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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한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 셰릴 자비스, 여성신문사 2004


저자는 아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스물 하나에 결혼해서 28년을 함께 살았어도 아직도 남편을 보면 가슴이 뛴다고 한다. 이 책의 후기에 저자가 남편에게 바치는 감사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알싸해졌다. 이토록 아내의 꿈을 믿어주고,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아내를 지지하며, 아내의 전적인 신뢰를 받는 남편이란 거의 환상적이지 않은가!


“내 남편 짐, 이 책이 사람들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어주고, 또 그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 끝도 없는 원고를 읽어주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시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이디어와 산책과 식사를 제공하고, 효과적인 시간 배정표를 만들어주면서 내 삶을 노출시키는 일이 결국 그의 삶을 노출하는 것임에도 단 한번의 불평도 하지 않은 사람, 오히려 자기 삶에서 부끄러웠던 순간들을 말해 주면서 책 속에 넣으라고 한 사람, 집중력을 흩뜨리지 않고 책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한없이 불안한 나를 지켜봐 준 사람.”


그런데, 이토록 사랑하는 남편과 가정이라 해도 때로 떠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이름 하여 결혼안식년! ‘나는 남편을 그리워할 필요가 있었다’는 저자의 행복한 투정이지만, 결혼생활에 하나의 변화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완벽하게 자율적이고 가정적인 남편과 함께 사는 저자의 투정은 이런 것이다. 아, 그 전에 남편은 이런 사람이다. 저자가 결혼 직후 그가 아끼는 테니스 셔츠를 망가뜨린 이후 주욱 집안의 세탁을 도맡아 했다. 19년 동안 학교 학부모 회의에 빠진 적이 없으며, 12년 동안 아이들 야구팀 후원을 도맡아 했다. 그는 자기 차는 물론 저자의 차까지 세차에 주유까지 완벽하게 관리한다. 그는 백수가 아니고 저술과 강의를 하는 심리학자이다.


하지만 배우자 한 쪽이 어떤 측면을 완벽하게 수행하면 할수록 다른 배우자는 그 측면에 관한 한 백치가 되어 간다. 저자 역시 자신이 셀프주유 조차 해 본 적이 없으며, 당연히 셀프주유를 겁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신경질적으로 소리 지른다.


“지금부터 내 차는 내가 관리할 거예요!”


대략 2년에 한 번씩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살아왔다고 하니, 거의 염장지르는 수준 아닌가! ^^  완벽한 가정의 모델 속에서 살고 있어도, 저자는 여자가 홀로 서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40, 50, 60의 나이에 자기 인생을 개혁시킬 수 있고 또 개혁시켜야만 하는 세상에서, 평생 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결혼을 유지하기란 점점 도전에 가까운 일이 되어간다.


자기 배우자가 연인도 되고 좋은 친구도 되고 함께 아이를 키우는 파트너겸 여가생활의 동반자 및 정신적인 지지자 역할까지 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하나의 관계 속에 너무 큰 심리적 부담감을 안겨준다. 기혼자의 절반이 이혼하는 상황에서 결혼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요구인 것 같다.”


결혼에 새로운 내러티브narrative가 필요하다! 저자의 중간결론은 ‘결혼안식년’이다. 단 한번이라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없이 지속적으로 쏟아부었던 것과 똑같은 에너지와 시간과 돈과 보살핌을 자기 자신에게 쏟아 보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독립성과 창조력을 깨닫고 거듭나자는 것이다.


저자는 결혼 기간 중에 ‘자신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있는 55명의 여자들을 인터뷰했다. 몇 세기 전의 사례가 인용되기도 한다. 그 중에 가장 감동적인 사례는 이것이다.


클레어 페제스는 5차례에 걸쳐 에스키모인과 생활한 경험을 그림을 그리고 글로 써서 “노아택의 사람들”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28년 후에 고전으로 인정받아, 에스키모 고등학생들에게 교재로 채택되었다.


“페어뱅크스로 돌아와 나는 석 달 동안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고 체중이 4,5킬로그램이나 빠졌다. 그림 그리기는 성스런 행위가 되었다. 나는 목적이 있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저 환경이 내 나날을 마음대로 조종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길을 나 스스로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가지고 등장했고 예술적으로 새롭게 탄생했으며 나만의 목소리를 찾았다. 내 안에 막혀 있던 온갖 불길이 화염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단 한 번의 머뭇거림도 없이 확신에 차서 그림을 그렸다.”


모든 사례가 이렇게 극적인 것은 아니다. 겨우 두 달 간 집을 떠나 있겠다는 말을 꺼내기 위해 여자들이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얼마나 시시콜콜한 일까지 다 준비해놓고 떠나는지가 다 나와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아주 구체적으로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허하거나 관념적인 대목이 한 군데도 없다. 가령 떠나고자 마음먹었을 때 몰려오는 두려움은 이렇게 세 가지이다. 외도에 대한 두려움, 좋은 엄마 콤플렉스, 안전함에 대한 환상! 각각 소주제에 걸쳐 제목보다 더 실제적이고 심층적인 사례와 심리묘사가 출중하다.


그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드디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결심한 이후의 절차에 대해서도 섬세하기 그지없다. “안식휴가를 떠나기 위한 의식, 빈 자리로 인한 부담 덜어 주기” 처럼 실제적인 팁은 물론이고, “‘떠나기 적당한 때’란 없다”로 끝까지 남아있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라고 용기를 주는 식이다.


이처럼 결혼안식년을 갖고 돌아온 주부가 얻는 것은 많다. 헤어져 있는 동안 의외의 독립성을 깨달음으로써 의외의 의존성을 깨달은 남편과 행복한 균형에 도달한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성숙함으로써 주변 사람들까지 풍요롭게 만든 것이다. 이 여행이 빌미가 되어 헤어지게 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때의 헤어짐은 역경이 아니라 성장이다. 모든 성장은 변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여행을 통해 많은 여자들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나고 보니 쉰 살이더라~~ 하는 말이 성립하는 것은, 중년에 이르면 여성의 주체성과 창조성에 대한 욕구가 극대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융의 말처럼, 우리는 인생의 오후에도 인생의 아침 시간표를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이제 더 이상 뭔가 외부적인 일이 일어나 우리의 삶을 바꿔주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우리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하며 자신의 실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만 한다.

여성도 다른 사람에게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주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구해야 한다. 내가 한 사람으로서 온전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이제까지 여자는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찔끔찔끔 흘려주느라, 주전자 가장자리까지 물이 가득찰 수 있는 시간과 고요와 평화를 허락받지 못했다. 이제 당신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찾아 떠날 때이다. 당신이 진정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나라. 떠나기 좋은 때란 없다. 당신의 마음에 절실함이 가득찼을 때, 기회가 손짓할 때 그 때가 적기이다. 갖가지 장애물이 당신을 가로막을 때에는 저자의 아들이 쓴 편지를 직접 받은 것처럼 내면화하라. 책은 그러라고 있는 것이다. ^^


“엄마 내 걱정은 하실 필요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은 그냥 엄마 자신만을 걱정하시면 됩니다. 엄마는 엄마의 미래를 계획하는 설계사이고, 지금 막 엄마의 꿈을 살기 시작했으니까요. 이 시간은 엄마가 벌은 것이고, 또 받아 마땅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제 인생에 영원히 큰 자국을 남길 결정을 막 실천에 옮기려 할 때 친한 친구가 저한 테 해준 충고를 전해드리려고 해요.

끝까지 가세요. 엄마. 엄마가 해야만 하고, 할 필요가 있고, 하고 싶고, 하기를 희망하는 것을 모두 해 버리세요. 어떤 욕망도 채우지 못한 채 마음 속에 남겨두지 마세요. 이건 어머니의 시간이니까요. 엄마 사랑해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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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퀴리

    온전히 자기자신을 홀로 세우는 것!
    그것이, 이제 더욱 길어지고 있는 인생을 살아내는 최선의 길인텐데요...
    절실함이 가득, 기회가 손짓하는 걸 지나친 적이 있다는 후회..
    하지만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게일 맥미킨의 얘기를 떠올려 봅니다.
    오늘도 환~한 하루 되세요.

    2009.01.13 10:27 [ ADDR : EDIT/ DEL : REPLY ]
    • 이 책에도 73세가 된 지금까지 25권의 책을 펴낸 현역 교육상담가가 나오는데요,
      그녀 역시 40대초 까지만 해도 그다지 독립적이지도 창조적이지도 않았다네요.

      혼자 있고 싶어하는 남편의 순례여행에 충격을 받고
      자신도 혼자 여행을 떠남으로써 숨겨진 자아를 찾는 거지요.
      요즘 읽는 책들이 마구 아우성치면서 내게 뭔가를 들려주려 애쓰는 것 같아요.
      여기에 푸른 퀴리님의 진솔한 댓글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음같군요. ^^

      2009.01.13 12:00 신고 [ ADDR : EDIT/ DEL ]
  2. 저도, 저희어머니가 홀로 시간을 가지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 종종 하는데...!!
    마음만큼 그러지 못해서 참 죄송하답니다.
    아직 저는 어머니도, 아내도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 떠안고 가야할 짐(?)을 탓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자유로워 지는게 가장이겠지요???

    혼자있는 자유로움에, 함께있던 행복감이 배가 될수 있다면, 꼭 해볼만한 모험인듯 합니다.
    미탄님, 날이 추운데..감기 조심하시고욤!!!

    2009.01.13 19: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블로깅에 대한 명이님의 창의적 돌파력을 볼 때, 명이님은 어느 상황에 놓인다 해도, '내 식으로' 상황을 돌파해 나갈 것 같아요. 나이가 얼마이든 우리 여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보이는 '바로 그것!'을 가졌으니, 다 가진 셈이지요.

      2009.01.14 08:16 [ ADDR : EDIT/ DEL ]
  3. 제비꽃

    '깨어나고 보니 쉰 살이더라~~ '
    ㅎㅎㅎ 아직 깨어났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제 얘기 같네요.^^

    모두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산다는 명제가 떠오릅니다.
    자상한 남편, 엄마에게 지지를 다 하는 아들, 자신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늦으막한 이 책 저자, 모두 자신을 위한 항해를 하는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사람들.
    저자의 가족이 특별한 것 같지만, 사실 그냥 기본에 충실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요.
    너무 상식에 벗어 난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가족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겠지요.
    진짜 특별한 건, 이 이야기를 책에 담아서 세상에 내보낸 저자의 용기와 실제적 노력이 와 닿네요. 안주할 수 있는 환경에서도 머물러 고여있지 않았던 그녀, 자신의 주관적 삶을 담은 미스토리를 객관화시켜서 책으로 낳았다는 것, 그것은 영웅을 낳은 산모와 비교하고 싶네요.......에고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

    2009.01.14 02:5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정상이 너무 희귀해져서 귀한 환상이 되었다는 말에 동감해요. 그래도 참 부럽습디다. ^^

      깨어나 보니 쉰 살인 것은 제비꽃님과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들 대다수가 그렇다고 하네요. 민화나 신화의 상징성을 풀어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연구결과인 거지요. 100년 동안 '잠'으로 상징되는 모색과 웅크림과 순종과 체험을 통해, 이제 중년이 주는 담대함과 절실함으로 진짜 인생을 설계할 때가 되었다는 비유가 나는 참 좋던데요.

      2009.01.14 08:26 [ ADDR : EDIT/ DEL ]
  4. 28년을 함께 살았어도 아직도 남편~~
    이건 저자보다...남편이 대단하단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남자라서?? ㅎㅎㅎ...
    저도 옆지기에게 여행을 보내주는 남편이 되어야 겠어요

    2009.01.16 16: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3개월간 저술여행을 떠난 저자가,
      남편에게 다니러 오라고 말하자,
      "당신이 어렵게 떠난 여행인데, 내가 방문하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며 남편이 방문하질 않더라구요.
      정말 부러운 부부상이었어요.

      2009.01.17 09:03 [ ADDR : EDIT/ DEL ]
  5. 음. 이것도 참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어제 신랑과 둘이 '언제쯤 똑순이를 어린이집에 보낼까'를 의논했어요.
    그 기한을 정해놓는 것이 직장을 다니지 않고있는 저에게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똑순이를 온전히 제가 돌보는 기간동안.. 아이에게도 충실하고, 또 그 이후의 제 일을 준비하는데도 맘과 시간을 잘 써야겠다.. 다시 한번 맘을 다잡았는데-
    과연 잘 될까요?^^
    잘 해야만 하겠지요!
    우리 똑순이도 저자의 아들같이 멋진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2009.01.16 20: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주위에 두 돌된 남자아기가 있어서 자주 보는데요.
      자기 주관이 생겨서 고집을 피우는 모습,
      하루가 다르게 말문이 터지는 모습이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두 돌만 되어도 믿을만한 어린이집에
      한 나절씩 보내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고 봐요.
      조금 늦추어서 30개월이나, 36개월이 되면
      더 마음이 놓이구요.
      시간도 더 늘릴 수도 있구요.
      아직 어린 애를 엄마 자기실현 하겠다고 일찍 떼어놓는
      것이 아닌가 죄책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엄마가 줄 수 있는 것은 언제고 주는 것이니까,
      또래집단과 교사 등 '다른 세상'에 접하게 하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봐요.

      앞날을 큰 그림으로 그리고 계획해 보는 것이,
      오늘을 더 의미있게 할테니,
      잘 생각하신 것 같아요. ^^

      2009.01.17 09:14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