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책2016. 4. 15. 14:36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재미있게 살 수는 없을까?”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10인의 10가지 로드맵!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 진정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열 명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를 담은 책. 16년간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다가 돌연 사직하고 우동집을 차린 외교관, 27년간 월급생활자로 살다가 쉰다섯에 오랫동안 꿈꿔왔던 화가의 길로 들어선 직장인, 어느 날 갑자기 서울 생활이 재미없어서 현금 70만 원 들고 전기도 없는 강원도 산골로 들어간 목공예가, 공기업에 다니다가 도시에서 벌치는 도시양봉가로 변신한 사회적 기업가, 전통주와 사랑에 빠져 양조장을 차린 변호사,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를 직접 지은 30대 서울 여자 등이 경험한 치열했던 터닝 포인프와 인생관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 책에 나오는 이들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에만 집중했고,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길을 선택했다. 그것을 위해 고액 연봉이나 명예, 안정감, 주변의 기대,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 따위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조직의 부속품이 아니라 직접 판단하고 움직이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작은 불편을 감수하고 성과보다 과정을 즐기며, 자기 인생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나이도 직업도 처한 조건도 각기 다르지만 이들은 한결같이“주도적으로 생동감 있게 진짜 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 책은 한발 앞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간 이들이 전해주는 10가지 로드맵을 제시한다. 이들이 들려주는 내밀한 이야기에서 성장이 멈춘 시대에 행복하게 살기 위한 삶의 자세,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내 안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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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프롤로그/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성공한 것이다

01 어반비즈서울 박진_ 공기업 회사원, 도시에서 벌치는 양봉가 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어떻게든 답은 나온다”

02 서촌 옥상화가 김미경_ 쉰다섯 직장인, 전업 화가로 변신하다
“가난하게 살기로 하니 행복이 찾아왔어요”

03 나무 박사 고규홍_ 기자 그만두고 나무에 빠지다
“직접 부딪쳐봐야 나 자신을 알 수 있어요”

04 목부에 뜰 이태인_ 정선 산골에 자리 잡은 목공예가
“이 무자비한 세상에서 존엄하게 산다는 것”

05 여행 작가 윤정인_ 공기업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나다
“힘들수록 좋아요. 그만큼 내가 더 성장하는 거니까”

06 농부 김계수_ 교사 그만두고 농사꾼이 되다
“내 몸이 원하는 것이 진짜!”

07 우동명가 기리야마 신상목_ 외교관, 우동집 사장님 되다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인생의 본질을 고민해보았지요”

08 상담심리사 김영숙_ 16년차 프로그래머, 상담심리사로 변신하다
“이 길이 내 길이다 싶으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09 술공방 예술 정회철_ 전통주를 사랑한 변호사
“취미가 직업이 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어요”

10 인제주 황지현_ 30대 서울 여자,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셀프 건축하다
“언제까지 하고 싶은 일을 미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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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최초의 독자가 되어 가제본된 책을 받아들었다. 나를 매혹시킨 것은 그들의 성공담이 아니었다. 사진 속 그들의 눈이었다. 어떤 사진가도 이런 눈빛을 연출할 수는 없어! 그 눈빛은 ‘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어’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책에 나오는 이들을 유복한 취미가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깊이 있는 인터뷰를 읽어내려 가면서 그 시각은 이내 교정된다. 그리하여 집착에 가까운 집중력과 일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눈치 채게 된다. 좋아서 하는 일, 그것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이기적 애정일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부터 인생 2막은 준비되는 것일 테다.
책을 덮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도 세 번째 일을 준비해야겠다는 충동!
- 박찬일(잡지 기자에서 셰프가 된 이)



-- yes24 책소개에서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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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쓰기과정 8기와 함께 한 공저가 어제 출간되었다.
    코드맞는 출판사를 만나고, 8기에 필력있는 분들이 많아
    6개월 과정이 끝나는 동시에 책이 나와서 참 좋다.

    2016.04.15 14: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좋은 책/책2012. 2. 2. 23:31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그녀는 잠자리의 눈을 가졌다. 만 개 이상으로 이루어진 겹눈을 지닌 잠자리처럼, 그녀는 무엇 하나를 보아도 내면과 외면, 과거와 미래까지 증폭시켜서 본다.  그러므로 그녀가 인생의 초록, 정념을 이기지 못하는 열일곱 살과 눈먼 팔십노인을 오버랩시킨 구상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늙는다는 건 어떤 기분이니?” 구성작가의 질문에 “니들 눈엔 우리가 다 늙은 사람으로 보이지? 우리 눈엔 너희가 다 늙을 사람으로 보인다!” 라고 대답해주라는 장씨 할아버지의 말처럼, 너무나 당연하되 대부분의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때는 싯다르타왕자가 생각나기도 한다.


초록에서 주황을 보며, 봄이 오면 가을이 올 것을 아는 사람은 구도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곧 가을이 올 테니 봄의 미망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해탈로 인도하고 싶을 것이다. 싯다르타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그녀는 작가가 되어, 이제 곧 가을이 와 온산이 주황으로 물들 것이니 초록을 맘껏 구가하라고 꼬드긴다. 열 일곱 살에 일을 저질러 아이를 낳은 부모와,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희귀병인 조로증에 걸려 열 일곱에 팔십노인의 신체를 하고 있다는 설정은 초록의 한 복판, 아름다움의 절정에 있기에 오히려 그런 줄을 모르는 젊음에게 청춘예찬을 설파하기 위한 극적인 설정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 흔치않은 설정을 살아 본 사람처럼 생생하고 능청맞게 그려낸다. 어떻게 80년생이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열일곱과 팔십, 소녀와 소년, 성공한 사람과 사회저변층 모두가 작가의 분신인 양 천연덕스러운 묘사에 기가 막힌다.


그 산들은 너무 높아서, 고도별로 다른 꽃이 핀다고.

같은 시간, 한 공간 안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식물들이 공존한다고 말이야.

그곳에는 사계가 함께 있어. 여름에도 가을이 있고, 가을에도 봄이 있대. 무슨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말이야.

그래서 내 멋대로 그렇게 정했어.

남들은 너를 ‘조로’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냥 너를 산이라고 부르겠다고.


누렇게 뜬 얼굴로 바퀴 달린 침대에 누워 택배처럼 어디론가 실려가는 할머니, 바나나 우유, 체리주스, 복숭아에이드 빛깔의 소변들,


아버지는 인생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란 단어에서 어쩐지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건 알았다. 그건 단순히 피로나 권력, 또는 타락의 냄새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그럴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그 입구에 서고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어른이란 말 속에서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그것은 다름아닌 외로움의 냄새였다.


시골사람들의 관계에는 애정이란 말이 생기기 전의 애정, 관심이란 말이 생기기 전의 관심 같은 게 건강하게 스며 있었다.


나는 내가 너무 괜찮아 보여서도, 지나치게 혐오감을 줘서도 안된단 걸 알았다. 사람들이 직시할 수 있을 정도의 불행, 기부프로그램을 움직이는 건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족이 임계점을 넘으면 만족이 아니라 감탄이 되니까. ‘아!’ 하는 순간의 탄성이 만들어내는 반향을 타고, 그 반향이 일으키는 가을 물결을 타고, 그 애가 내게 쓸려오길 바랐다.


그애 편지를 읽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많은 말을 익혔는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은 이미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새삼 새 말이 배우고 싶다고.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정념은 민폐야. 어디서든 항상 문제를 일으키지


만 개의 겹눈에 비친 모든 잔상에 이름을 지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혹여라도 그녀가 언어를 부리지 못했다면, 세상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부적응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사물과 사람의 이면을 봐 버리는 그녀, 다행히도 그녀는 ‘이야기의 편’이 되어, 결코 마르지 않는 샘물에 목을 축였고, 젊디젊은 그녀가 들려주는 노련한 이야기가 나는 마냥 기껍다.


위에 옮겨 적은 구절들처럼, 깊숙한 통찰에 맞춤한 표현도 다 좋지만, 나는 이 책을 각별하게 ‘노화’에 대한 문제제기로 읽었다. 앞서 장씨 할아버지의 말에서도 그랬지만, 주인공이 우연히 병원에서 들은 대화를 옮기는 부분에서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귀는 건 아니고, 한 여학생이 오랫동안 나이든 선생님을 존경하고 짝사랑했단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술에 취해 우연찮게 한 손으로 그분 뺨을 만졌는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너무 흐물흐물해서  화들짝 놀랐다는 것. 그 날 그 여학생은 늙음에 데인 것처럼 놀랐고, 그후로 더 이상 그 선생님이 남자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 이 부분에서 작가가 주인공의 입을 빌어 하는 말은, 한 발 앞서 늙은 이들이 절감하는 세상의 통념이라 하겠다.


그런데 저는 잘 이해가 안돼요. 나이 든 사람 피부에 탄력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머리가 세는 것도 이가 빠지고 눈이 나빠지고 주름이 느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다면서, 그 짧은 접촉 한번에, 마치 늙음이 자기에게 옮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정색하고 돌아설 정도면, 그 여자가 상상한 늙음이란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


늙음에 대한 통념에 일침을 놓는가 하면 이렇게 고즈넉한 지혜의 전수도 있다. 아직은 제대로 겪어보지 않았을 단계를 어쩌면 이렇게 능청맞게 표현할 수 있는지!


“나이란 건 말이다, 진짜 한번 제대로 먹어봐야 느껴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거 같아. 내 나이쯤 살다보면...... 음, 세월이 내 몸에서 기름기 쭉 빼가고 겨우 한줌, 진짜 요만큼, 깨달음이라는 걸 주는데 말이다, 그게 또 대단한 게 아니에요. 가만 봄 내가 이미 한번 들어봤거나 익히 알던 말들이고, 죄다.”

“그럼 저도 지금 아는 것을 나중에 한번 더 알게 돼요?”

“그럼.”

“근데 그게 달라요?”

“당연하지.”


그리곤 주인공의 꿈속에서 보여주는, 고령사회의 암울한 전망. 이 장면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장면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사실이나 개념을 형상화하는 이 도저한 기술.


점프는 몇 번이고 반복됐다. 나는 퉁-- 하고 날아오른 뒤 개운하게 웃고, 다시 퉁-- 하고 뛰어오르며 만세를 불렀다. 누가 그만하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라도 그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구 주위로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트램펄린 주위를 둥글게 에워싼 채 입을 벌리고 나를 올려다 봤다. 그런데 하나같이 이가 없고 눈동자가 하얬다. 나는 총에 맞은 새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하여 저자가 끝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일 꺼라고 짐작한다. ‘조로증’이 아니라해도 우리 모두 언젠가는 늙어갈 운명이 아니던가.


“우리는 살아가는 중이라고. 우리는 죽어가는 중이라고. 끊임없이, 하루하루, 살고 죽는 중이라고. ”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지만, 그렇기에 살아있는 하루하루가 절대의 의미를 가진다.


세상은 참...... 살아 있는 것투성이구나, 그지?


이 책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견할 이 엄청난 사실 앞에, 기적이 따로 없는 찬란한  생명 앞에 그토록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는, 심지어 파괴와 폭력을 일삼는 중생에게 주는 소설경전이다. 말씀이다. 태아였던 시절까지 기억하는 저자의 신공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었다. 저자가 공들여 숨겨놓은 메시지가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주오래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만난 그런 박자를, 누군가와 온전하게 합쳐지는 느낌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비로소 알아낸 기분이었다. 그건 누군가를 힘껏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였다.


이해라는 말, 예전에는 나도 참 싫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먼 곳에서 건네주는 따뜻한 악수가 먹먹했다. 터무니없단 걸 알면서도, 또 번번이 저항하면서도, 우리는 이해라는 단어의 모서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인간은 이렇게 이해를 바라는 존재로 태어나버리게 된 걸까? 그리고 왜 그토록 자기가 느낀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는 걸까?


이것은 죽어가는 주인공이 부모에게 선물로 주려고 쓴 글의 말미에서 다시 확인된다. 열 일곱 살의 부모가 만나는 장면을 숲 속에 배치하여,  태고의 아담과 이브로부터 전해 내려 온 생명의 기운을 강조하는 저자의 능력에 경탄을 보낸다. 마치 랩을 하듯 신명나게 주워 섬기는 대목에 홀린듯 붙박힌다. 그것은 청춘, 그것은 생명, 그것은 삶.


하늘은 높고, 매미의 매끈한 눈동자 위로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뭉게구름이 지나갔다. 산이 꾸는 꿈속에서, 매미들은 소리 죽여 노래했다. 그때 우리는 그걸 원했어. 그때 우리는 그게 필요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했어. 그때 우린 그걸 한번 더 했어. 그때 우린 그걸 계속했어. 그리고 우리는 그게 몹시,

‘좋았어.’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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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책2012. 1. 27. 13:24

빌 루어바흐/크리스틴 케클러 지음, 내 삶의 글쓰기, 한스미디어, 2011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의 자서전 즉 회고록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글쓰기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우리 모두는 내게 들어 온 직간접적인 기억 한 토막을 다른 것과 연결하거나 즐거운 거짓말을 섞어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회고록의 문학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모든 기억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쉬지 않고 재구성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대도 여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회고록은 신문기사가 아니다. ... 내가 볼 때 회고록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문학성이다. 단순히 사실성을 지키기 위해 급급해하는 것보다는 드라마의 필수 요소부터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다시 말해 첫째는 문학성, 둘째는 사실성이다.

기억은 불완전하다. 그것이 회고록의 기본 전제다.

글에 미학적 수사학적 아름다움을 덧대려 한다면 진실만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창조적 논픽션이라는 거대한 벌판’을 아름다운 마을로 꾸며 놓았는데, 나는 이 곳에서 회고록 뿐만 아니라, 그저 신변잡기를 쓰던 사람이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세심한 조언을 모두 얻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6년, 내게는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그것은 단순하고 검박한 기술記述을 넘어 단단하고 풍요로운 은유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고, 누구나 쓰는 표현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들을 문학에서 배워오기로  마음먹었는데, 바로 이 책이 오랜 시간을 들여 내가 발굴했어야 했을 것들을 미리 정리해 놓은 것이다. --더 탐구할 것이 남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의 역할은 독자의 마음속에 꿈을 불어넣는 것이다. 꿈의 효과가 강력하려면 그 꿈은 우선 생생하고 연속적이어야 할 것이다.

독자는 재판관이 아니다. 독자들은 그저 믿고 싶어 한다. 그러니 작가가 굳이 그들을 흔들어 깨운 뒤 믿으라고 말해 줄 필요는 없다. 독자가 꿈을 꾼다면 그것이 그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은유는 우리가 중고등학생 때 배운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더 큰 개념이다.

자크 데리다의 말에 따르면 모든 단어가 은유적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은유metaphor는 실어 나른다는 뜻이었다. 즉 우리는 한 사물이나 유사체에서 다른 사물로 의미를 실어 나르는 것이다.

은유가 솜씨있게 잘 가미되면 의미의 층위는 한층 더 두터워진다. 당신이 그 미묘한 층위를 마음껏 조종할 수 있다면, 독자는 뚜렷한 이유는 알지 못한 채 당신의 글을 더 즐겁게 읽을 것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내가 혹한, ‘장면만들기’나 ‘은유’에 대한 것들이 저자만의 노하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원칙만 나열하거나 감질나게 조금 보여주고 마는 대부분의 책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궁궐 터는 이 곳에서 십리를 더 간 곳에 있다’는 ‘왕십리’의 유래처럼 그는 ‘십리’를 더 간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좀 더 심도있고 분명한 지침을 주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좋은 문장이 갖춰야 할 요건에 대해 이렇게 포괄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은 처음이다. 저자의 관점을 응용하여 두고두고 써 먹을 것이 생겨서 무진장 기쁘다.


아름다움을 더하는 모든 것들(명료성, 운동감, 밀도, 리듬, 정확성, 질감, 긴박감)을 만들어내는 전략은 작가 스스로 찾아야한다.

명료성: 명료하지 않은 글은 아무것도 아니다. 일부러 불완전한 문장을 썼다면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운동감: 산문은 상어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산문은 관계다. 자라나지 않으면 질식해 버린다. 산문은 섹스다. 움직여야 더 즐겁다. 운동감이란 글을 읽으면서 어딘가로 가는 것이다. 당신의 글에 운동감이 드러나면 독자도 따라 움직인다. 어떤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뜻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글 전체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때는 글이 ‘나’라는 댐에 갇힌 채 괴어 있는 것이다.

밀도: 문장은 지갑과 같다. 크기도 다양할뿐더러 그 안에 적은 양도, 많은 양도 담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의미는 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웬만하면 많을수록 좋다.

리듬: 어디서나 그렇지만 핵심은 다양성이다. 초보 작가들은 대부분 단 한 가지 리듬에만 의지하거나 아예 리듬 자체를 쓰지 않는다. 문법에 맞기만 하다면 단어들이 있어야 할 곳에 알아서 자리 잡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하지만 리듬도 목소리에 포함된다. 리듬은 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귀에도 들리는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정확성: 정확성은 곧 솔직함이다. 정확하려면 자기기만은 용납되지 않는다. 타인을 기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확성을 기한다는 것은 글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안다는 것이다. 뛰어난 의사처럼 언제 어디를 잘라내야 하는지, 어디를 봉합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이다. 정확성을 기한다는 것은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는 것이다. 시야가 정확해야 결과가 명료해지고, 그로써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질감: 글에서 질감은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며 만나는 산악지대와 같다. 봉우리와 계곡, 울퉁불퉁한 곳과 반반한 곳, 웅장함과 자연스러움이 뒤섞여 각양각색의 기쁨을 준다. 쉬어갈 곳, 헐떡거릴 곳, 힘겹게 가는 곳, 수월히 가는 곳, 다양한 소리들, 수백 그루의 나무, 갖가지 냄새, 호수에서는 만나지 못할 무수한 감정들, 뒹굴며 내려가던 언덕, 무수히 부딪친 얼음조각, 내리막길을 요란하게 질주해 가다가 만난 막다른 길에서 내 앞을 가로막고 섰던 나의 커다란 개 윌리.


절박감: 뛰어난 글에는 필연성이 있다. 이 글은 써야만 한다는 그것도 이렇게 써야만 한다는 필연성이 있다. 그런 글에는 필요 없는 부분이란 없다. 횡설수설하는 부분조차 필수적인 것이 된다. 글에 다급함이 묻어난다. 아이디어는 요긴하고, 사건은 중대하며, 사랑은 살아 숨 쉰다.


글을 전개하는 방식이 살짝 산만해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것만 참고 읽어내려 가면 익히 알던 것도 다시 벼려주어, 난생 처음 글쓰기를 하는 사람처럼 설레고 흥분되는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 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저자도 다 겪은 양 정확하게 묘사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촉구하기 때문이다. 


글은 가만히 앉아서 쓰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그리 어려운 걸까? 그것은 바로 당신의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누구나 글쓰기의 달인이 되고 싶다면서 지름길부터 찾으려 한다. 하지만 지름길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눈앞에 있는 길이 바로 지름길이다. 자신 안에서 어떤 거부감이 일든, 이를 세심히 들여다보고 극복하는 것이 작가로 발돋움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다. 그저 군말 없이 연습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나 역시 똑같은 연습만 반복하면서 규칙만 줄줄이 외우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습을 하다가 글감을 발견하거나 기억 창고의 문을 열게 되었다면, 연습을 하면서 감정의 진솔한 뿌리를 보고 인간의 삶과 정신을 전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었다면, 연습의 효과는 어마어마해 진다. 처음에는 고만고만한 연습에 불과해 보이던 것들이 결국에는 글의 단단한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한 소소한 과제를 일일이 해 보고 싶을 정도로, 알맹이가 꽉 찬 책이다. 이 책은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얼마나 갈 길이 먼 지 다시 한 번 깨우쳐 주고, 자세를 정비하게 해 주었으며, 나의 다음 책들이 어떻게 깊어져야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다음 구절로 등불을 삼고 터벅터벅 걸어가야겠다. 


초심자에게는 무수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에게는 가능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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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책2011. 6. 5. 09:40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2010년 1월 15일 생애 처음으로 ‘내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13년 동안이나 보습학원을 운영하느라 별별 프로그램을 다 해 보았는데,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내 프로그램’... 하고 말할 때마다 어딘지 간질간질하면서도 뿌듯하고, 묵직한 책임감이 드는 것이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 강좌에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조금 거창한 듯해도 글쓰기에는 그처럼 삶을 뒤집어버리는 힘이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속속들이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를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고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글쓰기를 하면 나의 지리멸렬한 과거도 다 쓸모가 있기 때문에 헛살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생긴다. 글쓰기 안에서 나의 산만한 기질과 경험이 하나로 통합되어, 더욱더 잘 살고 싶어진다.  늦게 시작했어도 계속해서 책을 쓸 것이며,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여 좀 더 활발하게 사회참여도 하고 싶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최고의 나’를 만났고, 당연히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강력한 글쓰기의 힘을 전파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는 나에게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완벽한 교과서다.


워낙 개성이 있어서 호오가 극심하게 갈리는 편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 책은 상당히 실용적이다.  글쓰기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나와 있다. 글쓰는 사람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과 훈련에 임하는 자세, 글감을 잡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 글쓰기에 유용한 세부적인 지침들, 슬럼프에 대처하기, 심지어 워크샵을 이끌어가는 방법론까지 시시콜콜 다 나와 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해보자면 ‘소문 활용하기’가 재미있었다.   주변사람들에게 최근에 들은, 가장 재미있는 소문에 대해 들려달라고 청해 보란다. 딱히 생각나는게 없다면 꾸며서라도 말해보라고.  아주 간단하면서도 기발한 팁이 아닌가! 그녀의 말처럼  소문이란  무엇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무엇이 지루하게 만드는지를 알아차리고, 인생의 단면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핵심경로였던 것이다.  이야기꾼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핵심적인 역량을 거저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널려 있었던 것을 생각하니 신기하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일상에 묻혀있는 방법론을 더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에 달뜬다.


이처럼 실용적인 팁들이 곳곳에 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신들린듯한’ 취급을 받는 것은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저자의 ‘직관적인 글쓰기’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아마 그녀는 글을 통해 새로 태어난 것 같다. 나의 전 존재를 글쓰기에 투영함으로써 글쓰기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전수받아 삶을 살아가는 첫 번 째 지침으로 만들어버린 사람!  무엇이든 한 가지 분야에 통달하면 일정한 수준의 인식에 도달하듯이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좋은 삶에 눈을 뜬 것이고, 자신의 감격이 너무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이다. 글쓰기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고, 글쓰기를 통해 ‘한 소식’ 깨달은 자만이 줄 수 있는 분명하고 아름다운 아포리즘에 취할 정도이다. 마침내 그녀가 터뜨리는 일성을 보라!


“우리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동시에 신화적이다.”


저자의 글쓰기 방법론은 ‘나’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든 질문과 해답이 내 안에 있는 것이고,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   이처럼 확고한 자기확신이 있으니 나를 섣부른 경계 안에 가둘 이유가 없다.  사고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가능한 모든 경험을 해 볼 것을 그녀는 강력하게 선동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볼품없는 쓰레기 같은 글을 쓸 권리”가 있다는 선언은 글쓰기에 첫째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형편없을지 몰라도 나의 느낌에 집중하여 글을 생산하는 일은 최고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호응을 얻거나 세상의 기회를 얻는 일은 그 다음 일이다. 글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나의 시선, 나의 감각, 나의 열정이 있다! 여기 이런 내가 있다는 자기발견을 넘어 내가 나인 것에 대한 벅찬 환희에서 나만의 글이 나온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기중심성이 유연한 실험정신을 만난다면 이미 그 사람은 작가가 아닐까? 그런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삶에서도 유일한 의미를 이끌어내는가 하면 아예  자신의 삶을 신화로 만들어 버린다. 마침내 그녀의 스승이 말하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이 책은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 글쓰기를 어지간히 해 왔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사람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글이 막힐 때마다 읽어보면 다시 한 번 첫마음을 유지하게 해 주는 청량제요, 에너지창고 같은 책이다.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첫번째 필독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나탈리, 선이란 글을 쓰는 것과 똑같아요. 뭣하러 굳이 명상 모임에 찾아오는겁니까? 당신은 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지 않죠? 만약 당신이 글쓰기 안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당신을 필요한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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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게도 몇 년 간격을 두고 아무 데나 열어도 좋은 책이에요 ^^
    “우리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동시에 신화적이다.”
    지구 곳곳을 여행하고, 여러 직업을 섭렵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사람들도
    결국 저 메시지를 알려주더라구요.
    집에 가면 오랜만에 다시 저 책을 읽어 보아야겠어요!
    미탄님, 오늘 하루도 어제와 다르게 신선하게 보내세요 ^ㅅ^

    2011.06.09 11:10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삶에는 반드시 직접 겪어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모든 것을 직접경험으로 풀어야 한다면
      그 미욱함을 이겨낼 장사가 없겠지요.
      마음으로 책읽는 사람은 삶을 한 번 살아본 것 처럼
      받아들일 수 있지요.
      더욱 많이 읽고 쓰면서 삶을 지혜롭게 장악하기 바래요!

      2011.06.10 09:27 [ ADDR : EDIT/ DEL ]

좋은 책/책2011. 3. 21. 18:28

 
정덕현, 숨은 마흔찾기, 엘도라도, 2011


이렇게 글을 편하게 쓰는 사람도 흔치 않다. 어찌나 술술 읽히는지 앉은 자리에서 번쩍 읽어치웠다. 이런 사람은 생각하는 것을 토해내기만 해도 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어림도 없다. 그역시 조급증에 빠진 자신을 1년이나 다독거려 책다운 것을 만들어준 편집자에게 감사를 건네고 있는 것. 그렇게 보면 이 편안함은 남들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고친 노고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의 서두는 독보적이다. “여기 어려운 거 하나두 없어유, 조금도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다가와도 돼유~ ” 읽는 이를 즉시 무장해제시킨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이걸 마셔 말어, 봉지커피를 꺼내들 때마다 고민한다.

“어 저 아파트 아직도 그대로네?”

고등학교 동창들은 1년에 딱 한 번 만난다. 그것도 망년회에서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를 기억하는가.

“연기는 아직 멀었네.” <아이리스>에 등장하는 보기만 해도기분이 좋아지는 김태희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내게 아내가 툭 쏘아댄다. “연기?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야. 김태흰대.


글의 문턱은 만만하고 본문도 편안하기 그지없지만 읽고나면 단단한 덩어리가 느껴진다. 이 저자, 국문과 출신으로 소설가를 꿈꾸었으며 사회활동에 꽤나 헌신했던듯하고, 직장편력도 좀 되는듯 싶더니 그게 다 글쓰기 내공으로 쌓였구나. 특히 일상의 몇 장면을 연결하여 의미를 이끌어내는 재주가 뛰어나다. 김태희 타령을 하는가 싶더니 몸짱아줌마로 넘어가, 그녀가 운동의 성별차이와 나이를 동시에 뛰어넘어 이 시대의 변화속도를 종과 횡으로 뛰어넘었다고 분석하는 식이다. 작은 잡지의 편집장 시절, 다른 사람들의 원고를 대신 써주던 역할을 침묵의 장기 ‘간’에 비유하는 솜씨는 절묘하다. 잡지는 거의 자기 손길로 써지고 다듬어진 것들이었지만 거기 자신의 존재감은 없었고, 그 때부터 그는 회사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끔 포털 메인에 뜨는 TV평을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의외로 첫 책은 ‘마흔’에 대한 것을 펴냈다. 그는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친구 태준이와 보험회사 소장으로 일하는 병수를 보며 이 책을 쓸 생각이 들었다고.


아마도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중년의 나이를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제 앞으로 몇 십 년을 지나면서 매년 한 번씩 있는 이 자리에서 한두 명씩 사라질 것이라는 기시감.

보험소장 병수, 회식하면서 한번씩 돌려줘야 실적이 오른다고 했다. 사교춤이 말야 사람관계하고 똑같아. 당겼다가 밀었다가를 흐름에 맞춰서 잘 해야 멋지게 돌아간다는 거지. 그거 잘 못하면 발 밟히기 십상이다

친구의 이른 죽음은 삶의 끝을 보게 만들었고, 남은 친구는 칼날같던 젊음에서 아득히 물러나 누구나 툭 차면 잘도 굴러가는 둥글디 둥근 공이 되어버렸지만 그의 어조는 결코 나른하지 않다. 마흔이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이별하며 살았던 청춘의 과잉’을 지나, ‘이상과 현실을 맞추며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삶을 위해 조율해온 서른’도 지나, ‘자신의 인생 전체가 가진 의미를 생각하는 준비된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문장 행간마다 이 시대의 문화비평, 대안적인 삶의 방식, 나눔과 공존의 가치관 같이 굵직한 내용이 배어 있다.



시간이 아닌 미션 중심으로 삶을 계획하면 시야 자체가 달라진다, 남자와 군대이야기는 트라우마와 프라이드 사이에 존재한다, 디지털은 감탄은 하게 하지만 감동은 없다, 디지털이 채워주지 못하는 아날로그 정서가 중년들만의 경쟁력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아날로그 정서를 즐기자, 다이어트의 문제는 그저 그 사람의 몸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 위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연관되어 있는 삶의 균형의 문제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삶의 균형을 맞춰나가려고 할 때 그것을 어떤 구호 같은 단기적 목표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우리의 몸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의 균형 잡힌 삶은 지구라는 존재가 현재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줄지도 모른다.



내가 속도감있는 문체에 사회학적인 분석이 들어간 글을 좋아하는구나 다시 한 번 확인할 정도로 신이 나서 읽었다.  정서과잉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활기찬 탐구심과 도전의식을 보여주고,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는 글이 참 좋다.


이 책은 대중적인 글쓰기의 전범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에서 뽑아내는 담론이 만만치않다. 또 이 책은 건강한 글을 쓰기위해서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해야 한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친구는 물론 동시대를 사는 인간에 대한 동지애가 풍부한, 튼튼한 자의식과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지닌 저자가 믿음직스럽다. 우리가 팔아야 할 것은 주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말이 새삼 다가 온다. 요즘 성장발달론에서 이론적으로 접한 ‘마흔’을 실제 사례에서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고보니 남자의 마흔에 대한 책은 제법 있는데 여자의 마흔에 대한 책은 거의 없다. 글통삶의 누군가 주제로 잡아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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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_+ 참, 혹시 이 책 안읽어보셨으면 추천이요~.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저: 김선주> 좋아하시는 종류의 책이지 싶어서요. ^^ /

    2011.03.22 08: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오잉? 연배상으로는 조금 일러 보이는데요?^^
      ㅎㅎ 내 취향까지 살펴주고 고마워요.
      메모는 벌써 해 놓고 아직 읽지않은 책이네요.

      2011.03.22 21:26 신고 [ ADDR : EDIT/ DEL ]

좋은 책/책2010. 12. 22. 04:11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던 프랑스가 틈을 비집고 다가온 적이 있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었을 때였다.  허구가 아닌 자전적 경험으로만 소설을 쓰는 작가로 유명한 그녀는 이 책에서, 유부남인 외국인 대사관직원 A와의 사랑을 지독하게 그려 놓았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 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의지와 욕망 그리고 지적 능력이 개입되어 있는 행동은 오로지 그 남자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문장은 건조할 정도로 간결한데 내용은 인간의 경험이 갈 수 있는 한계까지 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작가요 대학교수라는 직업은 둘째 치고 한 사람의 여자로만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탐닉적이고 솔직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중독에 빠져 끝까지 가고자 하는 열정은 무모했고, 반최면상태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명징하게 그려내는 솜씨는 비정했다. 얇은 책 속에 펼쳐놓은 욕망의 두께에 혀가 내둘러지는데, 그녀는 이같은 열정이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고 한다.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 하여 장면 하나 하나를 완성하고, 몇 달에 걸쳐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부분만 읽을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단순한 열정’은 출간된 지 6년 만에 그 책을 똑같이 따라 한 필립 빌랭의 ‘포옹’을 통해 다시 한 번 부각된다. 그는 대학신입생 시절에 편지를 통해 저명한 작가인 그녀와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33세 차이가 난다고 해도 어느 연인 못지 않게 격렬했던 5년간의 연애를 책으로 펴냈다. 이미 아니 에르노가 거침없이 표현해 둔 바 있는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 한 것이다. 거 참, 사람들 한 번 자유분방하네. 그들이 작가 중에서도 튀는 것일까, 아니면 프랑스에서는 그다지 별스럽지 않은 상황일까, 그들을 보며 난생처음 프랑스에 관심이 생겼었다. 


‘포옹’에서 필립은 ‘단순한 열정’의 A에게 심한 질투심을 드러내고 있다. 아니 에르노가 A를 사랑하는 방식 그대로 자신을 대하는 것에 멀미를 낸다. 그런데 그것은 살아있는 인물 A에 대한 것이 아니라 책 속의 인물에 대한 질투심이다. 그런가하면 수시로 ‘단순한 열정’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며 그 책과 자신의 상황을 오버랩시킨다. 필립은 처음부터 ‘단순한 열정’을 통해 아니 에르노를 사랑했으며,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은 A가 아니라 글쓰기였던 것이다.  필립이 A에게보다 아니 에르노가 작업하는 자세에 대해 더 극심한 질투를 느끼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녀는 오전 열 시면 어김없이 서재로 일하러 갔다. 그녀가 ‘글쓰러 간다’고 하지 않고 ‘일하러 간다’고 말하는 것이 ‘글쓰기가 쉬운 것, 하늘에서 떨어진 재능, 일순간의 영감이 아니라 온갖 수치와 괴로움을 바탕으로 성취되는 것이고, 아주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일상의 투쟁 뒤에야 글로 변모하는 노동의 일종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필립은 쓰고 있다.


이쯤 되면 이런 의심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들이 소중한 경험을 마무리하는 의식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의미있는 경험을 자초했다는 의심 말이다. 필립은 세 번째 소설까지도 자전적 경험에 기초함으로써 철저하게 아니 에르노를 답습하고 있다고 하거니와, 아니 에르노도 그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녀의 다른 책 ‘집착’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하지만 동거는 하기 싫은 애인이 떠난다고 한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이유가 새 여자 때문이라는 사실은 갑자기 생의 활기를 가져 온다. ‘집착’은 그 여자에 대한 질투심을 다룬 책이다. 아니 에르노는 스토킹에 가까울 정도로 그녀를 탐색하며, 아주 작은 단서도 그녀에 연관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갖가지 강박관념을 선보이고, 둘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오만가지 구상을 시도한다. 빵으로 사람형상을 만들어 핀을 꽂아가며 저주하는 ‘방자’ 까지 내려가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니 더 말하면 무엇하랴. 한 가지 감정에 대해 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훌륭한 텍스트가 될 정도로 반복되던 상념은 서서히 끝나간다. ‘단순한 열정’에서 욕망이라는 자산을 탕진했듯이, ‘집착’에서는 이 폭력적인 저주를 끝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가고, 지독한 탐닉도 가고 글쓰기만 남는다. 처음 한 두 번은 먼저 경험이 있고 나중에 글쓰기가 있었을지 몰라도, 한 번 이 궤적에 빠져들면 그 순서가 바뀌기도 하리라. 글쓰기를 위해 일을 만들고, 감정을 과장하고, 금기에 도전하여 한계까지 가 보는 것이다. 글쓰기는 더 이상 내 현실이 아닌 것을 간직하는 짜릿한 방법이기에 인생을 두 번 살고 영원히 사는 매혹이다. 글쓰기가 앞서가고 삶이 거기에 종속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들처럼 단지 ‘정념’에 국한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의 소재와 열정을 찾아 의미있는 경험을 만들어내야 하리라는 생각이 간절할 때, 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훑어보게 된 것은 무서운 동시성이었다. 발걸음을 떼어 놓으며, 새로운 장면에 접어들며 이것이 어떻게 글로 전환될지를 궁리한다. 어떤 수치심, 어떤 나락에 빠져들어도 글쓰기에 활용될 것이기에 괜찮다. 삶과 글의 사이에 어떤 경계도 없이 나란히 간다. 아니 에르노만큼은 아닐지라도.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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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탄님의 두번째 책이 기대되요.
    '작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모두 똑같지는 않겠지만, 그 삶의 한 풍경을 커텐을 들어 슬쩍 들여다본 기분이예요.
    미탄님도 이미 그 세계에 들어가신 것 같고요.

    2010.12.29 21: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ㅎ 내 글이 별 것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어요.
      다만 마음을 다 해 가고 싶은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지요.

      2010.12.31 13:48 [ ADDR : EDIT/ DEL ]

좋은 책/책2010. 6. 19. 00:46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의 로댕, 안상원역, 미술문화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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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미술관으로 로댕전을 보러 간 것은 순전히 ‘릴케의 로댕’ 때문이었다. ‘릴케의 로댕’, 1902년에 릴케가 완성한 로댕론이다. - 1907년에 강연록을 2부로 첨부함- 릴케는 널리 쓰이는 방식으로 전기를 쓰지 않았다. 이 책에는 연대기적인 서술이나 가족, 연애사 같은 것은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예술사조나 다른 작가들과의 비교도 하지 않는다. 오직 로댕의 작품에 의해서만 로댕을 말하고 있다.


이 책 전체가 모조리 로댕에게 바쳐진 헌사요 산문시이다. 저절로 베끼기 시작했을 정도로, 릴케의 시를 찾아서 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빼어난 문장이 가득하다. 대부분의 문장은 아주 짧다. 그런데 많은 말을 한다. 어찌나 울림이 깊은지 이마를 얻어맞은 듯 멍해진 눈으로 그 문장을 하염없이 읽게 된다.

 

육체의 원래 주인인 조각은 아직 육체를 알지 못했다. 여기에 하나의 과제가, 세계만큼 위대한 과제가 있었다.


시립미술관 2,3층을 가득 채운 그의 조각을 보니 알겠다. 이전의 조각은 육체를 알지 못했다. 로댕에 이르러 육체를 발견했다. 로댕에게 육체는 삶이자 종교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 인간이 이토록 많은 것들을 이토록 아름답게 빚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로댕 작품의 일부분에 불과한 전시물을 보고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영감이니 천재성이니 하는 말은 거론할 여지도 없을 정도로, ‘평생을 작업일 하루처럼’ 보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업적이었다. 육체의 발견! 그것을 릴케는 ‘세계만큼 위대한 과제’라고 말한다. 맞는 말 아닌가? 어떤 시대사상, 어떤 황제가 위대한 예술가의 세계만큼 영원히 우리를 위무하며 현존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돌들이 말했다.


그에게 말을 건 것은 그의 일 뿐이었다. 일은 아침에 깨어날 때 그에게 말을 걸었고, 저녁에는 연주를 마치고 내려놓은 악기처럼 그의 손 안에서 여음을 울렸다.


릴케의 함축적인 문장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알려주어, 나는 단숨에 로댕의 작업방식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언급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움직임들과 도는 모습들, 반쯤 도는 모습들을 노트하고 40개의 크로키와 80개의 프로필’을 그리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로댕은 옷을 입은 조각에 착수할 때도 나상부터 습작했으며, 조각의 일부인 손과 발, 두상을 따로 제작하기도 했다. 제각기 다른 조각들을 여러 가지 형태로 이어 붙여 보며 실험을 즐기기도 했다.  이처럼 일일이 ‘수공’을 통한 로댕의 ‘작업’태도는 릴케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릴케는 로댕과의 만남을 통해 주관적이고 몽상적인 서정시에서 탈피하여 언어의 조형성을 모색하게 된다.

육체의 어떤 부분도 무의미하거나 하찮지 않았다.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 시계의 숫자판과 같은 얼굴에 나타나는 삶은 쉽게 읽을 수 있고 시간과의 관련으로 가득하지만, 육체 속에 있는 삶은 더 분산되어 있고 더 위대하며 더 신비스럽고 영원하였다. 육체 속에서 삶은 위장될 수 없었기에, 게으른 사람의 육체에서는 삶도 게을렀고 거만한 사람에게서는 거만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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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과 해체의 '아상블라주'작업, 그리고 '청동시대'


‘아무리 엄격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 형상에서 생명력이 덜하거나 분명하지 못하거나 명료하지 않은 자리를 찾아낼 수는 없으리라’고 릴케가 극찬한 ‘청동시대’는 정말 그랬다.  완벽한 비례, 강인하고 탄력 있는 젊은이의 몸은 고스란히 생에 대한 찬사였다. 반대로 ‘지옥의 문’을 장식한 육체들은 ‘서로를 물어뜯는 동물들’ 이었다. 우리가 아차 하는 실수로 나락에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음험한 아귀들을 본 것 같았다. 나는 ‘청동시대’에서 감탄하고, ‘지옥의 문’에서 진저리를 쳤다. 정말로 육체는 위장할 수 없는 것이었다.

로댕은 인체에 대한 탐구를 통해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사실성을 획득했고, 육체에 살아있는 삶을 포착함으로써 그 대상에 영원성을 부여했다. 그래서 로댕의 모든 작품은 기념비가 된다. 릴케가 현란한 찬사를 바치는 ‘발자크상’만이 아니라 ‘입맞춤’이나 ‘영원한 우상’같이 말랑말랑해 보이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들은 육체의 접촉이라는 열락의 기념비다. 오래도록 살아남아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영원히 상기시켜 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제국에 도시 하나를 건설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왕이 그런 특전을 허락해도 좋을지 숙고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그 터를 직접 둘러보기 위해 나서는 것처럼, 그리고 그곳에 간 왕이 완성되어 서 있는 거대하고 튼튼한 도시를, 영원에서부터 존재했던 양, 성벽이며 탑들이며 성문들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도시를 발견하는 것처럼, 대중은 마침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가서는 로댕의 작품이 완성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작업으로 점철된 오랜 칩거 끝에 로댕이 인정받는 장면을 묘사한 문장이다. 로댕의 작품, 로댕의 시대사적 의미를 꿰고 있는 적확한 비유 자체가 하나의 구조물처럼 견고하고 아름답다.  로댕은 릴케의 내면에 존재하는 요구와 잠재력에도 불을 붙였다. 한 번은 릴케가 파리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불안감을 로댕에게 호소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로댕의 대답은 “계속해서 일하십시오”였다. 로댕의 이 한마디 대답은 릴케에게 삶의 원칙으로 각인되었고, 진흙이 아닌 언어로 예술사물을 창조하는데 더욱 전력투구하게 되었다는 것.


릴케는 시인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평전으로 로댕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개별작품에 투영되는 릴케의 감수성으로 해서 로댕의 의도가 완성된다. 로댕은 치열한 작업정신을 보여줌으로써 릴케에게 새로운 시적 전환을 주었다. 로댕의 독자성과 자기 완결성은 릴케의 예술론을 완성시켰다. 릴케의 로댕, 로댕의 릴케... 아름다운 뒤엉킴이다. 로댕이 아름답게 재현해 주는 에로티즘에 절대 뒤지지 않는 합일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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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댕전 기어코 보셨군요. 전 책 읽고 보려고 아껴 두었답니다.
    청동시대, 육체의 발견이라. 릴케의로댕 어서 읽고 봐야겠네요.
    사실 무슨 전시회 때마다 가봐도 뭐 느끼는 게 별 없어서...
    이번엔 내공을 좀 쌓고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2010.06.21 16: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순전히 '릴케의 로댕' 덕분에 로댕과 조각에 한 발 다가 선 기분입니다. 서로에게 감화를 주고, 평전을 씀으로써 영원히 남는 관계에 대한 부러움이 모락모락.^^
      올 하반부에는 샤갈전을 한다네요. 샤갈의 4차원적인 화법을 좋아하니 그 때도 가 보려구요.

      2010.06.21 22:18 [ ADDR : EDIT/ DEL ]

좋은 책/책2009. 11. 14. 08:50

김찬호, 생애의 발견, 인물과 사상사 2009


내가 자주 가는 수원 화성에는 한 쪽이 막힌 도로가 있다. 도로변에 접한 저 쪽 진입로에 길이 막혔다는 표지가 없어서 꽤 많은 차들이 들어왔다가 허탕을 친다. 가끔 길이 막힌 줄도 모르고  날렵하게 밀고 들어오는 차를 본다. 나는 그 차의 운전자에게 길이 막혔다는 말을 해 주지 않는다. 그리곤 곧바로 되짚어 나오는 차를 또 본다. 그럴 때  마치 그 길이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 막혀 있고, 때로 길이 아닐 수도 있는데 저마다 끝까지 가 보아야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살면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문제는 만천하에 모두 드러나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기출문제집’이라는 책도 있듯이 인생선배들의 경험담 속에, 그 많은 책들 속에 인생의 문제는 모두 드러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에 대해 탐구하지 않는다. 아니 탐구한다 해도 ‘아는 것’에 한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저마다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인생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결혼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결혼을 했으며, 엄마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엄마가 되었다. 불같은 열정으로 천하를 주유한^^ 20대, 가족을 만들고 세운 30대, 재도전과 비약에 대한 욕구로 자칫 위험했던 40대를 지나 지금 여기에 서 있다. 그리고 천만다행하게도 나는 지혜 하나를 갖게 되었다. 길이라고 생겼으면 무조건 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막힌 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게 된 것이다.


시행착오도 나쁘지는 않았다. 실수조차 없었다면 내 삶은 텅 비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고 간다면 더 멀리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마간산 식으로 겉핥기 하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현지인의 문화에 혀를 대보는 맛있는 배낭여행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대가 만일 삶에 대해 진지한 탐구를 하고 싶다면 여기 너무나 적절한 지침서가 있다.


김찬호의 ‘생애의 발견’은 한국인의 사회적 초상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유년부터 노년까지 모든 연배에 걸쳐 한국인의 사회학적, 생애사적인 의미를 새겨 놓았다.  책 한 권에 전 연령대를 다루다 보니 한 세대에 할애한 분량은 길지 않다. 가령 ‘결혼’에 대한 분량은 17쪽에 불과하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자료를 섭렵했는지 촌철살인 격의 유머와 인용이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몇 가지를 옮겨 보자면,


“저와 잠깐 결혼해 주시겠어요?”


결혼 지속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프랑스에서 청혼할 때 그렇게 능청을 떠는 이들이 있단다. 이 짧은 말에 결혼제도의 변화에 대한 만감이 스쳐 간다. 이런 조크도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두 번째 남편은 고고학자였다. 누군가 그녀에게 고고학자 남편을 둔 것에 좋은 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 왈,

“물론 있지요. 내가 나이가 들수록 남편이 나에 대해 점점 관심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조크 하나 더. 날마다 투닥투닥 싸우며 사는 부부가 있었다. 어느날 부인이 남편의 수첩 속에서 자신의 사진을 보고는 적잖이 놀라서 조용히 물어 보았다. 왜 자기 사진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하자 남편은  힘들 때마다 살짝 꺼내서 본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아내는 가슴이 뭉클했다. 원수처럼 지내지만 그 사람 참 속 깊은 데가 있구나. 그리곤 ‘그래 힘들 때마다 내 사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남편의 대답인즉,

“당신의 사진을 보면서 세상에 이 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


이 책에는 마치 ‘허무개그’ 같은 이런 조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더불어 산다는 것의 소중함에 마음이 짠해진다. 부부가 어떤 심정으로 살아야 한 지 울림이 크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어느 부부가 각자의 감정을 암호로 표시하여 싸움을 예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군인인 남편은 퇴근할 때 모자를 비뚤게 쓰는 정도로, 그를 맞이하는 아내는 머리를 꼭 동여매는 정도로 기분의 저조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괜찮은 쪽이 좋지 않은 쪽을 배려해 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싸움이 줄어들었다. 서로의 기분을 섬세하게 살피게 될 뿐 아니라 배우자를 마주하기 전에 자신의 기분을 돌아보면서 ‘정말로 내 기분이 그렇게 나쁜가?’라고 자문하게 되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확실하게 표현하면서 기쁨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모자를 아주 비뚤게 쓰고 퇴근했다. 공교롭게도 아내 역시 어떤 일로 기분이 몹시 나빴던지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마주친 부부는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여 서로를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곧 와락 달려들어 포옹했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유머와 일화를 동원해서 우리네 결혼생활의 허와 실을 짚어준다. 일본에 새로 등장했다는  卒婚도 등장한다. 卒婚! 결혼을 졸업했다는 뜻으로, 법적인 부부관계는 유지하되 양자 합의 하에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하는 것이란다. 수명연장시대에 부응하는 결혼제도의 진화인 셈이다. 그러나 이 많은 냉소와 실험적인 형태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결론은 분명하다. 어떤 결혼이라도 부부에게는  ‘낭만적 열정이 자연스럽게 식어가는 과정에서 그 공백을 새로운 의미와 재미로 채워가는 능력’이 관건이라고 한다. 


30년 내에 일부일처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자크 아탈리>, 저자는 가족의 의미를 분명하게 짚어줌으로써 실제적인 위안과 힘을 준다. 핵가족은 상호인정에 기반한 소통의 잠재력이 자라나는 곳이요, 일상생활의 민주화를 구현하는 장소로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소통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감성지수나 사회적 지능이 강조되고 있는 이 때, 가족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도 유능한 사람이 되는 시대라고 분명하게 못박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연령대가 가진 의미를 짚어주니, 살아가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 같다. 인생을 전체로서 볼 수 있는 혜안을 주며, 지금 내가 통과하고 있는 지점에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문체가 전혀 딱딱하지 않은 데다가 예화가 워낙 풍부해서 재미있기까지 하다. 나는 아이들을 다 키웠는데도 유년에 대한 부분을 빨려 들어가서 읽었을 정도이다.


20대 취업난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과 삶의 고비용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탄식, 생애의 속살을 엿보는 30대에 전력질주해야만 하는 이유... 이 책을 읽고 시야가 한층 넓어진 것 같다. 책 한 권이 줄 수 있는 것이 이렇게 큰 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글쓰기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우선 그 광활한 참고자료에 대해 머리를 조아린다. 마음에 와 닿은 예화 하나를 더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많은 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타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거론된 예화이다. 


박재동화백이 한때 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했을 때의 일이다. 제자가 TV에서 소개했다고.

그는 문제아로 걸핏하면 교무실에 끌려가, 그날도 교무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들고 있엇다. 지나가던 몇몇 선생님들이 “이 녀석들, 또 걸렸구나” 한 대씩 쥐어박을 때 박선생은 둘을 미술실로 데려갔다. 이제 작정을 하고 혼내시려나 보다 하고 가슴을 졸이고 있었는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둘을 의자에 앉히더니 정성들여 각각의 초상화를 손수 그려 그 그림을 한 장씩 손에 쥐어 주면서 돌아 가라고 한 것이다.  긴 시간을 내어 온전히 응시해 준 눈길, 자신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 준 손길이 백 마디 훈계보다 훨씬 값지고 힘이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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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책의 소개에 적당한 서두가 떠올라서 리뷰를 한 편 더 써보았슴다.
    중간의 인용부분은 같지만 훨씬 틀잡힌 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
    좋은 책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꾸 소개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입소문의 기본요건이겠지요.

    2009.11.14 08: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마지막 예화가 참 가슴에 와 닿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9.11.15 14:48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정말 이 책을 읽으며 인용의 힘에 대해 진하게
      배운 느낌이 들어요.
      박재동화백 예화도 그렇고 부부가 서로에 대해 연민을
      갖는 예화도 그렇고, 복잡하고 어렵고 길게 글쓸 이유가 없더라구요.^^

      2009.11.15 21:36 [ ADDR : EDIT/ DEL ]

좋은 책/책2009. 10. 13. 15:39
 감찬호, 생애의 발견, 인물과 사상사 2009


김찬호의 ‘생애의 발견’,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학문하는 사람의 시각과 자원을 가지고 대중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면 이렇게 멋진 책이 탄생하는 거구나. 유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한국인의 사회적인 초상인 셈인데, 그렇게 재미있고 함축적일 수가 없다. 한 꼭지만 읽어도 저자의 방대한 레퍼런스가 짐작된다.


가령 ‘부부, 사소한 것들의 중요함을 배운다’라는 꼭지는 17쪽 밖에 되지 않지만 모조리 밑줄을 그을 만한 금과옥조인데다가, 내 경험에 의하면 모두 사실이다. ^^

불과 17쪽 안에서 발견한 부부에 대한 조크만도 세 개다.

옮겨 보자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두 번째 남편은 고고학자였다. 누군가 그녀에게 고고학자 남편을 둔 것이 좋은 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 왈,

“물론 있지요. 내가 나이가 들수록 남편이 나에 대해 점점 관심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투닥투닥 싸우며 사는 부인이 남편의 수첩 속에서 자신의 사진을 보고는 적잖이 놀라서 어느날 조용히 물어 보았다. 왜 자기 사진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하자 남편은  힘들 때마다 살짝 꺼내서 본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아내는 가슴이 뭉클했다. 원수 처럼 지내지만 그사람 참 속 깊은 데가 있구나. 그리곤 ‘그래 힘들 때마다 내 사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남편의 대답인즉,

“당신의 사진을 보면서 세상에 이 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


누군가 독설가로 유명한 버나드 쇼에게 물었다.

“금요일에 결혼하는 부부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한 쇼의 대답은,

“암, 그렇고 말고요. 금요일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있겠습니까? ”


위의 조크들이 부부와 결혼에 대한 냉소적인 웃음을 자아낸다면, 아래와 같이 가슴 짠한 사례도 있다. 이 사례 만으로도 부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깊은  울림이 온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어느 부부가 각자의 감정을 암호로 표시하여 싸움을 예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군인인 남편은 퇴근할 때 모자를 비뚤게 쓰는 정도로, 그를 맞이하는 아내는 머리를 꼭 동여매는 정도로 기분의 저조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괜찮은 쪽이 좋지 않은 쪽을 배려해 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싸움이 줄어들었다. 서로의 기분을 섬세하게 살피게 될뿐 아니라 배우자를 마주하기 전에 자신의 기분을 돌아보면서 ‘정말로 내 기분이 그렇게 나쁜가?’라고 자문하게 되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확실하게 표현하면서 기쁨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모자를 아주 비뚤게 쓰고 퇴근했다. 공교롭게도 아내 역시 어떤 일로 기분이 몹시 나빴던지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마주친 부부는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여 서로를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곧 와락 달려들어 포옹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저와 잠깐 결혼해 주시겠어요?”

결혼 지속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프랑스에서 청혼할 때 그렇게 능청떤다는 재치도 재미있고, 卒婚이라는 일본의 신풍속도도 아주 흥미롭다. 혼인관계를 졸업했다는 뜻이란다. 법적인 부부관계는 유지하되 양자 합의 하에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한다고. 수명연장시대에 부응하는 진화방식인 셈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섭렵한 자료가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이 간다. 그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인 것도 느껴진다. 그는 적어도 한국인들이 '살아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최소한 지금은 살아 있고 싶어”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중에서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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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학다닐때, 김찬호교수님의 전공 수업을 들을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2009.10.13 15: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하하, 포스팅하고 실시간으로 댓글 달린 적은 처음입니다.
      재미있네요.^^

      2009.10.13 15:47 신고 [ ADDR : EDIT/ DEL ]
  2. 수꾸

    미탄 선생님~ 깊어가는 가을색조보다 더 책향기가 진해옵니다. 가끔 들려 선생님 글 마주하고 지난답니다. 일교차 큰 날씨 건강 잘 챙기시구여~ 내일은 오늘보다 더 빛남으로 가는 시간만드셔요^^

    2009.10.13 23:1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아, 요즘 블로그 열심히 안 하는데 조금 분발해보아야
      하겠는걸요.^^ 제 글을 읽어주시고, 또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하구요, 수꾸님도 어제보다 아름다운 하루
      되시기를!

      2009.10.14 08:39 [ ADDR : EDIT/ DEL ]
  3. bom,bom

    미탄님 글을 읽고 나면 언제나 보관함이 묵직~ㅎ 리스트에 올려봅니다. ^^ 바람 썡썡~ 기온 차가 큰 요즘 감기 조심하세요.

    2009.10.19 18:46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예~~ 저녁만 되어도 제법 추워서 산책시간을 좀
      앞당겨야겠더라구요.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이렇게 흔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10.19 21:50 [ ADDR : EDIT/ DEL ]
  4. 이오푸른

    예화가 참 좋은 듯해요.
    가장 좋았던 게 각자의 감정을 암호로 표시한다는 거.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면 사회화된 우리네는 조건화된 감정을 느끼고 그에 대한 반응을 하게 되는데 그 고정관념을 역으로 이용하여 다른 감정을 유발하는 행위, 즉 암호로 감정을 표시함으로써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 사이에 암호를 정하기란 어려우므로 제게 하는 여러 사람들의 반응들을 칭찬이나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친한 사람들끼리 이렇게 암호를 정해가면 재미가 가미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조과정 그 자체의 재미에 더하여 그들만의 다른 삶의 방식, 즉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그들만의 개성을 창출하고 있다는 유별감. 이 그 재미의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2010.03.11 22:20 [ ADDR : EDIT/ DEL : REPLY ]

좋은 책/책2008. 8. 5. 22:49
이경수, 김진세 지음, 마흔의 심리학, 위즈덤하우스 2007

 

1. 구성

이 책은 심하게 마흔앓이를 한 이경수와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의 대화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섬세한 심성을 지닌 기자출신 이경수는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호된 2차 성장통을 앓는다. 지하철로 뛰어들고 싶을 정도이니, 만성적인 무기력과 대상없는 분노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랴.

그런 저자를 보다못한 후배가 지인인 정신과의사를 소개하여 매 주 수요일 열 번에 걸쳐 둘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 결과물을, 이경수의 스토리텔링에 김진세의 심리처방을 붙이는 식으로 엮어놓았다.

출판사의 기획물임에 분명하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이경수의 여성성이 시킨 일인지, 구체적인 날자나 인물을 강조하여 사실성을 확보하려고 애썼다.


2. 내용

이경수가 마흔에 처한 상황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이 주를 이룬다. 나, 관계, 고민 이라는 세 章으로 나누어있다. ‘관계’의 내용은 많이 보던 것들인데 ‘나’에서 다룬 정체성과 변화, 일탈이나, ‘고민’에서 다룬 性, 나이, 자녀교육, 비자금 같은 내용은 흔치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투적인 외피에서 한걸음 내면으로 들어간 느낌이랄까. 너무 일상적이어서 사소해보이지만,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주제를 잘 끄집어내 주었다.

중년이 되면 남성의 아니마가 두드러져 당황한다고 하는데, 남들에게 의논도 못하고 힘들어하는 마흔이 있다면 조용히 집어들어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대장부의 방어를 풀고 감성을 표현하라! 강요된 남성성의 위압에서 벗어나 감정을 해방시켜라! 조촐하지만 중요한 관점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대단한 해법은 없다. 그러나 다소곳한 상식의 확인이 도움이 될듯하다. 가령 입시제도에 밝아 사교육을 장악한 아내에게 자녀교육을 떠맡기고 말 것인가.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성역할은 분명히 있고 아버지는 자녀의 인성과 감성교육을 책임지라고 한다.


사십 대 남성들의 심리를 딱 집어낼 단어는 ‘바람’이라고도 한다. 못다 이룬 꿈에 대한 태풍같은 바람! 그 바람을 예방하는 방법으로는 육체적 일탈 -운동, 지적 호기심 채우기, 수다떨기를 제시한다. 대화를 시도할 때는 갈등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피하는 것이 좋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거운 주제는 처음에 시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란다. 스포츠나 아침 드라마 등 서로의 감정이 큰 부하가 걸리지 않는 주제를 선택할 것.


3. 그밖에

김진세의 편안한 수다체가 돋보인다. 포기하지 말고 집에서 키우는<!> 여자를 활용하라거나, 발렌타인데이라 사방팔방 연놈들이라는 등 실실 웃기기도 한다. 전문가 티를 내지 않으면서 전문가의 식견을 전달할 수 있다니 참 부럽다.

신경을 많이 썼다곤 해도 인위적인 스토리텔링이 살짝 어색하다. 차라리 대놓고 진지한 편지글 교환은 어땠을까.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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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나경

    안녕하세요.
    김나경입니다. 오랜만이지요.
    내년이면 저도 마흔인데,
    쉽지 않네요.
    이렇게 독하게 몸과 마음이 함께 아프고서야
    마흔이 되려나 봅니다.
    어제는 문득 "나한테 얼마나 큰 깨달음을 주려고..."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자주는 들르지 못하고 가끔 들러 글 읽고 갑니다.
    그리고 가끔 궁금합니다. 잘 지내시지요?

    2008.08.06 22:31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너무 뭘 몰랐던 나에 비하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마흔을 통과하는 분들은 모두 대단해 보여요.

      구체적인 상황은 알지 못하지만,
      지금 하는 결정이 모여 내 삶이 된다는 것,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길고 큰 관점에서 일을 처리해 나가기를 바래요.

      나경씨, 혹시 속내를 털어놓고 싶을 때는 메일주세요. 성심껏 들어줄게요. ^^
      dschool7@hanmail.net

      2008.08.06 23:55 [ ADDR : EDIT/ DEL ]
  2. 연말까지 월별로 주제를 정해서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마흔'도 그 주제 중의 하나이긴 합니다만, 어쨋거나 제 블로그에서 한번 보시고 미탄님께서 좋은 책 추천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2008.08.07 17:39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