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드 보봐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9.24 <55호> 목표없는 삶은 자살행위이다
  2. 2008.07.01 <31호> 나이의 변증법
 

지난 날 내게는 삶의 목표가 없었습니다. 늘 어떻게 살 것인가 고심하긴 했어도 구체적인 목표는 없었습니다. 지금 내가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내 관심은 흩어졌고, 시간은 유실되었으며, 자원은 낭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위치는 그야말로 바닥입니다. 순식간에 변방으로 밀려나 어리둥절한 채 세상을 바라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법, 살아가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참 경이로운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궁핍한 시절에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상에 경영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정과 사업은 물론이고, 양육과 교우관계, 시간과 목표 그 어느 것도 경영의 대상입니다. 내게는 경영의 개념이 없었고, 모든 자원을 집약하여 도달해야 할 목표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쩌다 맞아떨어진 행운이 오래 갈 리 없습니다. 삶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니까요.


이제까지의 나는 죽었습니다. 한 발만 잘못 딛으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벼랑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벼랑에서 삶의 목표를 갖게 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파라독스입니다. 인생 최고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어제 내가 도달하고 싶은 ‘내 삶의 10대 풍광’을 완성했습니다. 이제 바랑에 돌을 잔뜩 지고 바다 한 가운데로 걸어들어 갔다는 비구니처럼 결연하게, 먹이를 향해 내리꽂히는 독수리처럼 매섭게 이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시간과 체력 관리는 필수입니다. 시간을 15분단위로 나누어 쓰기도 하고, 운동을 최우선 순위에 놓은 시간표를 짭니다.  툭하면 서너 시간씩 몽상에 빠져있거나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던 내가 아닙니다. 


“이전에 한 번도 성취한 적이 없는 것을 성취하려면

이전에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레스 브라운


젊음과는 달리 서드 에이지에 목표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죽음입니다. ^^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쇠퇴하기 때문입니다. 젊을 때는 가만히 멈춰있으면 ‘답보’였지만, 이 시기에는 가만히 멈춰 있으면 ‘쇠퇴’입니다. 목표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절박한 욕망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끔찍한 권태와 허무를 넘어 서서히 죽어가는 일입니다.


세계가 아직 목표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최고의 행운아입니다. 목표야말로 열정과 에너지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자원을 조직하며, 사람들과 연결되고 행동을 멈추지 않게 됩니다. 그로 해서 시간이 살아나고 삶이 의미있어 집니다. 어떤 자유와 명석함도 더 이상  목표를 가질 수 없다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세계는 오로지 우리의 계획의 빛을 받아서 발견됩니다. 만일 우리 계획들이 적어지면 세계도 빈곤해집니다. 더 이상 목표를 세울 수 없을 때 우리의 이야기는 끝납니다.


남은 인생을 활용하는 원칙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하여 추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에게든, 집단이든, 대의명분이든,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일이든, 지적, 창조적 일이든, 그 무엇에 헌신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 붉은 글씨는 시몬 드 보봐르의 '노년'에서 인용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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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 늦게 집 근처 도서관에 갔습니다. 보통은 자료실에서 책을 보는데, 주말에는 자료실이 5시에 문을 닫으므로, 열람실에 처음 가 보았습니다. 여고생들이 나를 슬쩍슬쩍 쳐다봅니다. 아, 참. 도서관에 드나들기에도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나 싶더군요.


젊을 때는 거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세월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여자의 서른, 남자의 마흔처럼 하나의 변곡점에 도달해서 당황하기도 합니다. ‘아! 내가 나이들고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고, 심리적인 혼란 속에서 변화의 계기를 삼기도 합니다.


좀 더 나이가 든다해도 사람들이 자신의 나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와 부딪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에 대해 결코 변치않는 단단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개성이 없으며 탐욕스럽고 세속적인 이미지, 그러면서도 세상사를 초월하여 평정심을 갖기를 원하는 이율배반적인 기대치를 갖고 있는 거지요.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나’처럼 젊은 기분으로 사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에 맞춰서 순응하는 것이 옳을까요.  시몬 드 보봐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듦은 ‘객관적으로 정의되는,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존재와 그것을 통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갖는 자의식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이다.’


세상에 ‘나’를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답니까? 있다면 대다수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도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절대절명의 ‘나’가 다른 사람의 무심한 판단에 갇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인 거지요.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므로 세상의 오래된 연령주의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에 대한 사고방식도 변화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판단에 정보를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행동과 성취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나의 자의식과 에너지와 도전으로 세상의 판단 체계를 수정하는, 행복한 ‘정반합’을 꿈꿔봅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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