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0.22 하루에 대한 보고서 (6)
  2. 2008.06.14 다시 '신화의 힘' ^^ (4)
좋은 삶/새알심2008. 10. 22. 21:37


평소처럼 6시 반 경에 눈을 떠서 쓰던 원고를 하나 고쳤다.  그런대로 마음에 들어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순식간에 오늘 할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주 천천히 걸어서 산책을 하고, 도서관에 갔다가 내가 좋아하는 제과점에서 샌드위치를 먹을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오늘 걸음걸이를 포스팅하리라, 제목은 '찰나에 비석을 세우다'  ㅎㅎ

산책은 아주 좋았다. 가을의 트레이드마크인 억새밭과 빨갛게 물든 담쟁이와 도로에 깔린 낙엽과 무엇보다도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는 선선한 날씨가 일품이었다.


핏빛으로 검붉게 물들고 있는 담쟁이들 사이에서 천연덕스럽게 새파란 색을 뽐내는 담쟁이가 꼭 철들지 않는 나 같았다. 요즘은 거울을 볼 때마다 한심하다. 나이을 잊어버리고 살다가도 거울만 보면 충격을 받는다.  단식을 해서 오킬로그램 쯤 빼고 화장술을 새로 배운다해도 이 고개를 넘어갈 일이 아득하다. ^^ 


 



촉촉하면서도 청량한 기운이 폐부를 파고 들었고, 커다란 플라타너스 잎이 너울대며 떨어졌다. 조촐한 단풍들과 눈맞추며 한없이 걸어도 좋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아까워서 서둘러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인류의 정신적 유산에 접속하는 기쁨에 전율을 느껴야 한다고 한 사람이 진중권이었든가.  그 정도는 아니라도 나는 도서관이 참 좋다.  서가 어딘가에 나와 궁합이 맞는 책이 숨어있어 내가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필받을 수 있는 책을 만나면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저자의 내공을 수혈받아 정신적인 키가 성큼 커지는 기분이다. 별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정서적인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책 덕분이다.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살면서 책에 대한 소유욕도 없어졌다. 아무리 책이 많기로 도서관보다 많을소냐.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만큼 또 가벼워졌다.

세 시간 정도 맛있게 책을 보았다. 거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빵집으로 가는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기분이 다운되기 시작했다. 가랑비 탓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엄습하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하고 공허한 느낌에 또 사로잡힌 것이다. 불가능과 부정과 의심과 의구심이 집결하여 나를 쪼아대는 시간!

남들의 사소한 몸짓을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습관도 싫고, 궁핍한 조건에 갇혀 있는 것도 너무 한심하다. 니가 나이가 몇인데 겨우 빵집에서 안분낙도를 찾는거냐. ㅠ.ㅜ


이 빵집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곳이다. 이사한 다음날 처음 들어선 순간부터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작은 규모인데도 빵 만드는 사람이 대여섯, 서빙하는 사람이 대여섯 명이 있다. 주방을 오픈해서 훤히 보인다. 이 집 빵을 먹고 나서야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 맛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았다. 빵을 직접 만드는 곳과 냉동빵의 차이를 알게 된 것이다. 산책과 도서관 뒤에 이어지는 마무리코스인데 오늘은 빵을 타이어 씹듯이 먹어야 했다. 이전에 찍은 사진 한 장.

결국 집에 와서 늘어지게 한 숨 잤다. 자면서 생각했다. 이런 식의 감정기복을 몇십 년동안 겪을 수는 없다. 더이상 이 불청객에게 놀아나며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해답은 곧바로 주어졌다. 저녁에 읽기 시작한 '60초 소설'에서 암시를 받은 것이다.  저자는 변호사 협회 기자생활을 하던 중 지루하고 상투적인 업무에서 탈출하고자 '60초 소설'의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60초 소설'은  대성공이었지만 7년간 종사하다 보니, 또 다시 얄팍하고 통속적인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을 발견하고 자문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는 뉴욕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60초 소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아이오와 주의 광활한 옥수수밭과 사막을 찾아, 소몰이꾼과 양치기 목동과 왕새우잡이 어부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아!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험을 한 지 너무 오래 되었다.

오늘의 결론이다.
너무 오래 일을 벌리지 않고 웅크리고 살았다.
프로펠러처럼 활기차게, 악어처럼 탐욕스럽게 삶을 추구하는 것만이 저 음흉스러운 공허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대학졸업도 하기 전에 농촌으로 살러 갔던 20대처럼, 맨 손으로 건물을 지었던 40대처럼 다시 한 번 겁이 없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아직은 모호하지만, 계속해서 공허와 결핍에 시달리지는 않으리라는 결심을 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갔다.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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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각만큼만 가볍게 톡톡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하루에 대한 생각의 무게는 나이와 상관이 없나 봅니다.

    저 빵집은 언젠가 선생님의 포스팅에 등장했던 그 빵집이 맞지요?
    사진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 빵집. ㅎㅎㅎ 저는 이 빵집을 그렇게 기억해요.

    이 포스트에서 가을을 담아가요.
    아직 낙엽도 못 봤는데.
    오늘은 벌써 겨울이 되어버린 느낌이었거든요.

    2008.10.22 23:55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왜?
      "의식은 현실이다" 이런 말도 있는데?
      모든 것이 생각의 산물인 것이 나는 정말 믿어져.
      가벼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가벼워지고,
      행복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행복해 질 거야. ^^

      2008.10.23 07:12 [ ADDR : EDIT/ DEL ]
  2. 간혹 김포도서관에 가는데, 주변에 마땅한 산책로가 없어서 탐색 중입니다..^^
    강화에는 산책로가 너무 많구요.
    이제 슬슬 허투루 보내는 시간을 줄여볼 생각입니다.
    조금은 짜임새있게..^^

    2008.10.23 07: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시간!
      요즘에는 그냥 앉아만 있어도 시간이 나를 스쳐 휙휙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ㅠ.ㅜ
      그렇다고 해서 조바심을 내면 금방 지치고 성과도 더 안 나와주니, 참 이 마음의 작용이란! ^^

      2008.10.23 10:29 신고 [ ADDR : EDIT/ DEL ]
  3. 제비꽃

    ㅎㅎ 재밌게 읽었어요.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같기도 하고, '생활의 발견' 같기도 하고..

    중간에 삽입된 '공허'에 대한 단상이 이 글에 힘을 실어 주네요.
    인생의 매 순간마다 행복만 있다면 날아가는 새의 발자국일지도 모르죠.
    쌤과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기쁨이 있으면 기쁨과 놀고, 공허가 있으면 공허와 놀고.

    이 공허란 놈의 장난 때문에 다시 질러보겠다는 결심도 주어진 것 같은데요.
    불청객에게도 긍정적 불씨를 발견하신, 미탄님께 응원 보냅니다.
    아자아자 홧팅! 그래, 가는거야!

    2008.10.23 09:07 [ ADDR : EDIT/ DEL : REPLY ]
    • 제비꽃님, 응원 고마워요.
      무언가 조금씩 야금야금 숨죽인 다람쥐의 발걸음처럼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은근히 지쳐서인가 이 징후를 나꿔챌 에너지가 조금 딸리네요. ㅠ.ㅜ

      2008.10.23 10:30 신고 [ ADDR : EDIT/ DEL ]

 조셉 켐벨, 빌 모이어스 대담,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글을 너무 간단하게 쓰려다보니, ‘신화의 힘’의 맛을 너무 감소시킨 것같아 조금 보완하려고 합니다.

조셉 켐벨에 의하면 전 세계의 모든 민담과 신화는 모두 詩요, 메타포라고 합니다.  일목요연한 그의 설명을 듣다보면 저절로 수긍이 갑니다.

내게 가장 다가오는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이로쿼이즈 인디언의 민담이라고 하는데요. 뱀의 형상을 한 마법사 신랑에게 붙잡힌 여자가 도망을 칩니다. 신랑이 뒤에서 쫓아옵니다. 위급한 순간 어디에선가,

“내가 너를 도와주마”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노인이 이끄는대로 따라나오고 보니 물 밖입니다.

여자는 자기가 그동안 물 속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거지요.

여자가 물 속에 있었다는 것은, 결혼을 통하여 여자가 합리적 .의식적인 세계에서 무의식의 강박 충동의 세계로 들어가 있었다는 뜻이라고 켐벨은 이야기합니다. 개인의 자유의지로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으로 함몰된 상태였다는 거지요. 어떠세요?  결혼의 부자유한 측면에 시달리는 여자들이 혹할만한 상징 아닌가요? ^^

‘물 속’으로 상징되는 고립과 고통의 순간에도 걱정말라고도 합니다. 언제나 너를 도와주겠노라는 작은 노인의 목소리는 있어왔다는거지요.


그런가하면 이런 이야기도 제 상황에 와 닿았습니다. 인도에는 어머니가 자식을, 특히 아들을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게 하는 의례가 있다고 합니다. 한 집안의 영적 스승이 어머니에게 와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걸 자기에게 달라고 합니다. 값진 보석 같은 게 되겠지요. 이런 의례는 어머니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것을 떠나보내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어머니는, 그 영적인 스승의 말에 따라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것을 주다보면 결국 자기 아들도 포기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적절한 관심과 분리의 경계를 정하느라 혼란스러운 내게, 이런 이야기는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나는 명백한 ‘개체’인 것입니다. 의견이 다른 것이 당연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새로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평화를 맛본 듯합니다. 켐벨은, 마흔 다섯 살의 남자가 아직도 아버지의 의견에 순종하고 있다면 정신분석의에게 가봐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군요.


이쯤되면, ‘신화에 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소통할 리 없는 전세계의 민담과 신화가 똑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 인류의 원형의 기억이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갓태어난 신생아도 이 인류의 기억을 갖고 태어난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인류의 원형의 기억’ - ‘신화’는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한 것일 수 밖에 없겠지요. 평생 민담과 신화를 연구하며  한 세기를 살아간 켐벨할아버지의 지혜가 놀라운 것은 당연한 일입이다.


켐벨의 메시지는 ‘살아있음의 경험’ 이 한 마디로 집약됩니다. 심지어 켐벨은 이 경험을 종교적인 믿음보다도 우위에 둡니다.

사랑과 증오, 악의를 경험하며, 삶의 경이를 깨달았다는거지요. 어떤 사람은 성적인 탐구에 머물러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철학이지요. 어떤 사람은 권력에의 의지로 충만되어 있습니다. 애들러의 철학입니다. 애들러에 따르면 인생은 장애물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도 완벽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신들 중에도 이런 삶을 표상하는 신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켐벨은 여기까지는 동물의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삶의 본원’은 남의 삶에서 ‘나’의 삶을 인식하는 수준입니다.  ‘나’와 남은 둘이지만 살고 있는 삶은 하나임을 인식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 삶을 타인에게 주어버리는 인생입니다. 이처럼 자기 삶을 가슴으로 사는 삶의 단계에 올려놓은 사람에게서는 , 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광휘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신은 그 하나의 삶을 표상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놀랍게도 켐벨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수주의 기독교에서는 좋아하지 않겠지만, 제게는 신선하고 천진난만한 충격이었습니다.


모이어스 씨, 누가 신인지 아세요? ‘우리’가 곧 신이에요.

이 모든 신화의 상징이 수다스럽게 말하는 게 바로 이것이라구요. 320쪽


켐벨이 다시 한 번 놀랍고 대단한 것은, 이런 자신의 깨달음-이론을 도그마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삶의 목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이라고 하는 여행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보통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개인의 잠재력’을 신봉합니다. 자신만의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의 보통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삶의 모험을 떠날 수 있다. 살아있음의 모험을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처음 몇 년 동안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인간의 한 단편일 수밖에 없어요. 몇 년 뒤에는 사춘기가 됩니다. 사춘기 역시 인간의 한 단편에서 더도 덜도 아니지요. 성인이 되어도 단편이기는 마찬 가지입니다. 우파니샤드에는 원초적인 응집된 에너지의 이미지가 나옵니다. 이 세상을 빚은 창조의 대폭발로 인해서 생긴 이 에너지는 만물에 시간의 단편을 나누어줍니다. 그러나 시간의 단편을 통하여 원초적인 존재의 광대무변한 힘을 체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의 기능입니다.


시종일관 예술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람답게, 켐벨은 드넓은 지식의 세계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박식하고 지혜로운 인물이 이처럼 천진하게 열려있을 수 있다니, 켐벨의 삶은 우리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지평을 선사하는듯합니다. 그는 진정한 생의 철학자입니다.


 “이 세상에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겠다. 내 세상만 가질 수 있다면 구원을 받아도 좋고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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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화의 힘', 얼마 전에 읽었었는데, 인터뷰를 책으로 만든 탓인지 읽기가 쉽지 않은 형식이지만, 내용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생기게 되구요.

    2008.06.23 07:07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나는 신화못지 않게 조셉 켐벨이라는 인물에게 매력을 느꼈지요.
      글이든 사업이든 모든 면에서, 결국 자기 자신을 팔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답니다.

      2008.06.23 09:12 [ ADDR : EDIT/ DEL ]
  2. 전 도무지 이 책을 옮길 엄두를 낼 수가 없습니다.
    제겐 '의식의 부활'을 이끌어 낸 책이기에 그런가 봅니다.
    예수의 부활이랄지, 보살의 의미랄지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무릎이 떨어져라 쳐내려가며 읽었습니다.
    전 다시 또 읽고 그 때 써야겠습니다.
    이해력이 부족한 탓인 듯합니다.

    잘 지내시지요?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안부여쭙고 갑니다. ^^

    2008.07.04 17: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좋은 책은 살아가며 5년 정도 주기로 거듭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 때마다 내가 받아들이는 것,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모두 다를 듯도 싶네요.
      건강하시지요?

      2008.07.04 21:54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