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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7 길어진 인생을 사는 기술 (5)
 

슈테판 볼만, 길어진 인생을 사는 기술, 웅진지식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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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이 책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평소의 내 관심을 그대로 드러낸 제목이었다.

시류에 영합하는 ‘기술’이라는 단어가 거슬리긴 하지만,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독자의 눈길을 붙잡는데 성공한 네이밍이다. 어떻게 이렇게 제목을 잘 뽑아내는지 대단하다. --독어라서 원제를 확인할수는 없었다.-- 비록 제목 하나라도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에 대해 머리가 조아려진다.

책을 읽어보니 제목 뿐 아니라 컨셉도 평소의 내 생각과 똑같다. 수명연장시대에 대한 책 중에서 독일인이 쓴 “고령사회2018”이 돋보였던 생각이 나서 친근감이 더해진다.

모두 알다시피 인생이 아주 길어졌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관습화된 시간표 외에는 구체적인 인생행로에 대해 별로 제시해주는 것이 없다. 그래서 개개인은 삶의 단계 사이사이를 자신의 힘과 결정으로 극복해나가야 한다. 인생 단계의 과도기가 통과의례적으로 주어지던 이전에 비해, 오늘날에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고, 책임지는 것이 대세다. 동시에 전에 엄격하게 준수되었던 사회적, 연령적 수준 차는 의미를 상실하였다.”


누군가 이것을 ‘문화적 각본이 사라졌다’고 멋들어지게 표현했었다. 수명은 길어지고, 세계는 넓어졌으며, 자극과 선택의 기회는 무한대로 넓어졌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사회가 아무런 문화적 지침을 주지 못한다면, 개인이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밖에 없다. 길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기술은 ‘나의 문화를 만들어라’가 되는 셈이다.


저자는 ‘개인문화’를 가진 인물로 괴테, 벤자민 프랭클린, 피카소 세 사람을 제시한다.

82년의 생애 내내 모든 관습을 거부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했던 괴테, 그는 ‘파우스트’와 ‘빌헬름 마이스터를 노년에 완성했다. 그리고 죽기 전해에 ‘시와 진실’, ‘에커만과의 대화’를 저술했다. 잠이 오지 않는 긴 밤을 모호하고 대략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고 다음 날 할 일을 정확히 숙고했다고 76세의 괴테는 적었다.


“아침에 시작할 수 있고 가능한 한 시행할 것들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더 많은 일을 하고, 다시 내일이, 영원히 내일이 있다고 믿거나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날들에 게을리 했던 일들을 할당받은 날들에 꼼꼼하게 완수한다.”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세대가 개인문화를 완성할 수 있는 열쇠가 여기에 숨어있다. 현존하는 가능성 중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을 선별하여, ‘할당받은 날’에 본질적으로 집중할 것. 정확한 일을 정확하게 하라.


프랭클린은 괴테못지 않게 다양하고 의욕적인 삶을 살았다. 공무원이자 외교관, 법률가이자 박애주의자, 학자이자 발명가요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인쇄업자와 출판가... 그는 실로 읽어내려가기에도 숨찬 인생을 꽉 차게 살았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그런 삶이 소수에게만 허락된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모두가 그런 병렬적 삶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가지 커리어, 한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인생이 너무 변화무쌍하고 너무 길어졌다. 첫 번째 커리어와 동시에 두 번째 커리어를 계획적으로 개발해나가다가, 때가 되면 원래의 커리어를 교대해주라. 두 번째 커리어는 공익단체나 프리랜서, 자영업자처럼 다양하다.

그리고 창조와 열정의 화신 피카소, 그는 노년에 들어 더욱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90세에 수백 개의 스케치와 200개 이상의 회화를 완성했으며, 생의 마지막 6개월 동안 147점의 소묘와 회화를 완성하는 엄청난 생산성을 발휘했다.

“내가 죽으면 회화는 어떻게 하지?”

그는 점점 줄어드는 시간의 공포를 작업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뛰어넘고자 한 것 같다.

그림의 완성도보다는 먼저 것과 뉘앙스만 다른 그림을 시리즈로 작업하는 식으로 그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커다란 붓으로 작업을 하고 캔버스 전체를 메우지 않았으며, 붓 자국과 물감이 뭉친 곳이 종종 처리되지 않고 남았다. 그렇게 속도를 높여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끓어오르는 창작열로 죽음에의 공포를 이겨내고자 한 그의 의지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새로운 회화기법을 창조했으며, 피카소 사후 ‘신야수파’에 의해 열광적으로 수용되었다. 결과적으로 피카소는 마지막 붓질까지 회화의 경계를 확장하는 데 집중하였다.


걸출한 위인들의 생애는 우리에게 자극도 주지만 위화감도 준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닌, 조금 노력하면 따라갈 수 있는 역할모델이 필요하다. 수명연장은 분명히 시작된 트랜드이고, 더욱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나이들기’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나의 주된 관심사가 있다. 나의 삶을 실험재료로 살아가고 기록하며, 따라하고 싶은 삶을 발굴하고 연대하는 일, 무엇보다 그 과정을 춤추듯 즐기며 가는 일, 그것이 나의  삶이다. 


결국 길어진 수명을 살아가는 기술은, 새롭게 헌신할 수 있는 목표를 찾는 일로 축약할 수 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 해 그 길을 가는 것.  찾는 것도 중요하고 헌신은 더욱 중요하다. 좋은 뜻을 퍼뜨리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인정받고 자리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19세기 철도 재벌 릴런드 스탠퍼드는 캘리포니아에 대학을 설립하고자 할 당시 하버드 대학교 학장이었던 찰스 엘리엇을 찾아가 아주 좋은 대학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언을 구했다.
엘리엇은 "2000만 달러"라고 대답했다. 스탠퍼드는 "그것쯤은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엘리엇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엘리엇은 물끄러미 하버드 캠퍼스의 아주 오래된 플라타너스를 바라보더니,
"그리고 100년이라는 세월"이라고 덧붙였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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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종윤

    거진 20년쯤 전에 배운 독일어를 더듬어 보건데...

    Die Kunst des Langen Lebens는

    직역하자면 '긴 삶의 예술'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완전히 희미한 기억에만 의존한 것이므로 틀릴 여지가 다분하지만 Kunst는 예술, Langen은 영어의 Long, Leben은 Life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점점 줄어드는 시간의 공포를 작업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뛰어넘고자 한'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공감은 가네요. 제목과 컨셉은 비슷하지만 손이 닿을만한 거리로 압축하면 한선생님만의 스타일로 차별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2008.04.17 16:49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품격까지 기대할수는 없어도, 비교적 눈에 쏙 들어오는 타이틀이라 원제가 궁금했는데, 고마워요.
      원제를 그대로 옮기되, 요즘 인기단어인 '기술'만 넣어주었군요.

      제목과 컨셉이 같지만, 철렁하기보다 반가운 심정이 더 앞섰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기분이랄까,

      특히 '개인문화'가 강조된 부분도 반가웠고...

      전에는 머리만으로 공감해서 "문화를 만들 수 있다면 내가 시대이다"를 남발하곤 했는데, 요즘은 자기문화를 가지려면 얼마나 투철하고 치열해야 하는지 조금 알 것같아서 쉽게 말도 못한다우. ^^

      2008.04.17 17:48 [ ADDR : EDIT/ DEL ]
  2. 저 역시 탄복했습니다.
    책 만드는 일을 비교적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제목 하나를 뽑기 위해서 이 하나쯤 빠지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 삶의 무대는 확장되었는데 그 빈 곳을 채울 삶의 지혜를 채우는 일에는 아직도 무심한 것 같아요. 기껏해야 재테크 정도라고나 할까?
    기본적인 커리어 외에도 '자신만'의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한 세상이 되었는데 우리는 아직도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버거운 듯 합니다.
    최근에 아내의 추천으로 '강남아빠 따라잡기'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너무 트랜디하고 가벼워보이는 제목 때문에 손사래를 쳤었는데 내용은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책 속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강남아빠들은 제가 서른을 넘기며 느끼고 깨달았던 지혜들을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더군요.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가르치는 것'에 앞서는 것이 제가 '먼저 살아가며 깨달아 알고 실천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삶이 조금 무거워지고 어려워진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책 추천 깊이 감사드려요~

    2008.04.17 22:42 [ ADDR : EDIT/ DEL : REPLY ]
    • 저역시 '강남00 따라잡기' 이런 제목의 책은 본 적이 없는데, 내용이 좋았다니 다행이군요.
      그런데 서른 넘은 직장인이 겨우 깨닫는 것을 성장기의 자녀에게 가르쳐주면, 그 아이들은 진짜 사회에 나와서는 무엇을 배우고 느끼며 살아갈지, 모든 것을 부모가 해주고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세태가 두렵네요. ^^

      2008.04.18 00:06 신고 [ ADDR : EDIT/ DEL ]
  3. ㅎㅎ 그러네요.
    그렇게도 볼 수 있군요^^

    2008.04.18 15: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