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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1 존재의 시간 (2)
좋은 삶/새알심2008. 6. 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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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대학졸업을 하기도 전에 농활다니던 지역으로 살러 갔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의 한 동네였지요.
딱 18호 밖에 안 되는 작은 동네를 맑은 강줄기가 휘감고 흐르고 있었고, 강가에는 제법 모래사장까지 있는 풍광수려한 곳이었습니다. 강에는 열목어가 아주 많아서 잡아서 매운탕을 끓여먹곤 했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보호어종이더라구요. 논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산간지대여서 옥수수를 재료로 한 음식이 참 많았습니다. 점심은 의례 옥수수였고, 옥수수로 떡도 하고 묵도 쑤었습니다.

이 곳에서 나는 동네머슴이었습니다.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열여덟 집 어느 곳이나 가서 농사일을 거들었고, 아무 집이나 가서 얻어먹었습니다. 경제협동 및 의식화교육에 주민들과 함께 참여하기도 하고, 동네 특산물인 고추와 마늘을 서울로 직송하여 판매를 알선하기도 했지요. 위 사진은 그 이익금의 일부로 짓던 마을회관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짬만 나면 동네 아이들과 싸돌아다녔습니다. 어제 일처럼 기억이 선명한데, 위 사진 속 아이들도 어느새 청년기를 벗어나고 있겠군요. 땔감을 하러 가는 아이들을 따라가기도 했지요.  중학교를 마치고 대도시 공장으로 떠나기 전에  집에 있던 아이들은. 땔감을 가득 해 얹은 지게를 산에서 밀어내리기도 했습니다. 지겟길로 신나게 미끄러지던 지게 위에 아이들이 타고 있었던 것도 같기도 합니다. 그 애들은 개발되지 않은 동굴로 나를 안내하기도 했지요.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을 후랫쉬를 비쳐가며 탐사<?>했습니다. 천장에 커텐처럼 화려하게 드리워져 있던 종유석이 기억납니다.

가격이 맞지않아 팔지 못하고 허옇게 얼어붙었던 고랭지배추도 생각납니다. 산등성이에 기일게 돌아가던 밭고랑의 선과, 허연 배추의 행렬이 아름다웠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했더니, 동네 아이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요.
"예쁜 것도 쌨네요."

사진작가 윤광준은 어느 모임에서 '존재의 시간'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물리적인 시간'이라고 한다면, 자기 존재를 형성하고 의미를 부각시키는 시간을 '존재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는거지요.
이 존재의 시간이 인간의 질적 행복을 결정하는 거구요. 그렇다면 미탄면에서의 1년은 내 존재의 시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화처럼 순수하고 낭만적이며 열정이 살아있던 시간들은 첫사랑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몸뻬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농촌에 뼈를 묻으리라 결심했던 한 때의 내 모습이 저기 있습니다. 광우병 관련 촛불시위에 한 번도 동참하지 못한, 생활에 쩐 소시민의 모습이 여기 있습니다. 정말 민망한 노릇입니다. 어디에 있든 그저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할텐데 과도기가 너무 길군요. 아!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 온 몸으로 전율이 퍼져갑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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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비꽃

    그랬었군요. 사진도 생동감있고 그때의 미탄님 삶도 아름답습니다.
    그 풍경들을 잘 그려내는 기억과 관찰력도요.
    ㅎㅎ "예쁜 것도 쌨네요." ^^

    2008.06.02 01:42 [ ADDR : EDIT/ DEL : REPLY ]
    • 지난 날의 사진을 매개로 '존재의 시간'을 정리해보려고 앨범을 뒤졌어요. 사진이 많이 없어졌기도 하고, 너무 쓸만한 것이 없어서 놀랐답니다.

      2008.06.02 07:55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