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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8 블로그순례23 - 정윤수의 '매일매일 사람과 책'http://blog.ohmynews.com/booking/ (2)

오마이뉴스에 '매일매일 사람과 책'을 연재하고 있는 정윤수의 블로그. 그 날 태어나거나 사망한 인물에 대한 글을  1년간 '매일매일' 올리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이다. 가벼운 신변잡담을 매일 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그의 글은 한 개인에 대한 미니평전에, 엄선한 관련도서를 3~4권 덧붙여 소개하는 중량급이다.  지난 4월에 시작해서 지금 딱 절반을 왔다. 

이오덕, 신영복 같이 믿음직한 이름과, 찰리 채플린 , 에드워드 호퍼 처럼 독특한 자기 세계를 가진 사람들과, 마돈나, 안소영, 윤아에 이르는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듣도보도 못한 수많은 사람에 대해 쓴 글을 보노라니,  '도처에 고수로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매일 이만한 글을 생산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세월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정작 정윤수는, 그 누구도 고달프고 힘겹게 자기 몫의 삶을 꾸려내고 있는데 까짓 글 몇 줄 더 쓰는 것이 대수냐는 입장이다.



나는 그런 자세가 마음에 든다. 지식노동자로서의  자기인식이 좋다. 지식생산과 건축노동자를 구분하지 않는 겸허함이 매일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저력이리라. 그는 아마도 글 한 편과 벽돌 한 장의 가치가 동등하게 매겨지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일 것이다.
 
정윤수가 펼쳐보이는 대 파노라마를 따라가려면 당분간 심심하지 않겠다. 감각적인 소제목 어느 것을 클릭해도 실망하지 않을 터이지만, 재즈에 대한 그의 사랑은 유난해 보인다.
그의 태그 목록에서는  '재즈'라는 글자가 가장 크다. '재즈'에 속한 8편의 포스트 중, 존 콜트레인에게 바쳐지는 헌사에 내 마음도 설레인다.  

 http://blog.ohmynews.com/booking/182939

재즈라는 한정된 장르의 범위를 넘어서 어떤 한계적 상황에 도달하였음에도 초월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예술가적 자존심, 나아가 비루한 현실에 엎드린 채 먼 곳을 향하여 기도를 올리는 모든 인간의 깊은 고뇌가 담겨 있는 작품들이다.

존 콜트레인의 업적은 자기표현에 관심있는 모든 인간의  지향점이 아닐까. 그의 음반에는  'My Favorite Things' 같이 아련한 재즈발라드도 있고, 정윤수가 흥분에 찬 어조로 최고의 찬사를 바치는 <A Love Supreme> 같은 명반도 있다.


Raindrops on roses and whiskers on kittens
(장미 꽃잎에 맺힌 빗방울, 새끼 고양이의 콧수염)
Bright copper kettles and warm woolen mittens
(반짝이는 구리 주전자, 따뜻한 털 장갑)
Brown paper packages tied up with strings
(노끈 묶인 갈색 소포 꾸러미)
These are a few of my favorite things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지)


-- 존 콜트레인의 'My Favorite Things' 중에서 --

예술이 본질적으로는 넋의 주술이며 한순간에 영혼의 깊숙한 곳으로 스며드는 기도라는 것을 증명한 작품으로, 그저 걸작이니 명반이니 압권이니 하는 말로는 불충분한, 그야말로 예술이 도달해야 할 진실한 경지 그 자체다. 

그러니 <A Love Supreme>을 들을 때는 모자를 벗고 듣는 예우를 해 달란다.  지하철이나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들을 때는 조심하란다. 갑자기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윤수의 블로그를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36세에 은퇴한 후, 전성기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50년간 은둔한 그레타 가르보, 그녀는 독신으로 두문불출하며 대중의 무책임한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지켰다. 단순한 삶이지만 그것이 50년이라면 쉽게 감행할 수 없는 경건한 경지가 아니겠느냐고 정윤수는 쓰고 있다. 절정에서 멈춰버림으로써 영원한 여배우로 살아남은 그레타 가르보, 무슨 삶이 그렇게 지독한가.

그런가하면 찰리 채플린, <라임라이트>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짠하다. 찰리 채플린은 이 영화 속 희극배우에게 자신의 삶을 새겨 넣는다.  영화의 주인공 칼베로는 커다란 무대에 서서 우스꽝스런 연기를 한다. 이윽고 막이 내리고, 언제나처럼 커튼콜을 위해 칼베로는 무대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런데 객석은 텅 비어 있다. 이 장면을 통해, 채플린은 자기 시대가 끝났음을 비통하게 승인한 것이라고 한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자이다. 구구한 변명이나 회한 대신 한 컷의 장면으로 남을 수 있는 그들의 언어가 부럽다. 나는 무엇으로 나를 표현할 것인가. 나는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매일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으로 그 탐색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정윤수가 또 한 번의 초월을 위해 이 실험적인 블로그를 시작했듯, 나 또한 내 자리에서 내 방식의 도전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365일이 지난 후 내게도 약간의 내공이 생길지도 모른다. 

 


‘You, the people have the power to make this life free and beautiful!’

(여러분은 인생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할 힘을 가졌습니다!)


-- 찰리 채플린, 영화 '위대한 독재자' 중에서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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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단지박사

    잘 보구 갑니다 시간 되시면 제 카페도 들려 주세요 ※◇cafe.daum.net/pp]p8

    2009.02.28 10:51 [ ADDR : EDIT/ DEL : REPLY ]
    •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카페는 주소가 잘못되었다고 나오네요.

      2009.03.02 00:41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