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4. 13. 08:34
 

아들이 휴학을 했다. 전공에 대한 확신이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1년 정도 쉬면서 생각을 좀 해봐야겠단다. 해 보고 싶은 일이라곤 한옥건축 밖에 없다는 소리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79년 대학을 졸업하던 때, 농촌활동 말고는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나는 활동 다니던 지역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농사꾼과 결혼까지 했다.

결혼은 15년 만에 거대한 오류로 판명되었다.  ‘불과’ 15년 만에 ‘어떻게 그런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들이 내 결혼처럼 황당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한옥건축’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비경쟁, 비주류, 비현실, 낭만, 자연... 인생이 아이러니한 농담처럼 반복된다더니 사실이었다. 다만 시간이 재주를 부려 이번에는 내가 부모 역할이었다. 순간적으로 장면이 바뀌어 30년 세월이 흐른 영화나 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아들이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고스란히 답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살면서 깨달은 것을 아들에게 강요하게 될까봐 자제해야 했다. 그래도 알려주고 싶었다. 필요한 정보를 뇌에 입력하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이란 참으로 더디고 미욱한 동물이다. 어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인생의 문제를 일일이 몸으로 부딪쳐가며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풀어가니 말이다. 그렇게 아프게 배운 것만이 내 것이 된다고 말하기엔 너무 안타깝다. 내가 유독 시간을 많이 낭비한 탓일 것이다. 그 많은 시간과 기회를 날려버린 생각을 하면 기운이 쫙 빠진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사람이 나처럼 어렵게 배우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한 번 살아본 것처럼 야무지게 자기 갈 길을 간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전에 학원 할 때 자수성가한 동료원장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의 경우에는 삶의 가혹함을 미리 깨달은 것이 득이 되었을 것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은 아직도 유효하다.  만일 돈 주고도 고생을 살 수 없었다면 미리 인생을 맛보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성장소설을 읽는 것이다.

러셀 베이커는 어린 시절, 자신의 존재가 어머니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싫었다. 자신이 어머니의 미래인 것도 못마땅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미래였던 시간들을 모두 과거로 치워 없애고 스스로 시간을 창조했다. 그리고나서 자신의 약동하던 미래가 자기 아이들에게 따분한 과거가 되고 마는 것을 줄곧 지켜보아야 했다. 인생이 소름끼치도록 반복되는 춤동작 같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는 인생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든이 되어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모습에 정확하게 오버랩되는 자신을 보았을 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피와 뼈를 나눠준 한 세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마치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통증으로 감지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의 자전소설 ‘성장’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 책은 자신을 키워준 시공간에 대한 읍소이며, 자기 하나를 키우기 위해 등장해 준 인물들에 대한 경배다. 그는 지나간 것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사라지는 것에 대한 뜨거운 연민으로 한 장면 한 장면을 되살려냈다. 자기 인생을 책 한 권에 완벽하게 재현하며,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마치 삶이 끝난 것처럼 바닥모를 허무에 젖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이 책은 사람을 끌어 당긴다. 책을 다 읽고 삶이 두려워 펑펑 울어버렸을 정도이다. 

이 책의 여파는 컸다. 나는 친정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심했다. 엄마는 서걱거리는 며느리와의 생활을 힘들어하셔서 딸들 집을 오가고 계셨다. 이미 노화의 징조는 엄마를 점령해 버렸다. 솜씨 좋고 활달하던 장년의 엄마가 아니다. 이제 어디에도 자신이 주도할 세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엄마는 빠른 속도로 자식들에게 순응해 왔다.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자꾸 한정된다. 엄마는 똑같은 이야기만을 하고 또 하신다. 일흔 여섯, 오래지않아  엄마의 총기가 불시에 흐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기만 해도 무섭다.

그런데 엄마를 돌보는 것이 내 삶에 대한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껏 하고 싶은 일을 모조리 하며 살아 왔다. 한 번도 남을 위해 희생한 적이 없고, 뼈 빠지게 일한 적도 없다. 무엇엔가 열중하여 밤을 새워본 적도 거의 없고, 코피를 흘려 본 적도 없다. 심지어 연애다운 연애를 해 본 적도 없다. 이렇게 밋밋하고 데면데면한 삶에 치열함 하나를 더하고 싶었다. 이것은 노인을 모시는 일이 끔찍하고 처절한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다.  엄마를 모시겠다고 결심한 순간, 나는 아이들보다 엄마 편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아이들이 힘들어 하거나 심지어 반대한다 해도 내 결정을 관철하겠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얼마든지 자기네 힘으로 살 수 있을 테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머물러야 하겠다.

나는 러셀 베이커의 ‘성장’을 읽고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그 책 속에서 미리 보아버린 소멸이 나를 비장하게 만들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고, 아직 겪지 않은 일에 맞설 수 있게 되었다. 성장소설에는 삶이 들어 있다. 삶의 저 편에 미리 가 볼 때 우리는 부쩍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은 아들처럼 젊은 친구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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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0.08.02 22:29 [ ADDR : EDIT/ DEL : REPLY ]
    • ㅎㅎ 혼자 생각만 벅찼을 뿐, 엄마가 허락하지를 않지요. 그러리라고 짐작하면서도 혼자 결심하기까지에도 그렇게 어려웠던 걸 생각하면, 인연의 허약함에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는 것 같아요.

      삶이 단순하게 느껴지면, 많이 산 것이라더니
      요즘은 자꾸 삶이 단순하게 느껴지네요.
      -- 많이 살았으니 당연한 건가요?^^

      님처럼 차분하게 주변 사람의 글 속에서도 교훈을 얻는 분은, 지혜롭게 잘 살아갈 것 같아요. 너무 단순하여 결곡하게 느껴지는 삶의 정수를 알 것 같아요. 살아보지 않고도.^^

      2010.08.05 17:54 신고 [ ADDR : EDIT/ DEL ]

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3. 31. 00:07
 

책 한 권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읽어 치웠다. 러셀 베이커의 자서전, ‘성장’이다. 360페이지. 다 읽고 나서 눈물이 솟구쳤다. 삶의 끝에 버티고 있는 소멸을 보아버린 탓이다. 그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었다. 지루한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저자는 책 전체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그저 보통의 삶을 풀어내는데 흡입력이 대단하다. 그는 독자가 늘어질 틈을 주지 않고 한 발 먼저 장면을 바꾼다. 소제목도 없이 숫자만 매겨진 챕터마다 간결하고 힘있는 문체와 빠른 속도로 새로운 국면을 펼쳐 놓는다. 

여든의 연세로 어머니의 적적함은 끝이 났다. 그 해 가을 이후로 어머니의 정신은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떤 날엔 반세기 전에 있었던 결혼식과 장례식엘 다녀오셨고, 어떤 날은 이젠 백발이 다 되어 버린 그 옛날의 아이들을 위해 일요일 오후 내내 준비한 저녁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기도 했다.

상황으로 시작하든,

1931년 1월, 어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뉴욕으로 가셨다.

시점으로 시작하든, 그의 첫 문장은 나를 빨려들게 한다.

해럴드 고모부는 거짓말의 귀재였다.

이처럼 단순한 문장조차 그의 리듬에 얹혀 지면 달라진다. 그는 60년 세월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강약을 두어 재창조했다. 극히 부분적인 사건들을 통해 그의 삶의 전모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는 그가 만들어낸 속도에 빠져든다.

“어떻게든 잘되겠지.” 내가 고등학교 졸업반에 올라가면서부터 어머니는 그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그것은 꼭 필요한 부분만을 추려낸 과감함과, 생생한 인물들, 살아있는 대화체의 덕분이다.

1981년 가을, 미미와 나는 태어난 지 석 달 된 손녀를 보러 작은아들의 집이 있는 버지니아로 차를 몰았다.

때로 30년을 뛰어넘기도 하고, 이야기를 시작한 장면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끝내는 구성의 힘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저자는 그의 스토리텔링에 적절한 속도감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성공은 그것뿐이 아니다.

그의 문장은 간결한가하면 정교했다.  그가 묘사한 인물은 어찌나 생생한지 꼭 아는 사람 같고, 그가 묘사한 공간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꼭 한 번 가 보고 싶고, 그가 묘사한 시간은 어찌나 감미로운지 나도 따라 해 보고 싶었다.

성탄절이 되면 어머니는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다정다감해지셨다. 성탄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 어머니는 집에서 만든 맥주를 깡통들에 담아 밀봉해서 효모가 발효되도록 욕실에 보관해 두셨다. 욕실 옆에 붙어 있는 주방에 앉아 있다 보면 가끔 욕실에서 펑하며 깡통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터지는 것을 감안해서 늘 넉넉한 양을 준비하셨다. 어머니는 예쁘게 포장한 선물들을 당신의 옷장 안에 넣어 두고 소녀와 같은 기쁨을 맛보셨다. 성탄을 하루 앞두고 어머니는 신들린 듯이 음식을 만드셨다. 케이크와 파이를 만들고 소나무와 산타클로스 모양의 생강 쿠키도 구워 내셨다. 오후에는 도리스와 나를 데리고 키작은 소나무가 한 가득 쌓인 시장에 나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르셨다. 어머니는 정확하게 좌우 대칭인 나무를 찾아서 수십 그루의 나무를 헤집곤 하셨다.


모리슨빌은 20세기와의 투쟁을 준비하기에는 적당한 곳이 못 되었지만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는 유년을 보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햇살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여름에는 미나리아재비가 들판을 노랗게 뒤덮었고 헛간엔 건초가 가득 쌓여 있었다. 뒤뜰에는 보랏빛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나무에 달려 있었고 할머니 댁 처마 아래로 길게 드리워진 덩굴에서 실려 온 바람에는 라벤더 꽃내음이 가득 담겨 있었으며 담장엔 들장미가 만발했다.


남자들이 모두 일터로 간 뒤 여자들이 잠깐 낮잠에 드는 오후가 되면 나는 뙤약볕을 쪼이며 깊고 경이로운 침묵 사이를 걸었다. 침묵은 너무나 깊어 옥수수가 자라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침묵이 흐르는 중에도 자연의 오케스트라는 도시 아이들이 결코 들어보지 못할 음악을 연주했다. 닭장에서 꼬꼬댁 소리가 들리면 그건 닭이 알을 낳았다는 신호였다. 처마 아래 매달아 놓은 작은 그네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면 그건 산들바람이 할머니 댁 뒤뜰을 지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리즈 버츠 씨네 마구간 앞을 인디언마냥 잽싸게 지나가다 보면 말이 파리떼를 쫓기 위해 꼬리를 휘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끼낀 개울가에서 발끝으로 살금살금 개구리에게 다가갈 때 퐁당 소리가 들리거든 그건 개구리가 사냥꾼을 발견하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신호음이었다. 낮잠에 든 집들 사이를 지나며, 나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양철 지붕들이 딱딱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았다. 녹초가 되어서 할머니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거실 바닥에 길게 누워 똑딱똑딱 시계추 소리를 들으며 최면에 빠지듯 잠이 들곤 했다.

정신없이 빨려들게 하는 이야기의 힘! 이미지는 물론 소리와 냄새까지 살아있는 그의 장면들!  이렇게 해서 이 책은 ‘서사’와 ‘묘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서사’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묘사’란 사물과 공간이 어찌어찌하다는 양상을 기술하는 것이다. ‘서사’에 치중하면 속도감은 있으나 자칫 건조하다. ‘묘사’에 치중하면 실감을 주지만 잘못하면 지루하다.  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 두가지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처럼 좋은 교과서를 발견해서 흐뭇하기 그지없다. 그밖에도 배울 점이 무궁무진한 책이지만 말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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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인 출신의 아버지 안병찬과 문화기획자인 아들 안이영노가 함께 책을 썼네요. 부자는 당대를 살아가는 가장 바람직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 싶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활기찬 자신감을 가지고 끝없이 성장해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면서, 그들에게 공통된 성격적 유전인자를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순재, 백지연, 정두언처럼 널리 알려진 사람들로부터, 땡땡땡 실버문화학교의 최화성, 해금연주가 이꽃별 등 신예에 이르기까지 그들 부자의 눈길을 끈 사람들의 공통점은,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자기애였다고 합니다.  활기찬 몸짓으로 끊임없이 페달을 돌리는 자전거형 인간들은 모두 가슴 속에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을 품고 있다구요, 자기를 사랑하게 만드는 마음의 거울이 스스로 성장하게 만드는 동력이라는 거지요.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의 열정에 스스로 중독되어 자기 자신에게 몰입해 나가는 근원적인 에고이스트! 이들은 끝없이 자기발전을 해나갑니다. 자신을 믿기 때문에 주변에 공감하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세계를 꾸준히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믿고 싶어하니까요.  열심히 성장하려는 나르키소스는 세상을 도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돕게 됩니다. 자기애와 용기가 만들어내는 성장의 드라마가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거침없는 하이킥라이프를 살고 싶은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나르키소스가 되어라, 이들 부자의 결론입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나에게 반하다”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인상깊었던 사람은 씨킴입니다. 김창일, Ci Kim, 그는 미술작가가 되기 위해 우선 돈을 법니다. 51년생, 전반생을 바쳐 천안 버스터미널, 백화점, 아라리오갤러리, 시네마 멀티플렉스로 이루어진 아라리오 문화도시를 건설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꿈을 이룬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술작품 수집가로 변신합니다. 전 세계를 돌며 3000점의 작품을 수집했습니다. 2002년 데미안 허스트의 7미터에 달하는 대형인체 장기모형조각 ‘찬가’를 250만불에 사들였을 때 런던미술계가 뒤집어졌습니다. 영국 젊은 작가들-브리타트-의 핵심작품이 서울 외곽의 이름없는 한가한 쇼핑몰에 넘어갔다구요. 씨킴은 ‘찬가’를 아라리오 미술관 앞 옥외에 세우고 방탄유리로 집을 지어 24시간 경비원을 배치합니다.


기업가, 컬렉터, 예술 후원자를 거친 씨킴은 문화생산자로 진화합니다. 제주도에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맹렬한 작업을 통해 5번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그의 표현영역은  그의 직업만큼이나 다양해서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콜라주를 망라합니다. 누군가 이런 그에게 ‘ 끊임없이 탐구하고 꿈꾸는 임의론자’라는 평을 해 주었습니다.


씨킴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저자들도 끊임없이 탐구하고 꿈꾸는 자기성장주의자들입니다. 일간지 기자와 대학교수를 거쳐 스스로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라고 명명한 안병찬, 그는 칠순의 나이에 아들의 기획에 따라 인터뷰하러 달려 갑니다. 책의 곳곳에서 문화트랜드를 연구하는 안이영노의 혜안이 빛납니다. 이들 부자는 이 책 말고도 “삶에 미치는 16가지 기술”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이들을 보노라니 고령사회가 아닌 성장사회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40세에 변신하고 60세에 다시 한 번 변신하는 식으로, 한 개인이 일생 동안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고 늘 공부하는 준비사회가 온 것이지요. 10년 전에 60세의 회춘과 변신이 대세였고, 몇년 전에는 마흔의 변신이 대세였듯이 앞으로 5년 후에는 50대에 새로운 전문가로 변신하기가 새로운 대세로 정착할 것이라니, 어떠세요?  당신은 인생의 2막 아니면 3막을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으신지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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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가 그런이야기를 전에 했었어요.
    유년기와 청년기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환경과 주변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긴대로 살지만, 그 이후는 자기가 스스로 삶을 만들어 가는거라는 이야기를요..ㅎ

    그래서, 더욱 좋은 표정, 좋은 인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만났을때, 인상이 같이 찌푸려지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고요^^
    미탄님, 즐거운 일요일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2008.10.12 13: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명이님의 닉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닉에 붙은 음표~~
      간단해 보여도 그렇게 한 사람이 많지 않지요.
      야무지고 적극적인 명이님의 단면을 보여주는듯해요 ^^

      2008.10.12 19:45 [ ADDR : EDIT/ DEL ]


짧은 시간에 전체를 꿰뚫는 사람을 천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도 체험을 통해 천천히 배울 수는 있습니다. 긴 인생을 통해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은 그만큼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삶에는 반드시 직접체험으로 배워야 할 부분이 있으니까요. 내게 일어난 일을 통해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그 일은 무의미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나는 늘 나를 들여다봅니다. 어떤 일을 맞이하여 내 마음에 일어나는 반향을 들여다보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분석해보면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일을 불러온 나의 기질이 있습니다. 아!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고 나면 그 일은 잊어버립니다. 계속해서 지나간 일에 붙들려 있지 않아도 됩니다. 그대신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앞뒤를 따져 깊이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됩니다.


아예 맘먹고 이제껏 살아온 것을 훑어볼 때도 있습니다. 미스토리를 쓰면 아주 좋습니다. 글로 쓰다 보면 생각지도 않던 기억이 꼬리를 물고 나타납니다. 사소한 습관이나 기호가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과꽃이나 백일홍 같은 옛날 꽃을 보면 가슴이 환해질 정도로 반가운데, 어릴 적 외가 장독대 앞에 피어있던 꽃이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는 식입니다.


유년시절 나의 뼈대와 살이 되어준 것은 세  가지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외가에서의 자연친화적 경험, 그리고 동화책입니다. 그로 해서 나의 자존감과 정서적 안정감 그리고 창의성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이십 대에는 농민에게 강한 일체감을 느껴 농사꾼과 결혼까지 하였지만, 지역활동에 진력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은 있지만 ‘사회적’이기 보다 ‘개인적’인 성향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육아기간은 정신없이 빨리 지나갔습니다. 살면서 그 중 바쁘고도 행복한 절정시기입니다. 그리고 마흔, 돌이켜보면 40대가 참 재미있습니다.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거든요. 창업을 하고 술을 배웠으며, 폐업을 하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습니다. 멋모르고 ‘중년의 위기’를 관통한 셈입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나’를 찾아왔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하기보다 혼자 일해야 더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온다는 것, 의례적인 좁은 울타리에 갇혀서는 숨쉴 수 없다는 것, 삶의 본질을 찾아 끝없는 탐구를 계속하리라는 것!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삶을 배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실수가 없었으면 내 삶도 없었을 테니까요. 다른 대안이 없다면 열 번을 망설이는 것 보다는 한 번 저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체험이 생기고 하나의 옵션이 지워지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뒷심 없이 크게 창업해본 경험 때문에 골머리를 썩었어도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습니다. 창업이나 ‘커다란 것’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 것입니다.  될 일은 반드시 되게 되어 있다, 섣부른 투자를 하거나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작아도 실속 있는 일이 최고이며 구색 맞춘 하드웨어는 허깨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요?  어떤 경험도 의미 없는 것은 없습니다.


나는 내 인생의 전문가입니다. 나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나입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나 멘토의 조언도 나와 맞아 떨어져야 힘이 됩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내가 반복해서 저지르는 일 속에 내가 들어 있으니, 살아온 과정을 곰곰히 들여다보면 나의 기질과 강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강점은 살려주고 단점은 보완해 나가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내게 필요한 책과 멘토를 찾아 자기화하면 도움이 되겠지요. 이렇게 삶을 통해 배운 것은 그야말로 알짜배기 내 것입니다. 굽이굽이 길어진 인생을 따라 최선의 나를 찾아가는 일이 매혹적이지 않은가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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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게 배우고 갑니다. 공감 100%입니다. 제가 그동안 생각해 온 주제인데 멋지게 잘 풀어주신 것 같습니다. 포스트 제목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

    2008.10.04 13:5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하하, 이번에는 buckshot님이 너무 높이 띄워주셨네요. ^^ 말씀 감사합니다.

      2008.10.04 19:12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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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군대 간 아들이 여자친구 주려고 만든 보석함입니다. 군대에서 만든 것을 휴가나와서 마무리 작업을 하는 모습입니다. 옆구리 쿡쿡 찔러서 내 것도 하나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  빠른 속도로 성장해가는 아들을 보며, 감개가 무량합니다.


“나는 내가 아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끝났다는 것을. 이제 난 그의 인생을 지켜보기만 할 뿐, 이제부터는 삶이 그를 다듬어 나갈 차례였어.”, ‘중년의 위기를 맞은 로미오와 줄리엣’  저자의 표현이 참 정확합니다.


역사적으로 부모와 자녀가 이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했던 적은 없습니다. 1900년 경에는 두 세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20년 정도에 불과했는데, 오늘날 남성은 50년, 여성은 55년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중에서 부모 대 아이로 있는 것은 20년에 불과합니다. 성인 대 성인으로 지내야 하는 시간이 훨씬 깁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새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면, 만만치 않은 갈등이 빚어질 염려가 있습니다.


성인이 된 자녀들의 세계는 계속해서 확장됩니다. 반면에 부모의 세계는 점점 축소됩니다. 부모와 자녀가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역전됩니다. 그런데도 품 안의 자식 취급을 하면, 점점 물정모르는 ‘꼰대’가 되어갈 뿐입니다.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인가, 그것은 내게도 커다란 숙제입니다만,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자녀를 놓아주자, 부모 노릇은 60세가 되기 전에 끝내자, 그 자리에서 다시 고민해보자는 것 하나 말입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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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비꽃

    많이 공감되는 글입니다. 자식은 슬하에 있을 때 기쁨을 누린 것이 전부라는 말처럼.
    무릎에 앉히고 사랑해주던 그 시기는 얼마나 짧은지요. 아이를 늦도록 업어주던 것은 그 기쁨을 연장하고 싶은 저의 마음이었죠.
    자녀와 분리된 인생 2막을 시작하려면 우리 나이 40정도부터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성년이 되어 독립할 때, 잘 떠나보내려면 나의 놀이나 일이 확실해야 서로 부담없이 분리가 될 것 같아요.

    2008.05.21 00:50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우리 부모님 세대가 무조건적인 헌신으로 해서 짜증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인정과 회귀는 보장받았잖아요. 우리 세대 특히 나처럼 자기중심적인 엄마의 정체성에 고민이 많아요. 아~~ 이 부분에도 직업적인 틈새가 있을 수 있겠어요. ^^

      2008.05.21 07:42 [ ADDR : EDIT/ DEL ]

좋은 책/책2008. 4. 21. 09:31
브리키테 히로니무스, 중년의 위기를 맞은 로미오와 줄리엣, 나무생각 2006

1. 타이틀

타이틀에 접했을 때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고, 읽어보고 싶다는 '유혹'을 한다면 좋은 네이밍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다 저자와 책의 품위까지 전달할 수 있다면 최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책이 품위를 가질수도 없고 가질 필요도 없으므로 통과!

이 책은 '중년의 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결시켜 놓았다. 그럼으로써 중년에 도달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와, 낭만적 사랑과 젊음에 대한 기억까지 환기시키는 효과를 유발하였다.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타이틀이라고 생각한다.

2. 목차

1부 모순과 조화 사이에서

여름의 댄스
가을의 탱고
겨울의 재즈
크리스마스 트럼펫

2부 전복기

나는 할 수 있어!
알 수 없는 깊은 슬픔
혼돈
나는 원한다!
새로운 시작의 길
동경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싱글이 되는 건 쉽지 않은 일
위로해줄 사람 아무도 없네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비상할 수 있다"

3부 변화로 나아가는 사랑

갱년기는 놀랍다
갱년기는 사다리를 오르는 것
죽음의 그림자
도착?

목차도 괜찮은 편이다. 그다지 크지않고 두껍지 않고, 무거워보이지않는 내용에 걸맞는
목차와 소제목이라는 점에서 합격!
너무 심혈을 기울이지 않고도 편안하면서도 읽고싶은 마음이 드는 소제목들이다.
목차와 구성은 본문과 일치해야 한다!
-- 위에 써놓은 소제목은 전부가 아니고 일부이다.--

3. 내용과 구성

이 책은 소제목이 시작될 때마다 저자의 일기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중년의 위기를 관통한 자신의 경험을 편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책을 처음으로 쓰는 저자에게 아주 부담없는 구성이 아닐까.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 이야기가 독자에게 어떤 유익을 주느냐가 문제인데, 이 저자의 경우 그 점에서 성공했다. 중년을 맞이하여 권태를 이기다못한 저자가 남편과 멀어지고 별거를 반복, 그러나 자신의 홀로서기와 남편의 외도를 겪으며 진정한 사랑을 회복하게 되는 내용이 비슷한 시기에 처한 독자에게 간접경험, 대리만족을 주고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각별하게 마음에 들어온 부분

권태기를 극복하고 남편과의 진정한 결합으로 진입한 저자는, 자신의 일에서도 혁신을 시도한다. 성공적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것을 접고, '중년기의 삶' 워크샵 강사로 나서는 것. 놀랍게도 그녀는 스위스 출신의 작가가 쓴 관련도서 한 권을 읽고 이 모든 일을 결정한다. 자신이 혹독한 중년을 넘기면서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로써 저자는 중년이 사춘기 못지않은 격랑의 시기라는 것, 그 모순과 도전의 시기를 도약으로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조건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새로운 부부 관계를 만들어나간 것 만으로도 멋진 성장이지만, '일'까지 완성함으로써 이 책은 훌륭한 성장사례가 된다.

5. 응용

나의 경험,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어떻게 독자와 만날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
위 글은 '한나' 라는 친구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이라, 더욱 쓰기도 좋았겠고 읽기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처음으로 책을 쓰는 사람에게는 편지글 형식도 좋은 지원군이 될 수 있겠다.
긴 분량을 쓰기에도 부담없고 익숙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형식의 책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세월이 젊음에게 주는 형식으로 종종 있었다.
나도 땡긴다.
철없는 엄마와 현실파인 딸이 새롭게 적응해나가며 둘 다 성장해가는 과정을 기술한다면, 일단 참 쓰기 편하겠다. ^^  그리고 편하게 써야 길게 쓸 수 있고, 진솔한 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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