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내 안에 해답이 있다'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07.11.06 욕망의 힘
  2. 2007.10.17 자기보살핌
  3. 2007.10.14 행복의 조건 - Flow
  4. 2007.10.14 내 입에 들어온 설탕같은 키스들
  5. 2007.10.14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빌리 파시니, 욕망의 힘, 에코리브르


‘욕망’이라는 단어처럼 불온한 취급을 받는 단어가 또 있을까. 지인 하나가 글을 쓸 때면 무조건 ‘욕망’ 앞에 ‘불온한’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웃은 일이 있다. 나는 ‘욕망’이라는 단어에서 삶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읽는다. 이제껏 황당할 정도로 일을 벌리며 살아온 나는, 평탄한 삶에서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지루함을 읽기 때문이다. 욕망이 없이는 삶도 없다.


한세상 살아낸 지금은 그렇다. 내가 나로서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기질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겠다.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는 한도 내에서라면, 누구나 생긴대로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기질을 결정하는 요인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양식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최고의 책이었다. 모녀관계, 연인관계, 부부관계의 기저에 흐르는 ‘다름’과 ‘욕망’의 지도를 볼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이론적이되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되 품위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남과 여’에 관한 대목이다. 이 책에는 남녀간의 미묘한 차이, 연령에 따른 부부관계의 추이, 부부 간의 소통과 함정 등이 다루어져 있다. 여자들은 사랑할 때 지나치게 사랑한다. 남자들이 과장된 성행위를 통해서 한계를 넘어선다면, 여자들은 감정적 영역에서 과잉의 상태에 놓인다. 나는 여자들이 이 부분을 잘 이해하고 반응한다면 불필요한 감정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가령 남자와의 감정적 일치에 대한 기대치를 줄인다든지, 남자들의 성적 욕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젊은 날의 부부는 강한 육체적 친밀감을 기반으로 통합되어 있다. 그러나 40대 정도가 되면, 나름의 자율성을 확립해야 관계가 유지된다. 제각기 다른 취향을 인정하고 서로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상호이해를 증진할 수 있는 시기이다. 나는 이 부분을 ‘적절한 거리’로 이해했다. 노년이 되면 부부는 다시 젊은 날처럼 새로운 친밀감의 욕구를 느끼게 된다. 건강과 고독에 대한 염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부가 연령별로 적절하게 변화하고 순응할 수 있다면, 보다 탄력있는 일상생활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 본다.


부부 간에는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문제가 된다. 친밀감이 결핍되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되지만, 과도한 친밀감 역시 욕망 충족에 커다란 위험요소가 되는 것이다. 결국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자치공간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연인 간에 에로티시즘이 어떤 경로를 통해 움직이는지 하는 문제도 재미있었다. 여자는 촉감에 민감하다, 남자는 시선에 더 비중을 둔다. 목소리는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난 관능적 기관이다. 대화의 내용보다도 음색, 톤, 끊어지는 호흡이 더 중요하다. 음식을 즐기는 연인은 언제나 얘깃거리가 풍부하여, 서로에 대해 굳이 욕망이 아닌 호기심이라도 날마다 새롭게 가질 수 있다. 수도승처럼 입고다니지 않는 한, 옷은 틀림없이 욕망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민망했던 것은, 자신의 열정을 제어할 줄 모르는 성향에 대한 분석이었다. ^^ 사람과의 만남이란 어떤 경우에도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상대와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단계에서는 능숙한 처신을 보여주지만, 완만한 시간의 흐름이 필요한 순간에는 정말 미숙한 면모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연애도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치게 앞서나가거나, 항상 직설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것은 역효과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은 언제나 달아나는 것에 이끌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줄곧 곁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감정의 포화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의 심리를 읽는 것은 재미있다. 이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관계증진에 도움이 될 지 아직은 모르겠다. 좋은 것을 따라가는 ‘욕망’은 또 다시 새로운 욕망의 가지치기를 해 줄 것이다. 나는 단지 내 마음을 따라간다. 나는 욕망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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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D 도마/헨리 드레허 지음, 자기보살핌, 한문화, 2002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세상에 달랑 혼자 내던져진 것같고, 주변에는 온통 내가 보살펴주어야 할 사람 뿐이고,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도 꼬이고, 한 마디로 말해서 사는 일이 ‘개떡같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그럴 때 다음과 같은 일을 해 보라고 시시콜콜 친절한 조언을 모아놓은 책이 있다.  어디 한 번 그 리스트를 보자.


- 해먹이나 푹신한 소파에 조용히 누워 기분이 상쾌해질 때까지 푹 쉰다.

-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거품 목욕제나 향기나는 오일을 풀어 넣은 욕조 목욕을 한다. 욕조 가장자리에는 촛불을 켜자. 오일을 이용하면 목욕이 일종의 아로마 요법이 될 수 있으므로 가장 편안한 감각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향을 고른다.

- 뜨거운 닭고기 수프나 상큼한 야채 수프를 마음 보살피기 상태에서 즐긴다.

- 피로, 두통, 집중력 저하 등과 같이 녹초가 되었음을 말해 주는 징후가 나타날 때마다 무조건 낮잠을 잔다.

- 배우자나 애인 혹은 친구에게 향기 나는 오일로 당신의 등을 문질러 달라고 부탁한다.

-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언이 나오는 비디오를 빌려다 본다.

- 자신의 몸을 마사지한다. 이마, 가슴,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부위의 두툼한 근육, 팔, 복부, 허벅지를 문지른다.

- 좋아하는 허브 티를 고른다. 머그 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당신의 목구멍과 뱃속을 따뜻하게 하는 차의 맛과 향을 느끼며 천천히 마신다. 쓸데없는 생각은 꺼 버리고, 오직 차를 마시는 간단한 행위의 연속적이고 우아한 움직임과 그 순간, 순간에만 집중한다.


마치 어린 아이를 돌보듯, 사랑하는 사람에게 베풀듯 자기 자신을 정성스럽게 보살피라는 지침이다. 맛있는 음식, 정신적 지지, 자신을 지켜주는 따뜻함, 유용한 도움, 현명한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에게 제공하라는 것이다. 왜 그래야만 할까? 모든 감정, 모든 관계의 기본은 자기표현, 자기사랑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기애가 있어야만 내 일을 주도해 나갈 수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이로부터 칭찬을 들으면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외부의 격려에서 아무런 동기부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므로 밑빠진 독과 같다.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기도 어렵거니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엔진없는 자동차와 같다.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끈 떨어진 연과 같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보살펴라. 그것은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바람직한 존재와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이다. 저자는 자기보살핌으로 심신을 치료하는 임상경험을 토대로 자기를 보살피는 방법에 대해 상세한 저술을 해 놓았다.


자기를 보살피는 방법을 크게 나누어보면, 이완과 명상, 부정적인 사고방식의 재구성, 신체보살피기, 글쓰기, 대화 대면하는 요령익히기, 기도, 체념 등이 있다. 이완과 명상은 ‘마음 바라보기’ 훈련이다. 모든 걱정과 불안, 두려움, 희망과 환상같은 생각을 벗어놓고, 조용히 앉아 호흡에만 집중한다. 들고나는 생각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리지 말고, 자신을 나무라지도 말고 서서히 호흡을 자각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그로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전념할 수 있는 능력, 현재에 머무는 능력을 터득할 수 있도록 훈련한다.


부정적인 생각의 재구성이란,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외부에 의해 주입된 부정적인 생각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한 두 번의 실수를 일반화해서 자신감이 없어졌다든지, 남들이 무심히 던진 부정적인 평가를 내면화해서,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것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긍정적이고 새로운 자아상을 갖게 된다.


예> 부정적인 생각: 나는 예술가가 될 자격이 없어

    재구성된 생각: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모차르트나 렘브란트처럼 하느님으로부터 비범한 재능을 부여받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에게 예술적 표현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내 자긍심이 낮았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했던 거야. 내게도 그림을 그릴 권리가 있어. 그리고 창조성을 개발시키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은 내 책임이야.


신체를 보살피는 요령에 대해서는 글의 앞부분에 자세한 예시를 들었다. 몸의 영혼!>을 숭배할 수 있는 행동이나 물건이라면 무엇이든지 그대에게 행동으로 옮겨주어라. 일상의 스트레스에 찌들려 잊혀진 감각적 자아를 보살피기 위해, 저자가 권하는 방법은 천천히 하는 것이다. 오감을 열어놓고 청량한 공기와 대지를 느끼며 천천히 산책하고, 미각을 개발하듯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내 몸의 독특한 관능적 특질을 탐색하며 천천히 섹스하라. 최종결과인 오르가즘에만 중시하지 말고 매순간 쾌락을 찾는 일에 집중하라.


또한 저자가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실행하는 방법으로 끈질기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글쓰기’이다. 내게 일어난 모든 사건과 감정을 글로 쓰라. 그럼으로써 슬픔과 불안과 분노를 흘려보내라. 누군가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에게 보낼 편지와 보내지 않을 편지를 나누어서 써 보라. 보낼 편지를 쓸 때는 정직하되 너무 자기 감정에 빠지지 말라.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당신의 입장과 감정을 분명히 밝혀라.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쓰면서 당신이 발산시키지 못한 분노와 원한의 어두운 면을 탐색하는 기회로 삼아라. 글로 씀으로써 당신은 감정을 내려놓게 된다. 과거에 덜 매달리게 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훨씬 자유롭게 된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자신을 보살핌으로써,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감각을 활짝 열고, 삶에 대한 왕성한 식욕을 되찾으라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을 스스로에게 해줌으로써, 모든 삶의 출발이 나 자신임을 명확하게 한다. 그런데 아주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까지 보이는 저자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체념’에 대해 이야기할 때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추구하며 저자는 말한다. 체념은 힘들지만 보람있는 기술이라고. 그것은 초점이 있는 항복이며, 포기가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다해 열심히 노력한 후에 보다 높은 권능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나는 이 부분에서 저자의 지혜에 탄복한다. 이러한 통찰 덕분에 저자의 자기보살핌이 더욱 빛난다. 인생을 살아가며 집중과 체념을 반복해, 의도적인 행동과 평온한 수용 간의 균형을 잡는 훈련을 하고 싶다.


이제 자기보살핌의 최종목표에 대해 말할 때가 되었다. 자기보살핌은 아주 커다랗고 완성된 그 무엇이다. 당신의 이미지, 당신의 소명, 당신의 운명을 찾아내라. 찾아내기만 하면 당신자신을 그 이미지와 조화시키고, 그 소명을 완수하고, 당신만의 운명을 실현시키는 일이야말로 자기보살핌의 극치이다. 어떤가, 아로마요법이나 발맛사지에서 시작해서, 이렇게 멋진 결론을 이끌어내다니, 정말 멋진 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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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목적적 경험 또는 플로우는 삶의 진로를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소외감은 참여로 바뀌고, 즐거움은 지루함을 대체한다. 또 무력함이 통제감으로 전환되며, 외적 목표를 수행하는 데 소비되었던 심리 에너지는 자아를 강화하는 데 쓰인다. 경험이 내적으로 보상을 받을 때 삶은 미래의 가상적 보상에 저당 잡히는 대신 현재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flow"에서 -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내 경우에는 20대에 농촌활동에 몰입했을 때, 하던 일을 확장했을 때, 李씨 성을 가진 누군가에게 빠져 있었을 때, 그리고 글쓰기에 몰두한 지금을 들 수 있습니다.


무엇엔가 혹은 누군가에게 몰입해 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잊어버립니다.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대상과 하나가 됩니다. 이럴 때 시간은 눈깜빡할 사이에 흘러가버리기도 하고 아예 정지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이 되는거지요.


무아無我의 경지, 잠시나마 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경험입니다. 이런 최적경험optimal experience 을 하고 나면 이미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관계없이 이들과의 상호작용에 모든 심리에너지를 몰입시키면, 이전에 개별적인 자아였을 때보다 훨씬 커다란 활동체계의 일부가 됩니다. 자아가 확장된 것이지요. 제대로 사랑을 하고나면 대박성장을 하게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런 몰입을 자주 할 수 있도록 의식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저절로 행복해지겠지요. 몰입을 하지 못하는 성격부터 이야기하자면, 선천적으로 주의력이 산만한 사람도 있답니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끊임없이 신경을 쓰는 과도한 자의식도 즐거움을 누리는 데에 장애가 되겠지요. 그 다음에 자기중심적 성격을 들 수 있는데요, 자기중심적 성격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잠시 몸이 굳었습니다. 오랫동안 내가 몸담아왔던 오류를 직시하는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무엇이든 사소한 것조차도 그것이 자신의 바람과 얼마나 일치되는가를 따져서 평가한다고 합니다. 완전히 자신의 목적에 맞추어 자의식이 구조화되어 있으며,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의식 안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지요. 언어와 기질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차단되는, 내 못된 습관이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로 해서 나의 경험과 관계망은 형편없이 축소되었지요.


반면에 최적경험 - flow를 자주 접하기 위해서는 자기목적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목적이라는 말은 사회가 주입시킨 목표가 아닌 스스로의 목표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미래의 이익에 대한 기대없이 행위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일 - 부모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나 훌륭한 시민으로 키우기 위해서가 아닌,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을 즐기기 때문에 교육하는 것, 사회적 성취에 따라오는 부와 명예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절박하고 즐겁기 때문에 행하는 모든 일들이 거기에 해당됩니다.


엄청나게 확대된 물질과 선택의 자유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는군요. 즐거움을 맛볼 기회가 많아졌지만, 기회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봅니다. 사회적인 통제나 문화적인 각본이 써주는 목표에서 벗어나 나의 내면을 따르는 일, 오감을 열고 대상과 합일하는 경험에 빠져보세요. 그것이 삶이 주는 참 보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시적인 쾌락에 빠지는 것은, 우리의 자아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쾌락과 즐거움의 차이는, 우리의 자아에 복합성을 추가하여 확장을 가져다주는가의 문제입니다. 지금 당신이 빠져있는 그 행위, 혹은 그 사람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잣대가 될듯합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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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살짝 놀라셨나요? ^^ 시인 김선우의 산문집 제목입니다. 주로 외국 시에 붙여쓴 사랑론인데요, 이 제목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서 따왔군요.


맹랑한 자의식, 화려한 언어, 균형잡힌 사회의식을 두루 갖춘 김선우의 세 번째 산문집입니다.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에서 ‘몸의 언어’로 새 지평을 연 저자가 마음먹고 사랑에 포문을 열었군요.


그녀는 단언합니다. 호모 파베르, 호모 루덴스, 호모 사피엔스 등 인간을 정의하는 숱한 학명들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호모 에로스라구요.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존재라는 거지요. 그게 전부라는 겁니다.


어차피 삶은 한바탕 난장이요, 내가 인지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긴 숨이니 상처받을까봐 두려워 움츠리지 말고 맘껏 사랑하라고 권합니다. 어디서도 구걸해본 일 없는 이들이 사랑을 구걸하게 되고, 어디서도 복종해보지 않은 이들이 스스로 그대의 종이 되겠노라 뜨거운 입술로 노래하게 하는 놀라운 힘- ‘정상적인 사람에게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주목의 상태’야말로 삶의 중심이라는거지요.


그러면서 김선우는 세상의 모든 사랑, 사랑의 단계와 오고감에 대해 언급하는데요, 가꾸고 변화시키지 못하면 사랑은 퇴색되고야 만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습니다. 더 이상 키워나가지 못하는 순간부터 사랑이 시들기 시작하는거지요. 사랑이 퇴색하여 더 이상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지 않을 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둔 감옥을 열어주라고 하네요.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가여울 뿐, 이별은 괜찮다고 하면서요. 내가 성숙하는 만큼 성숙한 관계가 새로 다가올 것이니까요.


김선우의 연애는 한 이성과의 관계로 좁혀지지 않습니다. 사랑의 힘이 그 모든 세계의 상처들로 자신을 확장시키고, 자신을 끝없이 창조시키지 못한다면, 그 사랑은 동굴로 처박히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칼 마르크스와 체 게바라를 사랑하고, 니체를 읽을 때마다 짜릿한 관음의 쾌감을 느끼며, 달라이 라마에게서 에로스를 느낀다는 김선우, 이 여름에 그녀의 열정을 훔쳐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휴가 떠나는 가방에 한 권 찔러넣으면 아주 어울릴 것같은 책입니다.



생텍쥐뻬리, “사랑이란 나의 안내로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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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메이데이 2006


저 도발적인 제목이 아니었다면 인터넷에서 이 책을 만나지 못할 뻔 했다. ‘혁명’이라는 말이 거슬리는가, 그렇다면 혁명 대신 다른 단어를 넣어보자.

내가 춤출 수 없다면 사랑이 아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평화가 아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발전이 아니다


누군가 관념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우리에게 수락하기를 요구하는 상황이 있다고 치자. 그것이 얼마나 완벽하고 놓치기 아까운 것이라고 해도, 나의 본질이 희열로 가득차지 않는 한 그것은 가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가식과 권위, 지적 허영같은 모든 껍데기는 가라, 도도한 개인주의의 선언으로 들렸다.


일단 이 책은 ‘혁명’에서 풍기는 선입견을 일시에 불식시켜줄 만큼 깔끔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모든 예술 아니 이 사회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는 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담겨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컴퓨터 게임과 해커, 음악과 미술, 애니메이션과 대중가요 그 모든 것에 얽혀있는 이데올로기를 해부하고 있는데, 풍부한 사례를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어 읽기쉽고 흡입력이 대단하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민주노총 정보통신부장으로 일한 저자가, 노동단체 기관지에 <세상야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모음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일상 속의 정치적 논쟁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골수 운동권에 속한 인사의 해박한 문화예술적 지식에 매료되었다. 그저 이름정도만 알고 있던 예술계의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이 어떻게 정치색을 띠었던가 하는 것, 또 간간이 정치권의 우스운 행태를 조롱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먼저 바그너. 히틀러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겐의 반지>를 백번도 넘게 관람하고 악보를 암기할 정도로 그를 사랑했다고 한다. 바그너 자체가 반유태적 게르만 민족주의자였으며, 나치가 가두 행진을 할 때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연주하여, 한마디로 히틀러 하면 바그너, 바그너 하면 히틀러가 떠오르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베트남전의 광기를 표현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중, 단지 미군이 파도타기에 좋은 바닷가를 차지하기 위해 해변마을 하나를 초토화하는 장면에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 쓰인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라는 얘기이다.

그 다음 피카소. 1881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1973년 프랑스에서 사망할 때까지, 러시아혁명, 1차대전, 스페인혁명, 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격동의 세기를 겪은 천재적 화가 피카소는 정열적인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다.

유명한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에 개입한 나치의 잔학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그림이고, 좌파 정부군을 위해 지원금으로 많은 돈을 보냈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피카소의 지론을 보라.

“당신들은 예술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미술가는 눈만 가지고 있고, 음악가는 귀만 가지고 있고, 시인은 심장 겹겹이 온통 서정시로 이루어져있고, 권투선수는 근육덩어리만 가진 얼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기는 커녕 예술가는 정치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마음을 찢기고, 열정을 느끼고, 행복하게 만드는 모든 일들에 반응하는 존재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수 있고, 무수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삶에서 벗어나 우아한 냉담의 미덕을 보일 수 있겠나? 전혀! 미술은 집이나 장식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전쟁무기이다.” 피카소, 1945년


피카소는 1949년 파리 평화대회에 대표로 참석하여 포스터 <평화의 비둘기>를 내놓는 등 ,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한 피카소의 수많은 작품은 지금까지도 반전운동에서 주요한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나는 일단 그 많은 명작들이 모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붉은 돼지>... 하야오역시 60년대 대학에서 맑시즘과 안보투쟁에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으며, 스스로 心情左派-마음은 공산주의자-라고 밝혔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독재 권력이나 환경문제, 페미니즘을 표현하는 하야오의 경향이 이해가 되는 것같았다. 이제는 애니메이션 자본이 된 하야오에 대해, 지은이는 애정뿐만 아니라 비판을 놓지 말고 지켜보자고 권유한다.

지은이 최세진은 우리에게 “체 게바라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티셔츠에 가방에 심지어 맥주광고에까지 도용되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 자본주의는 그의 혁명사상도 투쟁정신도 아닌 오직 ‘잘 생긴 전사가 풍기는 1960년대의 낭만적 이미지’를 팔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은이는 남미의 혁명을 보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빈민가에서 머문 적이 있으며, 지금도 다시 남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를 행동하게 만드는 이념논쟁은 어려워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내가 책으로 접한 그의 사유방식은 아주 마음에 든다. 분명한 철학, 성실한 자료조사, 해박하고 명쾌한 문체로 무장한 그의 책 역시 아주 마음에 든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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