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3. 8. 00:53
 

 말로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이것 또한 글쓰기에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호하다면 다음 예시를 보라. 다음 예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예1>은 ‘설명’을 하고, <예2>는 ‘보여주고’ 있다. -개리 프로보스트의 '전략적 글쓰기'에서-

<예1>나의 새 남자친구 아놀드는 탁월한 운동선수야. 그는 또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고, 매우 감상적이고, 그러면서도 약간은 묘하기도 해


<예2>나의 새 남자친구 아놀드는 지난주 번개까지 치는 폭풍우 속을 5마일이나 달려 나의 오두막집으로 왔어. 여기에 도착해서도 그는 빗속에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다섯 개 언어로 외치기 시작하더군.

‘탁월하다’거나 ‘묘하다’는 말은 너무 관념적이다. 그대가 전달하고 싶은 사람이 어떻게 탁월하고 어떻게 묘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추상적인 어휘를 피하고 눈에 잘 보이는 동사와 구체적인 형용사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라. 개념이 아닌 그림으로 보여주라. 그 편이 훨씬 더 생생하게 전달되고 선명하게 기억된다. ‘그는 키가 크다.’보다 ‘그는 키가 184센티미터이다’가 훨씬 눈에 잘 보인다. ‘그 여자는 미인이다.’는 너무 불확실하다. ‘그 여자는 눈이 서글서글하다.’ 혹은 ‘그 여자는 콧날이 시원스럽게 길다.’ 라고 하는 것이 잘 보인다. ‘보여주는 글쓰기’를 위한 방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개별적으로 접근하라.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송일국은, ‘여자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한다. ‘당신은 꽃처럼 아름다워요’가 아니라, ‘당신은 프리지아처럼 향기가 참 좋네요’라는 것이다. ‘당신은 백합 같아요’에서 그치지 말고, ‘당신은 백합처럼 아름답기도 하지만, 추위에 약하고 쉽게 토라져 버리는 모습이 늘 나를 불안하게 해요’까지 나아가라는 것이다.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지 말고 구체적인 그 사람, 특정한 장면이 드러날 때까지 나아가라. 작업의 정석은 글쓰기에서도 통용된다.


둘째, 글을 쓸 때 오감을 일깨우도록 노력하라.

‘오감’이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보여준다’고 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나머지 감각의 활용에도 도전하라.


‘더러운 남자’는 어느 정도 눈에 보인다. ‘더러운’이 시각적인 정보뿐 아니라 어느 정도는 냄새까지도 전해 주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목요일쯤이면 항상 몸에서 걸레 썩는 냄새가 나는 남자’는 어떤가. 나도 모르게 코를 감싸 쥐며 인상이 써지지 않는가. 보여준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먹구름이 ‘청설모가 지나다 꼬리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와르르 쏟아질 것처럼 낮게 드리워져 있다.’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재바르게 뛰어다니는 청설모의 동작과 함께, 잔뜩 찌푸린 날의 그림이 그려진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차고의 문이 말려 올라가고, 그러고는 풀려 내려오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같은 문장에는 소리가 살아 있다. 어느 정도 글을 쓰는 데 익숙해졌다면 글을 수정할 때, 오감을 활용하는 표현이 되도록 신경을 써 보아도 좋겠다. 김영하, 김애란처럼 잘 나가는 젊은 작가들의 문체가 감각적인 것은 여기에 통달한 탓인지도 모른다.


셋째, 사생글 쓰기를 연습하자.

사생글이란 그림을 그리듯이 자세하게 관찰하여 쓰는 글을 말한다. 글이 유독 무미건조하거나 두어 줄 쓰고 나면 쓸 것이 없다는 사람이 연습하면 좋다. 일상의 어느 장면에서나 훈련할 수 있다. 마트에 갔을 때나 전철로 이동할 때, 수시로 눈앞의 장면을 그림 그리듯 묘사한 문장을 떠올려 보라.  나는 지금 도서관에 있는데, ‘주말 도서관은 마치 유원지처럼 사람이 많다. 초등학생들이 키득거리며 몰려다니는가 하면, 온 가족이 나온 경우도 많다. 도서를 검색하는 컴퓨터 뒤에 사람이 얼마나 늘어섰는지 자료검색을 포기하고 돌아섰을 정도이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그야말로 책상 앞에 써 붙여놓아도 좋을 만큼 중요한 지침이다. 안정효의 ‘글쓰기만보’에서 본 글을 재인용한다. 강물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것 같다.



그늘진 곳에서 깊고도 깊이 흐르는 강의 목소리는 저만치 앞쪽 햇살이 눈부신 곳에서 흐르는 강의 목소리하고는 다르다. 절벽 아래 그늘진 곳은 강물이 깊어 심연의 소리를 내며, 가끔 흐름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되돌아서서는, 자신이 하는 얘기를 스스로 알아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똑같은 말을 한두 번 더 되풀이했다. 하지만 앞쪽의 강물은 호들갑을 떨고 시끄럽게 재잘대며 화창한 세상으로 냅다 달려 나갔다.

 -노먼 매클린, ‘흐르는 강물처럼’-



** 빨간 글씨는 안정효의 '글쓰기만보'에서 인용했습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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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퀴리

    작업의 정석,ㅡ누군가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ㅡ아주 쉽게(!) 잘 알았슴다~
    특정한 장면이 드러날 때까지 나아가라구요....

    전, 3월이 가끔은 새해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신년 1월, 설날에 이어
    새롭게 입학을 하고 새로운 학년이 되고(아이는 다시 학교품으로ㅡ에고,신나라! )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새해처럼 느껴지는 봄과 함께
    저도 요즘 매일매일 작가(ㅎㅎ 오늘아침 글쓴사람ㅋㅋ)합니다.
    모닝페이지로 그냥 메꾸기....^^

    미탄님의 writingsutra, 열심히 챙겨 읽고 있습니다.
    글쓰기수업, 대박중이신지요? 연 닿으면 뵈올거라하면서....

    2010.03.08 11:10 [ ADDR : EDIT/ DEL : REPLY ]
    • 어이쿠, 당최 재미있는 일이 없어서
      딱딱한 글만 계속 올려 민망한데
      꾸준히 읽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3월이 새해 맞지요.
      죽은듯 옥죄였던 가슴을 열어
      저마다 꽃을 피워올림으로써
      우리도 꽃을 피우라고 부추기는,
      저 꽃나무만 보아도요.

      강좌는 조촐하게 행군중입니다.
      저도 배우는 입장이니 나쁘지 않습니다.

      아련하고 화사하고 미묘한 봄날 되시기를!

      2010.03.08 13:40 신고 [ ADDR : EDIT/ DEL ]

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2. 17. 04:22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시를 읽으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에 백퍼센트 공감한다.  글이 안 써지거나 재미가 없을 때 시집을 읽으며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은 적이 두 어 번 있거니와, 시에서 배울 점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 중 첫째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다. 읽고 나서 그림이 그려지는 시가 좋은 시라고 한다. 김종삼의 ‘묵화’가 떠오른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묵화’-


불과 여섯 줄을 가지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다니, 시는 정말 경제적인 장르이다. 나처럼 농촌을 직접 경험한 세대에게 이 시의 의미는 각별하다. 어릴 적 방학이면 가서 살다시피 하던 외가, 말년에도 다소곳한 모습을 잃지 않으셨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한꺼번에 불러일으킨다. 이 시는 한 편의 회화이다.



북악은 창끝처럼 높이 솟았고

남산의 소나무는 검게 변했네.

송골매 지나가자 숲이 겁먹고

학 울음에 저 하늘은 새파래지네.

-박지원, ‘극한極寒’-


시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꼭 필요한 말만 쓴다. 그러면서도 할 말을 모두 전달한다. 박지원의 시 ‘극한’에는 ‘춥다’는 말 한 마디가 없지만, ‘쨍’ 하고 얼어붙은 겨울풍경이 저절로 느껴진다.


무심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개그맨 홍록기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여자들에게 절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인즉,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싶었다. 너무 소중하지만 너무나 흔해져버린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사랑을 느끼게 해 준다면 보다 강렬하게 상대방에게 전달될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포함하여, 자유, 해방, 좌절, 희망, 도전 같은 어휘를 쓰지 않고도 그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좋은 글이 아닐까.


시는 바로 이런 것들을 도와준다.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도 할 말을 다 하는 기술,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어휘를 배치하는 경제성, 널리 쓰이는 상투적인 말을 경계하고 늘 새로운 표현을 찾아 고심하는 치열함을 배우게 해 준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

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

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

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

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문인수, ‘쉬’-


이 시를 보라. 길지 않은 시에 인생이 다 들어 있다. 그래서 난 소설보다 시가 좋다. 소설은 간혹 장황하다. 하나의 메시지를 위해 너무나 긴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하지만 시는 몇 마디 말을 가지고 우리의 허를 찌른다. 지루할 정도로 평온한 일상에 숨어 있는 비정한 삶의 속성을 깨닫게 한다.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 넘은 아버지에게 그토록 극진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물론 생명값, 몸 갚아 드리는 이유가 첫째겠지만 머지않아 ‘그’ 자신도 걸어가야 할 동병상련의 연민이 아니겠는가.


시 한 편으로 인생무상과 고령사회를 일깨우는, 이렇게 감동적이면서도 숙연하게 하는 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날 문득 발견한 ‘응’이라는 글자에서 장난스럽게 뻗쳐 가는 상상력을 보라. 가볍고 천연덕스러운 언어의 유희에 싱긋 웃음이 머금어진다.   시는  그야말로 언어의 교과서이다.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문정희, ‘응’ 부분-



■ 위에 인용한 시들은 모두 안도현의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에 인용된 시들입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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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0.02.18 13:35 [ ADDR : EDIT/ DEL : REPLY ]
    • 하하, 님이 죄송할 부분이 아니구요,
      이쯤에서 눈치채야 할 것이 있으니
      내가 아직도, 여전히,
      사람 만나는 것을 썩 즐기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정색을 하고 물어보았지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단 1%라도 어울림보다는 창조에 쏠려 있더라구요.
      불특정 다수에게서 인정받고 싶다는 영웅심리같은 것은
      거의 없구요, 끔찍한 소수^^ 라고 할까요?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창조의 바다를 헤엄치기...
      나야말로 조금 더 넓어져야겠지요.
      좋은 여행 되기 바래요.

      이미 접해 보았겠지만
      책임지고 강추할 수 있는 시인이라면
      이면우, 김선우 두 사람이 생각나네요.

      2010.02.18 14:03 신고 [ ADDR : EDIT/ DEL ]

01234


날짜를 헤아려보니 본격적으로 블로깅한 지 5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블로깅하면서 얻은 최대의 수확은 두 가지이다.
일상적인 글쓰기를 독려하는 환경을 스스로 구비했다는 점과 이미지의 발견이라고 할까.

기본적인 자기표현의 욕구가 있는 사람이 블로그를 만날 경우, 그 시너지는 폭발적일 것 같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느끼는 자기만족이 크지만, 성과물을 차곡차곡 쌓아놓으면서 더욱 지속적으로 자기훈련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적절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블로그이웃을 만나 의기투합한다면, 더욱 만족스럽게 글쓰기는 완전히 일상 속에 자리를 잡게된다.

글이든 사진이든 창조적인 영역에서는 훈련의 힘이 지대할테니, 일상적인 훈련을 가능하게 하는 블로그의 위력은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가벼운 취미로 시작한 일을 점차 직업화하는 일도 가능하리라. 성공한 블로거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나는 블로깅을 통해 '일상적인 글쓰기' 외에도 '이미지의 위력'을 발견하였다.
미래사회는 이미지기반사회로서, 앞으로는 이미지를 모르는 사람이 문맹이라는 표현도 접한 터였지만,
글과 똑같은 비중을 가지고 이미지도 '말한다'는 것을 절감한 것은 블로그에서였다.

이제 이미지없는 글을 심심하게 느낄 정도가 되었으며, 가끔 글이 쓰고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생생하게 이미지가 '고플' 때도 많다.
어제도 이미지가 고파서<!> 디카를 들고 수원천에 나가서 찍은 사진들이다.
당연히 서툴지만 내 눈에는 신기하기 그지없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고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내가 글에서 시작해서 사진으로 확장하고 있듯이,
사진으로 시작한  어느 블로거는 점차 글로 확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블로그는 어른을 위한 정말 좋은 '에듀테인먼트'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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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비꽃

    5개월만에 300여개의 글을 쓰신 셈이네요.
    하루 두 편 정도. 꾸준한 몰입의 힘을 느낍니다.

    2008.06.24 15:15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아~~ 세어보진 않았지만 대략 100여 편은 작년에 쓴 글도 모아놓았어요. 관심사에 타이틀 붙이고 번호 매기고 쓰는 것이, 주제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어 좋은 것 같아요.
      내 주요관심인데도 의외로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답니다. ㅠ.ㅜ

      2008.06.24 23:16 [ ADDR : EDIT/ DEL ]
  2. 5개월밖에 안되셨다구요? 느낌 상으로는 일년은 되신 것 같습니다 ^^;;

    사진 참 좋지요. 요즘은 조금 게을러졌지만... 평생 같이 하고 싶은 취미가 사진과 글입니다.

    2008.06.24 16: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절대 공감입니다.
      공부와 자기표현이 길어진 인생을 향유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좀 더 젊어서부터 이렇게 공부가 좋아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

      2008.06.24 23:17 [ ADDR : EDIT/ DEL ]
  3. 글에서 사진으로 가고, 사진에서 영상으로 관심이 흘러가더군요.
    글과, 사진과, 영상 이 종합적인 매체들을 활용하여
    인간의 창의력이 탄생되겠죠.

    2008.06.24 16:58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예, 골든로그님.
      안그래도 오늘 컴퓨터활용능력을 좀 키워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떠오르는 것이 대뜸 동영상과 음악이었답니다. 그런 면에서 골든로그님의 기술력이 참 부럽지요.
      아, 참. 며칠 전에도 님의 블로그에 댓글쓰기가 안되던걸요.

      2008.06.24 23:19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