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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새알심2008. 12. 1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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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군 복무 중인 아들을 면회하고 왔습니다.  벌써 네 번 째 가는지라 소양댐이며 청평사, 공지천 모두 둘러 보아  갈 곳이 없더군요. 그래서 북카페에서 죽치고 있었습니다. ^^ 어째 보고 싶은 영화도 없더라구요. 쇼핑도 하고 먹고 난 과일 껍질로 꾸미기도 하며 놀다가, PC방에 나란히 앉아 각자 자기 할 일을 할 때는 아주 신기하고 낯선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성장한 아이들과 지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니까요. 품 안에 있을 때의 기억은 생생하지만, 입시, 대학, 군대로 이어지는 기간은 단절이기도 했으니까요.

돌 날 흰 고무신을 신고 마당에서 제 장난감자동차를 닦던 그 아이가 아닙니다. ^^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자꾸 영어단어를 물어보길래, 왜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 내게 물어보느냐고 했지요. 아이의 대답인즉, 내게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르다는 거였지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었지요. 아직은 내가 아는 단어가 더 많을지 몰라도 오래지 않아 우리의 입장이 바뀔 거야. 너는 더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 갈 거야... 라구요.  

바로 그 시점이 된 것입니다. 아들은 한 달 반만 있으면 제대입니다.  아들의 전역은 감격스럽지만, 우리 생활에 중대한 변화가 오는 것이 살짝 긴장되기도 합니다. 성인이 된 아이들과의 관계정립에 내가 자주 헷갈려 하고 있거든요. ^^  애착과 분리의 균형잡기일 수도 있고, 역할변화에 대한 적응일 수도 있구요.

아들은 제 할 일을 알아서 하는 편이라 이제껏 싫은 말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아이를 키운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월은 그렇게 빠르군요. 이제 완연하게 의젓해 보이는 아이를 보며 내가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갈수록 우리의 역할은 변화할 것입니다. 아이가 내게 영어단어를 물어 보았듯이, 나는 좀 더 많은 것을 아이에게 물어보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갈수록 나는 나이가 들고, 아이들은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사이에 주도적인 역할이 바뀌고, 나는 점차 보조가 되거나 배경으로 밀려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미리 걱정하지 말고 낯선 곳을 여행하는 사람 처럼 호기심을 갖고 부딪쳐 보자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배려하며 자식만 해바라기하는 전통적인 모성보다, 따로 또 같이 성장하며 낯선 것은 낯설다고 말하면서요. 나는 전통적인 엄마 역할보다 그 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지나친 밀착이 아닌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나온다고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없는 관계란 그 때부터 죽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인간관계란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다, 성장도 후퇴도 없이 고정된 인간관계란 없다는 것은 모자 관계에도 성립할 지도 모릅니다. 굽이굽이 새롭게 펼쳐질 국면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의 모자가 되어갈 지, 조심스럽게 그 첫 장을 엽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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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요.. 어느새 훌쩍 자란 아들을 보며 '내가 얘를 키운 적이 있었나' 낯설어하게 되는-
    돌날 신었던 하얀 고무신을 기억하는 엄마, 아들도 어린시절 바라보던 젊은 엄마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있겠지요..
    두분의 새로운 관계정립은 꼭 잘 되리라 믿어요.
    미탄님, 화이팅!

    2008.12.15 16:45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ㅎㅎ 주로 사진과 일기를 통해 기억이 새롭게 살아나곤 하지요. 아이들이 초딩 때 쓴 일기장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모두 시인인 것이 맞더라구요. 언제 한 번 포스팅해야겠네요. 똑순맘이 열심히 기록하는 것도 좋구요, 특히 똑순이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을 보관하면 좋지요.
      지금으로선 살짝 아득하겠지만요. ^^

      2008.12.16 07:12 [ ADDR : EDIT/ DEL ]
  2. 앨리사

    "따로 또 같이 성장" 이란 말 참 좋습니다.
    저는 여자이지만 어머니이지는 않기 때문에, 모성애를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감히 자식들로부터 한 걸음정도 떨어질 수 없겠느냐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지만
    그런 어머니들을 볼 때면 존경심이 우러나오기도 합니다.
    미탄님. 멋진 아드님이 참 든든하시겠습니다.^^**
    그런 아드님과 늘 성장하는 미탄님의 더 멋진 미래를 그려봅니다. 화이팅!

    2008.12.16 08:57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ㅎㅎ 짧은 글이지만 너무 자식들에게 매여있는 여자들에 대한 평소의 느낌이 살짝 묻어날 듯도 하군요. ^^
      수명연장시대의 새로운 부모자식관계~~ 도 좋은 아이템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분명한 성과물은 없어도, 매일의 삶과 매일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앨리사님의 덕담 고맙습니다. 아주 청명하고도 살짝 쌀쌀한 날씨가 좋네요. 좋은 하루 되시기를!!

      2008.12.16 10:52 [ ADDR : EDIT/ DEL ]
  3. 울 엄마는 늘
    "엄마는 자식에 대한 짝사랑을 빨리 버려야한다"고 하시는데
    그녀는 짝사랑을 버렸을까요??? ?^^
    한번 물어봐야 겠어요.ㅎㅎ

    아드님이 언냐를 닮으셨나요?

    살짝 웃는 미소의 분위기가 언냐를 닮은 것 같아요~~~
    건강하게 제대하시길...

    언냐 건강하세요^^

    2008.12.16 21: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토댁님 어머니께서 나랑 생각이 잘 맞네요.
      성인이 된 자녀에게는 물리적인 부모가 필요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거든요.
      그 자리에 어떤 신 모성을 놓아야 할 지가 내 숙제이구요.

      아들이 어려서는 '이래서 분신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지요. 딸은 아빠를 닮고! 유전자가 나뉘는 것도 참 신기하지요?

      2008.12.17 09:32 신고 [ ADDR : EDIT/ DEL ]
  4. 미탄님 아드님이 벌써 제대할 나이군요.
    그런데 아직도 돌 모습이 오버랩되나요.
    제 꼬맹이도 곧 군대갈거란게 머리론 이해되는데 마음으로 실감이 안나네요.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는 아들분과, 또 달리 새로운 삶 벅차게 열어가시기 바랍니다. ^^

    2008.12.16 22: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얼굴보기도 어려웠던 고딩,
      외가에서 지낸 2년간의 대학생활에 이어
      군대에 가서 그런가봐요.
      아들이 너무 갑자기 커 버린 것 같아요.
      모든 어머니가 품 안의 자식이었던 때를 기억하느라
      성장한 자녀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지도 모르지요.
      덕담 감사합니다.

      2008.12.17 09:35 신고 [ ADDR : EDIT/ DEL ]
  5. 우왓 미탄님 벌써 아들이 제대할 나이라면..흠흠.
    전 이제 시작이지 싶어지네요.
    녀석이 군대갈때도 제가 블로그를 계속 하고 있을까요?
    기록으로 잘 남기고 있을까요?

    분발해야겠습니다. 작심 3개월 작심 3년이 되지 않도록.

    2008.12.22 23: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나이만이 중요한 변수이던 시대는 점점 지나가고 있으니까요. 블로깅에서는 돌이아빠님과 별 차이없는 시작단계랍니다. 저는 1년 정도에 12만 막 넘겼네요. ^^

      2008.12.23 11:0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