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데르트바써<1928-2000>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중에 유년을 보냈다. 곳곳에서 전투와 총격이 벌어지고, 빈 시내의 절반쯤이 부서진 어느 날, 그는 자연을 발견한다. 파괴된 길에 빗물이 고여 생긴 웅덩이에서 곤충의 애벌레를 보고 갈라진 아스팔트 틈바귀에서 자라나는 풀을 본 것이다. 어린 훈데르트바써는 이 광경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소중함이 그를 사로잡았다.  가운데 그림은 '바둑판 자화상' 1950년 작품.


그는 평생을 이 때의 깨달음을 표현하며 살았다. 화가-건축가-환경주의자-선각자로서 그의 일생 전체가 하나의 메시지였다. 그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신조 아래 나선으로 그림을 그렸다. 나선은 그에게 삶과 자연의 상징이었다.




















독특하고 몽환적이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한 그의 그림.
그는 아주 천천히 꿈을 꾸듯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마치 그림이 눈에 띄지 않고 천천히 자라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그림 그리는 방식을 식물적 회화법이라고 불렀다. 가는 곳마다 부식토 화장실을 만들어 썼을 정도로 골수까지 자연주의자였던 그답다.



  

 

그는 그림 뿐만 아니라 집도 나선으로 지었다.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화를 낼 정도로 싫어한 그다운 일이었다. 그는 뭔가 특별한 것, 비범한 것, 유일무이한 것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옷과 신발을 직접 만들었고, 늘 양말을 짝짝이로 신었다.


“밖을 내다보면 모든 것이 불행으로 가득 차고 모두들 감옥에 갇혀 있는 듯이 보인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도 끔찍해서 나 자신마저 싫어진다. 만약 내가 어딘가를 내다볼 때 곳곳이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성을 짓는 것이다.”





그가 설계한 집들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것들이다.  


막 도화지에 그은 선처럼 삐뚤삐뚤한 선이 환상적인 건물이다. 상자처럼 볼품없는 벽돌이 아니라 부분부분 높이가 서로 달라 다양한 스카이라인을 만들었다.























 동화 속 세계처럼 아기자기한 그의 창문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창문을 에워싼 공간만큼은 스스로 만들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름하여 창문권!


그는 실제로 자신의 성, 자신의 세계를 만들며 살았다. 자기 이름도 수시로 바꾸었다. 원래 이름은 슈토바써였는데 스스로 이름을 훈데르트바써로 바꾸었다. ‘백개의 강’이라는 뜻이다. 전쟁 속의 웅덩이에서 많은 생명이 태어나던 것처럼 자기 자신이 끝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퍼져나가는 존재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프리덴스라이히 레겐탁 둥켈분트 훈데르트바써’로 바꾸었다.  ‘평화의 나라 비오는 날 암다채 100개의 강’이라는 뜻이다. 암다채는 그가 좋아하는 색깔이다. 모든 이름은 끝없이 진화하는 정체성에 맞추어 바뀌어야 한다. 나도 이름을 바꾸고 싶어진다.  비오는 날을 정말 좋아해서 보트 이름도 레겐탁-비 오는 날-으로 붙인 그처럼, 나의 세계를 만들고 명명하고 싶다.


“비오는 날에는 색이 빛난다. 그래서 흐린 날-비오는 날-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날이다. 내가 일할 수 있는 날이다. 비가 오면 나는 행복하다. 비가 오면 나의 날이 시작되었음을 안다.”

 


그의 수첩. 그 밖에도 부식토 화장실 설계도나 엽서, 드로잉을 보면 입꼬리에 저절로 웃음이 머금어진다.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는 그가 귀엽다. 그리고 부럽다.


세상에서 특별한 장소를 찾던 훈데르트바써는 실제로 뉴질랜드에서 그곳을 발견했다. 뉴질랜드는 원주민의 말로 ‘아오 테아 로아’ 즉 하얀 구름의 땅이라는 뜻이다. 그는 하얀 구름의 땅, 어느 꿈꾸던 작은 강 옆에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 속에 직접 집을 지었다.

거기서 그는 편안함을 느꼈고 그림을 그리고 사색하고 가장 살고 싶었던 모습대로 살 수 있었다. 그는 이 곳에 오는 사람은 다른 세계에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에는 행복하게 지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있는가 하면, 날마다 새로 찾아오는 아침이 있다. 나무와 비가 있고, 희망과 눈물이 있다. 기름진 땅과 산소가 있고, 동물과 온갖 색이 있고, 먼 나라와 자전거가 있으며, 태양과 그림자가 있다. 우리는 부자다. ”



** 참고도서 - 바바라 슈티프, 훈데르트 바써, 현암사
초등학생용으로 나온 책이라 읽는 데 10분 걸렸다. 그런데 내게 10년 정도 무게의 영감을 주었다. 이것이 책이다.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글을 읽으며 비를 좋아하는 동석이가 생각나는군요.
    근데 이 책은 명석일 사 줘야겠네요..ㅋㅋ 동석인 책 보다는 비 맞이하러 돌아다니는 것을 더 좋아해서요.ㅋㅋ
    지상에서 행복한 난 부자~~~~임을
    깨우쳐주시는 미탄님은 나의 ???<--퀄까요? 맞춰보삼. 오늘의 숙제임당..ㅋㅋ

    좋은 날 되세요~~

    2008.11.04 22: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하하, 새댁님 아들들과 이름도 비슷하지만 취향도 아주 비슷한데요, 나도 비 오면 맞고 돌아다니고 싶어하고, 책도 좋아하니 말이지요.

      음? '미탄님은 나의 000이다' 스펀지네요. ^^
      글쎄요. 블로그이웃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기분좋아지는 사람, 편한 사람'만 되어도 좋겠네요.

      2008.11.05 08:20 [ ADDR : EDIT/ DEL ]
  2. 우리는 부자다. 이 한마디가 마음에 남습니다. 미탄님^^
    전 마음이 부자니 이건 억만금을 주어도 쉽사리 가질 수 있는게 아닐테니 더욱 좋다 생각합니다.^^

    날씨가 제법 쌀랑해요.
    감기 조심하시고요~
    편안한 밤!! 되세욤~*

    2008.11.04 23: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마음만 부자일 뿐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향해 상황을 만들어가는
      돌개바람같은 추진력에
      전형적인 미인형의 비주얼까지 갖추었으니
      명이님은 정말 부자 맞습니다요. ^^

      2008.11.05 08:22 [ ADDR : EDIT/ DEL ]
    • 하악, 미인의 비주얼은 그냥 헛소문일뿐....!! 절 보신 분들이 보시면 비웃으십니다요 엉엉/..ㅠ_ㅠ
      이럴줄 알았더라면 완전 신비스럽게(? 가능이나할까요? ㅋㅋ) 숨어있어볼껄...ㅋㅋ

      2008.11.05 08:47 신고 [ ADDR : EDIT/ DEL ]
    • 미탄

      위의 훈데르트바써는, 사람은 세 개의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하고, 그것을 집중탐구했네요.
      바로 '몸, 옷과 집'이었어요.

      몸은 정신을 구현하는 무대잖아요.
      오히려 의식은 수시로 변절이 가능하지만,
      몸으로 익힌 것은 100% 내 것이라
      의식화가 아닌 '변태'를 해야 한다는
      정희진의 글도 설득력있었구요.

      각설하고~~
      카메라로 얼굴의 6분의 1을 가린 사진이었지만
      가녀린 선과 하얀 피부가 돋보였지요.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겠던데요!! ^^

      아, 근데
      외모는 시작할 때만 강력한 변수로 작용한답니다.
      연애의 경우지만 사업에도 비슷하겠지요.
      그 다음에는 아무래도 내면의 힘이 뿜어져나와야겠지요.
      명이씨는 생각도 깊고 대인관계 능력도 뛰어나니,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자질이 충분하다고 보여지는 거지요.

      내가 나이가 드느라고,
      슬슬 말이 많아지네요. ^^

      2008.11.05 09:17 [ ADDR : EDIT/ DEL ]
    • 헤헤~ 괜히 제가 위안을 받게 되는데욤?
      실은 아직 나이가 아주 많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30년쯤 살아오면서 이래깨지고 저래깨지고 그냥 질질 끌리듯 살아지다보니 너무너무 삶에의 의욕이 떨어지더라고요.

      블로깅을 시작하면서부터, 끌려댕기지말고 스스로 힘을 내서 끌고 가보자, 즐겁게 살자 라는 마음이 강해졌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힘들기도 하지만 만족스럽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혼자 칭찬해주기도 하고요..ㅎ
      (스스로 칭찬할땐 좀 서글프기도 ㅋㅋ)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을 대면할때 첫인상이 굉장히 큰 변수라는 점에는 동의한답니다.
      그래서 신경안쓰는 외모긴 하지만 (제가 지독히 꾸미는걸 못합니다요..;;), 한가지 철칙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 사람의 삶의 질이 나이를 먹을수록 얼굴에 묻어난다는거, 꼭 럭셔리하게 비싸게 사는게 좋은게 아니라 즐겁게 사는게 가장 좋은 인상을 주는 방법이리라,
      그리 생각하면서 이미지메이킹을 한다고 해야할까요..ㅎㅎ
      아이고, 포스팅길이만큼 댓글이 되어버렸습니다. ㅎㅎ

      생각보다 까칠하고 더러는 싸가지없기도 하지만, 무개념은 되지 않을려고 노력중이에요 헤헤~

      2008.11.05 11:16 신고 [ ADDR : EDIT/ DEL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 네이버 지식인, 블루문 ZDNet



TNC 대표 노정석에게서는 ‘드라마’의 냄새가 난다. ^^  ‘드라마’는 ‘스토리’가 있다는 얘기이고, ‘스토리’가 있다면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져, ‘스타’ 혹은 ‘히어로우’로의 출발을 했다는 말이 아닐까.


재능있고 도전적인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그를 기억하는 단초가 된다. ‘전설의 해커’ 이야기이다.


그는 카이스트 재학 시절 컴퓨터 동아리 KUS회장으로서 포항공대와의 해킹 싸움을 주도했다가 구치소에 수감된 경력이 있다.  당시 벌금형으로 풀려난 그는, 훗날 해커실력을 다시 한 번 과시하게 된다. IT분야에서는 이렇게 기발한 발주조건이 일반적인 것일까.


1998년. SK텔레콤이 특이한 조건으로 보안시스템을 발주했다. ‘SK텔레콤 홈페이지 시스템을 뚫는 회사랑 계약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정석이 단 하루 만에 SK텔레콤 홈페이지 시스템을 해킹해 사업을 따냈다. 그는 “해킹은 기술이 10%, 인간 심리 이해가 90%”라며 “시스템을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하나씩 해킹의 실마리가 풀린다”고 설명했다.


‘해커’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천재적이고 기상천외한 이미지는 그의 ‘잡기’경력으로 완성된다.


그는 한 때 카레이서였다. 2002년 아마추어 트랙레이스인 ‘타임트라이얼’에서 우승한 뒤 2003년엔 프로에 입문하기까지 했다. 본인은 카레이스가 일반도로에서의 폭주보다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어디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그런가. 차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소화기 안의 소화액마저 빼놓는다는 극한적인 상황이 아닌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 노정석 블로그 http://moreover.co.kr



그런가하면 당구에 미쳐 강의실 칠판이 당구대 다이로 보이던 시절을 추억하며, buckshot님의 당구 포스트에 흥분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면모로 해서 그는 골방의 마니아가 아니라, 건강한 全人에 가까우리라는 기대를 준다. 재미없는 천재가 아니라 몸을 쓸 줄 아는 매력남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스타지수’는 대폭 올라간다. ^^

buckshot님의 포스트 "내 가락은 완벽했어"  http://www.read-lead.com/blog/585 
 


노정석은 2005년 말 태터앤컴퍼니를 창업했다. 태터앤컴퍼니의 모토는 ‘Brand Yourself’, 즉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태터앤컴퍼니의 블로그는 기존 블로그 서비스와 달리 개인에게 독립적인 도메인을 생성해 준다”며 “포털에 종속되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옷을 깁다’는 뜻의 ‘태터(tatter)’에는 ‘기존 이론을 논파한다’는 뜻도 있다.


그는 다음과 함께 태터툴즈 기반 블로그 서비스인 티스토리(www.tistory.com)를 오픈했으며, 이올린(eolin)이라는 플랫폼도 출범시켰다. ‘태터앤미디어’라는 이름의 블로그 마케팅 프로그램도 있다. 영향력 있는 블로그를 네트워크로 묶어 운용 및 기술 지원은 물론 기업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 광고 수익을 만들어주겠다는 것.

노정석은 올해 3월 한국블로그산업협회(KBBA)의 초대회장까지 맡았다. ‘한국블로고산업협회’는 태터앤컴퍼니, 소프트뱅크미디어랩, 태그스토리, 블로그칵테일, 미디어유, 온네트, 야후!코리아, KTH, 에델만코리아, 블로터앤미디어, 인사이트미디어, 프레스블로그 등 모두 12개사가 참여했으며, 블로그 산업 진흥과 창의적인 뉴미디어 문화환경 조성이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니 노정석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블로그산업-IT벤처-웹2.0비즈니스의 최전선을 이끄는 리더인 셈이다. 나는 초보블로거에 불과하지만 이 바닥에, 노정석만큼 ‘천재의 기미’를 보이며, ‘자유롭고 창의적인’ 괴짜가 있다는 것이 기분좋다. ‘태터(tatter)’, ‘Brand Yourself’, ‘개인화’ 같이 매력적인 키워드를 가지고, 한 분야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는 인물이, 외롭고 무서워서 혼자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싫어한다니, 얼마나 귀여운가! ^^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미탄님~ TNC의 꼬날입니다. 우리 회사의 체스터님(회사에서는 이렇게 부릅니다)에 대한 글이 있기에 들어와 봤습니다. 맨 끝에 '얼마나 귀여운가!' <== 인상적인걸요? ㅎㅎ

    아! 그리고 TNC 파도타기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kkonal@gmail.com 으로 성함, 주소, 휴대폰 번호를 적어 보내주세요~

    2008.07.28 15:19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꼬날님.
      저는 자영업만 해보았을 뿐 조직생활 경험이 전무하지만,
      일하는 시간보다 상사 눈치보는 시간이 더 많다는, 대한민국식 조직문화를 가슴아파 하던 차에,
      그저 느낌만으로도 진취적이고 창의적으로 보이는 TNC가 참 보기좋네요.

      이번처럼 감칠맛나는 이벤트 가끔 하세요!
      감사! 잘 읽을게요.

      2008.07.28 18:52 신고 [ ADDR : EDIT/ DEL ]
  2. 미탄님, RSS 리더로 포스트 잘 보고 있습니다. 금번 포스트에 제 포스트 URL이 올라왔는데 한글 URL이라서 클릭하면 에러가 납니다. 아래 URL로 바꿔서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가락은 완벽했어 ( http://www.read-lead.com/blog/585 )

    멋진 포스트 잘 보고 갑니다. ^^

    2008.07.28 15:54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안녕하세요.
      buckshot님. 바꾸었습니다.
      안그래도 두세번을 해도 에러가 나길래,
      저도 속상하던 참인데, 섬세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컴맹이라 참 불편하네요.
      스킨도 바꾸고 싶고, 배너도 달고 싶고~~ ㅠ.ㅜ

      2008.07.28 19:02 신고 [ ADDR : EDIT/ DEL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는 길을 만들며 간다. 그가 걸어간 길에는 확실한 자국이 남는다. 48년생, 71년에 미국유학, UCLA문화인류학 박사,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전형적인 유학파 교수 치고는 흔치않은 사회활동이며 성과이다.

그는 1984년 “또 하나의 문화” 동인결성을 주도하여 지금까지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또 하나의 문화”는 보수적이고 획일적인 사고체계를 강요하는 전통으로부터의 자유, 제도개선을 위주로 하는 정치적인 여성운동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여 명실공히, 또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제도’가 아닌 ‘문화’, ‘투쟁 ’보다는 ‘연구출판’의 기치를 내건 또문의 활동은, 생각있는 많은 여성들에게 의지가 되었다. 나역시 교육과 가족, 성과 사랑, 결혼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고, 대안적인 문화를 독려하는 또문 동인지의 애독자였다.

조한혜정은 1999년에 ‘하자센터’의 교장이 되어 대안교육에도 획기적인 사례를 남긴다. 자신의 아들이 ‘철학적인 학교이탈자’이기도 했고, 대학 강단에서 만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도 느낀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우리 교육현실은 오직 2프로만이 상위권에 도달할 수 있는 소모적 경쟁궤도인데, 정작 그 2프로의 대학생조차도 행복하지 않더라는 얘기이다. 대입이 최고목표인 고등학교 현실이나, 취업이 최고목표인 대학 강의실 어디에도 안정과 행복은 없었다. 그는 1999년 어느 일간지 칼럼에 “붕괴하는 강의실에 생기를 돌게 하려고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썼다.

그는 ‘하자센터’를 통해 대안학교의 새로운 모델을 세웠으며, 서울시대안교육센터장으로서 산재한 대안 학교들을 연결・지원하기도 했다. 올해는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아 그 활동 영역을 더 확장하고 있으니, 지식을 생산하고 옹호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지식을 단단하게 하고 확장하는 全人의 모습이 감탄스럽다.


그는 타고난 ‘혁신가’요 ‘선동가적 실천가’인가 보다. 80년대에는 여성운동에서, 90년대 말부터는 대안교육에서 갖은 실험을 하며 새로운 이론을 써 온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 아기자기한  사례도 있다. 명절마다 민족 대이동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착한 국민 콤플렉스’가 지겨웠던가 보다. 그는 다중적인 명절을 이야기할 새로운 의례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수년간 주변 사람들을 꼬여 인사동에서 추석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조한혜정이 요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마을’로 보인다. 가족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공동체적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며 ‘돌봄 사회’로 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 그가 꿈꾸는 마을은, 작은 마을학교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곳,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가 휴식할 수 있고, 사람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는 곳. 또 노인들이 곳곳에 모여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볼 수 있고, 수시로 물물교환이 이뤄지는 곳이다. 그동안 공동육아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학교를 세우고, 느슨한 마을을 형성하는 것을 보며 생각을 굳혀온 것 같다.


“다행히 그간 ‘탈선한’ 사람들이 두런두런 마을을 이루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크고 작은, 갖가지 모습의 마을들이 ‘천 개의 고원’을 이루며 제각각의 변주를 해낼 때, 그리하여 언젠가는 다들 연결하여 아름다운 교향악이라도 연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아마도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입니다.”(저서 “다시 마을이다”의 프롤로그 중에서)


논리적이고 똑 소리 나는 문체의 저자로도 유명한 조한혜정이 느닷없이 꺼낸 ‘마을’, 그러나 그가 말하면 그 말의 무게는 달라진다.  이제껏 또문과 하자에서 보여준 역량을 집대성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이론과 실천의 양날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그라면 말이다. 소통과 돌봄과 평생학습이 있는 그의 ‘마을’에는 나도 관심이 많다. 힘써 공부하고 실천하며 걸어가는 조한혜정의 길, 다른 사람들이 기꺼이 따라가고 싶은 선례가 되는 그의 발걸음이 참으로 보기좋다.


“서로 돌보는 마을이 생기면 세상이 크게 달라질 겁니다. 많은 이들이 ‘주민’이 되어 마을 일을 토론하고, 마을 잔치를 준비하고, 마을 역사를 기록하느라 모두 글쟁이가 되어버린 마을을 상상해봅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소소하지만 다음 시대를 만들어가는 큰일을 해내면서 생산과 나눔의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 방영되는 TV드라마 중에 ‘엄마가 뿔났다’라는 것이 있다. 심심한 날 쳐다보고 있으면 하나씩은 건진다. 김수현작가의 드라마가 아닌가.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모든 등장인물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녀는, 내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재벌가 왕비병 마나님캐릭터에도 수긍이 가게 만든다.

 

‘맞아, 저런 사람도 있을 거야’ 를 넘어, 자기자신도 어쩔 수 없는 ‘기질’이라는 것에 머리를 내두르게 만든다. 김수현의 탄탄한 대본과 완벽주의에 촉발된 연기자의 투혼이 맞물린 결과이다.


한 번은 무심히 ‘엄마가 뿔났다’를 보고 있었다. 마침 할아버지의 러브스토리가 펼쳐지고 있었다. 70대인 이순재의 사실적인 연기가 돋보였다. 그리곤 이 사건을 둘러싼 가족들의 온갖 반응이 펼쳐졌다. ‘아하, 드라마가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훈련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TV 앞에서는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해도, 35년간 드라마를 주름잡아온 김수현이라면 말이다. 저 빼어난 리얼리티와 심층적인 심리묘사를 자랑하는 김수현의 드라마라면, ‘모의체험’이나 ‘대리만족’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1943년생, 66세

1968년 라디오 연속극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

1972년 TV드라마로 옮겨 “새엄마” 이후 쉴 틈없는 작품활동

1984년 “사랑과 진실”로 76% 시청률 기록, 당시만 해도 파격적이었던 1억 고료 받아.

1987년 “사랑과 야망” 역시 70%대 시청률 기록.

1991년 “사랑이 뭐길래” 1995년 “목욕탕집 남자들” 로 전성시대 계속.  ‘대발이 아버지’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남자를 표현하는 말로 쓰일 정도. 8,90년대 그녀의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이면, 수돗물 사용량이 줄어들고 영업용 택시가 텅텅 비었다는 전설.

1999년 “청춘의 덫” 리메이크

2004년 “부모님 전상서”

2007년 “내 남자의 여자”

2008년 “엄마가 뿔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http://kimdooho.interview365.com/233 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대충 내가 들어본 드라마 위주로 뽑아본 것이다. 이처럼 그녀는 무려 35년간, 대한민국 드라마를 완벽하게 장악해 왔다. 어느 장면 하나, 어느 캐릭터 하나를 허술하게 다루지 않는 깐깐함을 가지고, 자신의 왕국을 건립한 것이다.


“부모님 전상서”에서 그녀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주’를 앞세우기보다 인생에 대한 성찰이 돋보였다.  KBS에서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단다. 이에 김수현이 맘먹고 차분한 드라마를 쓴 것 같다. 출연자에게 “시청률은 잊어라. 대신 이 작품에 출연하는 게 창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니 말이다.

아주 정갈한 드라마였다. 송재호가 저녁마다 부모님께 쓰는 편지 나레이션은 많은 시청자를 가르쳤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자신의 부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김수현은 “내 남자의 여자”에서 다시 한 번 변신한다 “왜 불륜을 집어넣었는지도 모르겠는 무늬만 불륜인 드라마가 깝깝해서 시작해보는 ‘이야기’” 라고 했다.  과연 진부한 주제라도 김수현이 쓰니 달랐다. 그녀는 자극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불륜이 아닌 인생이야기까지 파고 들어갔다. 김희애의 신들린 연기 또한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였다.

사랑의 덧없음에 치를 떨며 떠나는 김희애를 공항으로 태워다주며 동생이 한 말을 기억한다.

“일을 해요, 일은 배신을 안하잖아요.”


어디선가 보니, 김수현은 현실보다 드라마 속을 더 현실처럼 느낀다고 한다. 자기 안에 들어있는 많은 인물들을 끄집어내면 드라마가 된다고도 한다. 그러니 그녀가 자신의 드라마와 인물에게 쏟는 애정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김수현의 공식사이트에서 자료를 훑다보니, 1년에 한 편 꼴로 숨가쁘게 드라마가 쏟아지는 가운데, “2001년 휴식”이라는 구절이 딱 한 번 눈에 띄었다. 거의 신기에 가까운 생산력과 집념에 감탄할 뿐이다.
 

그녀는 단순한 상업주의 작가가 아니다. 김수현이라는 통속적 이름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주철환, 이대 언론홍보 영상학부 교수 --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병종은 '라틴화첩기행'에서 브라질의 건축문화에 대해 감탄한다. 마치 모더니즘 건축물의 박물관처럼, 비행접시 모양의 건물이 있는가 하면 기둥 하나로 지탱하는 32층짜리 건물도 있다고 한다. 남미대륙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브라질 사람들은 스케일도 커서, 여행자의 기를 죽이는 거대한 조형물도 많았다고 한다.

그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는 1907년생이다. 100세가 넘은 나이에 아직도 활발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2006년에 99세의 나이로 30년간 자신을 보살펴온 38세 연하의 비서와 결혼을 하는가하면, 2014년 브라질에서 개최하는 FIFA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니, 그는 보통사람의 몇 배에 해당하는 인생을 사는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스카 니마이어는 근대건축의 대부인 르꼬르뷔제의 영향을 받았다. 두 사람은 유엔본부를 함께 설계하기도 했는데, 르꼬르뷔제는 유럽의 진부한 바로크 양식에서 탈피하여,  라틴의 풍부한 곡선을 살리거나 저비용을 위해 철근 콘크리트와 같은 현대적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지역적인 요소를 살리라고 주언해주었다.

과연 오스카 니마이어의 작품들에는  곡선이 살아있었다. 1943년에 완성된 성프란시스 교회는 4개의 포물선과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사각의 종탑이 아름답고도 파격적이다. 교회라기에는 무슨 오페라하우스 같은 경관이다. 고딕의 향수 속에 안주해 있는 교회건축에 조소적 가능성을 도입한 실험이다. 이 교회는 뉴욕현대박물관의 전람회에서 국제적인 갈채를 받았지만 보수적인 대주교의 반대로 장장 15년 동안 봉헌되지 못했다.


성프란시스 교회
http://blog.naver.com/jinsub0707?Redirect=Log&logNo=140048742610


89세에 설계한 한 미술관은 미술관 내부에 있는 예술작품보다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파격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그의 건축들
http://cafe.naver.com/hillsstyler.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15


열렬한 공산주의자인 그는 46년 예일대 교수직을, 53년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장을 제안받았을 때 미정부에 의해 비자발급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그는 전 세계에 500여 개의 건축물을 남기는 동시에,  고향 리우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한다. 공립학교를 설계하고, 빈민가를 정비하여 삼바 페스티벌 거리를 만들었다. 그는 늘 그렇게 말해왔다.

"내게 중요한 것은 철근과 콘크리트의 건축이 아니라 삶과 친구, 그리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포브스코리아 10월호, 손용석기자 사진

‘신의 물방울’의 저자 아기 다다시는 한 사람이 아니라 남매의 필명이다. 40대 후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출신의 누나 기바야시 유코다와, 네 살 아래 잡지 편집기자 출신의 동생 기바야시 신이 그들이다. ‘신의 물방울’은 국내에서 150만 부가 팔렸다. 그들의 만화에 등장한 와인은 순식간에 동이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파워는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에서도 먹혔다. 2007년 가을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 캐릭터를 프랑스산 햇와인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병에 붙여 내놓자 애초 목표한 84만 병이 바로 매진된 것이다. 당사자들도 예상치 못한 인기였다.


한 블로그에서 그들의 와인셀러 아파트를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지진이 일어나도 끄떡없는 ‘와인 전용 아파트’를 두 채나 가지고 있다. 


http://blog.timelife.co.kr/soncine/208?TSSESSION=7d864a7070e8521026852903533c10dc
손용석의 와인이야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포브스코리아 10월호, 손용석기자 사진

아파트 전체를 16도에서 18도를 유지하는 와인셀러로 꾸며놓았다. 옷장에도 신발장에도 모조리 와인으로 가득차 있다. 2500여 병, 우리 돈으로 1억은 될 것이라고 한다. 여름철이면 전기료만 한 달에 80만원씩 나간다고. 이쯤은 되어야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편집광에 가까울 정도로 징그럽게 쏟아지는 사랑.


그녀의 와인사랑은 몇 년 전 회식자리에서 시작되었다. DRC가 생산하는 ‘에세조(Echez-eaux) 1985년산’을 잔에 따르자 화려한 꽃 향기가 피어났다고 한다. 와인을 입 안에 넣자, 산딸기를 비롯한 과일 맛에 머리가 아찔해졌고 우아하고 섬세한 맛에 혀가 매료됐다고 한다.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그렇게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와인이 천.지.인의 합작품이라고 한다. 기후, 토양, 인간노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 와인의 색, 향, 맛을 음미하다 보면 그 안에 숨은 드라마들이 얼굴을 내민다고, 자신들은 그것을 끄집어내 이야기로 엮을 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들의 와인에 대한 묘사는 神의 경지에 도달한 듯하다. 한국에서 수시로 와인 시음회를 주관하는 모양인데,  와인을 한 잔씩 마시고 나눈 느낌들이 환상적이다.

‘카사마타(Casamatta)’를 마시고 “바닷가에서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소년이 떠오른다”고 하는가 하면,  ‘볼게리 사시카이아(Bolgheri Sassicaia)’는 “식사를 마친 암사자가 잠에서 깨어 자신의 털을 핥는 모습 같다”고 표현했다. 그런가하면  팔머99는 모성애로 가득한 모나리자를 연상케 하고, 샹볼 유지니를 접하면 원시림에서 관능적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꾼다는 식이다.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와인을 껴안고 뒹굴고 와인과 하나가 되는 무아지경에 빠지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표현들이다.

단순히 와인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와인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싶다는 그녀, 와인은 머리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마시는 것이니, 와인에 대해 공부하느라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하는 그녀의 와인라이프가 부럽다.

“와인은 부유하고 똑똑한 사람만을 위한 술이 아니다. 기쁘거나 슬플 때 친구처럼 혹은 친구와 같이 마시며 힘을 얻을 수 있는 神의 축복이다.”

아~~ 神의 축복이 간절한 밤이다! ^^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심산,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재학 시절부터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일궈온 전방위 작가. 영화 <맨발에서 벤츠까지>(1991)로 첫 번째 크레디트를 얻은 이후 다양한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비트>(1997)와 <태양은 없다>(1999)는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했으며, <태양은 없다>로 1999년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 1998년부터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작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작가전문교육원,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센터 등에서 시나리오 워크숍을 이끌어왔다. 저서에 시집 <식민지 밤노래>, 장편소설 <하이힐을 신은 남자> <사흘낮 사흘밤>, 다큐멘터리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공저) 등이 있다.   -2007.9.16 네이버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심산의 공식적인 직업은 시나리오작가이다. 그러나 얌전하게 글만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불합리함에 비분강개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2005년 11월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출범을 주도하여 2대째 대표직을 맡고 있거니와, 한국영화시나리오마켓 운영위원장을 맡아, 실천의 선봉에 서있는 것이 그를 증명한다.


그의 글 몇 편만 읽어봐도 시나리오 작가들의 계약조건이 상당히 불합리한 것을 알 수 있다. 단행본 계약에서 상식이 된, 저작권보호조차 되지않는 것 같다. 이의 개선을 위해 제자들의 계약에 직접 참여하여, 보다 일진보한 계약서를 성사시킨 후 희희낙락하는 그의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8년여,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독립한 지 2년여, 10년간 시나리오 강좌를 하다보니, 수료생의 작가진출이 늘었고, 이제 심산은 작가 에이전시 노릇까지 하게 되었다는거다.


시나리오마켓도 역동적이고 신선하게 보인다. 한 달에 백여 편 들어오는 작품을 심사하여 5편 내외의 작품을 추천하고, 일부에게는 창작지원금도 준다. 작품이 팔리면 계약금의 3%를 마켓에 납부하면 된다. 작가 지망생들과 제작사를 연결하는 통로를 제공하고, 투명성과 시장성을 실험하는 시도가 보기좋다. 단행본 경우에는 에이전시가 이런 역할을 하는지?



그정도만 해도 한 개인의 작업량으로는 충분할텐데, 심산의 경우에는 이제 시작이다. 시나리오작업을 기본축으로 하고, 산과 와인이 그를 호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가 조강지처라면 산은 든든한 죽마고우요, 와인은 속깊은 애인인 셈이다. 그의 책 ‘마운틴오딧세이’에서 전문등반가로서 산악문학에 대한 그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심산스쿨에서 와인반을 직접 강의할 정도로 와인애호가이다. 그러니 그의 일상이 분주하지 않을 수 없고, 화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영화 ‘음란서생’에 까메오로 출연하는가 하면, CBS 라디오 ‘매거진오늘, 장미홥니다’ 에서 ‘옛날 영화를 만나다’ 코너를 진행한다. 심산스쿨 동문회와 자전거로 제주일주를 하고 <2006.9>,시나리오반 합동번역으로 527페이지에 달하는 ‘시나리오마스터’를 출간했다. <2007.10.19>


최근 산악문학을 100권 이상 출간하겠다는 포부아래, ‘마운틴북스’의 편집인을 맡아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와, 자신의 책 ‘심산의 와인예찬, 내 인생의 와인들’이라는 책을 펴냈으며, 3월에 23일간의 일정으로 히말라야  캉첸중가(8586m) 일원 트래킹에 참여할 계획이다. 서른 넘어 한량이 되겠다고 작정했다더니, 그 목표를 이룬 셈이다. 정말 다양한 포트폴리오의 한량, 심산!


그러나 정작 그에게서 돋보이는 것은 비즈니스감각이다. 시나리오작가의 권익투쟁에 열올리는 부분도 그렇고, 심산스쿨의 성공도 예사롭지가 않다. 사업감각이 탁월한 한량이라~~ 인생의 목표로 삼아도 될 것 같지 않은가? ^^


늦게나마 저 말처럼, 살아볼 일이다. <2006. 10.23일자 시사저널, 심산스쿨을 주목할만한 문화콘텐츠집단 5개 중 영화부분에 선정한 기사의 머릿글>


미치도록 놀고 죽도록 배우니 놀랍도록 큰 성과!



관련 글 바로가기
2007/12/01 - [좋은 책/책] - 심산의 마운틴오딧세이
2008/02/08 - [저렴하게 인생을 즐기는법/좋은 커뮤니티에 접속하라] - 심산스쿨
2008/02/08 - [펌글창고] - 학습시대 학습인을 위한 문화예술철학학교 -서울경제 2008.1.24




Posted by 미탄
TAG 심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주를 휴대하고 다닌다? 이 표현을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책 ‘Flow’에서 보았다. 詩든 미적분이든 상징체계에 익숙해진 사람은 머릿 속에 일체가 완비된 휴대용 우주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들은 머릿속에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상징체계가 있기 때문에 강제수용소나 극지 탐험같은 극한상황에서도, 외부의 자극에 구애를 받지않게 된다.

아주 인상적인 표현이었다. 내적 상징체계가 있는 사람은, 유행이나 대세에 현혹되지 않고, 스스로 흐름을 만들어낸다. 명확한 자기세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있게 다른 세계에 반응할줄도 안다. 무언가를 창조해낼 도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찾아낸다. 결국 그는 내가 理想으로 생각하는 창조인, 단독자이다.

그 책에 나오는 사례를 하나 이야기하면, 내가 ‘휴대용 우주’에서 받은 느낌을 전달하기 쉬울 것같다.

티보르는 공산주의 헝가리 시절 독방감옥에서 몇 해를 보낸 시인이다. 수백명의 지식인이 감금된 비게그라드 감옥의 재소자들은, 벽을 두드려가며 어렵게 소통한 끝에 시 번역대회를 하기로 했다. 종이도 없고 쓸만한 도구도 없는 상황에서 티보르는 구두 밑창에 비누를 칠해서 엷은 막을 만들고 이쑤시개를 사용해서 글자를 새겨넣고, 한 행을 외우면 구두에 다시 새롭게 비누칠을 했다. 얼마 후 수십 개의 다른 번역판의 시가 감옥에서 만들어졌고, 우수한 시를 가리기 위해 투표에 부쳐졌다.

총을 든 교도관들이 옥죄어오는 감옥에서도, 그의 머리에는 시와 이미지가 물밀듯 떠올랐다. 다른 죄수들은 고스란히 감옥 안에 갇혀있었지만, 그는 머리 속에서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었다.

오늘 내가 ‘휴대용 우주’라는 말을 떠올린 것은 순전히 정재승이라는 필자 때문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 뇌공학과 교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2002’, ‘과학콘서트, 2003’ 단 두 권의 저서를 가지고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필자로 떠오른 그가 몇 년간의 공백을 메우고 ‘한겨레21’의 고정컬럼으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쌩뚱맞게도 그가 들고온 주제는 ‘사랑학’이다. 지난 학기에 카이스트에서 ‘사랑학’이라는 과목을 개설했던 모양이다. ‘사랑학’의 연구결과는 이런 것들이다.

하나, 첫 만남에선 자이로드롭을 함께 타라
이유인즉 육체적인 흥분을 상대방에 대한 호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대학입학이나 해외여행같은 새로운 상황은 물론, 부모의 죽음이나 애인과의 결별 같은 상실을 경험한 뒤에도 이성에게 쉽게 끌린다고 한다.

두울, 사랑은 왼쪽 귀에 대고 속삭여라. 왼쪽 귀와 연결된 우뇌가 감정조절에 관여하기 때문에, 왼쪽 귀로 들었을 때 더 정확히 기억한다.

사랑이라고 하는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체험을 관통하는 ‘사랑의 과학’도 재미있지만, 나는 정재승이라고 하는 필자에 더 관심이 갔다.

과학이 인문학, 사회학, 문학과도 통한다는 것을 쉽고 풍부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상대성원리를 교향곡으로 시작한다든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가지를 이어서 뒤통수를 치는 글을 좋아한다는 그가, ‘사랑’을 연구하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이다. 무엇이든 관심있는 주제를 선정하고, 깊이있는 연구와 맛깔난 저술을 통해, 독자의 시야를 1인치 더 넓혀줄 수 있는 준비된 필자 정재승, 그야말로 ‘우주’를 자유자재로 ‘휴대’하는 것이 아닌가.

‘과학’이라는 기본적인 도구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학문에 접근함으로써, ‘우주’를 무한대로 넓혀갈 수 있는 그가 부럽다. 나는 늦었을까. 그가 말한다.

“미래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은 결코 한 우물만 파는게 아니라 우물을 두 세 곳을 파고, 그 우물 사이에 지류를 내는 사람일겁니다. 그런 사람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책읽기에요. ”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에 ‘5천만의 꿈, 5천만의 역사’라는 꼭지가 있다. 구본형은 그 꼭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아름다운 개인사 한 장면씩을 사진첩처럼 모아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 한 장면씩을 역시 모아두려고 합니다.
이 장면들이 모두 모이면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미시적 현세사이고 미시적 비전이 아닐까요?
여기에 다음과 같이 당신의 역사의 한 장면, 꿈의 한 조각을 남겨놓으세요. 첫째, 당신의 생애 중 지금 생각해도 아름다운 장면 하나를 남겨놓으세요. 가장 아름다울 필요는 없습니다.그러나 그 순간이 있어 당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믿게하는 그런 환한 이야기 하나 들려주세요. 둘째, 앞으로 당신에게 찾아올 아름다운 장면을 하나만 미리 알려주세요. 아마 당신의 꿈들 중 하나겠지요. 그래요, 아주 아름다운 꿈 하나 적어주세요.”


이 짧은 글에는 개인 구본형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많이 숨어있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꿈’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적극 권장되지만, 대학생만 되어도 사용하지 않게 되는 이 단어를 구본형은 성인들을 위해 살려내었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직장인이 많다는 것에 주목하고, 생긴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꿈’이라 지칭하였다. 변화경영연구소에는 2박3일간 합숙하면서 내면의 꿈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있다. ‘내 꿈의 첫페이지’라고 부른다.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들은 꿈벗이라는 이름으로 기별로 혹은 전체적으로 커뮤니티를 유지한다. 최근에는 ‘꿈벗재단’의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성인이 되면서 폐기처분되는 단어인 ‘꿈’을 직업화했다는 사실이?
변화경영연구소를 찾는 사람들은 전적으로 구본형의 저서를 보고 모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당히 동질적이다. 경쟁적이고 물질적인 사회생활보다는, 이상적인 경향을 갖고 있어서 창조적 소수자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많다. 심한 경우 미운 오리새끼나 아웃사이더로 외곽에 존재하던 사람들이 모였으니 서로 알아보는 기쁨은 말할 것이 없다.
아파트와 재테크와 명예퇴직이라는 단어가 점령한 사회에서 전쟁처럼 살다가, 꿈을 이야기하는 이 곳에 오면 청정지역처럼 공기가 순해진다. 그들은 마치 대학신입생처럼 꿈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비슷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없는 위안을 받는다. 이 곳에서 느끼는 일체감을 한 젊은이가 잘 표현했다. 꿈벗 전체동문회를 마친 다음날 출근해서 직장동료와 나눈 대화이다.
“은혜 많이 받았어?”
“교회모임 아니었는데?”
“그래? 난 하도 좋아하길래 신흥종교인줄 알았지.”


그 다음에는 ‘장면’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띈다. 구본형은 ‘하루’에 독특한 지위를 부여한다.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조차 벼르고만 있지, 막상 출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데서 기인하는 것일까.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자만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생을 잘 살려고 벼르지 말고, 오늘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라. 그러다보면 인생을 잘 살게 된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하루’와 ‘지금’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종종 ‘장면’의 포착으로 나타난다. 연구원에게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날’을 그려보라는 과제를 주는 식이다. 이런 방법은 시각화 visualization와도 관련이 있다. 내가 가장 원하는 상태를 머리 속에 그려봄으로써 자극을 받고, 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된다. ‘장면’과 ‘하루’가 모이면 ‘일상’이 된다. 구본형은 일상예찬가이다.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은 하루를 잘 경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일기를 묶어 펴낸 책의 제목은 “일상의 황홀” 을유문화사 2004 이다.


‘이야기’라는 단어도 아주 중요하다. 그는 자신을 스토리셀러로 인식하고 있는 것같다. 우리들에게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라고 역설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역사 속에 묻혀가는 이름없는 대중이기를 거부하라고 강변한다. 기록하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라. ‘나의 이야기 Me 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지난 일에 대해 쓰다보면, 해보지 못한 일들이 부각된다. 이 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에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구본형은 40대의 10년을 “구본형의 변화이야기”휴머니스트 2004 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앞으로도 10년에 한권씩 Me Story를 펴내겠다고 한다.


‘꿈’, ‘하루’, ‘기록’ 같은 메시지는 그대로 날아와 내 가슴에 박혔다. 나는 기꺼이 그의 전언을 내면화하고, 그의 방법론을 따라해 볼 생각이다. “저자가 직접 실험해 보지 않은 자기계발론은 사기다” 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직접 실천해 본 방법만을 이론화하고 프로그램화했다. 그래서 실천으로 증명된 그의 방법론은 힘이 있고 신뢰가 간다. 언행일치-그의 가장 큰 덕목이다. 그로 인해 구본형은 그냥 저술가가 아니라 역할모델로 거듭난다. 교육이 별 것인가. 나 닮아라, 나 닮아라 하고 향기와 흡입력을 발산하는 역할모델이 아닌가. 젊은 연구원들은 구본형을 사부라고 부른다. 나는 나이차이가 별로 안나서 ‘소장님’이라는 공식적인 호칭으로 부르지만, 구본형은 師父 맞다. 역할모델이 사라진 척박한 시대에 스승이 될 수 있는 분이다.


그의 컬럼을 통해 인상적이었으며, 그의 일상을 통해 생활로 구현되는 몇몇 메시지를 좀 더 정리해 보았다. 그의 메시지는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내 안의 나’를 일깨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나를 읽는 행위라더니,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와 같은 셈이다.

그의 메시지 중에 내가 가장 서툰 부분은 ‘사람’에 대한 부분이다. 그에게는 하루를 살아가는 단 하나의 원칙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원칙 중의 원칙인 셈이다. 그것은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의 여부이다. 자신의 마음이 사람이 떠난 빈 집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연구소에 모이는 사람들의 동기가 오로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어야 한다고 갈파한다. 어떤 의미있는 활동도 그 다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란 두루뭉실하고 추상적인 이름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연구원 미팅에서 그가 인사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냥 ‘안녕하세요’라고 전체적인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눈을 맞추고 관심을 표명하는 방식이다. 옷의 색깔을 언급하기도 하고, ‘뭔가 달라졌는데 그게 뭐지?’ 하며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방식이요 tip이 될 수 있다. 마케팅의 영역에서 보면 관념적인 고객이 아니라, 내 앞에 내 서비스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첫 번 째 책을 쓰면서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책을 읽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많은 독자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헤매고 있는 知己를 그리는 것이다. 나도 그대와 똑같은 어려움과 방황을 거쳐왔지. 그러나 나의 삶은 소중하기 때문에 나답게 사는 방법을 찾아냈어. 사실 나답게 살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살 수 있다는 것인지 상상도 할 수 없잖아. 나와 같은 길을 가자. 나의 師友가 되어줘. 나는 혼자서도 갈 수 있지만, 그러나 그대가 있었으면 해. 구본형은 사람을 구체적이고 특수한 개인으로 대하는 방식을 데레사수녀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이 불세출의 수녀님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마음에 품고 살았고, 실천에 옮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사람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번에 단 한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만일 내가 그 사람 하나를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뿐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


이렇게 ‘단 하나의 사람’을 만나서 최선의 자아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다름아닌 ‘인정해주는 것’이다.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정에 목말라 한다. 하지만 이처럼 명백한 진실을 알고 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본형은 그것을 알고 행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다. 칭찬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다.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말라. 그러나 아무 때나 칭찬하지 말라. 남발하면 가치가 떨어진다. 적절한 곳에서 적절한 방식의 칭찬이 둘을 가깝게 해 준다.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일을 만나게 되면, 감탄의 눈빛으로 한 번 봐 줘라. 그 눈빛이 천 마디 말보다 위력적이다. 칭찬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고마움을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칭찬의 방식을 몇 개 가지고 있는 사람은 훌륭한 처세술을 가진 사람이다. ”


“우리가 스스로를 평가할 때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로 평가한다. 그러나 남을 평가할 때는 ‘그가(그녀가) 어떤 일을 했는가’로 평가한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남을 평가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통해 자신을 평가한다. 따라서 남에게 인정을 받고 싶으면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누군가를 가까이 하고 싶다면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물어주고 믿어 주는 것이 좋다.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박수갈채다. 그 한 사람이 되어준다면 최고의 동료라 할 수 있다.”


구본형의 생활철학에는 유머와 시도 있다. 모든 성숙한 인격들이 강조해마지 않는 유머 - 빅터 프랭클과 고든 리빙스턴처럼 역경을 견뎌낸 사람들조차 유머를 강조했다. 삶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알면 역설적으로 ‘삶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따라서 유머는 고난에서 나온다. 삶의 깊은 체험에서 나온다.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힘써 배워 써먹어야 하는 생활철학이다. 구본형역시 웃음이 깨달음인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는 ‘시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에 관한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내게 ‘시처럼’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표현의 비약과 함축이다. 일일이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고, 때로는 침묵조차 좋은 언어가 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매력적이다. 마음의 흐름, 눈빛, 이심전심의 비언어적 언어가 가능하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나는 어떤 경우 이런 삶이 가능하고, 그런 관계가 가능한 인물들이 내 삶 속에 등장하게 될 것을 꿈꿔왔다.


‘시처럼’이라는 말의 다른 하나의 의미는 생각과 상상이 현실과 같은 비중으로 삶 속으로 접근해 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녀와의 사랑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녀에 대한 사랑은 커다란 그리움으로 실재하기도 한다. 상상 또한 아름다운 실재라는 점에서 그리고 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지금은 시가 사라져 가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시인의 삶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는 곧 세상의 빛나는 언어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왜냐하면 기계들은 비약과 함축과 침묵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즐길 수 없다. 시처럼 인간적인 것은 없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빛나는 교신인지도 모른다. ”


2004년에 구본형은 몽골로 말타기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기를 시로 남겼다.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다. 유머와 시를 결합시킨 셈이다. 나는 낄낄대며 이 여행기를 읽었다. 내게 유머감각이 없다는 것이 서운했다. 우선 다른 사람의 유머에 크게 웃으면서 연습해봐야 하겠다.
Posted by 미탄
TAG 구본형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창기


출판·언론인. 1936 -1997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월간 문화종합잡지〈뿌리깊은나무〉, 월간 여성문화잡지〈샘이깊은물〉의 발행·편집인이었다.


한창기는 광주고등학교를 거쳐 1957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자신의 진로가 법조계가 아님을 깨닫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문화사업에 뛰어들어, 미국 시카고의 엔사이클로피디어브리태니커사에서 한국 땅에 영문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Encyclopaedia Britannica〉을 보급하는 권리를 받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70년 한국브리태니커 회사의 사장, 85년 회사를 떠날 때까지 한국 직판업 제1세대의 전설적인 수장으로 추앙받았다.
1976년 3월에 〈뿌리깊은나무〉 창간호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잡지는 한글전용, 가로쓰기, 전문 미술집단의 지면배열 참여, 일관된 문화적 시각,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어린 탐색 정신과 더불어, 입말과 글말, 지식인 언어와 민중 언어의 조화로운 합일과 국어의 얼개와 어휘에 두루 유념한 편집·교열 등으로 혁신적인 간행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잡지는 한편으로 출판·언론인으로서 그의 지향을 선언한 물증이기도 했다. 그러나 〈뿌리깊은나무〉는 한글세대를 중심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해가던 1980년 8월에 신군부 세력에 의해 공식적인 이유 없이 강제폐간되었다.


그 때부터 한창기는 출판활동에 진력해 1983년에 남한 땅 종합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 11권, <뿌리깊은 나무 민중 자서전> 20권, <브리태니커 판소리 전집> 등을 완간했다.


특히 1974년부터 '브리태니커 판소리 감상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100회가 되던 1978년에 끝냄으로써 판소리의 보존과 보급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84년 11월 잡지 〈샘이깊은물〉을 창간.

한창기는 제국주의 일본의 잔재를 미처 털어내지 못하고 있던 한국 출판물의 내용과 형식에 진정한 근대성과 주체성을 부여한 최초의 출판 언론인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출판활동을 통해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 평생을 바쳤다.


출판을 통해 우리 문화의 뿌리를 발굴한 발자취가 선명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느라, 풍류를 아는 댄디한 멋쟁이였다는 그는 비혼인 채 61세의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다.



2. 워렌 버핏

뉴스에서 전 세계 2위의 거부, 워렌 버핏의 재혼 소식을 보았다. 그의 결혼 이력은 예사롭지 않았다.

부인 수전 버핏과 25년간의 결혼 생활 후 별거 시작, 별거 중에도 공식석상에 파트너로 나타나거나 여행을 같이 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 2004년 수전이 타계한 지 2년 후에, 오랜 동거인 멩크스와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멩크스를 버핏에게 소개한 사람은 다름아닌 수전 버핏이었다.

수전이 사망한 후 버핏은 아내를 기리기 위해 수전 톰슨 버핏 재단을 설립했다. 한편 그는 지난 6월 재산 중 85%에 달하는 370억달러를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에 기부했다.

워렌 버핏의 행보에는 인간에 대한 예우와 품격이 있었다. 가히 ‘오마하의 현인’다웠다.
마침 인터넷에 올라있는 그의 저택이 불과 5억원 정도의 소박한 집인 것을 본다. 그에게 투자와 분석은 하나의 ‘놀이’가 아니었을까. 자기의 재능에 집중하여 막강한 부를 얻었지만, 거액을 기부함으로써, 단지 부호에서 그치지 않고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다 가는 ‘현인’의 반열에 오른 워렌 버핏... 멋진 인생이다.


3. 박운서

호랑이같은 근성과 추진력으로 ‘타이거 박’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직 관료, 사업가.
통상산업부 차관, 두산중공업 사장, 데이콤 회장 역임. 2004년 은퇴, 현재 68세.

부부동반으로 골프여행을 갔다가, 필리핀 오지의 열악한 환경에 경악, 깊은 묵상 끝에 정착을 결심.

"40년을 나와 가족을 위해 일했으니 남은 생은 이웃을 위해 살아도 좋다 싶었어요."

평균 수명 40세. 학교도, 경작할 땅도, 미래의 희망도 없다 보니 사람들은 게으르고 의욕이 없었다. '문명세계'와의 접촉이란 간혹 읍내 시장에 가 싸리 빗자루나 바나나를 파는 것이 전부. 생명줄인 소금과 등유를 사기 위해서였다. "아이들 맑은 눈망울을 보니 별 생각이 다 나데요. 다 같은 사람인데 너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니…."


현장 조사 끝에 쌀농사를 짓기로 했다. 젊은 망얀족 부부들을 데려다 일꾼으로 키우고, 학교.고아원.병원 등을 설립하는 베이스 캠프로 삼기 위해서였다. 재단 이름으로 논 16㏊(5만 평), 그에 딸린 망고나무 밭 1㏊(3100평)를 샀다.
통신.도로.수도.전기. 사람 모여 사는 곳이라면 꼭 있어야 할 인프라를 모두 제 손으로 만들었다. 그 모든 일을 불과 6개월 만에 해냈다.

정부군과 지주의 경호원, 사회주의 무장세력과 원주민간에 심심치않게 무력다툼이 있는 곳에서, 그들 간에 협상을 이끌어내 원주민의 자립터전이 되게끔 했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 해 굵직한 업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세상은 아마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겠지만, 명예가 그들의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가는 일에 전력투구한 것, 한 세월 제대로 놀다가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