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의 writingsutra2010. 4. 22. 12:17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여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대답은, 윌리엄 진서가 말한 ‘인간적인 온기가 있는 명료한 글’이다. ‘인간적인 온기’란 글 쓴 사람이 드러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면 자연스럽고 진솔한 글이 된다. 글이란 언제나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발밑의 어둠에 대해 쓰라.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그럴듯해 보이는 주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와 고민, 실수와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내라. 사람들은 글을 읽으며 공감을 원한다. 자신처럼 작은 일에 울고 웃는 사람을 발견하여 동질감을 느껴 편안해지고 위로받으며, 댓글 등의 방법으로 개입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한다.  남자들이 더 그런 것 같다. 여자들이 주로 자기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 비해 남자들은 공식적으로 인증된 이야기를 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솔직한 글을 쓰는 남자가 돋보이기도 한다. 최근 김정운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중년남자의 심리를 솔직하게 드러낸 요인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또 하나 좋은 글의 요건은 ‘명료함’이다. 도대체 이 글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가 명확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글쓰기의 기본인데도 불구하고 종종 무시된다. 글을 쓰다 보니 샛길로 빠지기도 하고, 글 쓰는 사람 자체가 주제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짧은 글에 너무 많은 생각을 담을 때도 있다. 윌리엄 진서는 ‘글 하나에 한 가지 생각’을 강조한다. 두 가지나 세 가지가 아니라 단 한 가지 생각이라는 것. 그러니 글 쓰는 사람은 수시로 질문해야 한다. 이 글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그 이야기를 충분히 했는가? 


보통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내가 주제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 경우일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 쓰고 싶은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라. 그리고 나서 글의 전체에 걸쳐 그 생각을 구현하는 글을 쓰면 된다. 글을 고칠 때도 마찬가지다. 그 ‘하나의 생각’을 관철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문장은 군더더기다.


‘인간적인 온기와 명료함’이 ‘어떻게 글을 쓸까’ 하는 방법론이라면 여전히 ‘무엇에 대해 글을 쓸까’하는 문제가 남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적인 것은 어떤 것도 나쁘지 않다. 살면서 강한 인상을 받은 것 중에서 우선 내게 글로 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 일으켜야겠지.  나아가 읽는 사람에게도 가치가 있어야 한다.  반드시 대단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빙긋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재치나 한 번 따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아이디어,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하는 대리만족 까지 아주 소소한 것도 좋다. 내가 받은 인상을 충실하게 표현하면 이것은 저절로 생겨난다. 내 삶을 완성하고자 애쓰는 기운이 저절로 세상을 완성하는 것처럼, 내 주제에 전념하면 거기에 자연스러운 아우라가 생긴다.


사연 많은 인생사를 구구절절 풀어내서는 글의 밀도가 떨어진다. 반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사소함에서는 인생사가 거의 배어나오지 않는다.  공룡의 손톱만한 뼈 화석만 있어도 공룡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일화도 삶을 드러낼 수 있다. 오랜 삶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의 뼛조각 한 점을 찾아라.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이 할 일이다.


▣ 공룡에 대한 부분은, 박덕규의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쓰기’에서 인용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좋은 책/책2008. 5. 8. 10:28
윌리엄 진서, 글쓰기 생각쓰기, 돌베개 2007


감각있는 글을 쓰게 하는 이정표가 있을까? 많지는 않다. 글쓰기는 모든 사람의 개성의 표현이며, 실제로 나타난 후에야 그것이 좋은 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들려준 조언은 내게 최고의 이정표가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좋은 글의 요건은 '명료함'과 '인간적인 온기'이다. 이 책 만큼 명료한 글은 처음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에 충실한 예문을 보인 셈이다. 너무 쉽게 읽히지만 쉽게 쓰여진 글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동원한 예문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장황한 글과 명료한 글의 예문을 보여주기 위해, 성경과 역대 대통령의 연설문, 인류학 보고서와 요리실습기를 망라하고 있다.

간소하게, 부디 간소하게 쓰자. 글쓰기 실력은 필요 없는 것을 얼마나 많이 걷어낼 수 있느냐에 비례한다.
'따로 틈을 내서'에서는 '따로'가 없는 것이 낫다. '개인적인 의사', '개인적인 친구'가 아니다. 의사면 의사고 친구면 친구다. 나머지는 군더더기다.  '보조하다'보다 '돕다'를, '다수의'보다 '많은'을, '용이하게 하다'보다 '쉽게 하다'라고 쓰자. 당신이 비행기의 기장이라면, '잠시 후 상당한 양의 강우가 예상된다'고 하지 말고, '비가 올 것같다'고 말하자.

글 쓰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그걸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또 자기가 쓴 글을 읽어보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내가 제대로 말을 했나? 이 주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보기에 글이 명료한가?

이렇게 쉬운 말로 글쓰기의 정곡을 찌르는 저자의 공력에 감탄이 나온다. 나는 이 책을 만나서, 뭔가 좀 아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는 허영심을 버린다. 평소에 하는 말처럼 써서 전달할 수 없는 내용은 없다!
간소한 글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이 부분에서 완성된다.

어떻게 하면 난삽함이라곤 전혀 없는 이 부러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답은 난삽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치워버리는 것이다. 명료한 생각이 명료한 글이 된다.

또 좋은 글에는 글쓴이가 드러나 있다.

좋은 글쓴이는 글 바로 뒤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나'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를 생각하면서 쓰거나, 초고를 일인칭으로 쓴 다음 '나'를 빼면 된다. 그러면 비인간적인 문체에 온기가 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나'를 쓰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슨 특별한 권리라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여긴다. 아니면 자기중심적이거나 품위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학계에 있는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독자들이 감성적인 글에 반응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것을 독자의 수준이 낮은 탓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훈련이 안된 탓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윌리엄 진서의 설명을 듣고나니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이 책을 통털어 가장 인상적인 문장을 되풀이해야겠다.  이 문장은 벼락같은 깨달음을 주었다.

궁극적으로 글 쓰는 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이로써 내 글쓰기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었다. 명료하게 생각함으로써 명료한 글을 쓸 것이다. 편안하게 말하듯이 풀어 쓸 것이다. 나를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향기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매력있는 인간이 되도록 애쓸 것이다. ^^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어떤 종류의 글이든
    글을 쓰면 내가 너무 드러나는것같아 불편했어요.
    그래서 '보여주기 싫은 내모습'은 드러나지 않도록 꽁꽁 감춰두려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쓴 글은 외려 더 낯뜨겁고 부끄럽더라구요...
    참 어렵지만 매력적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

    미탄님 글은 참 힘있고, 분명하고, 사려깊어 좋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단련하신 결과였군요. 존경스럽습니다.
    ^^

    2008.11.20 10: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새댁님 글도 분명하고, 사려깊어요.^^
      새댁님이야말로 독서량이 참 많아 보여요.

      2008.11.20 20:28 [ ADDR : EDIT/ DEL ]

좋은 책/책2008. 4. 30. 08:25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코네티컷 주의 어느 학교에서 '예술을 위한 하루'라는 행사를 열고 두 사람의 강사가 함께 진행하는 강좌를 열었다. 한 사람은 외과의사로서 최근에 글쓰기를 시작하여 부업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를 '부업'이라고 하자. 또 한 사람은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서 기자생활로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작가이자 편집자이자 글쓰기에 대해 가르치는 교수이다. 그를 '전업'이라고 칭하고, 그들의 강의내용을 대화로 정리해보았다.

질문: 작가가 되시니까 어떤가요?
부업: 너무너무 재미있습니다. 병원에서 힘들게 일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곧장 글을 쓰면서 그날의 긴장을 떨쳐버립니다. 쓰다보면 단어들이 술술 흘러나와 글이 쉽게 써집니다.
전업: 글쓰기는 쉽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습니다. 글쓰기는 힘들고 고독한 일이며 단어가 그냥 술술 나오는 경우는 여간해선 없습니다.

질문: 글을 고쳐 쓰는 것이 중요한가요?
부업: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문장이란 글 쓰는 사람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마련이니, 있는 그대로 다 끄집어내면 됩니다.
전업: 글은 고쳐 쓰기가 생명입니다. 전문 글쟁이들은 자기가 쓴 문장을 몇 번이나 고쳐 쓰고도 또 고칩니다.

질문: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부업: 그럴 때는 당장 글쓰기를 멈추고 잘 써질 때까지 하루쯤 손을 대지 않습니다.
전업: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들은 매일 쓰는 양을 정해놓고 엄격히 지켜야 합니다. 글쓰기는 기능이지 예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기능을 연마하는 일에서 손을 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며 빈털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질문: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이 글쓰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요?
부업: 자주 영향을 미칩니다. 그럴 땐 낚시를 가거나 산책을 하면서 기분을 풀려고 노력합니다.
전업: 감정이 글쓰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글쓰기가 직업이면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묵묵히 일을 하게 됩니다.

 우연히 접한 책에서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모조리'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지점이 '부업'과 '전업'의 경계인 것 같아 재미있기도 했다. 얼마만에 만나는 '내 인생의 책'인가. 아, 아니다. 글쓰기는 예술이 아니라 기능이라고 했지. 영감의 영역이 아니라 노동의 영역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좋은 책을 찾았다고 호들갑을 떨기보다, 그의 책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당분간 이 책에 흠뻑 빠져 지낼 것 같다.

이 책은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이다.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송숙희

    창조적 영감은 책상에 앉아 원고파일을 열어
    꾸역꾸역
    첫줄을 쓰는 순간 왕림하시지요.

    저도 모르는 기막힌 문장히 툭툭 불거져
    자판을 통해 모니터에 박힐때
    환장하게 좋습니다.
    '꾸역꾸역'이 정답입니다.

    2008.05.01 06:22 [ ADDR : EDIT/ DEL : REPLY ]
    • '글쓰기는 생각에게 말을 거는 행위이다', 라는 표현도 있었지요. 이제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제 카테고리 중에 '꾸역꾸역'은 송선생님 글에서 빌려온 표현입니다. 새끼치기를 한 셈이지요. ^^

      2008.05.01 07:16 신고 [ ADDR : EDIT/ DEL ]
  2. 저는 차마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을 용기는 못낼 것 같습니다.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만 해서 먹고살 용기가 안나네요.

    그래도 꾸역꾸역 써야한다는 것에는 동감합니다. "글쓰기는 기능이다"...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 정말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2008.05.02 04: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투잡스를 넘어 멀티잡스의 시대인데다가, 수명이 정말 길어져서요. 그 긴 시절을 주체적으로 창의적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나'의 존재가 더욱 중요해졌잖아요. '나'를 곧추세우고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도구로 '글쓰기'만 한 것이 없구요.

      혼자 생각하던 것을 대가의 목소리로 확인하는 재미가 아찔했답니다. ^^

      -----
      재미있게 쓰는 작가들은 대개 스스로 재미를 느끼려 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작가의 핵심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글쓰기를 스스로에게 재미있는 삶과 지속적인 교육을 주는 수단으로 삼아왔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알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 주제에 대해 쓴다면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이 글에 묻어날 것이다. 배움은 일종의 강장제다. -218쪽

      2008.05.02 04:59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