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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30 <58호>나를 표현하면 인생이 행복하다 (2)
 




사진가 스티클리츠가 화가 조지아 오키프를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는 조지아 오키프보다 23세의 연상으로 이혼을 하고 그녀와 결합합니다. 그는 그녀의 몸과 피부의 촉감, 광대뼈 그리고 아름답고 긴 손을 계속해서 사진으로 탐구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스티클리츠가 사진으로 그녀를 애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피사체에 대한 완벽한 몰입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이 결코 직접적인 사랑에 뒤지지 않겠구나, 사진은 또 하나의 눈, 또 하나의 손, 또 하나의 마음이로구나, 예술가란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뒤를 이었습니다.


1918년 2월 6일 화가 클림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클림트를 숭배하던 쉴레는 클림트의 마지막 침상에서 홀쭉하게 마른 그의 얼굴을 드로잉합니다. 화가는 우상의 죽음을 눈물로 애도하지 않습니다. 그가 가진 도구로 추모합니다. 쉴레의 드로잉은 죽어가는 클림트에게나 살아남은 쉴레에게 둘도 없는 교감과 추앙의 행위가 아닐는지요.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는 땡땡이 작가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화폭과 벽면은 물론 사람의 몸과 공간, 가능한 모든 것을 땡땡이로 채웁니다. 땡땡이라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그녀의 열정 앞에 관객은 새로운 세계를 안내받습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그녀는, 70이 넘은 지금도 병원 옆 작업실에서 일합니다. 만약 땡땡이 작업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벌써 자살했을 거라고 합니다.

그녀의 작업 비디오를 보니 어이없음과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럽기도 하고, 인간의 생명력과 집중력에 처연해지기도 합니다. 그녀의 작업 하나 하나가 살아남고자 하는 안간힘으로 느껴집니다. 모든 사람의 표현이 그처럼 절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의 표현이 모두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쿠사마 비디오 링크


뛰어난 걸작이 아니요,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하더라도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입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를 가진 사람은 자신 만의 세계를 갖고 있습니다. 현실세계를 보완하고 치유하는 또 하나의 세상 말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때나’의 만화작가 린 존스턴은 아이를 더 낳고 싶었을 때, 자신의 연재만화 주인공 가족 중에 여자 아이를 하나 더 등장시켰다고 하네요.


어떤 사소한 행위에도 몰입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정서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나를 표현하는 일은 소일거리요, 취미요, 문화의 토대가 됩니다.  표현은 세상에 대고 손을 내미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조지아 오키프가 스티클리츠의 사진에서 자기자신을 새롭게 발견했듯이, 표현은 가장 강력한 결속의 도구이니까요. 도심과 변방의 구분이 없어진 유비쿼터스 시대에, 표현은 나의 주소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취미와 관심사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문화의 시대가 될테니까요. 당신은 당신을 표현하며 살고 있는지요?  당신을 표현하는 도구는 무엇인지요?




사진 출처 - 브리타 벵케, 사막에 핀 꽃 조지아 오키프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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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던지신 질문에 답을 못 하는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일까요?
    아직도 찾아헤매고 잇으니....
    가끔 제가 살고 있는 것인지 살아지고 있는 것인가를 구분 못 할때가 있습니다.
    에공..^^;;

    2008.09.30 09: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살고 있는 것인지, 살아지고 있는 것인지 구분을 못한다고 하시는 것은, 이미 토마토새댁님의 마음 안에 그 두 가지에 대한 명확한 분별과 지향이 있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

      2008.09.30 23:12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