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놀이2011. 1. 7. 09:43
 

데이비드 길모어, 기적의 필름클럽, 솔 2009


열 여섯 살짜리 아들이 도저히 학교를 싫어한다. 눈앞의 공부와 전혀 무관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한 아빠가 제안한다.


“더 이상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으면 그만 다녀도 돼. 일을 할 필요도 없고, 방세를 낼 필요도 없고, 매일 다섯 시까지 자도 좋아. 단 마약은 안돼!  일주일에 영화 세 편을 나와 함께 보는 거야. 너에게 공부는 이것뿐이야.”


아버지는 아들이 마지못해 끌려가는 삶을 살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기꺼운 호기심을 가지고, 자기 몫의 인생을 만들어가기를 원했을 것이다. 학교에서의 실패가 사회적인 실패를 의미하는 세상에서 무엇으로 아들에게 그것을 준비시켜 줄 것인가. 영화평론가 아버지는 그 수단으로 영화를 택한다.


아버지가 택한 첫 영화는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였다. 그 다음 날 ‘후식’으로  ‘원초적 본능’을 보여 주었다니 사춘기 아들을 대하는 문화의 차이가 흥미롭다. 아버지의 커리큘럼은 테마를 가지고 이어진다. '공포영화 특별전’ 혹은 ‘숨은 보물 찾기’ 같은 식이다. '정중동' 靜中動 도 있었다. 배우가 움직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관객의 시선을 끄는 연기를 하는지 보는 것인데,  이 테마를 위해 '하이눈', '카사블랑카', '대부'가 동원되었다.


‘재능발굴’ 단원은 좀 더 흥미롭다.  신통치 않은 영화 속에서 주연도 아니면서 30초만 보고도 “저 남자 대체 누구야?” 하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배우들이 있고,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 이야기도 나온다.  스물넷에 경험도 일천한 그녀가 그레고리 펙과 유연하게 코믹한 연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불가해한 예술적 성숙이었다고 아빠는 말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데뷔도 그에 못지않다. 그 역시  스물 네 살에 TV영화 '대결'로  ‘무모할 정도로 엄청난 천재의 존재’를 널리 알린다. 스필버그 자신이 그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해내기 위해 2,3년마다 ‘대결’을 다시 본다고 했을 정도로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대담한 영화였다고 한다. 몇 년 후 그는 ‘대결’ 한 편의 경력만으로 ‘죠스’의 감독을 맡는다.


이 책은 사춘기를 관통하는 아들의 성장을 위해 전력투구한 아버지의 기록이다. 아버지는 한 손에는 영화를 그리고 다른 손에는 연애상담을 들고 있다. 짧고 속도감있게 정리해주는 영화평도 재미있고, 캐나다 청소년들의 사생활과 가족관계를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아들 제시는 3년 동안 세 명의 여자친구를 만나고 그 중 두 명에게 깊이 탐닉한다. 아빠가 그토록 경고한 마약도 두 번 한다. 아버지로 말하자면 아들의 생모, 딸의 생모, 그리고 지금의 아내가 모두 다른 사람이다. 그렇지만 아들의 교육을 위해 전처와 의기투합하는 모습은 함께 사는 부부 못지 않다. 제시의 부모는 사내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커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서로의 집을 맞바꾸기까지 한다. 아버지의 옥탑방은 190센티미터가 넘는 사내아이가 하루 종일 머물기에는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시로 만나 대화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셋이서 여행도 간다.  아버지의 현재 부인도 제시에게 좋은 상담역이 되어 준다. 문화는 사람의 인성까지 변화시키는 것일까, 우리와 사뭇 다른 모습에 어리둥절해지는 가운데 오매불망 아들을 챙기는 아버지의 부정은 똑같아서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 온다.


아들과 영화를 보며 갖가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아버지에게도 행복했다. 그들의 대화 소재는 실로 다양해서 60년대, 비틀스,  잘못된 술마시기와 제대로 술 마시기, 레베카, 아돌프 히틀러, 리처드 닉슨, 간통, 트루먼 카포티, 레즈비언, 코카인, 헤로인, 문신, 자니 카슨, 냉소에 대해 이야기하던 때에 대한 아버지의 술회는 사뭇 감동적이다.


내가 직장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인생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바로 내 옆에,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으니까. 비록 인생의 종착점이 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은 너무나 황홀했다.


그렇게 3년이 흐르고 아들은 아버지가 처음 영화평론가가 되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아마 독자를 위한 쪽지시험 같은 것이지만 아들과 아버지가 문답을 나누는 장면도 흐뭇하기 그지없다.


“내가 시험해보고 싶은데 괜찮겠니?”

“괜찮아요.”

“오래 생각하지 말고 바로 대답해라. 프랑스 뉴웨이브가 가져온 세 가지 변혁을 말해보겠니?”

“저예산...

유동 카메라...

영화가 스튜디오를 벗어나 거리로 나온 점?“

“뉴웨이브 감독 세 명만 대보겠니?”

“트뤼포, 고다르, 에릭 로메르”

“뉴웨이브를 불어로는 뭐라 하지?”

“누벨바그”

“하워드 혹스는 좋은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가 뭐라고 했지?”

“세 개의 좋은 장면, 그리고 나쁜 장면이 있어서는 안 됨”

“마지막 문제. 이걸 맞추면 내가 저녁 외식을 쏘지. 신 할리우드 운동을 이끈 세 명의 감독 이름은?”

“프랜시스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브라이언 드 팔마...”


그리고 아들은 느닷없이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수년 전 자신을 패배자로 만들었던 공포의 과목들에게 재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결정하게 된 데에는 연애와 신통치않은 직업 탓도 있었지만 영화의 힘이 크지 않았을까? 자기 발로 뚜벅뚜벅 걸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얼 쇼리스가 최하층 빈민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쳐 이룬 일을,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영화를 봄으로써 성취하였다. 아들은 대학으로 가고, 아버지는 이제 아들이 마리화나에 쩐 모습으로 택시를 운전하는 상상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물질은 정말 중요하지만 언제까지나 부동의 1위는 정신이기를 바라는 나같은 사람에게 소중한 실험이다. 경제적인 풍요, 혹은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근시안적인 목표는 무기력과 무의미에 포위된 청소년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글쓰기에 대한 것도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제시가 랩을 작사하는 과정에 있었던 일이다. 처음에 제시는 상투적인 사회성-마약밀매업자와 코카인에 중독된 매춘부가 나오는 쓰레기인생에 대해 노래했었다. 이웃사람들을 완벽하게 그려낸 거라고 하면서.


“우리 가사 어때요?” 제시의 질문에 대고 아빠는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

슬쩍 칭찬을 해 준 다음에 이렇게 말한다.

“한 가지 제안해도 되겠니? 네 삶과 조금 더 관련있는 것을 쓰도록 노력해야 할 거야. 네가 강렬하게 느끼는 것, 말하자면  레베카?”


레베카는 제시가 막 헤어진 여친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제시는 레베카는 아니지만, 새로운 여친인 클로에로 인한 혹심한 고통을 노래하게 된다. 그 노래는 격렬한 비난과 애원 속에 마치 투명한 심해어처럼 자신의 내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자신의 껍질을 깨고 삶을 울부짖는 제시의 노래에 아버지는 커다란 감명을 받는다. 아이가 이제 더 이상 십대가 아니며 자기 몫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것, 그 과정에 아버지로서 응분의 역할을 했다는 감회에 다음과 같은 것이 섞인 감정이 아니었을까.


영화 ‘청춘 낙서’에서 리처드 드레이퍼스가 우연히 접한 아주 매력적인 찰나 경험 같은 것이다.  그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굵고 쉰 목소리에 사로잡혀 불현듯 우주의 중심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그건 어떤 장소가 아니라, 뭔가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욕망의 구현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갈 수 있는 어느 장소의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존재하고 싶은 자리의 개념이다.


아버지는 멋들어지게 자기가 존재하고 싶은 자리를 지켰고, 우리는 경쾌하기 그지없는 영화입문서와 십대자녀에게 접근하는 독창적인 실험사례를 얻었다. ‘‘훌륭한 글쓰기’ 단원은 미처 시작하지도 못했다’ 는 아빠의 조용한 되뇌임은 마치 나를 위한 것 같다. 걱정마시라. 내가 할 테니까.^^  이 세상의 수많은 제시, 내 영혼의 분신들을 위하여 라이팅클럽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욕망이 내 안에 있어서 참 좋다. 본문에 의하면 그것이야말로 ‘우주의 중심’에 닿는 일이므로.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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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k Floyd의 보컬과 기타를 연주하는 David Gilmour에 대한 얘기를 쓰신 줄 알고 한참을 읽었는데, 제가 놓친 부분이 있었나 하고 다시 읽었습니다. 동명이인. ^^

    2011.01.07 22: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거의 다른 블로그를 방문하지 않는 제 탓입니다만,
      요즘 너무 블로그이웃과의 소통이 막혀있다 생각하던 차에
      아주 반가운 방문이십니다.
      길모어를 한때 닉네임으로 쓰셨을 정도이니
      그러실만도 했겠네요.^^

      2011.01.08 10:48 [ ADDR : EDIT/ DEL ]
    • 어? 어떻게 아셨지? 길모어(gilmour)를 닉네임으로 썼던 것을....흠흠.

      2011.01.08 11:42 신고 [ ADDR : EDIT/ DEL ]
  2. 기적의 라이팅클럽. 기대되는데요. ^^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두려운 것은 그런것이예요. 할 얘기, 해줄 얘기가 없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지금은 끊임없이 엄마에게 '옛날얘기 해주세요~'하고 조르는 네살배기 아들이 자라면 어떤 얘기를 나누게 될까.. 얘가 힘들어하거나 방황할때 나는 무엇으로 조용히 이 아이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까..
    함께 여행하고, 함께 영화보고, 함께 책읽고, 함께 걸을 수있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제 아이들에게. 함께 글도 쓰고요...^^

    2011.01.13 22: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들애가 중2쯤 되었을까, 영어단어를 자꾸 물어보는 거에요. 왜 사전 안 찾느냐는 내 말에 아들 왈, 물어보는 게 더 빠르다나요. 그 때 내 느낌도 똑순맘과 같았지요. 멀지않아 니가 아는 단어가 나를 앞지를 거야. 나야 이제 코앞에 닥쳤지만 -딸이 한 학기 후에 워킹홀리데이 간다네요-똑순맘은 좀 이른 거 아니에요?^^

      2011.01.14 09:51 신고 [ ADDR : EDIT/ DEL ]
  3. 비밀댓글입니다

    2011.01.14 08:38 [ ADDR : EDIT/ DEL : REPLY ]

좋은 책/놀이2009. 11. 16. 13:09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에코의 서재


저자는 바이올린 즉흥연주자요 작가라고 하는데요. 그 외에도 문학과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여러 인접예술에도 일가견이 있어 보이지만, 저는 바이올린 연주와 글쓰기의 조합이 너무 부러운 것 있지요. 그 두 가지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다면 보통 사람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에 거주할 것 같아요. 과연 이 책은 좀처럼 보기 힘든 직관과 내공을 감각적인 언어로 펼쳐 보이고 있네요.


즉흥연주를 하면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간 듯 무한한 자유와 확장을 체험한 저자가 즉흥성의 내적 차원을 탐험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네요. 무언가 아주 좋은 것을 발견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사람이잖아요. 즉흥연주를 하면서 진정한 창조성을 이해했고, 예술과 삶 사이의 인위적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에요. 즉흥성에 대한 저자의 탐구는 아주 참신하군요. 가령 이런 접근은 어떤가요.


즉흥작업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음악이나 연극, 무용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이런 예술은 일상적 삶의 경험으로 들어가는 관문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즉흥 연주자들이다. 가장 흔한 즉흥연주 형태는 일상의 대화다. 말하고 들으면서 우리는 어휘라는 단위를 문법이라는 규칙에 따라 사용한다. 어휘와 문법은 문화가 전해준 것이다  하지만 그 어휘와 문법으로 우리가 만들어내는 문장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독창적인 것이다. 모든 대화는 재즈 연주와 같다.


저는 참 말재주가 없는 편인데요, 몇몇이 모여 이야기할 때 재치 있게 받아치는 것에 얼마나 재주가 없는지 그보다는 차라리 대중강연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일상의 대화를 즉흥연주라고 풀이한 저자 덕분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즉흥연주를 잘 하고 싶어진 거지요. 우선 열심히 듣고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보면서 살살 연습을 해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아주 독특한 향기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건 아무래도 여러 가지의 이질적인 분야를 통합적으로 거느리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 같아요. 동료와 함께 한 묶음의 지도를 보면서 즉흥연주를 하는 장면을 좀 보세요. 


여러 차례 나와 함께 작업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론 페인은 어느 날 녹음실로 들어가면서 잡지 미술 화보 등을 한 아름 챙겼다. 그것을 바이올린-피아노 즉흥연주 악보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미지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끄러져 내려오는 곡선이 멋진 자동차 그림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교대로 등장하는 하강 음계를 만들어냈다. 헤어스프레이 광고처럼 아주 괴상한 이미지는 장엄하면서도 감미로운 음악과 연결되었다. 마티스의 회화작품을 보자 완전히 축 쳐진 음악이 나왔다가 곧 사라졌다. 제일 멋진 결과물은 로스앤젤레스 지도였다. 론이 시내 도로를 연주하고 나는 고속도로를 연주했다. 실제 로스앤젤레스 도로는 지옥처럼 막히고 복잡하지만 우리 음악은 아주 활기차고 빨랐다.


너무 재미있지요? 저도 가끔 풍경을 보며 소리를 듣는 식의 초보적인 ‘공감각’을 누리는지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는 그 밖에도 동양식 참선에도 심취하는 등 아주 다양한 관심사와 재능을 가진 인물인 것 같구요. 각각의 분야에서 끝까지 가 본 자만이 발휘할 수 있는 깊이를 보이고 있네요. 그 다양한 관심사가 합해진 감각이 아주 매혹적이군요.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면 명상하라. 자유연상을 해라. 자동기술 글쓰기를 하라. 자신에게 말을 걸고 또 대답해 보라. 장애물을 가지고 놀아라. 그러면서 작업장에 머물러라.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장애물의 공격에 자신을 내맡겨라. 그러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부드럽게 견뎌내야 한다.

 

제 눈길을 끌었던 구절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이런 것도 있습니다. 아주 쉽게 삼매에 빠지는 방법이랍니다.


앞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그래! 그래! 그래!” 라고 외치는 것이다.

율리시스 끝 부분에 나오는 삶을 긍정하고 사랑을 긍정하는 주문처럼 말이다. 그러면 가능성으로 가득 찬 우주가 더 가깝고 분명하게 다가온다. 반면 “안돼! 안돼! 안돼!”라고 외친다면 세상이 더 작고 무거워진다. 한 번 직접 확인해보라. 수련 등 관다발 식물의 꽃잎은 해가 나올 때는 활짝 벌어졌다가 해가 지면 오므라든다. 햇살과 수련이 물, 당, 단백질 등 생물학적 재료를 사용해 서로 나누는 대화는 “그래! 그래! 그래!”일 것이다.


타고난 낙천성을 가진 저는 비교적 긍정적인 언어와 심상을 활용하는 편이지만, 좀 더 강력한 만트라를 하나 소중하게 품었습니다. 앞으로 심심하면 하릴없이 소리쳐 보려구요.^^

“그래! 그래! 그래!”


요즘 놀이와 관계의 연관성에 꽂혀 있는데요, 시공을 넘어 누군가 내 생각을 나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것을 또 발견하네요. 저자가 말하는 것은 ‘즉흥연주’의 범주겠지만, 고도의 훈련과 체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즉흥과 실전이 다를 것이 뭐가 있겠어요. 아무런 준비 없이 도달한 합일의 기쁨이 연인 관계만 못할 이유 또한 없겠지요. 


공동 창조 작업은 결국 인간관계의 표현, 인간관계를 위한 도구, 인간관계를 향한 자극이다. 예술가들은 작업하면서 나름의 사회를 이루어간다. 오로지 상상력만으로 연결된 직접적인 관계란 강력하고 독특한 우정을 촉발한다. 계획되고 재단된 말이나 행동으로는 얻을 수 없는 친밀감이 생겨나는데 그 은은함이나 풍성함은 연인 관계에 비견할 만하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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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꾸

    유년기의 재미났던 놀이들이 아련합니다. 이젠 혼자 노는 놀이방법에 관심이쏠립니다. 인관관계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지만 나만의 독특한 향기를 가진 놀이를 열심히 탐구중이랍니다. 미탄 선생님~겨울나기 준비도 잘 챙기시고 건강도 잘 도보시면서 열공하셔요^^

    2009.11.17 15:3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유년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 때는 나도 밖에서 하루종일 뛰어노는 아이였던 것이 신기해요.
      저는 혼자 놀던 시기를 거쳐 서서히 관계 속으로 다가가고 있는데요, 한경애의 '놀이는 관계만들기이다'가 철렁할 정도로 뒤늦은 개안을 하고 있지요.
      수꾸님도 블로그 하시면 알려 주시면 어떨지요?^^

      2009.11.18 06:48 [ ADDR : EDIT/ DEL ]
  2. 수꾸

    여테 늘 뭔가에 대한 구상만 열중이었더랍니다. 내 이름의 집을 짓고 주소도 가지고 싶단 욕구 가득하지만 마음만큼 여의치 않네요. 예쁜 집 짓고 초대할께요^^

    2009.11.19 07:28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무엇이든 움직이면서 생각하고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걍 시작하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2009.11.19 08:06 [ ADDR : EDIT/ DEL ]
  3. 비밀댓글입니다

    2009.11.25 22:11 [ ADDR : EDIT/ DEL : REPLY ]
    • 지금 시간자체가 인생의 황금기인걸요. 지금처럼 행복하게 몰두하다 보면 다음 기회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리라고 봐요. 블로깅만 해도 굉장한 훈련이 되고, 막강한 기회잖아요. 비록 나는 열심히 안하고 있지만요.^^

      2009.11.27 10:30 신고 [ ADDR : EDIT/ DEL ]

좋은 책/놀이2009. 11. 12. 09:31
 한경애,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그린비 2007


 

신과 ‘함께’ 자연과 ‘함께’ 혹은 이웃과 ‘함께’ 논다는 것이 중요하다. 놀이는 언제나 ‘관계 만들기’ 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친구들과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새로운 관계를 조성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에이, 혼자서도 잘 논다고? 컴퓨터나 만화책만 있으면? 그야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결코 혼자 노는 게 아니란 것이다. 1인용 게임을 하고 있을 때조차 가장 즐거운 때는 바로 게임과 나 사이의 파장이 일치하는 순간, 나와 게임이 합체한 듯 느껴지는 그 순간이 아닌가. 음악마니아나 애니메이션 광처럼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에게 놀이는 바로 무언가 나 아닌 것과 공감하는 바로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한경애의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에서는 저자의 필체가 보이는듯하다. 요즘은 손글씨 구경할 일이 별로 없지만 글씨에서도 얼추 그 사람을 볼 수 있지 않았든가! 활달하고 성격 급하여 빠른 속도로 써 갈기지만, 필체 자체가 독특한 형상을 갖추어 아주 멋스러운 사람! 이건 부럽다는 얘기이다.


책 한 권의 원고를 끝내보니 책이 좀 더 다가온다. 내 원고의 맹점인 ‘인용과다, 관념성, 설익은 소신’이 아프게 다가오면서,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저자가 더욱 돋보인다. 내가 주로 책에서 배우는 유형이기도 하지만, 내 속에서 우러난 이야기가 빈약해서 자주 짜깁기를 한 것에 비해, 저자는 세상에 대고 하고 싶은 말을 자신의 언어로 힘차게 쏟아내고 있었다. 곳곳에서 촌철살인격의 인용과 사례가 그런 저자를 호위하고 있었다.

수유너머에서 공저 한 권을 쓴 다음의 첫 책으로 보이는데 어찌나 글빨 말빨 에너지빨이 좋은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자신의 생활과 철학이 고스란히 투여된 책이어서 그럴 것이다. 한경애는 책 앞날개에 소개된 관심사만 보아도 ‘놀이의 달인’으로 보인다.
수유너머, 진보넷, 대추리 스콰터들, 이주노동자, 자전거로 미래를 달리는 발바리들로도 모자라 밴드를 만들고 싶다는 숙원을 위해 얼마 전부터 베이스 기타를 연습하고 있단다. 그 관심의 다양성과 활동성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책의 전반에 걸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것을 전해 주고 싶다는 애정이 넘쳐난다. 중학교 교사답게 청소년을 염두에 둔듯 군데군데 말 놓아가며 반복 학습시켜 가며 참 재미있게 썼다. 인간들의 놀이본능이 어떻게 억압되어 왔는지 그 역사와, 상업주의의 억압을 뚫고 날아오른 참을 수 없는 ‘즐거움’들의 사례가 모두 재미있었지만 위 구절에서 가슴이 철렁했다.


놀이는 언제나 ‘관계 만들기’ 이다.


인정한다. 이젠 혼자놀기에 능하다는 말도 쓰지 말아야겠다. 언제나 나를 가슴떨리게 한 것은 무엇인가 그 대상과의 합일이었음을 인정해야겠다. 위 구절은 내 관계전선을 순식간에 업그레이드시켜 주었다. 저자가 고맙고 우리가 책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 종족이라는 것이 고맙다. 내 마음에 들어온 구절을 몇 개 더 소개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인 아코타족에게는 전투조차 놀이이다. 그들에게 대지는 신이 우리에게 빌려준 것일 뿐 누구의 소유도 아니니 영토를 소유하기 위한 전쟁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삶 그 자체를 신이 준 선물로 여기는 인디언들에게 전쟁은 호연지기를 키우기 위한 놀이이다. 적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가 아닌 얼마만큼 위험을 무릅썼는가가 명예의 기준이 되고 포로는 융숭한 대접을 받은 뒤 집으로 돌아간다.


“영국 국기에 검은 색은 없으니 깜둥이들은 꺼져!”

훌리건들이 부르는 응원가의 일부이다. 중략. 유색인종 선수들에게 오물을 던지고 칼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그들. 우리는 어째서 놀이마저 전쟁으로 만드는 것일까?


어느샌가 노는 것이 소비와 동의어가 되어 버렸다. 축제에서부터 여행까지 모든 것이 상품인 이 세계에서 우리는 돈 없이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알지 못한다. 신용카드야말로 플레이어 라이센스라고 말하는 소비자본주의의 당당함.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는 노동을 정의하는 단어가 거의 없다. 노동이라는 말은 오직 ‘여가가 없는’이라는 뜻의 단어 askholia/negotium으로만 표현된다. 이 언어들에서 삶의 중심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인 것이다.


즐거움만이 우리를 놀게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놀기 위해선 아주 중요한 능력이 필요하다. 기차에서 무작정 내리기 위해서 창 밖에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다는 걸 발견해야 하듯이. 세상과 놀기 위해서 우리는 견고해 보이는 이 세계에서 무수한 차이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어딜 가도 거기가 거기같이 느껴진다면 아무 데도 갈 필요가 없지 않겠어?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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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놀이2009. 3. 12. 01:29
 

인간을 넘어서, 나카무라 유지로, 우에노 치즈코  당대 2004


고양이가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새끼고양이였고 공도 아이들 볼풀용으로 아주 작은 것이었다. 고양이는 공을 보자마자 꼬리를 바싹 치켜세우며 경계태세를 취했다. 작은 몸에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그리고는 앞 발로 공을 툭 툭 쳐 가며 탐색하기를 여러 번, 이내 고양이는 공을 굴렸다 잡았다 하며 공과 한 몸이 되어 뒹굴었다. 있는 대로 집중하여 온 몸으로 노는 모습이 재미있어 한참을 쳐다본 기억이 난다.

나는 예전부터 무언가에 빨려드는 삶이 좋았다. 리듬이나 집중이 없이 매일 그 날이 그 날 같은 평범한 삶에는 끌리지 않았다. 그 무엇인가가 반드시 대단할 필요는 없었다. 아들이 어렸을 때, 자동차, 로봇, 레고로 이어지며 장난감에 빠져드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식이다. 반면 딸은 그런 몰입을 보여주지 않아서 서운했다. 나는 지금도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삶이 좋다.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질 때 그 때부터 늙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히 나는 자기 세계에 푹 빠져서 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신화가 우리 삶을 읽는 아주 좋은 도구라는 것을 알게 해준 조지프 켐벨 부터 영원한 딴따라임을 자처하는 박진영 까지, 확대된 꽃그림으로 새로운 관능의 세계를 열어준 조지아 오키프에서 고양이 한 마리로 자기 세계를 구축한 권윤주 까지 모두 그렇다. 그들처럼 이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삶을 위해 누구나 무조건 몰두하는 영역이 있기를 바란다. 스스로 즐길 거리를 찾는 것, 나아가 그것을 가지고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요 성공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에도 즐길 락樂자를 넣었다.

나는 이제 겨우 글쓰기에 입문한 처지이지만, 자기 영역을 완전히 숙달하여 갖고 노는 사람을 보는 것은 즐겁다. 오늘 읽은 책의 두 저자는 지식을 가지고 제대로 놀고 있었다.


1989년에 출간된 ‘인간을 넘어서’라는 책으로, 마흔의 우에노 치즈코와  예순의 나카무라 유지로의 왕복서간을 묶어 펴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공인 철학과 사회학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는데, 어찌나 박식하고 자유로운지 이 사람들이 대학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카무라가 슬쩍 튕겨주면 우에노가 뒤질세라 받아넘기며 일갈한다. 나의 도발을 유도하니, 제대로 넘어가 드리지요~~ 하는 식이다.


자신이 던진 공을 덥석 물고 마치 퍼포먼스라도 하듯 화려한 박력을 보여주는 우에노에게 나카무라 역시 솔직하고 정중하게 반응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상대가 얼마나 들을 줄 아느냐에 달려있다더니, 두 사람의 표현 영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깊어지고 섬세해진다. 학문과 인생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의 이면에 수줍은 듯 감춰놓은 속내를 놓치지 않고 다시 자기 식으로 읽어서 되쏘아주는 두 사람! 그들은 편지를 통해 최고 수준의 소통을 경험한다. 탱고가 5분간의 연애라더니 문예잡지에 연재하는 왕복서간을 통해 2년간 지적 연애를 하는 것 같았다. 내 모든 것을 토해내도 이해해 줄 사람은 적절한 거리를 갖고 있어 더욱 매혹적이다. 게다가 익명의 관객을 앞에 놓고 오픈된 게임이라는 것이 이들을 더욱 흥분시키지 않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연재당시 그들의 왕복서간은 ‘러브레터’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이들의 대화에 나오는 인간군상이나 사회학적 고찰도 재미있었지만, 나는 이들의 지적 게임에 매료되었다. 지식과 경륜을 가지고 밀고 당기기를 하며 즐기는 고수들에게서는 굳이 성별과 나이를 따질 일이 없었다. 젊고 늙었다거나,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이 필요 없는 어디쯤에 이들이 가 있는 것 같았다. 비로소 책 제목이 이해가 되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고양이가 공을 갖고 놀듯이 나의 도구를 손바닥 안에 갖고 놀고 싶다. 내 영역에서는 무엇을 찔러도 대답이 나오며, 수십 가지 모양으로 변형시킬 수도 있으며, 푸르른 창공으로 날아오르거나 천 길 땅 속으로 흐르듯 자유롭고 싶다. 다른 지류들과 합류하여 마침내 넓은 바다에 이를 때까지 ‘나’라는 존재를 가지고 마냥 놀고 싶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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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난해 말, 2009년의 사자성어로 미탄님이 내놓으셨던 '천의무봉'이.. 문득 생각났어요.
    천의무봉. 어찌보면 바느질이란 것도 하나의 걸림.
    그 걸림을 넘어서는 매끈한 자유로움이 참으로 누려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그를 닮고 싶게 하지요.
    닮고 싶은 사람이 많은 사람..은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일 것도 같습니다.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는 힘까지 있다면 그 자신도 금세 아름다워지겠지요.
    미탄님은 곧 바라시는데로 될것 같아요.
    (이미 되셨을지도.. '길을 찾는 사람 그 자신이 새 길이다'란 말도 있듯이)

    새봄, 추위견딘 새 잎들처럼 푸르게 솟아오르시길 빕니다.
    ^^

    2009.03.13 21: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천의무봉 - 걸림이 없는 매끈한 자유로움!
      확실한 풀어쓰기가 눈에 쏙 들어오네요.
      그것이 무엇이든 송두리채 파악하고 있다면 완연한 내 말로 풀어쓸 수 있겠지요. 그래서 신영복님이 "깊어지지 않으면 쉬워질 수 없다"고 하실 걸꺼구요.

      닮고 싶은 사람이 많은 사람은 꿈을 잃지않는 사람이라는 말에도 크게 공감합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을 때 누가 부러운지 찾아보라는 말이 있듯이요.

      "길을 찾는 사람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이 말을 다시 똑순맘에게 드립니다.

      2009.03.15 06:08 [ ADDR : EDIT/ DEL ]

좋은 책/놀이2008. 1. 14. 18:40
 이원복,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김영사 2007

이원복교수가 와인에 대한 만화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배가 아팠다. 그의 전작, ‘먼 나라, 이웃나라’가 1300만 부가 팔렸다든가. 말이 1300만 부이지, 남한의 거의 전 세대가 구입을 했다는 소리이다. 애들이 어렸을 때 나도 샀으니 말이다. 최근 예사롭지 않은 와인열풍과 이원복교수의 브랜드파워에 힘입어, 이 책이 빅히트칠 것은 불보듯 뻔한 일, 그런데 나도 이 책을 샀다.


요즘 조금씩 와인이 좋아지고 있어, 내 입맛에 맞는 와인 종류 정도는 알아두어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인데다, 서문에서 밝힌 저자의 입장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와인을 공부하는 거야 얼마든지 좋다. 하지만 와인에 대한 지식을 무슨 교양의 잣대처럼 내세우거나 보통사람은 평생 한 번 마셔보기도 어려운 샤토 이름을 외우는 데 몰두하는 행태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한국에 와서 보고 놀란 어느 프랑스 와인업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입이 아니라 머리로 와인을 마시는 것 같다. 인간이 와인을 마시는 게 아니라, 와인이 인간을 마시는 것 같다.’

이는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왜 내 기호대로 당당하게 와인을 고르고 거리낌없이 평가하지 못하는가? 와인은 어디까지나 와인일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어느 인터뷰에서 저자는 자신의 작품이 ‘자료와의 한 판 승부’라고 밝히고 있다. 원래 한 권으로 기획된 와인에 대한 만화도, 자료가 넘쳐 두 권으로 늘렸다고 한다. 저자의 안목과 수집력을 믿는 마음, 이것이 브랜드파워이리라.


일단 브랜드파워가 형성되면, 그 다음부터는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게 된다고 하던가,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책은 나쁘지 않았다. 저자는 와인에 대한 지나친 숭배가 서구문화에 대한 경배가 아닌가 경고하고 있지만, 와인은 서구의 문화일뿐만 아니라 정치와 종교와 한몸이었다.


1812년 나폴레옹이 6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군수품 중에는 2,800만 병에 해당하는 와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장에서는 믿을 수 없는 식수대신이요, 사기를 돋워주는 활력소요, 부상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마취제였던 것이다. 와인은 총탄 다음으로 중요한 보급물품이었다!


와인은 기독교의 전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수도자들은 우선 스스로 즐기기 위해 와인산업에 종사하였으며, 십자군전쟁시에는 출전하는 기사들이 자신의 땅을 기증하고 떠나는 바람에 가장 큰 와인 생산자는 교회이기도 했다.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어딜 가나 포도나무부터 심었다. 무엇보다 와인생산이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같은 면적에 곡물을 재배해 파는 것보다 이윤이 3~40배나 더 남았으니, 누군들 와인생산에 달려들지 않았으랴!


나는 이 부분에서 또 배가 아프다. 우리나라 농업도 존폐일로에 달려있고, 포도주 생산에 진력함직도 하건만, 소비자들은 단연코 수입와인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와인이 비싸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 과정에서 와인수입업자나 와인바로 대박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기회를 발견한 자에게 복이 있으리니, 기회를 발견하지 못한 자의 선망이 그들의 것이로다! ^^


이 책에는 와인의 본산 보르도 지방의 그랑 크뤼 제도를 비롯해서 많은 와인상식이 실려있지만, 내 구미를 끈 것은 이런 것이다. 1976년 미국 독립선언 200주년을 기념해 파리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와인을 비교하는 시음회가 열렸다. 프랑스와 미국의 와인 라벨을 감춘 채 맛보기로 한 것이다. 이른바 블라인드 테이스팅!  시음회의 결과는 놀라웠다. 최고의 레드와인은 미국 캘리포니아 내파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 제품이었고, 최고의 화이트와인 역시 캘리포니아 샤르도네 품종 제품이 선정된 것이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다. 와인에 대해 기본상식은 갖추되, 와인에서조차 우리 나라 특유의 냄비근성과 유행병을 양산하지는 말자는 것. 예를 들어 ‘테루아’라는 관점이 있다. 테루아는 와인을 생산하는 데 객관적인 자연조건을 말한다. 기후와 일조량, 토양, 토질, 습도... 등을 들 수 있다. 당연히 포도밭마다 테루아가 다르다. 심지어 부르고뉴의 포도원은 10미터만 떨어져 있어도 포도의 질이 달라진다. 프랑스사람들은 프랑스와인만이 진정한 테루아와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와인업계의 마케팅개념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 예로 1990년 보르도에서 생산된 100가지 와인을 비교한 적이 있는데, 결론은 와인맛을 결정하는 것은 테루아가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양조기술이라는 것이었다. 와인이 수확되어 주조된 연도를 나타내는 ‘빈티지’역시 마찬가지이다. 와인애호가를 위해 발행되는 ‘빈티지차트’가 있을 정도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테루아' '빈티지'에 목매지 마라~~, 품질에 비해 억수로 돈을 쓰지 마라~~ 이다. 기술이 놀랍게 발달되어 언제나 품질 좋은 와인을 생산할 수 있으므로 빈티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와인은 엄청난 시장성을 가질 것이다. 단지 취하고 싶어 마시는 쓰디쓴 소주와, 뱃살에 위협적인 맥주와 달리, 와인은 마시는 과정 자체가 우아하고, 동맥경화도 방지해주는 웰빙음료이기 때문이다. 담배에 불을 붙여 입까지 가져오는 순간이 위로가 되듯, 와인도 따르는 동작에서부터 이야기를 품고 있다. 레드와인이 적당히 담긴, 배가 불룩 나온 글라스를 부딪칠 때 챙그랑~~ 하고나는 소리, 입 안에 오래도록 남는 향기, 와인 한 잔에 남아있는 문화사적 가치, 와인은 그 자체가 스토리텔링 제품이다.


나도 내 입맛에 맞는 단 하나의 와인을 만나고 싶다. 내 집처럼 편안한 와인바에서, 합리적인 소믈리에가 권하는 와인을 마시며,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환담하고 싶다.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도 좋겠지만,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배우며 기꺼이 즐거워하고 싶다. 나아가 지식을 공동생산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내가 꿈꾸는 모든 장면에 와인이 있다. 하지만 이원복교수처럼, 와인의 전문가가 아닌 와인의 애호가로 족하다. 와인에 대한 상식은 많이 없어도, 와인을 즐기는 마니아가 되고싶다. 불현듯 와인 한 잔이 하고 싶다.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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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종윤

    한선생님~ 안녕하시죠? 매번 블로그에 들어와서 글 읽으면서도 변변히 댓글 한 번 못 남겼습니다. 죄송해요. 한동안 같이 사는 사람하고 홀짝홀짝 와인을 즐겼는데, 연구원하면서 유세떠느라 그 재미도 잊고 살았네요. 이 곳에 오면 매번 읽고 싶은 책이 늘어 고민이었는데, 오늘은 먹고 싶은 것이 늘어서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2008.01.15 09:35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종윤씨, 가장역할까지 '쓰리잡스' 생활에 바쁘지요? 송년회 때 팥죽 감동이었어요. 작은 일에 최선을 다 하여 주변사람을 감동시키는 일, 살아보니 성공의 요체이던데, 종윤씨 가족이 그걸 실천하고 있더라구요. ^^

      첫 번 째 번역이 '사상서'라 만만치 않을듯도 싶은데, 종윤씨를 크게 키우려는 누군가의 섭리라고 생각하면 좋을듯하네요.

      2008.01.15 14:30 [ ADDR : EDIT/ DEL ]

좋은 책/놀이2007. 12. 11. 15:49
 

빌 브라이슨, 나를 부르는 숲, 홍은택 옮김, 동아일보사, 2002


어젯밤에 갑자기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 세상과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이 사막이나 우주 한 복판에 나 혼자 내팽개쳐진 느낌, 무엇으로도 ‘나’라고 하는 존재를 확신할 수 없는 블랙홀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순간적으로 너무 절박하고 강력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아서 이 상태가 일정 기간 계속된다면 미치지 않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다행히도 곧바로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 순간이 내게 준 교훈은 대단했다.


아, 내가 이처럼 뒤늦게 깨닫는 ‘절대적인 고립감과 무력감’을 보통 사람들은 일찍부터 수시로 느끼나보구나. 그래서 그토록 인정과 소속에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는 거였구나. 딱히 관계뿐이 아니라, 예술과 스포츠 같은 모든 자기초월적인 행위의 동기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살아있다는 느낌, 나라고 하는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한 절박한 몸짓들이 아닐까. 그렇지! 지금 막 읽은 ‘나를 부르는 숲’의 등반도 그 중의 하나일꺼고.


가슴벅차게 살아있다는 희열을 맛보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사회가 용인하는 행위에 몰입하는거고,  어떤 사람들은 약물, 도벽, 인터넷, 쇼핑처럼 부정적인 중독까지도 가는 거구나. 심지어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 습관적으로 자해를 일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칼로 자기 팔을 긋는 순간 솟아오르는 새빨간 피를 보며 존재감을 확인한다는 것.


우리의 주인공 빌 브라이슨은 3,520km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선택했다. 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마을 끝에서 숲으로 사라져 가는 길을 발견한 순간 떠오른 생각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은밀하고 복합적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우리의 잠재의식은 아주 작은 단서로도 불쑥 현재화되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택은 실행에 비해서는 아주 쉬운 일이 아닌가.


매년 3, 4월에 2,000여 명의 등산객이 스프링어에서 캐터딘을 향해 출발하나, 종주에 성공하는 사람은 10%도 안 된다. 반은 전체 길이의 1/3도 안 되는 버지니아 주 중부까지도 못 간다. 1/4은 코앞의 노스캐롤라이나 주 까지도 못 간다. 무엇보다 20%가 등반 첫 주에 포기하고 만다. 어떤 사람은 불과 사흘 만에 등반을 포기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비싼 등산 장비를 갖가지로 구입하고선 등산을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아내의 강권에 못이겨 쫓겨왔다. 그는 사흘 뒤에 또 다시 등반을 포기했다.

“부인한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 걱정하는 주변사람에게 그는 대답했다. 이번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브라이슨은 1,392km를 주파했다. 전체 트레일의 39.5%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준비과정에서 허풍떤 것처럼 곰을 만난 것도 아니다. 겨우 순한 사슴 한 마리를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의 문장은 실제로 곰을 만난 것보다 더 박진감있고 흡입력이 있고 재미있다. ‘바라옵건대 멀찍이, 바람이 불어가는 쪽에서, 그리고 곰은 나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 만약 우리를 보고 다가온다면 카츠에게만 배타적으로 흥미를 느낀다는 조건’으로 곰을 만나고 싶어하는 식이다.


샘물가에서 말코손바닥사슴과 맞닥뜨린 장면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원주민 처녀라도 만난 듯 싶은가보다. ^^

‘완전히 성장한 암컷 같았다. 물을 마시러 왔다가 나를 의식하고 물가까지 오지 못한 채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 우리는 한참 서로를 마주봤는데, 서로 어떻게 할지 몰랐다. 이것이 분명 모험의 참맛이다. 또 훨씬 겸손하고 소박한 뭔가가 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시선을 맞추고 있는 데서 오는 존경스러운 상호 인정이 아니었을까.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한 터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지만 그놈은 조심스럽게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 나는 매혹됐다.’


주로 책 내용은 덩치크고 굼뜨고 투덜대기 좋아하는 친구 카츠, 그리고 산행에서 부딪치는 엉뚱한 동반자들과의 에피소드이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물에 빠지고, 예의없는 등반객들에게 똥침주고, 대피소를 만나 환호하는 그런 이야기들.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서 생각이 나온다고 했던가. 그들 역시 산행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숲의 아름다움과 거대함에 대한 경외심은 자연보존에 대한 정책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자발적인 고난과 격리는 일상생활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코카콜라 한 잔에 넋이 나가고, 흰 빵으로 거의 오르가즘을 느끼게 되는 식이다. 섬세한 브라이슨 뿐만 아니라 카트조차 문명세계의 천박함을 깨닫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광할하고 온전하며, 그 자체가 살아있어 방향을 알 수 없도록 만드는 숲... 그래서 혼란스럽고 두렵지만, 동시에 무한하고 온전한 우주인 숲만 보다가 다시 접한 현실의 세계, 즉 주유소와 월마트, 던킨 도넛츠,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 끔찍한 상업적 세계의 끝없는 현란함을 흉측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초원 크기만한 주차장이 딸린 쇼핑 몰을 바라보며 , 함부로 동시에 오줌을 갈긴다.


뛰어난 등반가의 영웅담이기 보다는, 이웃집 아저씨의 좌충우돌 산행기에 가까운 이 책은, 브라이슨의 뛰어난 입담과 감수성, 사회의식으로 해서 좋은 기행문학이 되었다. 2부의 이론적인 부분을 꼼꼼하게 읽지는 못했다. 저체온증과 나무에 대한 지식까지는 재미있었지만, 미국의 자연보호정책에 대한 비판까지 읽을 정도로 학구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자인 홍은택에게 관심이 간다. 그는 유학중에 우연히 부딪친 애팔래치아 등반객에게서 도발된 모험에의 꿈을, 이 책의 번역으로 풀며 달래다가, 기어이 자전거로 아메리카를 횡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에 관심이 없어서 읽지 않고 있던 그의 책도 읽어봐야겠다. 나도 도보여행에는 은근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데, 내 수준에서의 모험을 부추길지도 모른다. 이미 절반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좋은 책은 전염성이 강하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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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놀이2007. 11. 8. 09:02
이왕주, 쾌락의 옹호, 문학과 지성사, 2001


부산대학교 윤리학과 이왕주교수의 책 ‘쾌락의 옹호’는 산문의 맛을 일깨워주었다. 신문에 연재된 글모음이어서 그런지 적당한 길이에 경쾌하면서도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그의 글에 한없이 빨려들어간다.


두껍지 않은 책 속에 한 인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드시 수동분쇄기에 원두커피를 직접 갈아 마시는 남자, 그 정도의 손놀림을 통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단다. 커피를 마실 때면 방문을 걸어잠그는 남자, 커피의 향을 음미하는 일에 순수하게 집중하기 위해서. 출근하는 길이 일곱 개가 넘는 남자, 소소한 다양성을 통해 일상의 변주를 즐기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겨우 10분이 더 걸린다는 이유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그는 택한다. 그렇게 해서 빨리 도착한 10분덕분에 삶의 역사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쯤이면 그가 말하는 ‘쾌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작더라도 내 잔으로 커피를 마시듯, 고른 호흡으로 삶의 모든 향기를 놓치지 않고 마시며 사는 것을 말한다. 축구의 목표가 골대가 아니고, 삶의 목표가 잘 나가는 것이 아니듯,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가장 지혜로운 생의 목표는 진정한 쾌락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쾌락’에 복잡한 연막을 치고싶은 생각은 없다. 당신과 내가 본성적으로 이해하는 단순한 말이며 일상의 작은 체험들로써도 쉽게 확인해낼 수 있는 언어다. 고도의 지적인 쾌락, 예술적 감동뿐 아니라 온 몸의 말초 신경계까지 전율시키는 성적 쾌락, 혀로써 전해지는 미각의 쾌락,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는 감각의 쾌락 등등. 이것들이 본능적이고 동물적이라는 이유로 자존심 상해 하는 사람들... 쾌락에 우열의 차이는 없다. 오직 종류의 차이만이 있다.


아이들이 포충망으로 나비를 잡듯이 나는 내 감각의 그물로 온갖 쾌락들을 건져올리려 안간힘을 쓴다. 익숙한 일상의 공간에서조차 내 쾌락의 포충망은 숱한 목표물들을 겨냥하느라 바쁘다. 여인의 아름다운 미소, 살갗을 스치는 신선한 바람, 쏟아지는 햇빛, 싱그러운 젊은 웃음 소리, 쇼윈도에서 빛나는 상품들, 도시 빌딩숲 사이에 엉뚱한 푸르름으로 서 있는 유실수들. 짧은 길을 걸을 때조차 내 몸은 이런 모든 것들 안에 깃들인 즐거움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팽팽한 긴장 상태로 들어서는 것이다. 나는 유죄인가. 그 평결 따위에는 관심 없다. 살과 뼈의 육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 나는 그것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들을 철저히 누리고 싶을 뿐이다.”  69쪽 ~ 71쪽


근엄한 대학가에 자리잡기에는, 지나치게 솔직하여 좌충우돌하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과연 그는 화를 잘 내는 것이 자신의 단점이며, 그로 인해 많은 인간관계를 놓치기도 했다고 술회한다. 심한 말다툼이나 혹독한 나무람으로 죽마고우와 오랜 제자를 잃은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는 자신의 성정을 고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분노 때문에 사람을 잃은 것이 아니라, 허망한 관계 속에서 허우적거릴 나를 되찾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도 예민한 감성과 범람하는 열정을 과시하는 그가 누리는 최대의 쾌락은, 철학도로서 혹은 교수로서 연구하고 강의하는 ‘지적 쾌락’이리라 짐작된다. 너무나 쉽고 매끄럽게 읽히는 그의 글 이면에는, 거대한 빙산과 같은 공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책상물림 철학교수의 허장성세가 없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열려있는 천진난만함, 청명한 날씨에는 잔디밭에 앉아 수업을 하고, 지리산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논문을 쓰는 로맨틱함, 흙이 되기 전에 이미 흙처럼 살기를 거부하고, 뼈와 살을 가진 인간답게 치는대로 소리가 나는 솔직함, 그가 책 전반을 통해 펼쳐놓는 라이프스타일을 따라가고 싶어진다.


그는 말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쾌락에조차 공짜는 없다고 한다. 내가 그것을 위해 고통을 받고 수고로움을 입는 만큼 즐길 수 있고, 소중한 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가르쳐주는대로, 무엇으로 이 좋은 계절을 음미해볼까 궁리하다가 도보여행을 떠올린다. ‘전국의 걷기좋은 길 52군데’... 이런 책을 주문한다. 살아있는 매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각자가 선택할 일이지만, 파피용이 탈출을 결심한 순간을 떠올려도 좋겠다. 이미 감탄할 일이 사라진 일상의 감옥에 갇혀있다면 말이다.


죄없이 누명을 쓰고 중죄수들만 수감하는 절해고도의 감옥에 갇히게 된 파피용이 어느 날 꾼 꿈의 장면. 천상의 신 앞에서 재판을 받게된 그가 자신의 무죄를 강변하는데, 보이지 않는 판관의 판결은 이런 것이었다.
“너는 유죄다. 죄없이 그렇게 갇혀있으면서도 시간을 낭비하는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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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놀이2007. 10. 14. 09:03
박영택 , “ 미술전시장 가는 날 ”

뜰에서 붉은 장미 네 송이와 노란 창포 두 송이, 창포 칼잎 여섯 잎을 따서 유리컵에 꽂는다. 장미가 빠른 속도로 벙그는 것을 보려고 유리컵을 들고 다닌다. 컴퓨터 앞에서 사무실 책상으로, 사무실 책상에서 침대 앞으로.

할 수 있으면 저걸 좀 그려보고 싶어진다. 4B연필로 시도해 본다. 그리고는 이내 깨닫는다. 꼼꼼하고 성의있게 시간을 투자해서 잘 그릴 생각보다는 빨리 끝낼 생각이 앞서는거다. 시인 김영태나 이제하가 그리는 시인들의 캐리커츄어나 상뻬 식의 스케치를 아주 좋아해서, 가끔은 직접 그려보고 싶다는 욕구가 이는데, 훈련한 적이 없으므로 소출이 있을리 없다. 언제나 끈기없는 성격이 문제이다. 이 급한 성격에는 사진이 더 나을 것같다는 결론에 도달. 빠른 시간에 어쨌든 사진은 한 장 나오잖아?

요즘 ‘이미지’가 자꾸 땡겨서 체계적으로 접근해 볼 생각에 입문서를 하나 골랐다. 박영택의 “미술전시장 가는 날”, 결과는 대만족이다. 인사동과 사간동에서 저자가 추천하는 미술관을 소개하고, 그 미술관에서 저자가 의미있게 본 전시에 대해 평론하는 형식인데, 입문서와 전문서의 성격을 겸했다고 할까. 미술관의 약도는 물론, 카페와 밥집까지 소개되어 있어 인사동과 사간동을 속속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는 한편, 미술계의 모든 이슈가 총망라되어 있다.

미술은 ‘물질’을 빌려 관념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미술의 몸을 빌려 정신과 마음의 사유를 드러내고 반성하는 일이다. 결국 작업에는 사회와 역사 속에 포함된 나의 존재와 인간의 생명이 진화되어온 모든 시간이 농축된다.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20쪽
작가는 살아나가기 위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의미에 도취한 이들이다. 자족적인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자기를 정당화하거나 믿고 싶어하는 우리네 일상과 마찬가지로 많은 작가들이 자기의 의미를 강변한다. 그 절실한 의미부여와 내가 만날 때, 우리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주제를 지나치게 강변하지 않되, 우리들 삶의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한 개인의 고유한 감성과 기질아래 뿜어져나오는 화풍을 보는 일이 그림감상의 포인트이다. 59쪽

나는 박영택의 눈을 빌려, 많은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주로 한 편의 작품을 소개하고, 박영택이 평론하는 형식이지만, 평론을 읽기 전에 작품만 보아도 우선 좋았고, 그 다음에 평론을 읽으면 그 작품이 갖는 시공간적인 의미를 깨닫게 되어 더욱 좋았다. 문학작가에 못지않게 다양한 시선과 방법을 지닌 미술작가들이 거기에 있었다. 비교적 문학작품에는 익숙해져 있었던 탓인지, 회화나 사진 조각같은 작품에 내포된 철학적인 의미와 방법적인 다양함과 시도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우순옥이라는 작가는 어느 한옥집을 전시작품으로 변모시킨 ‘한옥 프로젝트’를 보여주었다. 한옥의 방안 창을 개조해 인왕산과 경복궁이 한 눈에 쏘옥 들어오는 기막힌 조망의 시선을 관자에게 선사했다고만 소개되어 있어, 다른 내용에 대해서 궁금하다.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는 1953년에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는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게 되었다. 아내와 어린 자녀 둘을 데리고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작가는 유럽인의 시선으로 미국을 바라보았고 2년에 걸쳐 2만 8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 중 83장을 묶어 <미국인들>이라는 사진집을 펴냈는데. 이는 어떤 사회사적 연구나 인류학적 객관보다 미국 사회의 인종적, 사회적 분리를 관찰해낸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인들의 삶의 공간에 유령처럼 버티고 있는 미국의 국기들, 선술집이나 가정집의 식탁에서 혼자 마냥 돌아가는 텔레비전 화면들...2차대전 후의 단절되고 무의미한 시간을 살아가는 침울한 권태와 절망....이 담겨있단다.

젊은 동양화가 박윤영도 매력적이다. 박윤영은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천진난만한 영민함을 가지고 동양화 전통을 갖고 혼자 놀고 있다고. 에비앙 생수의 로고를 수묵으로 그려놓고 ‘에비앙 산수’라 이름짓거나, 실종된 소녀들이 낮에는 백조가 되었다가 밤에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겹쳐 놓는 식의 유쾌한 낯섬으로 컬트영화의 팬과 같은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이 책에서 접한 대전 지역화가 김동유<41>의 작품 <마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이 28일 홍공 크리스티 경매에서 3억 2300만원에 낙찰되었다는 기사가 아침신문에 실렸다. 생존작가중 최고가이거니와, 한국미술이 본격적으로 국제경매에 진출한 지 2년도 안되었는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청바지를 잘라 붙여 우리의 전형적 마을 풍경을 만드는 젊은 작가 최소영<26>의 <광안교>는 1억 9500만원.

앞으로 인사동을 가게될 때 든든한 지침서를 갖게되어 뿌듯하거니와, 그 어떤 작가보다도 이 책의 저자 박영택을 발견한 것이 기쁘다. 박영택은 박수근의 그림 속에 납작하게 들어와 앉은 빈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림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해 준 것은 ‘향장’이나 ‘쥬단학’같은 화장품 선전책자였다. 한독약품에서 나온 ‘홈닥터’라는 조그만 소책자와 달력에 실린 그림이 그에겐 중요한 도판이고 화집이었다고 한다. 나역시 삼성생명에서 나온 달력에서 이왈종과 팝아트를 접하고 버리기 아까워 두고 있는데, 미술의 대중화에 달력이 좀 더 개발되어도 좋겠구나.

미술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되어 고1 때는 고궁이 쉬는 날을 빼고는 거의 매일 향원정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심지어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그림을 그렸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그를 휘감았고, 그 때의 열정으로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미술평론가 겸 경기대 미술학부 교수로 있다. 타인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되, 스스로 향기와 그늘을 주는 꽃나무처럼, 확실히 그의 문체는 식물성이다. 맑고 깨끗하다. 신뢰가 간다. 스스로 이런 자신을 잘 알아 <식물성의 사유>라는 책을 펴내고 기획전도 한 적이 있다.

그는 네이비블루를 좋아한다.
“맘에 쏙 와닿는 청색계열의 색상을 지닌, 적당히 빛바랜 사물들을 소유하면서 그것들과 함께 조용히 세월을 견뎌내고 싶다. 알 수 없이 생겨난 감각에 이끌려 기꺼이 삶을 소모시키는 내게, 그러므로 생의 목표란 존재한 적이 없다. 아니 생각해본 적도 없다. 있다면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기호와 감각에 이끌려 그런 사물과 이미지를 보면서, 따라다니면서 내 삶을 끌고 갈 뿐이다. 이미지를 보는 일, 마음에 드는 색상으로 뒤덮인 사물들의 목록과 그 육체를 보듬는 일, 감각이 말려드는 공간에서 게으르게 책을 보는 일이 생의 유일한 관심이다.” 47쪽

나도 블루를 좋아한다. 해가 지고 차츰 어두워지기 전까지의 하늘색깔, 정확한 이름을 무어라 할 지 몰라 때로 암청빛이라 하고, 때로 코발트블루라 칭했던 그 색깔.
나도 박영택의 라이프스타일을 지지한다. 일 주일에 4일은 조금은 역동적으로 변화와 관계에 몰입하되, 나머지 3일을 그처럼 지내지 못한다면 나는 아마 견디지 못할 것이다.
4대 3의 황금의 비율을 구현하기 위해 오늘 나는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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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요즘 권해드리고 싶은 책은 크리스토퍼 앙드레의 '행복을 주는그림'하고 공주형씨의 '아이와 함께한 그림'이 좋을것 같군요

    저도 이런 잔잔한 글이 쓰고 싶은데 제 능력 밖이라 그냥 날글이나끄적입니다.

    좋은 블로그 만드시길 바랍니다..

    2007.10.14 09: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아아~~
    하하하~~
    블로그 만든지 한 시간 만에 첫 방문객이십니다요.
    아, 신기하다.
    권해주신 책 꼭 살펴볼게요. ^^

    2007.10.14 09: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좋은 책/놀이2007. 10. 14. 09:01
김광우/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 미술문화 /2003

우리동네 도서관은 현대식 새건물이라 널찍하고 부대시설이 좋아보이는데, 서고는 그다지 넓지않다. 여성학, 심리학 등 한 분야에 할애된 책꽂이가 1개에서 4개정도라 아주 만만하다. 나의 레이더에 무언가 걸려들기를 바라면서, 서가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는다. 그러면서 역시 책의 제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의외로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제목이 많다. 그리고 전혀 이끌림이 없는 제목도 너무 많다.

오늘은 문득 건축, 미술쪽 책이 보고싶었다. 그림이 보고 싶었다. 서가를 훑어보는데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그림으로 확 쏠리는 느낌이 든다. 이건 뭐지? 내가 아름다움에 목이 말랐나? 별로 아는 화가가 없으므로, 사실주의는 심심해서 빼고, 고흐는 너무 흔해서 빼고,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라는 책을 골랐다. 세 화가별로 한 가지 그림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 - 해골같은 얼굴이 그야말로 절규하고 있는 그림, 쉴레의 선병질적인 자화상을 처음 보았을 때 조금 놀랐다. 아주 예민하고 고달픈 자의식이 그대로 살아있는 그림이었다. 퀭한 눈이 뭐라고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현란한 모자이크로 치장된 클림트의 그림은 판넬가게의 단골이 아니든가.

“예술은 모방이다”의 전통주의를 부정하는 모더니즘 계열에는 많은 미술운동이 발생했다. 상징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 다다주의, 초현실주의, 팝아트... 이루 셀 수 없이 다양한 사조가 출현하였다. 마티스가, “회화는 결국 표현이다”라고 말한 것은, 회화란 눈으로 본 것을 눈에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낀 것을 마음에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뜻이었다. 이처럼 표현을 강조한 마티스는 야수주의 운동을 전개했고, 이는 프랑스 표현주의의 기초가 된다.

표현주의는 회화나 조각을 시각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고의 문제로 본다. 그들은 가시적 세계를 정신의 세계로 전환시키기 시작했다. 자연의 색을 거부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색으로 대신하면서, 과장과 생략을 통해 관람자의 시각과 판단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표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마티스지만, 표현주의 그림을 먼저 그린 사람은 뭉크이다.

뭉크처럼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착한 화가는 드물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잃었으며, 자신도 병에 시달린 뭉크는 끊임없이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고, 이런 의식이 그대로 그림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과 병마가 없었더라면 내 인생은 키 없는 배와 같았을 것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그가 짊어진 공포와 병의 위협은 그림의 모티프가 되어준 동시에, 그를 존재하게 한 이유가 된 것같다.

뭉크의 그림에는 번뇌하고 괴로워하는 자화상,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여자에 대한 증오와 강박관념 같은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있다. 그가 말했듯, 그는 작품을 통해서 자신과 가장 친밀한 것, 자신의 영혼, 고통, 기쁨, 마음과 피를 제공하였다. 프로이트가 잠재의식의 자물쇠를 학문적으로 열기 전에, 이미 뭉크는 그러한 세계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알려준 셈이다.

클림트의 어떤 드로잉은 현대의 만화처럼 세련되거나 아주 은근하다. 그러나 그림들은 기법이 너무 똑같이 느껴져서 개인적으로 조금 식상하다.

그리고 에곤 쉴레,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자화상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처음 본 것은 “초롱꽃이 있는 자화상” 338page 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100편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다. 거울 앞에서 기기묘묘한 포즈를 취하는 그, 쉴레에게는 자기 자신이 가장 불가사의하고 탐색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였나보다. 또 쉴레는 지독하게 외설적인 그림도 많이 그렸다. 삐쩍 마르고 뼈마디가 툭툭 튀어나온 그림 속의 여자들은 하나도 에로틱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무표정한 가운데 이상한 슬픔을 건네준다.

그대신 나는 쉴레의 “이중 자화상”이 좋다. 330, 332page 역시 퀭한 눈으로 끊임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 기묘하게 꺾인 고개는 지극히 복합적인 내면과 동성애적인 뉴앙스까지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고루하지 않고 현대적이다. 만화나 상업적인 디자인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세련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가미된 음울한 자의식... 그것이 내가 쉴레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1918년 2월 6일 쉴레가 존경하던 클림트가 세상을 떠났다. 쉴레는 클림트의 마지막 침상에서 창백하고 홀쭉한 그의 얼굴을 드로잉했다. 화가는 우상의 죽음을 눈물로 애도하지 않는다. 그가 가진 도구로 추모한다. 쉴레의 드로잉은 죽어가는 클림트에게나 살아남은 쉴레에게 둘도없는 교감과 추앙의 행위이다. 예술가란 이처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진 존재이다. 아름다움의 생산에 목숨을 거는 부류이다. 나는 그들의 영혼이 부럽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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