작하면서도 혼자 결심하기까지에도 그렇게 어려웠던 걸 생각하면, 인연의 허약함에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는 것 같아요.

      삶이 단순하게 느껴지면, 많이 산 것이라더니
      요즘은 자꾸 삶이 단순하게 느껴지네요.
      -- 많이 살았으니 당연한 건가요?^^

      님처럼 차분하게 주변 사람의 글 속에서도 교훈을 얻는 분은, 지혜롭게 잘 살아갈 것 같아요. 너무 단순하여 결곡하게 느껴지는 삶의 정수를 알 것 같아요. 살아보지 않고도.^^

      2010.08.05 17:54 신고 [ ADDR : EDIT/ DEL ]

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3. 31. 00:07
 

책 한 권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읽어 치웠다. 러셀 베이커의 자서전, ‘성장’이다. 360페이지. 다 읽고 나서 눈물이 솟구쳤다. 삶의 끝에 버티고 있는 소멸을 보아버린 탓이다. 그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었다. 지루한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저자는 책 전체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그저 보통의 삶을 풀어내는데 흡입력이 대단하다. 그는 독자가 늘어질 틈을 주지 않고 한 발 먼저 장면을 바꾼다. 소제목도 없이 숫자만 매겨진 챕터마다 간결하고 힘있는 문체와 빠른 속도로 새로운 국면을 펼쳐 놓는다. 

여든의 연세로 어머니의 적적함은 끝이 났다. 그 해 가을 이후로 어머니의 정신은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떤 날엔 반세기 전에 있었던 결혼식과 장례식엘 다녀오셨고, 어떤 날은 이젠 백발이 다 되어 버린 그 옛날의 아이들을 위해 일요일 오후 내내 준비한 저녁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기도 했다.

상황으로 시작하든,

1931년 1월, 어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뉴욕으로 가셨다.

시점으로 시작하든, 그의 첫 문장은 나를 빨려들게 한다.

해럴드 고모부는 거짓말의 귀재였다.

이처럼 단순한 문장조차 그의 리듬에 얹혀 지면 달라진다. 그는 60년 세월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강약을 두어 재창조했다. 극히 부분적인 사건들을 통해 그의 삶의 전모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는 그가 만들어낸 속도에 빠져든다.

“어떻게든 잘되겠지.” 내가 고등학교 졸업반에 올라가면서부터 어머니는 그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그것은 꼭 필요한 부분만을 추려낸 과감함과, 생생한 인물들, 살아있는 대화체의 덕분이다.

1981년 가을, 미미와 나는 태어난 지 석 달 된 손녀를 보러 작은아들의 집이 있는 버지니아로 차를 몰았다.

때로 30년을 뛰어넘기도 하고, 이야기를 시작한 장면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끝내는 구성의 힘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저자는 그의 스토리텔링에 적절한 속도감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성공은 그것뿐이 아니다.

그의 문장은 간결한가하면 정교했다.  그가 묘사한 인물은 어찌나 생생한지 꼭 아는 사람 같고, 그가 묘사한 공간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꼭 한 번 가 보고 싶고, 그가 묘사한 시간은 어찌나 감미로운지 나도 따라 해 보고 싶었다.

성탄절이 되면 어머니는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다정다감해지셨다. 성탄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 어머니는 집에서 만든 맥주를 깡통들에 담아 밀봉해서 효모가 발효되도록 욕실에 보관해 두셨다. 욕실 옆에 붙어 있는 주방에 앉아 있다 보면 가끔 욕실에서 펑하며 깡통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터지는 것을 감안해서 늘 넉넉한 양을 준비하셨다. 어머니는 예쁘게 포장한 선물들을 당신의 옷장 안에 넣어 두고 소녀와 같은 기쁨을 맛보셨다. 성탄을 하루 앞두고 어머니는 신들린 듯이 음식을 만드셨다. 케이크와 파이를 만들고 소나무와 산타클로스 모양의 생강 쿠키도 구워 내셨다. 오후에는 도리스와 나를 데리고 키작은 소나무가 한 가득 쌓인 시장에 나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르셨다. 어머니는 정확하게 좌우 대칭인 나무를 찾아서 수십 그루의 나무를 헤집곤 하셨다.


모리슨빌은 20세기와의 투쟁을 준비하기에는 적당한 곳이 못 되었지만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는 유년을 보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햇살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여름에는 미나리아재비가 들판을 노랗게 뒤덮었고 헛간엔 건초가 가득 쌓여 있었다. 뒤뜰에는 보랏빛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나무에 달려 있었고 할머니 댁 처마 아래로 길게 드리워진 덩굴에서 실려 온 바람에는 라벤더 꽃내음이 가득 담겨 있었으며 담장엔 들장미가 만발했다.


남자들이 모두 일터로 간 뒤 여자들이 잠깐 낮잠에 드는 오후가 되면 나는 뙤약볕을 쪼이며 깊고 경이로운 침묵 사이를 걸었다. 침묵은 너무나 깊어 옥수수가 자라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침묵이 흐르는 중에도 자연의 오케스트라는 도시 아이들이 결코 들어보지 못할 음악을 연주했다. 닭장에서 꼬꼬댁 소리가 들리면 그건 닭이 알을 낳았다는 신호였다. 처마 아래 매달아 놓은 작은 그네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면 그건 산들바람이 할머니 댁 뒤뜰을 지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리즈 버츠 씨네 마구간 앞을 인디언마냥 잽싸게 지나가다 보면 말이 파리떼를 쫓기 위해 꼬리를 휘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끼낀 개울가에서 발끝으로 살금살금 개구리에게 다가갈 때 퐁당 소리가 들리거든 그건 개구리가 사냥꾼을 발견하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신호음이었다. 낮잠에 든 집들 사이를 지나며, 나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양철 지붕들이 딱딱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았다. 녹초가 되어서 할머니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거실 바닥에 길게 누워 똑딱똑딱 시계추 소리를 들으며 최면에 빠지듯 잠이 들곤 했다.

정신없이 빨려들게 하는 이야기의 힘! 이미지는 물론 소리와 냄새까지 살아있는 그의 장면들!  이렇게 해서 이 책은 ‘서사’와 ‘묘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서사’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묘사’란 사물과 공간이 어찌어찌하다는 양상을 기술하는 것이다. ‘서사’에 치중하면 속도감은 있으나 자칫 건조하다. ‘묘사’에 치중하면 실감을 주지만 잘못하면 지루하다.  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 두가지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처럼 좋은 교과서를 발견해서 흐뭇하기 그지없다. 그밖에도 배울 점이 무궁무진한 책이지만 말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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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3. 11. 12:06
 

모든 것이 사실은 아니리라.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아생존율이 낮던 3,40년대, 6개월 간격으로 동생을 잃어야 했던 시절. 또 동생 하나를 파묻고 온 날, 네 살짜리가 ‘유진의 머리가 놓여 있던 베개에 움푹 팬 흔적’을 오십 년 동안 기억할 수 있을까.


모든 장면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리얼하다. 책을 좋아하여 이야기를 잘 해 주던 아빠는 경제적인 능력은 꽝이었다. 체면치레가 강하여 날품을 팔면서도 반드시 칼라와 넥타이를 챙겨 입던 그. 동네사람이 편지를 써 준 대가로 푼돈이라도 줄라치면, 그것을 어떻게 받느냐고 설레발을 치다가, 그 사람이 돌아가면 엄마에게서 그 돈을 타내 술을 마시고, 어렵게 취직을 하면 주급으로 밤새 술을 퍼마시느라 다음날 출근을 하지 못해 두어 달을 못 채우고 짤리곤 하던 아버지. 그는 죽은 아이의 관을 구하러 나가서도 돌아오지 않는다. 아빠를 찾아 술집을 헤매다 보면 동생의 관으로 쓸 하얀 상자에 맥주잔을 얹어놓고 있는 아빠.


그에게는 조국을 위해 투쟁한 것밖에 자랑스러운 기억이 없다. 무력한 비분강개형이 갖는 전형적인 허장성세. 그래서 술만 마시면 한 살배기 까지 깨워, ‘아일랜드를 위해 죽을 것을 맹세’시킨다.


“허튼 소리 집어 치우고 어서 잠이나 자요.”


“맨날 그놈의 잠, 잠, 잠. 잠을 자면 뭘 해, 엉? 자고 나면 어차피 또 일어나야 하는걸. 난 뿌연 안개 속으로 독약을 뿜어내는 강물 옆에선 잠을 잘 수가 없어.”


소리치는 엄마에게 대고 하는 이 서정적인 대답은 또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사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을 구분할 수 없는, 그러나 한 시절과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도 한 번 흉내 내고 싶어진다. 나는 얼마나 살아온 날을 기억할 수 있을까. 또 기억과 망각을 갈라놓는 기준은 어떤 것일까. 무책임할 정도로 모호한 기억의 뼈대에 살을 붙여 이처럼 생생하게 복원해낼 수 있다면, 나는 헛산 것이 아니다. 무수한 회상과 상상을 통해 내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삶이 펄떡거리며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나는 언제고 그 날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현실도 내일은 이야기가 될 것을 안다. 이렇게 현실과 상상이 하나가 된다.


저자의 감성은 아빠에게서 온 것이리라. 저자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동생이 아빠에게서 듣곤 하던 쿠후린 이야기를 골목 친구에게 들려주자,  “그 얘긴 내 거야.” 하며 달려들어 동생과 친구에게 주먹질을 해 대는 그.  친구는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웬일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대로 그만두면 아이들이 내 이야기를 빼앗아 버릴 것 같아서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던 천성에 세월을 보태 그는 우리에게 슬프도록 아름다운 자서전 한 권을 선물한다. 그의 책은 ‘인간과 삶에 대한 종합보고서’이다. 그는 지극히 유려한 문장으로 지리와 사회와 문학을 섞어 놓는다. 가령 이런 문장.


무엇보다 우리는 늘 젖어 있었다. 대서양 위에서 꾸역꾸역 한데 모인 거대한 비구름은 새넌 강 줄기를 따라 천천히 떠내려 오다 리머릭Limerick에서 아예 터를 잡고 떠날 줄을 몰랐다. 그리스도 할례제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온 도시가 축축하게 비에 젖어 있었다. 그런 탓에 콜록콜록 기침 소리, 가르랑가르랑 가래 끓는 소리, 색색 숨가쁜 소리, 폐병 환자의 목쉰 소리가 내는 불협화음이 그칠 새가 없었다. 비는 코를 콧물샘으로 만들었고, 폐를 박테리아 빨아들이는 해면체로 만들었다.


남루하기 짝이 없는 경험들이 그의 펜을 통해 한 편의 그림이 되고 동화가 되었다. 가난하게 자란 한 아이가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가게에서 바나나를 훔치던 네 살부터, 미국에 가기 위해 죽은 노파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열아홉 살까지의 삶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 책의 전면에 흐르는 해학, 이것은 아무래도 세월의 덕분이다.


네 살 된 나에게 동네 아줌마들이 아기 돌보는 법을 일러 준다. 누구는 기저귀를 diaper라고 부르고, 누구는 nappy라고 부르지만 어쨌든 쌍둥이 녀석들이 거기다 똥을 싸기는 마찬가지니까 뭐라고 부르든 나하고는 상관없다.


그래, 그 세월에는 ‘지각했다고 때리고, 펜촉에서 잉크가 샌다고 때리고, 웃는다고 때리고, 떠든다고 때리고, 하느님이 왜 세상을 창조했는지 모른다고 때리고, 19 더하기 47을 모른다고 때리고, 47 빼기 19를 모른다고 때리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모든 것이 지나갔으나 우리는 다시 한 번 그것들을 불러올 수 있다. 글쓰기는 마법의 도구이고, 자서전은 그 중에서도 아주 힘이 세다. 이 책은 쉰이 넘어 글을 쓰기 시작한 프랭크 맥코트의 자서전이다. 그는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63세였다.


참고도서: 프랭크 맥코트, 프랭키, 2004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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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ㄹ②ㄷ⒁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과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건강 지킴이 내 병은 내가 고친다

    2010.09.25 03:03 [ ADDR : EDIT/ DEL : REPLY ]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이 있습니다. 10포인트 활자크기로 A4 50장 이었으니 제법 긴 분량이었지요.  아무런 격식이나 계획 없이 연령대별로 생각나는 대로 썼는데,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내가 살아온 모습이 고스란히 거기 있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유년의 자산과 20대의 열정과 인생 최고의 절정인 육아프로젝트, 마흔의 도약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내가 내 발등을 찍은 일들도 다 불려 나왔습니다. 얼굴이 뜨듯해질 정도로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인생이었습니다. 사느라고 살았는데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칡덩굴처럼 얽힌’ 상황이 가슴 아팠습니다.


그런데 내가 쓴 내 인생을 읽다보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살아온 날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스윽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아주 객관적으로 느껴진 것이지요. 남의 일처럼 심상해지니까 더 이상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구요. 나는 더 이상 과거의 실패에 붙들려 징징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이 아주 재미있게 느껴졌구요, 50장 짜리 미스토리를 쓰고난 후  ‘글쓰기’라는 일생일대의 친구를 갖게 되었습니다.


살아온 날들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과거에 대해 쓰는 것인 동시에 미래에 대해 쓰는 행위입니다. 나의 기질과 선택이 나의 인생을 만드는 과정이 훤히 보이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짐작이 되는 거지요. 어제가 쌓여 오늘이 되었듯이, 오늘이 쌓여 내일이 된다는 것이 명확해지면 허투루 살 수가 없게 됩니다.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이라는 책에는 누구나 자서전을 쓸 수 있도록 자기 삶을 돌아보는 480가지 질문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군요.


어린 시절의 자신을 그려 보라. 그런 다음 그 아이 앞에 지금의 당신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지금까지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준비해 온 일이 있는가?


40대의 어느 날, 평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설명해 보라.


‘아, 지금도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라고 말하면 어떤 것이 머릿속에 떠오르는가?


회한으로 남아 있는 순간들은 어떻게 되돌리고 싶은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라. 되돌아 볼 때 가장 놀랍고 경이로운 순간은 언제인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마침내 경험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수확은 무엇이었는가?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희망은 무엇인가?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했던 관심사에 대해 말해 보라.


자신이 진정으로 깨달은 또 다른 사람들도 깨닫기를 바라는 인생의 핵심은 무엇인가?


당신이 사랑받아 왔음을 보여 주는 순간이나 징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해 보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일로 남아 있는 사건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용납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지금은 받아들이는 일은 무엇인가?


출생일을 시작으로 오늘 날까지 선을 하나 그어 보라. 당신의 인생을 대변하는 선이다. 그 인생의 선 위에 정신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점을 표시해 보라. 왜 중요한지도 함께 말해 보라.



구본형은 평범한 사람은 평범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억을 남겨야 한다고 합니다. 자서전이란, 자신이 기록하지 않으면 누구도 기록해 주지 않을 기억을 남겨야 하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의무인지도 모른다구요.  마가렛 미드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보여 주고자 오랜 기억을 하나하나 모아 자서전을 썼다고 하구요.  당신도 인생을 기록할만한  당신만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글을 쓴다. 인생을 두 번 맛보기 위해, 그 일이 있었던 순간과 추억 속에서의 그 순간을 함께 맛보기 위해 글을 쓴다. 인생을 초월할 수 있도록, 그 너머의 어떤 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알기 위해, 미로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쓴다.

-아나이스 닌-



참고도서: 린다 스펜스,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 고즈윈 2008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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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탄님의 미스토리 글을 읽은 후 몇번이고 연필을 들었다가 단어하나 못 쓰고 걍 노트를 덮었습니다. 왠지 잘 안되여~~~
    근데 오늘도 이 글을 읽으며 난 정말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꼭 해야하는 작업이라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쓴다는 것은 참 어렵지만 쓴다는 작업 뒤에, 산 하나를 넘은 뒤에 내 인생에 다가올 자유로움에 눈 부셔 하는 내가 보입니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질 않을 나의 이야기를 써 보아야겠습니다.

    미탄님의 숙제를 언제 다 할지 모르지만 한번 해 볼랍니다.
    '제가 모범생이라 숙제는 꼭 하거든요...ㅎㅎ

    좋은 날 되세요.
    저를 위해 기를 쓰며 써 주신 글에 감사합니다.
    열매 하나 뚝 따 갑니다..♡♥♡♥^^*

    2008.10.17 09: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어이쿠, 새댁님.
      미스토리를 한 줄도 못 쓰셨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데요.

      "산 하나를 넘은 뒤에 내 인생에 다가올 자유로움에 눈 부셔 하는 내가 보입니다"

      이런 빛나는 문장으로 보아서요.

      이미 새댁님은 자유로운 분이세요.
      그 자유를 무엇을 가지고 구현할까 호시탐탐 노리던 중에
      블로그를 발견하신 거구요.

      어느 책에서 본건데
      '나는 내가 커서 무엇이 될 지 아직도 잘 모른다'
      이 말은 새댁님의 세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

      2008.10.17 11:38 [ ADDR : EDIT/ DEL ]
  2. 출생일을 시작으로 오늘 날까지 선을 하나 그어 보라. 당신의 인생을 대변하는 선이다. 그 인생의 선 위에 정신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점을 표시해 보라. 왜 중요한지도 함께 말해 보라. 라는 부분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지금이야.'라는 마음의 소리였습니다.

    흔적은 처음 남깁니다만 언제나 미탄님의 포스팅 잘 보고있답니다~.

    2008.10.17 10: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와아~~ 뉴페이스다! ^^
      흔적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익명의 조회 숫자에서 인간으로 거듭나는 일이니
      놀랍고도 신비로운 사건이 아닐지요? ^^

      지금이라구요?
      그 이유까지 알려주시면 더욱 반가울 것 같습니다요. ^^

      2008.10.17 11:42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