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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6 <73호> 사람은 섬이 아니다 (2)
 요즘은 거울을 볼 때마다 충격을 받습니다. 나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거울만 보면 가슴이 철렁철렁 합니다. 눈꺼풀이 내려앉아 눈이 점점 작아지고 있고, 볼이 늘어져 내 얼굴 같지가 않고 이상하게 낯설어 보입니다. 머리숱이 없어져 정수리가 훤해 보일 때면 거의 공포가 밀려 옵니다. 내가 늙는구나!  말로만 듣던 노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나와 거울 속의 모습이 일치가 되지 않습니다. 내 나이가 지역정보신문의 구인광고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을 발견하거나, 주변의 퉁명스러운 아줌마 대접에 접할 때면 전신에 힘이 빠집니다. 이렇게 퇴물이 되어가는 거구나.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아졌는데 살아볼 기회를 차단당한 것 처럼 억울합니다. 무슨 기운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하고, 내가 생각하는 나와 거울 속에 보이는 나 중에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정말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심하면 돌겠구나 위기의식이 몰려왔습니다. 그 때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젊은 날 내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호기를 가지고 농촌에 드나들었으며, 소읍에서나마 내노라 하는 학원의 원장이었음을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이 필요했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참 익숙하게 잘한다며 감탄해주고, 언젠가 일 낼 것이라고 알아봐 주는 시선이 그리웠습니다. 내 지난날을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 앞에서는 내 정체성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나의 잠재력과 개성을 믿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후반생을 역동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덜 힘겨울 것 같은 거지요. 맙소사! 내가 나다운 것을 인정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니! 나로서는 정말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전에 읽은 인용구절 하나가 뒷통수를 쳤습니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에서 ‘조상을 잊고 동료를 무시함으로써 개인을 영원히 홀로 남겨두어 결국 자기 마음의 고독 속에 가둬버리게 될 것이며... 독자적인 삶을 얻을 수는 있으나 그것은 죽음보다 더 나쁜 삶이며... 개인을 홀로 남겨둠으로써 다수의 영향력 앞에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고 경고했다


이제껏 내가 ‘독자적’이라고 생각했던 삶이 죽음보다 더 나쁘다구? 가슴이 철렁하며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인정할 수 없는 사람에게 무심했을 뿐이지 무시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특정한 것만 좋아하는 데에는 다른 것에 대한 경멸이 숨어있었던 거지요.  나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내게 손 내미는 사람들조차 거부했습니다. 잘못 살았다! 뭔가 삶의 진수를 놓치고 산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요즘 서서히 자기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우선 사람을 판단하는 버릇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심을 갖는 것이 나의 과제입니다. 내 마음에 들면 어떻고 또 안 들면 어떻단 말인가.  누군가와 공감을 나눈다는 것은 내 기호보다 중요합니다. 기호를 뒤집어라. 기호에서 벗어나 사람에게 다가가라.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하려고 애쓰라.

이제 나는 경험에 의해 승복합니다. 아무도 이 세상 어딘가에 속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위대하고 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딘가에 속한다는 귀속감은 단지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따뜻한 감정 차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사의 문제입니다. 좋은 친구를 두는 것은 단순히 영혼에 좋을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습니다. 우울증을 예방해주고 면역체계도 강화시켜 주며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게 해 주니까요.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춰주고 스트레스와 호르몬을 정상수준으로 유지시켜준다니 굉장하지 않습니까. 좋은 관계는 목숨까지 구해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멀리 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보다 신중하게 사람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섬이 아닙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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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느 책 챕터 서문에 '수학과 영어를 공부하듯 인간관계도 공부해야 한다'라고 쓰인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능한 친구들에 비하면 전 개인적으로 많은 공부가 필요한 사람 같아요. 특히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가는데 대해선 말이죠. 사람은 섬이 아니다. '어바웃 어 보이'란 영화에서 들은 말이라 더욱 가슴 깊이 박히네요^^

    2008.10.27 13:17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이 귀절이 그 영화에 나오나요? 저는 어디선가 책에서 본 것 같아요. 가끔은 아예 내 것이 된 듯한 표현의 처리에 대해 생각하지요. 일일이 출처를 달기도 그렇고, 또 아예 잊어버린 것도 있어서요.

      '공동육아'의 교육목표가 '관계'인 것을 보고 그 혜안에 놀랐습니다. 유아들에게 자기 또래와 어른, 자연과의 관계맺기 위주로 교육과정이 짜인다는 거지요.

      우리 어른들도 공동육아를 벤치마킹해서 공동관심협동조합... 그런 것 해 보면 참 좋겠어요. 목표는 '관계연습'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기'와 '지식의 공동생산'!

      2008.10.27 21:38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