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멍은  ‘나는 학생이다’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성숙한 차원을 ‘큰 경지와 작은 기쁨’이라고 표현합니다.


큰 경지란 일시적인 좋고 나쁨에 연연하지 않고 코앞의 득실에 연연하지 않고 일시의 오해나 공격에도 개의치 않는다. 이기는 것도 참을 수 있고 지는 것도 참을 수 있으며 시류를 따를 수도 있고 고독과 고립을 이길 수도 있다. 공평하고 사욕이 적고 두려움이 적으며 커다란 포부를 가져 선하고 호연한 기개를 떨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나 광명을 보며 전환의 기회를 찾으며 희망을 찾고 교훈을 발견하는 것을 철저한 낙관주의라고 한다.


구구절절이 옳은 이 말은 ‘작은 기쁨’이라는 댓구와 만나 더욱 깊어집니다.


작은 기쁨이란 작은 일도 거절하지 않고 추진하는 중에 인생의 기쁨을 만끽한다는 뜻이다. 쾌락도 가치이다. 쾌락은 생활의 궁극적 목표와 원대한 이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쾌락은 구체적이며 소소한 생활에도 있다. 쾌락은 목표에 도달해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쾌락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전 과정에 있다.


계속되는 왕멍의 부연설명에서 나는 인생의 비밀 하나를 엿본듯 합니다. 마음이 환해지는 가르침을  한 수 얻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보통 사람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보통사람이 누리는 기쁨을 향유하며 보통사람의 생활을 한다. 당신의 한 해 하루를 소중히 하고 당신의 일상과 담소를 나누는 기회, 사업의 기회, 땀을 흘리는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는 장관으로 있을 때 언제나 이른 아침이면 장에 나가 아침거리를 샀다.


마침 무슨 책을 읽다가 수잔 라이든이 쓴 책 '뜨개질이라는 경전'  The Knitting Sutra 이 인용된 것을 보았습니다.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 뜨개질이라는 노동을 통해 올바른 삶의  가치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집안에서 하는 이 뜨개질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수많은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흔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은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것에는 창조적인 통찰력을 자극하고 고무하고 불러일으키는 무한한 전혀 고갈되지 않는 능력이 있다.


세상에! 뜨개질이 경전이 된다면 이 세상에 경전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단한 취미나 재능이 없어도  어떤 일에서도 만족과 성찰을 이끌어낼 수 있고, 아무리 사소한 단순노동도 구원이 될 수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The Knitting Sutra! 이 표현은 내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엔가 몰입할 수 있는 열정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작은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자기 세계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돈보다도 중요합니다.  수시로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곳곳에 작은 기쁨을 배치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 삶의 성공이요, 행복이 아닐는지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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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즐길 줄 아는게 행복인 것 같습니다. 마음 속 행복을 끌어내는 것이 지혜인 것 같구요. 귀한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

    2008.09.27 00:27 [ ADDR : EDIT/ DEL : REPLY ]
    • buckshot님의 주요관심사가 저와 살짝 비껴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멋지게 연결을 시켜주시다니, 대단하십니다! ^^
      제 짧은 소회를 단숨에 확장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09.27 04:33 신고 [ ADDR : EDIT/ DEL ]
  2. 간디는 생각해야할 때 물레질을 했다죠?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행하고 있을 때, 머리 속에서는 또다른 집중이 무의식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짐작해봅니다. 요즘 마음이 좀 심란한데... 저도 집중해서 제 삶을 정리좀 해봐야겠습니다.

    2008.10.09 02: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가을 타시나봐요? 아니면 바야흐로 저 유명한 중년의 혼란기에 진입하셨든가요? ^^
      '심란한 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과 평온에 질문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추동력일테니까요. 쉐아르님의 심란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성과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2008.10.09 12:09 신고 [ ADDR : EDIT/ DEL ]

 

한 사람이 필요한 세계는 하나가 아니다. 당신은 자기 일이 있어야 하고 가정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독신을 선택했다면 그에 맞는 사생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취미가 있어야 한다. 한 방면의 특기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독서하고 수집하고 소장하며 기록하는 습관이 있어야 한다. 마땅히 자기만의 꿈과 환상과 내면세계가 있어야 한다.

-- 왕멍, 나는 학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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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깅에 심취한 이후로 무엇을 보든 포스팅과 연결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거리를 지나다가 간판에서 송혜교의 사진을 찍는 식입니다. 평소의 이미지와 조금 다르게 연출된 송혜교의 사진을 보자마자 언제고 써 먹을 데가 있을 것 같아 사진부터 찍었습니다. 이렇게 찍어놓은 사진과 글을 매치시키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전에는 글부터 쓰고 글에 사진을 끼워 맞추는 식이었는데, 요즘은 사진부터 잡아놓고 글을 쓰기도 합니다. 사진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거지요. 조지아 오키프에 관한 포스트를 쓸 때, 사진을 먼저 골라놓고 글을 갖다 맞추는 재미가 최고였습니다. 써 놓은 글을 박스로 잡아 해당 사진 옆에 척척 갖다 놓는데, 아주 특이한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공작을 하는 듯한 재미, 글쓰기가 거의 도구적인 혹은 신체적인 재미까지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판에서 컷을 몇 개 그려보았습니다. 유치찬란한 수준이지만 가끔 글에 어울리는 컷을 배치해도 재미있겠다 싶습니다. 컷을 그리겠다고 생각하니 따라 그려보면 좋을 그림이 눈에 띕니다. 강동허브공원 입구에 있는 벽화 타일도 유심히 보게 됩니다.






낮에 엄마 집에서 눈에 익은 양은냄비를 보았습니다. 그 냄비가 무척 오래된 것 같다고 여쭤보니, 놀랍게도 오십 년이 넘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한 쪽 손잡이가 떨어졌을 뿐 아직도 짱짱한 그 냄비는 참깨 볶는데 적격입니다. 언제고 그 냄비에 대한 이야기가 엮어질 것 같아 사진을 찍어온다는 것이 그만 깜박 잊어 버렸군요.


이처럼 블로깅 하나에서도 수많은 가지치기가 생깁니다. 사진과 그림이 점점 다가오고 있거니와 좀 더 많은 기회와 경험과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관심쏟는 것이 있는  사람의 생활은 탄력 있어지고, 시간을 활용하며 일상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무언가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왕멍은 16년간 유배생활을 할 때 창작을 금지 당했습니다. 작가에게 창작을 하지 말라는 것은 최고의 극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왕멍은 신세한탄을 일삼으며 좌절하지 않고 위그르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그 세월 동안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위그르 언어 포스트닥터 과정까지 거쳤지. 준비 2년, 대학 5년, 석사 3년, 박사 과정 3년 그리고 포스트닥터 3년이면 딱 16년이니까 말이야” 라고 대답합니다.


왕멍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한 두 가지 취미가 있어 자기의 세계가 몇 개쯤 있게 되면 당신은 영원히 즐거운 왕자가 될 것이며 불패의 위치에 서게 된다구요 정력을 집중하지만 한 나무에만 매달리지 않는 비결을 실제 생활에서 모색해야 한다구요.

 

길어진 인생에서는 더욱 다양한 세계에 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살면서 고비에 처했을 때 다른 세계에 의지하여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새롭게 일어설 근거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전력투구하되 한 가지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양한 세계를 만들어라.  이로써 길이 막히면 돌아가고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체화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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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멍, 나는 학생이다, 들녘 2004


이 책은 세상에 널린 가벼운 책이 아니다.  한 줄 한 줄 인생을 연소하여 짜낸 기름으로 써내려 간 것이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배운 것을 후대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사랑이다.


인생에 대한 것이라면 뭐든지, 울타리에 핀 백일홍부터 뒷동산의 구릉을 지나 광할한 벌판을 넘어 산맥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것은 배움에서 나온 것이다. 어느 문제에 봉착하든지 그것을 또 하나의 배움의 계기로 삼으며, 모든 일에 자문하고 문제를 제기한 학습의 결과일 것이다.


배울 수 있는 사람은 공허하거나 퇴폐적이거나 무의미하지 않다. 오감을 열어 늘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발견하고 감성과 지혜를 존중하며 생활과 실천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문명을 아끼며 받들기 때문에 그의 삶은 계속해서 확장된다.


배우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장악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친구가 배반하고 성과가 모독받고 확실한 실수를 저지른 역경에서도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더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봄으로써 전환의 계기를 파악해 희망을 키우고 기회를 잡아 실패를 성공으로 이끈다.


그래서 배움을 열망하는 학생은 피로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사람이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왕멍처럼 흥망성쇠를 다 겪은 칠십의 나이에도 새로운 목표를 가질 수 있다.


그러니 최고의 도락이며 도전인 이 좋은 것을 왜 하지 않으랴. 배움을 통해 환한 빛줄기가 당신의 주변을 밝혀주고 뚜렷한 길이 당신 앞에 열려 사방팔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며 봄비가 만물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열두 궁전이 환하게 열려 이제 그 어디로도 다 갈 수 있게 된다는데! 


나도 학생의 자질은 타고 났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부터 좀 더 본격적으로 배움을 계획하고 조직할 생각이 든다. 나는 학생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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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멍, 나는 학생이다, 들녘 2004

이 책은 왕멍의 인생론이다. 평생에 걸쳐 배운 ‘인생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해 놓았다.  ‘결과를 내놓는 것이 최선이다’ ‘당신의 세계를 많이 만들어라’ ‘유희는 인류의 천성’ ‘무상과 유상’ 그의 소주제와 문장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고리타분한 사문이나 고매한 관념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숨결이다. 덕분에 우리는 아주 시시콜콜하면서도 품격 있는 인생론을 하나 가지게 되었다. 왕멍은 생활에 발을 딛고 생활너머를 바라보게 해 주는 좋은 철학교사이다.


두려움에 대한 그의 풀이를 보라. 천방지축 과잉 낙관주의에 빠져 있다가 요즘 처음으로 두려움을 알게 된 내게 주는 맞춤강의이다. 그의 어조는 구구절절 옳으면서도 격조가 있어 정곡을 찌르면서도 상처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감탄하며 승복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 나의 행태를 이처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두려움이란 바로 마음을 제약하는 것이다. 즉 어떤 일은 하지 말아야 하고 또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또한 세상에는 자기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며 세상에는 자기의 욕망 말고도 다른 사람의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자기의 방향과는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즉 세상의 상황은 당신의 일방적인 생각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매사에 심사숙고하게 되고 여러 의견을 경청하게 되고 충분히 여유롭게 자신을 조절하게 된다. 두려움이란 인간이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두려움은 또한 자기의 지식이 부족한 것을 아는 것이며 아직도 너무 많은 블랙박스가 자기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그러므로 당신은 언제 어느 때나 독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며 유아독존의 아집을 부리지 않으며 자기 무덤을 파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처지에 처하든 갖춰야 할 미덕으로 그가 소개하는 것들은 모조리 금과옥조이다. 머리맡에 붙여놓고 아침저녁으로 쳐다보며 내면화해야 할 인생수칙들이다. '달관 또는 대범함'에 해당되는 조항들을 인용해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1. 불쾌한 것은 모조리 잊는다.

2. 자그마한 좌절은 괘념치 않는다.

3. 좌절을 통해 더 총명해진다.

4. 언제나 희망을 보고 가능성을 발견한다.

5. 자기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오늘 없다면 내일은 있을 것이다.

6. 내게 반대했던 사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오늘 당신을 못살게 군 사람도 내일은 반드시 변화가 있을 것임을 믿는다.

7. 시간을 믿는다. 시간은 선량함에 유리하다. 시간은 지혜와 광명에 유리한 것이며, 음모나 어두움에는 불리하다.

8. 아무리 큰 파도가 몰아쳐도 자기를 잘 조절하여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9. 어떤 어려움도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오늘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내일 반드시 해결한다. 시간은 하나의 방법이며 역사에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재난도 역사 앞에서는 깨알만큼 작은 것이다.

10. 언제나 한 가지 해결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선택의 가능성, 가능성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러나 때로는 흐지브지하게 될 가능성도 믿는다. 언제나 자유롭게 생각한다.

11. 얼마든지 의의가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한숨을 쉬면서 탄식하거나 남을 원망하면서 고통을 반추하고 분규에 말려들 시간은 없다.

12. 좌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여기에서 좌절당하지 않으면 저기에서 좌절당한다. 그러나 득실은 대체로 평형을 이룬다. 여기에서 잃지 않으면 저기에서 잃게 된다. 여기에서는 잃었지만 저기에서는 얻게 되고, 여기에서 얻게 되면 저기에서 잃게 된다. 이곳의 좌절은 저곳에서의 더 큰 위험을 방비하도록 깨우친다. 중국 속담에 ‘재물을 잃게 되면 재앙을 피한다’는 말이 있다. 작은 병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큰 병을 예방한다. 이곳의 작은 상실은 저곳의 큰 소득을 준비하는 것이다. 저곳의 상실은 또 이곳의 소득을 준비하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도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끈질기게 추구하되, 흐지브지하게 될 가능성 조차 열어놓는다. 얼핏 생각하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고도의 유연함이라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가능성을 믿되 언제든지 그 믿음에서조차 자유로울 수 있는 유연함.


역경과 좌절에 대한 접근도 참 마음에 든다. 아무리 큰 재난도 역사 앞에서는 깨알만큼 작다거나 , 여기에서 잃지 않으면 저기에서 잃게 된다는 사고방식은, 우리를 의연하게 한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과장된 두려움에 빠지지 않게 한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면 문제에 함몰되지 않게 된다.


이런 미덕을 갖춘 사람은 큰 경지와 작은 기쁨을 지니게 된다. 큰 경지란 철저한 낙관주의와 초탈로 무장하고 무슨 일을 함에 있어 거슬림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작은 기쁨이란 작은 일도 거절하지 않고 인생의 기쁨을 만끽한다는 뜻이다. 궁극적 목표와 원대한 이상이 구체적이고 소소한 생활과 상충되지 않는다. 보통 사람도 없고 위대한 사람도 없으며, 작은 일을 행하는 데에도 큰 일을 도모하는 듯한 조심성이 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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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 나는 학생이다, 들녘 2004


평범한 생활인이라 해도 평생을 살아온 사람에게서는 귀담아들을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체험을 통해 깨우치는 일말의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남다른 경험과 훈련 속에 살아온 사람에게는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이 정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왕멍에게서 본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영화와 역경을 문학적 단련으로 일관한 사람답게, 그의 책에는 정련된 인생철학이 가득하다.


왕멍은 14세에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며 청년작가로 승승장구하던 중에 필화사건으로 16년 간 신장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1979년에 복권하여 작가협회를 종횡하며 문화부 장관, 부주석 자리까지 역임하는 등 극단의 영욕을 몸으로 겪었다.  100편이 넘는 중,단편을 비롯하여 수필, 시, 평론, 르포 등을 발표한 전설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열정적이고 풍운아적인 삶을 살았다면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정리하여 후대에 건네고 싶어지지 않을까. 왕멍이 4년에 걸쳐 저술한 이 책은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깨달은 인생교본이다. 흔치않은 인생체험과 뛰어난 문학적 성찰을 피륙으로 엮은 인생담론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생활과 학문과 역경, 노년과 교우, 초탈 같은 인생의 모든 면에 대한 하나의 경지를 만날 수 있다.


왕멍이 삶에서 가장 경계한 것은 용속 庸俗이다. 용속이란 아무런 도전과 이상과 모험이 없는, 사고와 일탈마저도 없는, ‘죽은 물고기의 눈처럼 무미건조한’ 삶이다. 오랫동안 배우자와 함께 살면서 그 흔한 스캔들 하나 없다.  음식과 거처가 일정하고 알코올 중독에 걸리지도 않았고 마약을 복용하지도 않았다. 차 사고도 없었고 암에도 걸리지 않았다.  모범적이지는 않았지만 죄를 짓지도 않았다. 고위급 관직에 앉아보지 못했고 큰 부자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걸인으로 전락하거나 액운을 당해 어디로 몸을 피해본 적도 없다. 무궁화 다섯 개 초호화 고급 호텔에 묵어보지 못했지만 풍찬 노숙도 하지 않았다. 사기당한 일도 없다. 멋진 연애를 해 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음험한 바람에 휘말리지도 않았다. 이것이 용속이다.


누구보다 용속을 싫어하면서도 별 도리없이 용속에 갇혀 있는 나는 이 부분이 너무 재미있었다. 용속에 저항했으되 별다른 지평을 발견하지 못한 나를 노장이 격려하는 것 같았다. 기나긴 파노라마를 겪고도 아직 발랄한 노작가가 귀엽게 다가 왔다. 왕멍은 계속해서 ‘생존’에 머무는 삶을 ‘쪼고’ 있다. ^^ 취미도 없고 배우지도 않으며 신체 단련도 하지 않고 미술전도 관람하지 않으며 유머가 없는 삶에 대해 왕멍은 최고의 펀치를 날린다.


나는 악인이 될지언정 아무런 취미도 없는 남자는 안 되겠다.


용속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왕멍이 이야기한 것은 취미, 자연, 예술, 창작이지만 그 본질을 꿰뚫는 것은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학습에 대해 이야기하는 왕멍의 목소리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들떠있다.


학습은 나의 뼈<구조>이며 나의 살<재료>이다. 학습은 나의 정신이며, 추구이며, 사명이며, 분투이다. 학습은 나의 쾌락이며, 게임이며 지적 체조이다. 학습은 나의 기둥이자 영원히 차지할 수 없는 교두보이다. 학습은 나에게 불패의 자리를 지키게 해주는 든든한 원군이다.

학습은 총칼의 위협에서도 나를 견강堅强하게 한다. 누군가 내 몸을 위협하거나 억압할 수는 있지만, 내가 눈을 감고 묵상에 들어가 당시를 읊고 송사를 외우고 영국의 14행시를 암송하는 것을 제한할 수는 없다. 사색과 추억, 분석과 관찰을 막을 수 없다.


배움이 있었기에 16년간의 유배생활 중에도 비관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미치거나 의기소침해지거나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왕멍의 학습예찬이다. 배움은 그에게 초탈을 가르쳐주고, 외부 세계와 교류하게 해 주며, 역경에 처할수록 더욱 높은 곳에 올라 멀리 전망하게끔 해주었다. 배움을 통해 지혜와 광명을 얻었기에, 그는 맑고 밝은 인생항해를 할 수 있었다. 이에 왕멍은 ‘나는 학생이다’라고 선언한다. 그의 생에서 배움처럼 중요한 것이 없고, 배움만큼 꾸준히 한 것이 없으며, 배움처럼 많은 것을 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감히 왕멍의 흉내를 내고 싶다.  배움의 맛과 멋과 효능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배움은 평생을 두고 퍼먹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요, 영원한 지혜의 원천이다. 나는 배울 수 있어서 언제 어디서도 심심하지 않다. 늘 할 일이 있다. 호프집에 가면 서비스 하는 자세를 배우고, 제과점에 가면 케잌을 작품처럼 만들어놓은 장인정신을 배우고, 그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존방식과 장점에 대해 배운다. 나는 생활에서도 배우고 책에서도 배운다. 배움은 범속한 내가 용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만일 내가 생에 대한 약간의 관조와 여유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배움의 덕분이다. 생의 어떤 국면에서도 “울지 말고 웃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는 자세를 익힌 덕분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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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고 보면 온전히 버려지는 시간이란 없다는 말, 맞습니다..
    이런 건 어떨까요.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

    2008.09.11 20: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채플린의 그 말에 절대 공감해요.
      한바탕 난장이기도 하구요.

      2008.09.11 23:53 신고 [ ADDR : EDIT/ DEL ]
  2. 번호가 붙은 걸 보니 '시리즈 리뷰'인 모양입니다. 두근두근~^^
    전 최소 '용속'은 벗어날 수 있을 것같군요. 왕멍의 책과 미탄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사고와 일탈로 얼룩진 제 '과거'(!)가 처음으로 뿌듯해집니다.^^

    2008.09.11 20:2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용속에서 벗어남을 축하드려요! ^^
      한없이 자유롭게 사통오달하는 학습의 세계까지 고고!
      근데 그 말씀은 사실인지요? ^^

      2008.09.11 23:52 신고 [ ADDR : EDIT/ DEL ]
  3. 미탄님의 생각에 동감!!
    그래서 전 비어있느 제가 참 좋습니다.
    마구마구 넣을수 있으니 말이예요..ㅎㅎ

    좋은 책들이 너무 많아 챙겨 읽기가 넘 벅차요.
    언젠가는 꼭 한번 챙겨서 읽어 볼께요.
    근데 님의 책 이야기가 핵심을 잘 짚어 주신 것 같아 아마 뒤로 미룰 듯 합니다.ㅋㅋ

    2008.09.11 21: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직 아이들에게 손이 많이 갈 시기이고
      농사 일에 어르신까지 계시던데
      개인시간이 잘 안 나시지요?
      미흡한 글, 칭찬해주어서 고맙습니다.

      2008.09.11 23:55 신고 [ ADDR : EDIT/ DEL ]
  4. "학습은 나의 뼈<구조>이며 나의 살<재료>이다" 너무 멋진데요. 이 글만 읽어도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 유배생활을 학습으로 극복했다는 것에서는 빅터 프랭클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좋은 책 소개를 보면 항상 그렇지만, 이 책은 정말 구해서 읽어야겠습니다.

    음... 저는 스캔들도 없고, 알콜중독도 없고, 큰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걸인도 아닙니다. 빚보증 잘못 서서 고생한 적은 있지만, 큰 사기를 당한 적도 없습니다. 그럼 저는 '용속'일까요? 뭔가 사고하나 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2008.09.12 01:2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하하, 쉐아르님은 열심히 배우고 계시잖아요.
      용속이라고 표현해서 그렇지 어느 정도 도전을 가미해준다면, 저 상태야말로 성공과 합리의 초상 아니겠어요? ^^
      용속에 도달하지도 못한 사람이 용속을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용속은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지 부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2008.09.12 07:55 신고 [ ADDR : EDIT/ DEL ]
  5. 꼭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저의 키워드 중 하나가 배움, 학습 이거든요. ^^

    2008.09.17 19:46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가벼운 실용서에 지칠 때 가만히 기댈 수 있는, 뒷산처럼 듬직한 책이랍니다. ^^

      2008.09.18 01:58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