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펌글창고2011. 8. 20. 12:05
 

여름이 너무 덥고 습기는 가득한데

나마저 내 맘에 들지 않을 때

한 번 보고 유쾌해지기 바라며


첫 번 째 방법, 철학으로 뽀개기 

‘노자’ 속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혜자가 장자를 찾아와 “자네 말은 하나도 쓸모가 없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장자가 웃으며 ‘쓸모있음’의 함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탁월한 묘사를 해 두었다.

“그런가? 그러나 무용을 알아야 유용을 말할 수 있네. 대지는 한없이 넓지만 사람이 걸어갈 때 필요한 것은 그저 발을 디딜 수 있는 넓이만 있으면 충분하네. 그렇다고 그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 땅을 황천에 이르기 까지 깊이 파 버리면 사람이 밟고 있는 그 땅이 쓸모가 있겠는가?”

둘째, 관계로 뽀개기

잘난 놈은 밉다. 왠지 그렇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그 놈과 함께 있으면 내 모자람이 돋보인다. 그러니 미울 수밖에. 그러나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단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위험이 되지 않는다. 모자람과 단점을 상대의 경계심을 허무는 훌륭한 도구로 활용해 보자. 그것들은 관계의 접착제들이다.


나 이거 잘 못해. 속상해. 나도 너처럼 잘했으면 좋겠어. 나 좀 도와줘.

이것이 상대에게 나를 여는 귀여운 엄살이다.


셋째, 강점으로 뽀개기

단점만 떼어내면 속상하다. 그러나 모든 단점은 강점의 대치물이다. 용기와 만용은 함께 간다. 상상력과 현실감의 결핍도 함께 간다. 감성과 이성 역시 한 쪽이 강하면 다른 쪽이 약하게 마련이다. 냉정한 사람은 감정이 결핍되어 있고, 감성적인 사람은 이성적이기 어렵다. 강점이 단점의 이면이듯 단점도 강점의 이면이다. 동전의 양면은 모든 사람들의 속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점을 강점과 연결된 고리로 이해해야 한다. 단점이 보이면 그 이면의 강점도 재빨리 함께 보라. 그리고 얼른 약점의 뒤를 뒤집어 강점이 돋보이는 국면으로 전환시켜라.



넷째, 연구로 뽀개기

자기 존중감이 떨어지고 늘 슬픈 주인공이 되고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워 헤어지게 되었는데, 화를 내다가도 스스로 ‘내가 매력적이었다면 그 놈이 바람을 피웠겠어?’라고 자책을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 여인은 예쁘게 생긴데다 사랑스러운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늘 그렇게 스스로를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 여인에게 ‘열등감’에 대하여 연구하라 했다.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하여 책을 보고 공부하여 스스로의 문제를 풀어보라 했다. 그래서 똑 같은 이유로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구해 보라 했다. 기질적 약점은 잘 사라지지 않겠지만 연구하면 결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밝은 불빛 아래서 열등감은 도망가게 되어있다. 진지하게 왜 그러한지 스스로 연구해 보는 것이다.



다섯째, 무한한 낙천성으로 뽀개기

인생은 즐거운 것, 삶은 눈물을 흘기고 한숨을 쉬기에는 너무 짧은 것, 두려워하기에는 너무 멋진 것, 누가 그 따위 단점과 약점에 신경쓰겠어. 누구나 다 약하고 모자라는 것들을 가지고 살게 마련인 것을. 상처를 주는 자가 가장 상처 받은 사람이여, 나에게 가혹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가혹하게 대함으로써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을. 그 불쌍한 자를 미워하기에는 오늘이 너무 아름다우니. 그리하여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얼굴이 못나 마음을 예쁘게 다듬게 되었고

몸이 약해 평생 몸을 아끼고 보살피며 살게 되었고

부모가 가난했기에 열심히 일하는 것을 배웠고

강하고 모질지 못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얻게 되었고

모두 비웃는 환상을 품고 있었기에 평생의 직업을 얻었다네

지금 생긴 이 힘든 일이

언제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계기로 전환될지 알 수 없으니


지금 이 일은 신이 있으라 한 바로 그 일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구본형선생님의 메일서비스 '마음편지'에서 퍼 온 것인데
    어쩌다보니 제목을 놓쳐서 제가 붙인 제목입니다.^^

    2011.08.20 12: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좋은 삶/펌글창고2011. 3. 20. 09:59
제 강좌 중에 한 수강생이 '사생글쓰기' 과제로 올린 글입니다.
구수한 대화를 옮기는 재능이 뛰어나고, 막내딸의 미묘한 심리묘사가 정직해서   좋은 글이 되었습니다.
연로한 엄마가 있는 분은  짠한 공감이 피어오를 것 같아 이 곳에도 올려 봅니다.
----------------------------------------------------------------------------------------------

그녀는 작은 방에서 초등학교 동창생과 통화를 하고 있다. 늘 불퉁거리며 쌀쌀맞은 막내딸...


“아이고, 우리 딸이 링게루를 맞으라고 해서... 오늘은 하루종일 호강했당게. 기운이 좀 나드랑게., 그냥 내가 안 간다고 그렇게 해도, 꼭 맞으라고 해서 갔당게, 우리 사우도 얼마나 착한디, 착한 게 살지, 안 그럼 못 살어. 같이 못살지.”


그녀는 거실에 있는 전화는 되도록 사용을 안한다. 딸네 세 식구는 거실에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각자의 볼일에 바쁘다. 그녀는 작은방에서 가요무대를 보고, 잘 준비를 하고 틀니를 뺀다.


아침이다. 막내딸이 출근하고 난 뒤 딸의 침실을 정리하는 이 시간이면 햇살이 찬란하다. 그녀는 늘 이 시간이 좋다. 그건 아마 햇살보다는 자신이 이 집에서 존재하는 이유를 가장 크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딸 침대의 흐트러진 이불은 정신 나간 여자의 차람새보다 보기에 뭣하다. 드레스룸 앞에 벗어 던진 잠옷은 넉다운 된 권투선수보다 처절하게 내동뎅이 쳐져 있다. 구석에 있는 속옷마저도 지쳐버린 삶의 껍질로 보여 안쓰럽다. 여기저기 떨어진 머리카락은 어느 서양화가의 초상화처럼 강렬하지만 익숙하다. 딸은 아침마다 게으름과 전투를 벌인다. 싸움의 끝은 폭발 2분전 무작정 탈출하기이다. 이 많은 흔적들을 남기고서. 얼마나 피곤하면, 얼마나 몸이 무거우면 그럴까? 잠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린 손주 녀석의 주문이 들어온다.


“할머니, 밥 줘!”

“그려, 얼렁 씻고 와아”

그녀는 자신을 친근하게 대해주는 다정한 손주가 고맙다. 그녀의 대화상대이고 친구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차 시간이 없어지긴 했지만.


“할머니, 어제 ‘웃어라, 동해야. 봤지?”

“그려, 아이고 동해 엄마가 남산으로 혼자 가서 동해가 즈이 엄마 잃어버린 줄 알고 얼마나 찾아다녔다고. 오메~ 동해 엄마는 얼어 죽을 뻔했어.”

“할머니 안 얼어 죽어. 텔레비에서는 주인공을 안 죽여, 항상 살려준다니까, 할머니는 그런 것도 몰라?”

“아! 그려? 나는 그런 것도 몰라, 우리 손자는 똑똑해서 좋겠다”

“그러엄, 히히~ 이 앵님께서는 모르는 게 없지, 헤헤~”

팔순이 다 되는 나이에 집안 청소, 부엌일, 손주 돌보기, 식사준비까지 만만하지 않다. 그럼에도 딸은 늘 마음에 안 차 퉁박을 놓는다. 그녀는 늘 당당하지 못하고 한 발 뒤에서 풀 먹인 이불처럼 사그락거리기만 한다.


“아유, 엄마. 냉장고가 이게 뭐야, 기름 묻은 손으로 냉장고 바를 열면 안 된다니까”

“아유, 엄마, 남은 반찬은 좀 버려, 제발”

“아유, 엄마, 엄마가 이 비싼 후라이팬을 다 버려 놨네... 난 몰라”

“아유, 엄마. 엄마는 왜 그렇게 우는 소리만 해, 그러면 오던 복도 달아나,

아유, 아유, 아유...”


2년 전 그녀는 이사를 하면서 초등학생 아이를 돌봐줄 도우미를 구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친정 엄마가 그 일을 도맡아 주기로 해서 2년 반째 친정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에는 온갖 살림 다 해 주시고 남의 식구를 들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에 연로한 엄마께 마냥 죄스럽고 고마웠다. 그녀의 어린 시절 기억에 늘 예쁘고 늘 자랑스럽던 엄마. 엄마는 시원스럽고 가녀린 몸매를 가졌다. 적당한 키에 어떤 옷도 폼나게 소화하던 엄마, 글도 모르던 새까만 얼굴의 뽀글이 파마를 한 친구들의 엄마와 달리 곱고 여리여리하던 엄마, 하지만 그녀가 아이를 낳고 40이 넘어가자 엄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했다.


“우리 엄마는 왜 좀 더 현명하지 못했을까? 왜 아들들을 그렇게 키웠을까? 엄마가 좀 긍정적이고 씩씩한 성격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가 3미터 뒤에 엄마를 따라오게 했다더니, 킥킥킥, 왜 그런지 알겠어” 등 천륜을 볼모로 네 자매는 이런 험담도 가끔씩 하게 되었다. 상처를 헤집고 들춰 진단을 내리는 매정한 의사처럼.


게다가 몇 해전 수술로 많이 초라해지고 늙으셨다. 요즘은 틀니를 뺀 모습을 매일 보는 것도 좀 고역이었다. 노인네 특유의 행동들이 안쓰러움에서 보기싫음으로 점점 바뀌어 갔다. 아침을 준비하는 덜거덕 거리는 소리, 주말의 늦잠을 맘 편하지 못하게 하는 엄마의 존재, 케엑~ 케엑~! 아침마다 들리는 목트는 소리, 노인네에게 기대할 수 없는 아이 양육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몇 해 전 엄마의 수술 때 발을 구르며 통곡하던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하지만 오늘처럼 일이 있어 엄마집으로 가시는 날이면 미안함과 서글픔에 코끝이 매워진다. 어딘지 모를 쓸쓸함에 서먹하게 전화를 건다.



“나야”
“응, 그려”

“기차 탔어?”

“응, 잘 탔어~ 집에 가면 냉장고에 찌개 끓여 놨응게 그거 뜨끈하게 끓여~ 응? 파랑 미나리랑 쑥갓이랑 썰어 놨응 게 찌개 끓인 다음에 넣고 쬐끔 더 끓여. 쬐끔만 끓여야 해, 그리고 니가 좋아하는 고추 쪄서 무쳐 논 거 있어. 내일은 생채 무친 거에다가 고추장 넣고 들기름 살짝 쳐서 비벼서 니 신랑이랑, 애기랑...”

“알았어, 알았다고! 잘 갔다 와”


엄마가 안 계신 집은 강력한 마술에 걸린다. 그 짧은 시간에 할머니의 부재를 극대화시켜놓은 아이의 능력은 기가 막힌다. 소파의 쿠션들은 발랄하게 흩어져 있다. 과자 부스러기는 카페트 이곳저곳을 습격했다. 집어 던져놓은 가방과 신발주머니에서 쏟아져나온 책과 공책이 도미노처럼 쓰러져있다. 널부러진 잠바, 레고 조각들, 과자 껍질, 뒹구는 만화책... 좁지않은 그녀의 거실은 4학년 머스마의 방만한 자유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휴!


남편이 돌아오고 셋이서만 하는 저녁식사, 좀전의 가슴 먹먹함은 이내 사라지고 오히려 그들만의 오붓함으로 공기는 달구어진다. 밀가루를 묻혀 살짝 쪄낸 다음 아주 절제된 양념으로 조물락조물락 무쳐놓은 고추나물을 한 찬합이나 비우면서도, 정갈하게 빨아 레이스가 앞으로 나오도록 예쁘게 개켜놓은 린넨 잠옷을 입으면서도, 사그락사그락 적당히 풀 먹여 놓은 이불과 베개 위로 몸을 눕히면서도, 누군가의 그 많은 손길은 기억하면 안 될 금기처럼, 열어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처럼 애써 고개를 돌린다.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코끝이 찡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

    2011.03.21 09: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렇지요?
      내 마음을 헤집어 글로 정리해 놓으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뛰어넘을 수도 있고,
      자신감도 붙고 아주 좋답니다.^^

      2011.03.21 18:37 신고 [ ADDR : EDIT/ DEL ]
  2. 사과상상

    정말로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의 말못할 고마움과 왠지 모를 짜증이 이 글로 설명이 되네요...ㅠㅠㅠ 아마 철들기 전 자식들은 전부 저 막내딸 같은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되겠죠? 저는 지금 부모님과 떨어져 있으니 더욱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면서도 글로 쓰기는 꺼리게 되었는데... 그건 아마도 '판도라의 상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봐요. 아침부터 좋은 글을 읽어 행복합니다. ^^

    2011.03.22 09:45 [ ADDR : EDIT/ DEL : REPLY ]
    • 휴유~~ 엄마만 다녀가시면 죄책감이 드네요.
      엄마보고 자손을 돌보지 말라는 것은
      존재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바없는데도,
      너무 챙겨주시니까 짜증이 나거든요.
      저는 막내딸도 아니건만... ^^

      로그인을 안하셔서 찾아뵙지 못해서 서운하네요.

      2011.03.22 21:31 신고 [ ADDR : EDIT/ DEL ]

좋은 삶/펌글창고2010. 7. 7. 08:59


                                나의 영혼이 다시 빛날 때


“어떤 사람들은 25살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살에 치른다.”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

-----------------------------------------


바다 물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멍게는 돌기가 많아 파인애플처럼 생겼습니다. 하지만 유생 시기에는 올챙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체와 달리 유생시기의 멍게는 물고기처럼 바다 곳곳을 헤엄쳐 다닐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뇌 역할을 하는 원시적 척수와 신경절이 있어 영양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게 하거나 해로운 것은 피하게끔 도와줍니다. 하지만 멍게가 자라나면 흡착돌기를 이용하여 바위에 달라붙어 변태를 하기 시작합니다. 성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멍게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멍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뇌와 감각기관을 삼켜 소화시켜 버리고, 먹고 싸는 데 필요한 입과 항문 등만을 남겨 놓게 됩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어쩌면 멍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시기까지는 세상을 탐색하다가 어느 틈에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고착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고착생활이 길어질수록 방향을 추구하고 의미를 찾는 영혼은 힘을 잃어가게 되고, 먹고 살기위한 감각과 기능만이 비대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영혼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느 순간부터 권태감, 공허함, 알 수 없는 짜증, 생기부족, 무미건조함, 답답함 등의 정신적 증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것은 생물학적 원인의 우울증이 아니라 영혼상실의 증상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의 상실을 예방하고 치유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대 유럽에서는 영혼의 상실을 막기 위한 풍습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생일에 해당하는 날짜에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새롭고 낯선 경험을 할 때 우리의 영혼은 다시 빛을 내고 생기를 되찾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얼마나 생기를 띄고 있나요?


 
- 2010. 7. 7. '당신의 삶을 깨우는' 문요한의 Energy Plus 400호-


link.jpg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변경연의 동료 연구원인 문요한의 에너지플러스가 400회를 맞이했네요.
    일 주일에 두 번 어김없이 에너지를 일깨운 지 4년!
    그 한결같은 구성과 문체, 주제의식에 경의를 표하며 축하하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아직 그의 메일서비스를 받아보지 않는 분들은 위 배너를 누르시고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2010.07.07 09: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시이라젠느

    미탄님 글을 보고 아카데미에 축하글을 남겼습니다. ^^
    지난 정모에도 참석 못하고, 요즘 좀 뜸해진 듯해서 미안함이 앞서네요.~~

    2010.07.07 12:5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더위에 출퇴근하기 힘들지요?
      이것저것 생각도 많은 것 같던데,
      혹시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 읽어 보았는지요?
      요즘 두 번 째 읽었는데,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직관과 모험을 따라가 천복을 찾으라고 강조하는
      노학자 덕분에 다시 한 번 자세를 바로할 수 있었어요.
      신화의 힘이 최고의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이 들 정도.
      변곡점에 선 사람들이 암시를 받을 내용이 많아 보여 강추~~

      2010.07.09 07:44 [ ADDR : EDIT/ DEL ]

좋은 삶/펌글창고2009. 11. 4. 09:29
신영복 "함께 걸으면 길이 생깁니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제가 오늘 한 이야기는 여러분도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학생이 모르는 걸 선생이 알려줄 순 없는 거죠. 대화라는 건 상대방도 알고 내가 아는 걸 꺼내서 한번 확인하는 겁니다. 그걸 통해서 서로 위로받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고, 또 작은 약속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
강연자로 나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담담한 어조로 1시간여 동안 진행된 강연회를 마쳤다. 3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민주넷 주최로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신영복 교수 전국 순회 서울 강연회'에 참석한 400여 명의 청중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신영복 교수는 이날 강연회에서 '석과(碩果)', '
머리, 가슴, 발', '더불어 숲' 이 세 가지를 화두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중이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늘 그가 강조해오던 화두다.

신영복 교수가 이날 말했던 강연의 전문을 싣는다.

▲ 이날 강연회는 개그맨 김제동 씨가 사회를 맡았다. ⓒ프레시안



"사람을 키워내는 일, 그것이 가을을 견디는 일"


절박한 상황은 언제 석과가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석과란 하나 남은 과실로 내년에 뿌릴 씨앗을 뜻합니다. 석과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석과를 지키기 위해서는 엽락(葉落), 즉 잎사귀를 떨궈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거품을 거둬내는 것입니다. 환상을
청산하는 것. 더 나아가 우리가 갇혀 있는 '문맥'을 탈출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문맥'은 엄청납니다.

엽락을 하고 나면 나무가 드러납니다. 몸이 드러나는 거죠. 한 사회의 뼈대,
개인의 뼈대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한 사회의 정치적 주체성은 어느 정도인지, 경제적 자립 기반, 문화기능은 어느 정도인지, 환상에 가려서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떨어진 잎사귀, 엽락은 뿌리를 따뜻하게 하는 거름으로 작용합니다. '분본(䆏呠)'이라고 하죠. 가을에 필요한 일입니다. 여기서 '본'은 무엇일까요? 한 사회, 또는 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본'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을 키워내는 일, 그것이 가을을 견디는 일입니다. 사회에 가장 저력으로 묻혀있는 가능성을 키워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그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성과 논리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려 하는 '문맥'에 갇혀있다"


그럼 어떤 사람을 키워내야 할까요? '머리, 가슴, 발'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람은 머리로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책에서 읽거나 선생에게
강의를 듣고, 신문, 텔레비전 등을 보고 압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인식은 주입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사회 상부에서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에 의해서 주입된 게 반드시 있습니다. 이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외에도 '문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중세에는 마녀 처형으로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의 마녀가 처형됐습니다. 처형당한 마녀 중에는 강압에 의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자신이 마녀라는 것을 승인하고 처형당한 이도 많았습니다. 중세를 지배했던 마녀 '문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는 어떨까요?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 사회에는 근대 사회를 경고하며 쌓이고 쌓인 강고한 '문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고
자연을 대상화하며 우리가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논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근대적인 '문맥' 속에 우리는 갇혀 있습니다.

제가 감옥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왕따'였습니다. 30명이 감옥 생활을 했는데, 그 안에서 저는 한동안 다른 재소자들을 대상화해 분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손 가족인지, 무슨 죄로 들어왔는지 등을 파악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완전히 근대 '문맥'에 갇혀 있었던 겁니다. 나중에 깨달았죠. 마치 근대와 전근대, 비근대를 대상화 했던 똑같은 논리를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재소자들이 겉으론 아무리 친하게 대해도 실질적으론 왕따였습니다.

그러다가 작업장 등에서 수감된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사연을 듣게 되자 '아, 나도 저 사람과 같은 부모를 만나 같은 경험을 했다면 같은 죄명을 가지고 저 자리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이야기해볼까요?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나이가 마흔쯤 된 친구에게 접견이 왔었습니다. 생전 편지도 받지 못하던 친구였는데 말입니다. 그 친구도 놀라고 같은 방 수감자들도 놀랐습니다. 접견을 마친 뒤 궁금해서 물으니 자기 또래 남자가 왔는데 자신의
엄마가 개가해 가서 키운 아이였다고 했습니다. 수감자의 엄마는 2살과 3살인 자식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개가를 했던 겁니다. 엄마가 들어간 집은 남매를 두고 어머니가 죽은 집이었답니다. 엄마는 그 집에 가서 그 남매를 계속 키웠고 그렇게 자란 아들이 접견을 온 것입니다. 둘이 만나니 할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참 침묵 후에 굉장히 미안해 하며 "만약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데려 오지 않았다면 내가 그 속에 있고 당신이 밖에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대상화, 분석화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 아픈 거랑
마음 아픈 거랑 굉장히 차이가 나잖아요. 마음이 굉장히 아팠습니다. 그때부터 참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같이 이해를 하게 됐습니다.



"분석보단 아픈 마음을 이해하는 게 필요"


일흔 넘은 할아버지가 감옥에서 한 방을 사용했습니다. 저녁 시간
신입 수감자가 방에 들어오면 분위기가 냉랭합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신입이 들어오면 노인네가 신입을 두고 '이리로 와보라'고 한 뒤 자신의 70 평생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신입이 들어온 지 하루가 안 돼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하루가 지나면 이 노인이 별 볼일 없는 게 파악되기 때문에 신입이 듣지 않습니다. (웃음)

노인의 이야기를 매번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들었습니다. 한 4~5년 정도였죠. 그렇다보니 외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노인의 부끄러운 부분은 빠지고 자랑하는 부분은 부풀려지는 걸 알 수 있었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만약 저 분이 자기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실제로 살았던 삶이 아닌 각색한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인생 이야기를 각색했다는 건 약간의 반성도 있고 이루지 못한 소망도 있다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 노인을 사실의 주인공으로 이해할 것인가, 각색된 삶의 주인공으로 이해할 것인가를 상당히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노인의 사실대로의 삶을 파란만장한 우리 현대사가 각색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분석과 이성적 판단보다는 아픈 마음을 열고 그를 이해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가장 먼 여행입니다. 여기까지 가는 동안 나는 5~7년 걸린 듯합니다. 그때서야 감옥에서 왕따를 면했습니다.

▲ 이날 강연회는 개그맨 김제동과 신영복 교수를 보기 위한 청중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프레시안



"우월감을 버리고 자기를 변화시키며 관계를 건설해야"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동했다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아픈 마음을 자기 삶 내의 깊숙한 곳에 들여 놓는 것, 즉 관계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발'이라고 칭하겠습니다.

근대 사회가 냉정한 개인의 존재성을 중요시해서 개인의 자유와 독립,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계속되면서 폐단이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서구 사회는 근대 사회가 도달한 최고의
가치가 톨레랑스라고 합니다.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톨레랑스가 최고의 덕목인지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수감자들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 굉장히 마음 아프고 충분히 이해하고 나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 사람에 대한 연민, 우월감, 차이…. 이런 것을 버리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톨레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옥에 있을 때 같이 있던 친구 중 이름이 '대의(大義)'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참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그 사람 볼 때마다 '당신 아버지가 참 속상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른도 안 됐는데 절도 전과가 3개나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어느 날, 이름을 누가 지었느냐고 물으니 굉장히 기분 나빠 했습니다. 알고 보니 돌이 채 되기도 전에
광주도청 앞 대의동 파출소에 버려져 그냥 '대의'라고 이름 지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문자를 통해 그 사람을 읽으려 했던 나의, 먹물들의 관념성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또 예를 들어볼까요. 나이 많은
목수가 집 그림그릴 때는 주춧돌을 먼저 그리고 제일 나중에 지붕을 그립니다. 이걸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집짓는 순서대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 놀랐습니다. 책, 학교, 교실에서 자기 인식을 키운 저는 지붕부터 집을 그리는데 말입니다. 이런 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이라는 건 서로 존중하고 공경할 것이 아니라 차이야 말로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단히 감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화해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고 소통은 불가능"


변화하지 않고는 지금 화두가 되어 있는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그래 네가 말해봐라, 내가 들어볼께' 식은 소통이 절대 안 됩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기 의견 변화에 중요한 계기가 될 때만이 소통이 가능합니다. 변화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자기 영토를 고집하고 그 영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든 기득권은 변화를 거부합니다. 자기
서버를 지키는 데 몰두하는 웹 1.0세대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젊은 세대의 정서는 웹 2.0으로 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버인 셈입니다. 정서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가슴에서 발까지, 또 하나의 긴 여행,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의 관념성을 버리고 저 사람들을 배울 수 있을까. 안다는 게 많은 지식을 가진다는 걸 말하진 않습니다. 생각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문맥'에 갇혀 있는 걸 뚫고 나와야 합니다.

교도소에서는 담배를 못 핍니다. 그래서 담배 값이 굉장히 비쌉니다. 직원
사무실 청소하러 가는 젊은이들이 교도관 재떨이에 꽁초를 줍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걸 잘 아는 직원들은 재떨이에 물을 가득 부어 꽁초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젊은이들은 물에 빠졌지만 다행히 풀어지지 않은 담배를 가져와 말린 뒤 팔거나 핍니다. 맛이 좀 심심합니다.

말린 담배 꽁초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이름을 지으면 심심하겠지만. (웃음) 교도소에서는 '심청이'라고 불렀습니다. 미적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애정, 공감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을 때만이 진정한 자기 변화, 자신을 키워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의 완성은 명목이 아닌 숲"


어떻게 관계를 만들까요? 숲을
만들기 위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아직도 근대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논리 중심으로 뭔가 자기 이념을 강요하려는 근대 '문맥'에 갇혀 있습니다.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해서 변화해야 합니다. 사람들 정서를 정확히 읽을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제가 얼마 전 오대산을 갔습니다. 오대산 저쪽으로 흐르는 물은 북한강, 이쪽으로 흐르는 물은
남한강이 됩니다. 대단히 먼 여행입니다. 반면 오대산 바위, 즉, 웹 1.0 바위는 자기 정체성이 매몰되어 있는 바위입니다. 멀리 못 갑니다. 거기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시냇물은 강물을 만나면 자신이 강물이 됩니다. 강물은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됩니다. 부단히 변화합니다. 자기 영토성, 이해관계를 버리고 꾸준히 변화하는 유목주의, 그게 근대를 벗어나는 탈근대의 화두입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하면서 소통하고, 점점 바다로 가야지 자기는 변화하지 않고 톨레랑스, 즉 근대 패러다임의 변형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가 변화해서
숲으로 가야 합니다. 사실 '발'이라는 건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고 우리 삶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이게 하나의 나무라면 나무의 완성은 명목이나 낙락장송이 아니라, 숲입니다. 나무의 최고 형태는 숲입니다. 숲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안 됩니다.



"사회를 바꾸진 못했지만 나 자신은 바꿨다"


길고 긴 여행(수감 생활)을 마치니 20년이 걸렸습니다. 마칠 즈음 저는 근대적인 '문맥'에서 나 자신이 시원하게 벗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한 연민, 공감, 공존의 근대적 변형을 뛰어넘고 뭔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개조를 이뤄냈다고 생각합니다. 실천가들이 사회를 바꾸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자기를 바꾸는 것에는 실패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사회는 바꾸지 못했지만 나 자신은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출소한 뒤 친구들은 저보고 칭찬하느라 그런지 '너 하나도 안 변했다'고 했습니다. 옛날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칭찬인가 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웃음) 크게 변한 부분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됩니다. 가치 지향이 없으면 문제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함께 가면 길은 등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계몽주의 사고가 도처에 남아 있습니다. 이상주의가 도처에 남아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저절로 생깁니다. 누군가에게 스승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제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함께 갑니다. 여기 모임도 숲이라고 생각합니다. 움직이는 숲.  감사합니다
.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올 일년 동안 '관계'에 대해 많은 경험을 했는데요,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슴프레 알 것 같은 순간에 접한
    신영복님의 강의는 가슴 철렁하는 '동시성'이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구절이 신영복님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비로소 내 것이 되었습니다.
    마흔쯤 된 두 남자의 접견을 아이들에게 전하며 눈물이 나서 혼났네요.

    大義님의 사례도 피식 웃음이 나는 동시에
    문자라는 습관에 젖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데 충분했구요.
    사실 별 문자도 못 되면서 말이지요. ^^

    2009.11.04 09: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수꾸

    나비 꿈을 자주 꾼답니다. 아직도 고치속에 갇혀 있나봐요. 천상의 하얀 나비떼 출몰 다시 도래할 이 계절엔, 이르고자 하시는 곳 아름다운 여행 너울 너울 많이하시구요^^

    2009.11.07 08:2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일요일 아침, 빗소리를 들으며
      꿈을 반추하며 나른하게 한참을 누워있었습니다.
      뇌라는 놈, 기가 막힌 창조기관인 것 같아요.
      한 두 가지 생각의 단초를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어 버리네요.^^

      나비!
      자유와 가벼움과 해탈...
      또 뭐가 있으려나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나비!를 지향하는 지금도 괜찮다....

      2009.11.08 09:15 [ ADDR : EDIT/ DEL ]
  3. 숲으로 가야한다는 말씀이 절절해요.
    선생님이 노구를 이끌고 전국순회강연에 나서시는 것인가.. 싶어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고 어디고,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갈 든든한 숲이 곁에 계신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제가 발딛고 사는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숲을 만들어야할까... 고민해보게 되요.

    2009.11.12 13: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아! 댓글의 느낌으로 보아 똑순맘은 신선생님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것 같군요.
      사실 블로그만 해도 기가 막히게 좋은 도구지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잊지 않고 서로를 찾아
      공감하고 위로해 준다는 일이 작은 일은 아니지요.

      블로그를 계속하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만 남게 된다던데, 나는 너무 빨리 싫증을 내고 있는 것 같네요.^^

      2009.11.12 22:29 [ ADDR : EDIT/ DEL ]

좋은 삶/펌글창고2009. 6. 12. 12:15

봉하는 이미 작은 마을이 아니다
--정토암을 다녀온 촌노인의 단상

http://hantoma.hani.co.kr/board/view.html?board_id=ht_society:001016&uid=69117


--  중략 --

세상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은커녕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간 못하고, 수모를 당하면서도 수모인줄을 모르는 인간들이 많다. 수치심이 없기에 절망도 모르고, 내일이 있음을 모르기에 희망도 없는 인간들도 많다. 오직 물질에 대한 욕망을 선으로 여기며 가진 돈을 지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들, 민족도 안중에 없고 역사도 모르면서 이 나라의 지식인이요 지도자인체 하는 인간들, 염치없이 살면서도 그것을 꿋꿋한 삶이라고 우기는 인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미지4.jpg

-- 중략 --

국민으로 받은 민주 권력의 정도(正道)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새로운 권력의 패러다임을 만들고자 했음에도 나는 그를 알기는커녕 이해조차 못했던 것이다.

최소한의 사회적 상식에서 벗어나 대통령을 조롱하고 그 정부를 좌파정부라고 내리찍는 언론조차도 대한민국 구성원이라며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음에도 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소신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권력 기관을 떡 주무르듯 해서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의 본심을 못 읽은 채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사이비 언론이나 권력의 주구 노릇에 익숙한 검찰, 그리고 한나라당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다른지 못보고 있었다.

이미지7.jpg


-- 중략 --

측근은 줄줄이 잡혀가고, 가까웠던 사람들의 계좌는 물론 그가 생전에 찾았던 식당마저 권력의 촉수가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보통사람도 그 모멸감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방궁” “논고랑으로 사라진 1억짜리 시계” 등의 근거 없는 말을 여과 없이 흘리고 그것을 사실인양 보도하는 언론의 작태가 자신과 관계있다면 보통사람들도 절망감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배후에 전임자에 대한 예우를 운운했던 인물과 그 주변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죽고 싶었을 것이다. 더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길에서 그는 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 말대로 “꿋꿋하게” 사는 것이 더 구차하기만 했을 것이다.

-- 중략 --

그래서 나는 디지털 시대에 삽질이나 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묻고 또 묻는다. 과연 당신은 전임 대통령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당신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는가?그러면서 대통령의 참회를 촉구한다. 그리고 국민 앞에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것을 한 사람의 국민으로 강력하게 요구한다.

-- 하략 --

 

Posted by 미탄
TAG 노무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나경

    오랜만이지요? 잘 지내시죠? 이 글에 댓글이 없어서 인사하고 가려구요~^^
    봉하, 그 작은 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죠...
    그날 이후로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함을 어찌할 수 없어요.
    무언가를 향해 줄곳 달려왔는데 한 순간에 내가 어디를 향해 이렇게 정신없이 뛰고 있었나 싶어졌습니다...

    건강하시구요, 좋은 글 많이 쓰셔서
    빨리 선생님 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멀리서 응원할께요!!

    2009.06.17 10:17 [ ADDR : EDIT/ DEL : REPLY ]
    • 나경씨,
      지난 주 5기 연구원 모임에 꼽싸리 끼었을 때,
      수업주제가 '나와 관련있는 역사 3가지'였던 만큼
      노통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왔는데요,
      그 때마다 눈물이 흘러서 아직 낯선 사람들 앞에서
      너무 민망했답니다.
      그 날 하도 울어서 이제 눈물이 덜 나오는군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밤샘 발표와 토론 끝에 새벽 5시에 벌어지는 가무에서,
      '창조적 부적응자들'의 축제를 보는듯 했어요.
      문턱까지 왔다가 되돌아간 나경씨,
      언제라도 다시 이 곳의 구성원으로 들어오기를 권할게요.

      2009.06.17 11:23 신고 [ ADDR : EDIT/ DEL ]
  2. @햇살

    시간이 지나도 그 분이 잊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미탄님~ 잘 계시죠? 여전히 글 쓰고 행복한 분이시겠지요?
    요즘 전..
    작은 일들이긴 하지만, (회사)
    이겨내야 할 일이 생기는 것이 힘을 내야 할 것 같아요~ ^^

    2009.06.18 19:30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음... 햇살님.
      조금 신경쓰이는 일이 있나봐요.
      생각깊은 저자들이 하는 말에는 일련의 공통점이 있는데요, 그 중의 하나가
      '모든 일에는 메시지가 있다'
      '자극과 반응 중에는 틈이 있다, 내게 오는 일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반응은 선택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이지요.

      나는 굳게 믿어지던 걸요.^^
      요즘은 연습도 하고 있구요.
      크고 작은 장애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것이 왜 내게 왔을까,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거에요.
      그것 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든다니까요.

      편안한 주말을!!

      2009.06.19 08:09 [ ADDR : EDIT/ DEL ]

좋은 삶/펌글창고2009. 5. 27. 11:06
사용자 삽입 이미지


29년 전에 발매된 조용필 1집 앨범에 <한오백년>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소름끼칠 만큼 절창이었다고 평가받는 곡입니다.
당시 20대였던 한 주부는 그 노래를 듣는 순간 ‘한오백년을
이렇게 부를 수 있는 가수가 다시는 안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에
무작정 그 음반을 샀다네요. 그걸 들을 수 있는 전축도 없으면서요.

깊은 음악적 소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좋은 오디오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자기의 감으로 절창이다, 확신한 거지요.
그녀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며 아직도 그 LP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사람에 대해서도 그런 감(感)이 올 때가 있습니다.

바닷물을 모두 마셔봐야 짠 맛을 알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모든 사람을 다 만나봐야 진짜 이 사람인가 보다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지나고 보니 첫 사랑의 상대가, 심리적 이유에서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최상의 파트너인 경우가 있잖아요.

수많은 이들에게 운명처럼 그런 ‘감’을 주었던 한 사내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삶의 매순간이 절창(絶唱)같아서 전축도 없이 판을 산 주부처럼,
그를 받아들일 심리적 쿠션도 없이 많은 이들이 무작정 끌어안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노.무.현.은 아직도 ‘단 한 사람뿐’인가 봅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함께 길고 깊게 손모으며...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어느 여고생 조문객 하나가 나무에 매달린 노란 리본에
    "내 마음 속 단 한 분의 대통령"이라고 쓴 것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무어라 말을 보태지 못 하던 차에
    정혜신의 그림에세이가 그야말로 절창이라 옮겨 봅니다.

    그림에세이 블로그에 그에 대한 글을 옮겨놓은 부분에서, 각별한 추모의 자세를 배웁니다.
    http://blog.naver.com/mindprism/80069004024

    2009.05.27 11: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햇살

    그분이 없으니 따뜻함이 조금 덜 합니다.
    계신 것 만으로도 얼마나 큰 희망이였는지
    빈자리가 너무 크게 와 닿습니다.
    허전함에 계속 맴돌게 하는 그분의 글과 사진이네요~

    미탄님 잘 계시죠?
    너무 오랜만이네요~

    2009.06.01 12:47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아, 햇살님. 잘 지냈는지요?
      꿈벗 참여 이후 원하는 만큼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지요? 지난 주말 전체 프로그램에는 다녀 왔구요?^^

      예, 누군가 없어져봐야 그 존재감을 확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지, 정치적 무관심이 얼마나 커다란 폭력과 비인간화를 가져 오는지, 슬픔과 무력감이 분노를 일으키네요.

      2009.06.01 18:23 [ ADDR : EDIT/ DEL ]

좋은 삶/펌글창고2008. 12. 9. 10:09

“어리호박벌의 날개는 작은데 몸이 무거워서, 공기역학적으로는 당연히 날 수 없어야 돼요. 그런데도 어리호박벌은 그걸 모르니까 어떻게 해서든 날아다니죠.”

호박벌.jpg

- 화장품사 메리케이 창업자, 메리 케이 애쉬 (1918~2001) -
----------------------


독일어에서 '삶'은 중성명사이지만 저는 여성명사로 분류하고 싶습니다. 삶은 새 생명을 자라게하는 자궁처럼 무언가를 잉태하고 생산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생산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임으로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지나친 자기검열에 있습니다.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되는 온갖 가위질 속에서 우리의 창조성은 잘려나가고 맙니다.


창조성을 회복하려면 자기검열의 약화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좋은 방법으로 자동행위(automatism)를 들 수 있습니다. 창조성 훈련가 줄리아 카메론이 제시한 ‘모닝 페이지’는 좋은 예입니다. 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펜가는 대로 글을 쓰는 ‘자동화된 글쓰기automatic writing'방식입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미술에서 쓰이는 '자동화된 그리기automatic painting', 음악의 즉흥연주, 정신분석의 자유연상free association, 집단적인 자동사고라고 할 수 있는 브레인스토밍 등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들은 우리로 하여금 판단을 잠시 멈추고, 자기검열이 닿지 않는 원형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 안의 창조성을 솟아나게 합니다.


메리 케이의 마스코트인 어리호박벌 처럼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자신의 욕구에 대해 지나치게 따지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함부로 재단함으로써 자신의 가능성마저 싹둑싹둑 잘라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 2008. 12. 9 週 2회 '당신의 삶을 깨우는' 문요한의 Energy Plus [257호]-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모닝 글쓰기..음.. 좋군요.
    저도 자기검열이 참 심한 편인데..
    글 써놓고 후회 많이 합니다. 고치기도 많이 고치고요..
    효~ 좀 벗어나고 싶네요... 아니면, 첨부터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더 많이 느끼고,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잘 쓰던지.^^;;

    2008.12.10 16:23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는 것 같아요.
      자기성찰 지수가 높은 사람이 자기검열이 심할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플러스 측면을 강하게 살림으로써 약간의 마이너스 측면을 감수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

      2008.12.10 21:32 [ ADDR : EDIT/ DEL ]

좋은 삶/펌글창고2008. 7. 23. 05:27
'류한석의 피플웨어'에서 짧은 글을 보다.
http://bobbyryu.blogspot.com/2008/07/blog-post_3903.html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사랑, 첫경험, 첫직장, 첫사업, 첫죽음…

그렇듯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마추어스러운 것이 있을까요?

---------------------------------------------------------------------------------------------

스크랩을 막아놓지 않았길래, 링크도 하고 퍼오기도 해 본다.
'첫죽음'으로 해서 이 짧은 포스트는 아마추어를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첫 번 째 인생'을 통째로 넣어야 할 정도로 서툴러서
가슴이 철렁한거구...

그림화일 명이 'its-raining-men'으로 뜬다.
비가 주는 참회의 이미지와 어울려, 묘하게 가슴을 파고 든다.
오늘 아침 내 마음이 그렇다는 얘기겠지. ^^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좋은 삶/펌글창고2008. 4. 27. 17:38
문자 메시지’가 소설이 되는 시대
한겨레
»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

인터넷의 등장과 아이엠에프(IMF) 사태의 충격, 정권교체 반복 등이 이 땅에서 개인주의를 심화시켰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누구나 블로그 하나쯤은 운영하고, 자신의 취미에 맞는 카페에는 무한대로 가입해 활동할 수 있는 시대에 개중(개인+대중)은 자기 자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개성을 유지하면서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를 맘껏 발산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활용한 문자나 메신저, 미니홈피를 통해서 맺어지는 인간관계의 중심 또한 개인이다. 개인은 자신을 중심으로 수많은 관계망을 형성해나간다. 그곳에서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스몰 토크(small talk)가 넘쳐난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 사이에 수없이 벌어지는 “너 어디야?” “지금 뭐 해?” “나 가고 있어 조금 이따 봐!” 같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매우 사소한 대화들이 관계의 친밀성을 강화한다. 스몰 토크 그 자체가 관계인 세상이다.

‘어느 소심한 카피라이터의 홍대 카페 창업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낭만적 밥벌이>(조한웅, 마음산책)를 읽다 보니 우리가 일상적으로 쏟아놓는 스몰 토크도 잘만 엮어놓으면 참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세상 참 많이 바뀌었음을 절감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2004년 일본에서 밀리언셀러가 된 <전차남>(나카노 히토리, 서울문화사)을 떠올렸다. 이 책은 한 남성이 전철에서 술 취한 중년남자에게 봉변을 당하는 여자를 구해준 덕분에 그 여자와 연애를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연애 경험이 전혀 없는 스물두 살 청년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인터넷 게시판에 도움을 요청했고 네티즌들은 요청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댓글을 달아주었다. 그 댓글을 그대로 책에 담은 것이 <전차남>이다. 이것도 책이냐, 라는 비난이 없지 않았지만 이 책을 펴낸 신초사의 담당 편집자는 <전차남>이 새로운 유형의 문학이라고 주장했다. 그때 나는 그 주장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지만 <낭만적 밥벌이>를 읽으면서 문득 새로운 유형의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이제 진지한 토론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낭만적 밥벌이>는 인생이 무료한 35살의 두 노총각, 세상의 온갖 유의미한 것들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키키봉이라는 무의미한 닉네임을 사용하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와 그의 20년 지기이자 평범한 건축회사 직원인 곤이 전하는 일종의 카페 창업기다. 실제로 책 끝에는 창업 전에 꼭 알아야 할 정보도 실려 있지만, 이것은 사족일 뿐이다.

이 책은 창업기를 빙자한 매우 신선한 성장기이다. 창업의 과정을 순서대로 기술하긴 했지만 내용의 절반은 등장인물들이 나눈 스몰 토크다. 창업 과정에서 겪게 되는 좌충우돌의 실제 경험, 온라인상의 ‘혈맹’ 사이가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진솔한 표현, 누구나 공감하게 만드는 진득진득한 감정 등은 스몰 토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뿐만 아니라 기승전결이 확실한 감동 구조도 있다. 따라서 <낭만적 밥벌이>는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새로운 유형의 소설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카피라이터 출신의 지은이가 요소요소에 박아놓은 촌철살인의 아포리즘은 흥미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기도 하다. 네트워크라는 테크놀로지는 이제 우리의 감각과 소설의 형식마저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조한웅의 '낭만적 밥벌이'는 제가 수강한 바 있는 심산스쿨 인디라이터반 출신의 첫 번 째 책입니다. 홍대앞 카페입성기가 계약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주제의 경쾌함에 놀랐고, 계약되었다는 소리 들은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싶었는데 책이 출간되어서 놀랐고, 타이틀이며 책디자인이 너무 상큼해서 부러웠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시종일관 킬킬거리게 하는 '문체의 힘'은 인정했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없어도 되는건가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한기호씨의 칼럼이 참 명쾌하군요.

    2008.04.27 19: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좋은 삶/펌글창고2008. 4. 27. 07:38
 서두르지 않는 삶

여러분의 목적은 땅의 표면 바로 아래에 숨어서는 언젠가 불쑥 솟아 운명을 충족시킬 날을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는 새싹과 같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서두른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자연의 어떤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창조는 스스로의 계획표에  따라 이루어진다. 여기서 여러분을 위한 메타포(은유, 상징?)는 또한 분명하다; 여러분은 신의 준비한 순서에 따라 태어난 것이다.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여유로운 방식으로 때가 되면 주어질 것이다. 갖고자 하는 욕심을 놓아버리고 도가 완벽히 펼쳐질 것을 믿어라. 신중히 감사하고 도에 스스로를 맞춰라.


명상과 도덕경에 대한 공부를 통해 노자의 마음과 생각에 다가섬에 있어 나는 노자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마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으리라 믿는다.


꿈을 쫓기를 멈춰라.


그 꿈들로 하여금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순간에 완전한 순서로 여러분에게 찾아오도록 하라. 미친듯이 내달리는 여러분의 속도를 조금만 늦춰라. 동굴처럼 텅빔을 실천하고 통나무처럼 모든 가능성에 스스로를 열어두어라. 매일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서 고요해지는 연습을 하라. 인생을 통해 여러분이 경험하고 싶은 모든 것을 상상하라. 그리고는 놓아두어라. (let go, '이루어지게 하라'인가 아니면 그냥 '상상하고 내버려두라'는 의미인가?) 마치 도가 이 땅 위의 모든 것들에 행하듯이 신의 완벽함 속에서 작용할 것을 믿어라. 여러분은 진정으로 서두르거나 무엇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의 삶에서 주제넘는 관리자가 되는 대신 관찰자 그리고 수혜자가 되라. 여러분은 이 여유 있는 드러냄(unfolding)을 통할 때 도의 방식으로 여러분 존재의 주인이 된다.


삶의 흐름에 올라타라 그리고 그 줄기를 타고 조용히 흘러내려가라.


억지로 애쓰지 말고 도의 지혜를 믿어라. 여러분에게 속한 것은 강물의 흐름을 거스르지(push the river) 않을 때 여러분에게 돌아온다. 여러분은 아마도 그동안 살아가는 내내 욕망을 따라가야 한다고 들어왔을 지도 모른다. 이제 여러분 내면을 통해 흐르는 영원한 지혜를 믿어야 할 시간이다. 위터 바이너(Witter Bynner)가 1944년에 번역한 '노자의 가르침에 따른 삶의 도(The Way of Life According to Lao Tzu)'는 이 도덕경이 15장을 다음처럼 시적으로 표현했다.

 

사람의 삶이 어떻게 그 진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만약 그가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면.

삶이 흐르는 대로 사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들에게 다른 어떤 힘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그들은 슬프지도 않다.

그들에겐 고칠 것도, 치료할 것도 없다.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