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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8 남자들에게
시오노 나나미, 남자들에게, 한길사, 1995
 

남자들이 여자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늘어놓은 글은 많아도, 여자 쪽에서 남자론을 편 글은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서 남녀간의 권력관계를 읽을 수 있다. 여자의 스타일을 논하고 품평을 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여자를 접하고 여자를 골라잡을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래에 이르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자들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동안 제도적인 남녀평등이 이루어졌으며, 여성들이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고, 여성적 감수성이 각광받는 문화의 세기가 도래하였으니,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닌듯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자가 쓴 ‘남성론’도 늘어날 확률이 크다. 계속해서 여자들의 권력이 확대될 것이고, 그것은 여자들이 ‘남자’에 대해 품평할 위치에 선다는 것을 뜻하기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쓴 ‘남성론’이 대폭 늘어난다고 해도, 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에게’는 이 분야에서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체험과 박식함, 깐깐한 취향에서 우러난 철학을 넘볼 저작이 그리 쉽겠는가.


시오노 나나미는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다녔고, 영화광으로서 수많은 남자배우들을 보며 시각을 단련했으며, 이태리 남자들과 ‘말이 통해서’ 남자친구가 많은 편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정련된 삶의 스타일을 가지고 남자의 멋을 풀어놓으니, 이만한 풍류가 없다. ‘남자’를 논하는 척하면서 ‘삶의 스타일’을 논하는 것이다.


그녀가 신봉해마지 않는 마키아벨리의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고 한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간다. 들어가기 전에 흙이나 먼지로 더럽혀진 평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는다. 예의를 갖춘 복장으로 몸을 단장한 후, 고인의 궁전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나는 부끄러움도 없이 그분들과 대화하고 그들 행위의 이유를 묻는다. 그분들도 인간다움을 내보이며 대답해준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역사적인 인물과 대화를 나눌 준비와 예의를 갖추기 위해 관복을 갈아입는 자세, 이것이 바로 ‘멋’과 ‘차려입기’의 기본이라는 식이다. 마키아벨리같은 천재는 못되더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이만큼 노블한 영혼을 가지고 살자는 것이다.


과연 시오노 나나미의 생활은 ‘멋’과 ‘스타일’로 가득 차 있다.  아는 것이 많으니 갖고싶은 것도 많겠으나, 우리네 잡식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15세기 중엽 메디치 가에서 사용하던 천을 복원해서 사용하는 식이다.  메디치 가 문장이 새겨진 천을 입힌 긴 의자 위에 길게 누워 독서삼매를 즐긴다. 마키아벨리의 생애에 대해 글을 쓸 당시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위해, 그가 앉았던 의자를 만들기도 했다. 단테시대 부터의 목제의자로 ‘단테스코 <단테풍>’라고 불리우는 의자를 고증, 제작하여 서재와 식탁의자로 사용한다.


이처럼 꼬장꼬장한 성미로 남자를 뜯어보니, 누구라도 해부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대학시절 배우 게리 쿠퍼가 죽자, 喪中이라고 학교에도 결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게리 쿠퍼가 죽은 후에도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 아니 딱 한 번,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의 오마 샤리프에게 마음을 주었다고 한다. ‘닥터 지바고’도 함량미달이고, 오직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의 그 검은 독수리와 같은 아름다움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배우 알랭 들롱의 매력을 분석하는데는 기가 막히다. 들롱의 미는 하층계급 남자의 것이기 때문에, ‘태양은 가득히’와 같이 밑바닥 인생을 연기하면 그의 매력이 살아나지만, 상류생활을 외워서 ‘흉내’낼 때는 비천한 매력조차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남자의 매력이란 목덜미에 있다고 단언하는 시오노 나나미, 장발이 유행하면 당연히 우울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영화 ‘쿼바디스’를 보면서 욕구불만을 해소한다. 고대로마 시대의 남자들은 짧은 머리에 수염이 없었기 때문에 남자의 목덜미를 감상하는 데는 그만이었다고.


아는 것많고 할 말많은 시오노 나나미의 결론은, 남자든 여자든 결국 머리좋은 것이 최고라는 것이다. 머리좋은 여자는 침대 위에서든 어디에서든 모든 행동을 견제하는 ‘기본’이 있다.


머리좋은 남자란 무엇이든 제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에 의해 판단하고, 그 때문에 편견을 갖지않고, 무슨무슨 주의주장에 파묻힌 사람에 비해 유연성이 있고, 예리하고 깊은 통찰력을 가진 남자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철학을 가진 사람일 것, 이럴 때의 철학은 어려운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대처하는 자세-스타일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의 말이라고.


남자에게는 연령도 관계없고 사회적 지위나 교육의 고저도 상관없고 그저 스타일을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라니, 그녀의 지성과 감각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스타일’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스타일에 대한 그녀의 부연설명을 들으며 글을 맺는다.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그런 줄 아는 것이 스타일이다.

스타일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깊이 있는 인격이 저도 모르게 배어나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어느새 주위 사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진짜가 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진짜인 사람은 그 누구든 스타일이 있다는 말이다. 개개인이 살아가는 스타일이야말로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타일이 있다고 볼 수 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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