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에 해당되는 글 203건

  1. 2011.12.04 이른 산책과 콩나물국밥
  2. 2011.11.26 기차 안에서 놀기 (2)
  3. 2011.11.20 모든 것에서 배우는 법 (4)
  4. 2011.11.03 삶이 사라지고 있다 (2)
  5. 2011.10.27 언니의 미니 전시회 (2)
  6. 2011.09.21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고 (4)
  7. 2011.09.15 가슴이 아프면 동물이 보고 싶다? (2)
  8. 2011.08.24 지름신은 나의 힘 (2)
  9. 2011.08.17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어! (2)
  10. 2011.07.13 범수처럼
좋은 삶/새알심2011. 12. 4. 01:07







함께 나이들어 가는 부부는 뒷모습도 닮았다. 아침 7시 반, 나로서는 엄청 이른 시간에 나선 산책길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사실이다.  내 연배 되어 보이는 부부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몸매가 붕어빵이라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크지않은 키에 둥근 몸매가 온유해 보이기도 하거니와 손을 꼭 잡고 보폭을 탁탁 맞춰 걸어가는 모습이 어찌나 보기좋은지 한참을 따라가며 바라본다. 

기온이 뚝 떨어져  점퍼에 든든한 목도리를 둘렀는데도 한기가 느껴진다. 가랑비가 내려 땅이 살짝 젖어 있고, 대기도 축축하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슬쩍 비치는 햇살과, 저 멀리 겹쳐 선 산자락에서 피어오르는 운무가 멋있어 슬슬 감정이 고조된다.  낯설다. 거의 매일 다니는 그 길이 아니다. 














마음에 슬쩍 윤기가 도니 가드레일에 맺힌 이슬방울까지 아름답다. 핸폰 카메라로 보는 연산홍의 색감에 탄성이 나온다.  떡갈나무 잎사귀 수북히 쌓인 저 골짜기는 마음의 고향 미탄면을 떠올린다. 오며가며 이 골짜기가 마냥 정답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떠꺼머리 동네 머스매들이 나무하러 가는 길을 따라 갔었지. 나무를 가득 쌓아 올린 지게를 미끄럼타듯 먼저 내려 보내던 지겟길, 딱 그 숲을 빼닮은 것이다.  어른들에게는 고운 대답 한 번 하는 적 없이 불끈대는 성격이지만 내게는 한량없이 잘해주던, 얼굴에 여드름이 숭숭 나 있던 누구, 순딩이 도련님 누구,  말이 없고, 건드리지않으면 감정표시도 거의 않지만 속깊은 정이 느껴지던 누구누구의 얼굴이 스쳐간다.

어느새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넘었다. 구름이 벗어지며 하늘은 제 색깔을 찾았지만 으쓸으쓸 한기가 도는 것이 뜨듯한 국물 생각이 간절하다. 뭐 안 될 것도 없지. 행궁길로 들어선다. 문화의 거리로 재정비라도 하는지 벽면 꾸미기가 한창이다. 군데군데 몇 십 년 경력을 자랑하는 장인들의 음식점도 눈에 띈다. 큰 길을 건넌다. 찾았다, 콩나물 국밥집이 있다! 가격도 착한 4000원. 국밥을 주문하고 앉아있는 사이에 쌀과 계란을 배달하고 간다. 계란 다섯 판을 들여놓은 청년이 화요일에 오겠다며 인사를 한다.  사흘 동안 계란 다섯 판을 소비하는 규모, 이 집의 매출이 짐작된다.  무심한 아침산책에서  사람들 사는 모습에 성큼 다가 선 기분이다. 겨우 9시, 평소의 주말같으면 아직 잠자리에 있을 시간인데... 가끔은 작정하고 안하던 일을 해봐야겠다. 그것이 새로운 감흥을 불러내는 첩경이리라. 오늘 발견한 것 두번 째. 국밥이 나왔다. 맛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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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새알심2011. 11. 26. 12:03


 



 


 

 한 달 전에 있었던 대구부산 강의의 후속모임이 잡혔다. 11월 22일부터 24일까지, 부산에서는 3시간짜리 1회, 대구에서는 5시간씩 이틀.  두 군데 모두 8명 내외의 조촐한 규모지만 내가 뿌린 씨앗이 움튼 것을 보듯 뿌듯하다.

수원에서 부산 가는 ktx가 많지 않은지라 강의시간보다 턱없이 이른 차를 예매했는데, 출발시간이 임박할 수록 피곤하다는 생각이 몰려온다. 벌써 5년 전 일이지만 딸과 함께 한 부산여행이 너무도 생생한지라 부산에 더 이상의 미련이 없는데 차편에 맞추느라 어거지 관광을 한다는 것이 바보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문제는 그 생각을 반박하는 논지도 만만치 않다는 것. 

니가 기억하고 있는 부산에 대한 인상은 어쩌면 지극히 파편적이고 임의적인지도 몰라. 그리고 세월이 5년이나 흘렀어.  태종대든  국제시장이든 다시 한 번 돌아보면, 그 때의 기억을 뒤집거나 보완하는, 아니면 아주 색다른 장면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르잖아.  늦게 출발해 봤자 좀 더 늘어지기밖에  더 하냐?  부산까지 가는 걸음을 활용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결과는 게으름의 승리!^^  언제나 그래왔듯 마음가는 대로 하자, 사흘이나 강의를 할 꺼니 조금 편한 길을 택하는 것도 좋으리라. 그리하여 오후 6시에 도착하는 새마을로 바꾸어 길을 나섰겠다, 4시간 반이 길기는 길었다.  두 어 시간이 흐르고 몸이 뒤틀려 식당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칸은  텅 비어 있었다.  내 또래 된 아저씨가 꾸벅꾸벅 졸다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 커피를 주었다.  그러고보니 식당칸에 이렇게 호젓하게 앉아 있는 것이 처음이다. 일단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가 너무 좋았다. 객실의 내 좌석에 앉은 자세로는 오른쪽을 보거나 왼쪽을 바라보느라 사시처럼 안구를 굴려야 하는데,  여기서는 편안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도 되었다. 거기에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음영이 짙어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시간이, 세월이 흐르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마치 시간이라는 이름의 말에 올라타고 달리는 것 같았다.  이 색다른 감회에 젖어 들기 위해서는 커피로는 약하고  캔맥주 하나는 있어야 했으니, 나만의 열차 카페에 푹 빠져있는 동안 어느새 부산에 도착했다.










다음날 일찍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 안,  무심히 내다 본 창 밖 풍경에 화들짝 놀라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시골 풍경에 물안개가 자욱이 끼어 신비로운 산수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울산에서 동대구까지 오는 구간은 특히 아름다워,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산과 저수지를 몇 번이고 번갈아 보여 주었다.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 마구 찍은  사진도 마음에 든다. 창 밖 풍경과 카메라를 든 내 손을 콜라주한 효과가 난다. 내친 김에 셀카도 하고 풍경에 빠져 있는 동안, 요즘 지나치게 평온한 마음수면에 살짝 풍랑이 인다.  그러니 원래 계획대로 부산에 일찍 도착해서 여기저기 떠돌았더라면, 기대하지 않았던 감흥에 좀 더 부딪혔을지도 모른다는 거.ㅎㅎ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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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냐~~~ 즐거운 여행되셨네요^^
    대구까지 오셨는데 어찌 저는 인사도 못 드리공....^^;;
    다음 꼭 만날 날을 기다려 봅니다.
    만나야하는 사람은 꼭 만난다던데...ㅎㅎ

    건강조심하세요~~^^

    2011.11.28 09: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환절기에 도시 사람들은 스산해지는 마음만 간수하면
      되는데^^ 여전히 바쁘지요?
      토댁님은 애들도 농산물도 모두 잘 키우리라 믿어져요.

      2011.11.28 12:16 [ ADDR : EDIT/ DEL ]

좋은 삶/새알심2011. 11. 20. 23:30


며칠 전에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40대 초의 수강생 몇 명과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 그녀가 나를 보고 한 멤버가 엄마를 모시고 나왔는 줄 알았다고 한 것이다. 요즘 40대는 청춘의 끝자락인 양 젊고, 그 날 모인 수강생들이 하나같이 용모단정한 것을 감안한다 해도 조금 과한 발언이었다. 예전 같으면 어이가 없고 불쾌해서 일주일은 곱씹으며 속을 볶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왜 화가 나지 않지?  목욕탕에서 몸을 담그고 있다가 뜬금없이 그 생각이 떠올랐다. 따뜻한 물 속에 심신을 이완시켜 놓고 있어서인지 그럴듯한 대답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좋게 말하면 화통하고, 나쁘게 말하면 조심성없이 말하는 사람이로구나’ 초면에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내게 보여준 것이고, 나는 내 감정보다도 상대방을 관찰하는 데 더 주력하고 있었기에 기분이 나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생각은 더욱 번져갔다.


나는 내 외양이 50대 중반의 나이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지도 늙어보이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더구나 그 자리는 사무적인 안건을 처리하는 공식적인 자리였으므로, 누군가 엄마를 모시고 올 이유가 없는 자리였다. 그런데도  나를 보고 40대의 엄마인 줄 알았다고 한 것이다.  순간 오래 전에 읽은 책의 한 장면이 섬광처럼  스쳐 간다.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서른 넘어 대학원에 등록하려는 자신에게, 사무처 직원이 딸 대신 왔느냐는 발언을 한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자기가 열 서 너 살에 아이를 낳았겠느냐고 불쾌해 하며,  그녀는 이것을 연령차별주의의 하나라고 분석한다.


내 경험도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보다 나이가 더 든 사람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당연히 아는 것도 없어서, 마흔인 자신보다 열 살이 많든 스무 살이 많든 그저 한 가지 ‘나이든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고방식이 슬쩍 노출된 것이다. 나는 그녀가 별 생각없이 말이 앞서는 사람이라는 일반론보다 이 시나리오가 더 마음에 든다. 좀 더 심층적인 분석이기 때문이다.  작은 일이나마  발끈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의미를 따져보는 내 자세가 신통하기까지 하다.


무슨 일이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사태의 이면을 볼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고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일이 되풀이된다.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스쳐가는 발언에 예민하게 굴 필요가 없으니, 이것은 자기인식과도 연관된 문제이다. 자의식을 접고 상대방에게 집중하면 보이는 것이 있고, 얻을 것이 있다. 사소한 말실수 하나에서 ‘나를 비우고 가만히 응시하기’라는 사고습관이 성큼 다가온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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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숙함이 물씬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

    2011.11.21 18: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와우! 어인 행차신지요! ㅎㅎ
      제가 글쓰기 강좌 하면서 이누잇님 책을 자주 인용해서
      귀가 간지러우셨던 모양입니다.^^

      2011.11.21 21:28 [ ADDR : EDIT/ DEL ]
  2. bom

    한명석 선생님,
    항상 글만 읽다 가는 사람입니다. 좋은 글 나누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오늘은 전하고 갑니다. 남다른 통찰력이 돋보이는 오늘 글도 참 좋아요 ^^
    글 내용 복사해두었다가 두고 두고 읽어야겠어요 :D

    2011.11.21 19:32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이렇게 흔적을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 글쓰기 카페에도 놀러오세요.
      조 왼쪽 위에 배너를 누르시면 됩니다.

      2011.11.21 21:31 [ ADDR : EDIT/ DEL ]

좋은 삶/새알심2011. 11. 3. 15:13

“Doctor! Doctor!  Nobody listens to me."

"Next!"


아주 오래 전에 주변에 굴러다니던 유머집에서 흘깃 본 것이 잊히지가 않는다. 무시당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지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런 대접을 받는 것에도 민감한 탓이다.  많은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겠지만 나도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가장 민감하다. 건성으로 듣고 있는 듯한 대화, 나를 제외하고  활발하게 진행되는 모임, 마땅히 배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만큼 배려받지 못했을 때 가장 분노하고 가장 슬프다. 그런 만큼 이 대목이 가슴에 콕  박힌 것은 당연하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그 처절한 소외감이 내 것인 양 가슴이 철렁한다.


뜬금없이 그 오래 되고 가혹한 유머를 떠올린 것은 엄마 때문이다. 아무도 그 사람 말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끊고 평가하며, “네, 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기를 종용하고, 급기야 그 사람을 있으나마나 한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는 바로 노인이었던 것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13년, 엄마의 유일한 낙은 언니와 내 집을 돌아보는 것이다. 아직까지 엄마에게 기대고 있는 남동생과 덤덤한 올케, 저 밖에 모르는 막내딸 말고 그래도 언니와 내가 엄마의 말상대가 되어드렸던 것인데 요즘 내 맘이 변한 것을 느낀다.


만사가 귀찮다! 끝없이 반복되는 엄마의 레퍼토리를 들어드리기 귀찮고, 노인특유의 움울함에 전염되기 싫어 너무 자주 뵙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물을 후르르 소리내서 드시거나, 생선가시나 닭뼈 같은 것을 손으로 받아 앞접시에 놓으실 때 혐오감이 치민다. 나나 아이들도 분명히  소리내서 국물을 먹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내가  충격적이다. 아아!  이제 77세이신데,  앞으로 길면 20년쯤 더 생애가 진행될 텐데, 그동안 엄마의 모습은 얼마나 변할 것인가!


문제는 똑같은 상황이 내게도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밖으로 도는 타입이 아니라 아직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지만 시간문제이다.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 가고 싶었는데 애들과 시간이 맞질 않았다. 마침 엄마가 친구분들과 제주도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 잘 다녀오시라고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엄마, 나도 제주도 한 번 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마음에 걸렸는데 먼저 다녀오시게 되어 다행이네요. 여비 해 드릴게 다녀 오세요.”


그러자  딸이 냉큼 받아서는 나를 향해 “엄마, 여비 해 드릴게 제주도 다녀오세요.” 이러는 것이 아닌가!  웃자고 한 말이었겠지만 나는 순식간에 상황을 알아 차렸다. 엄마의 삶을 걱정하는 것과 별개로 내 삶을 챙겨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엄마에게서 받은 그 많은 은혜와 돌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시큰둥해 졌듯 아이들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유례없이 길어진 인생으로 하여 부모자식간의 인연도 너무 길어졌고, 요즘은 어느 상가엘 가든 우는 사람이 없다는 엄마 말씀이 이것을 대변한다.  엄마에게 그토록 애틋하던 내가 이리 변한 것 자체가 노화의 징조인 것이다. 모든 것이 익숙하고 시들하다.


엄마는 한 달이 다르게 변하신다. 건강하고 총기있는 분인데 갈수록 쭈삣거리고 허둥지둥하는 것이 느껴진다. 훤하고 편안하던 외모도 많이 위축되어 보인다. 신체적인 노화보다 심리적인 노화가 가파를 것이 분명하다. 무슨 말을 하든, “아니예요, 요즘은 안 그래요.” 소리를 듣거나, 건성인 티가 역력하거나, 아예 대꾸도 못 듣는 일이 거듭된다면 불편하고 불안할 것은 자명하다. 자식들을 도와주고 싶어도 걸리적거릴까봐 눈치가 보이니, 무슨 말과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점점 모르게 된다. 스스로 바보처럼 느껴지고,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자괴감이 쌓여 뇌를 강타한다면? 이 모든 것을 직시하고 싶지 않고, 그나마 아직은 괜찮지만 앞으로 더 진행될 상황이 두려워 사고를 멈추고 싶어진다면?


엄마가 미리 보여주는 삶의 파노라마에 정신이 번쩍 난다. 삶은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었다. 한 발 앞서 준비하고 한 장면 한 장면 만들어가는 것이다. 엄마와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한 신명과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내 주된 관심사인 것을! 고령사회가 가져올 충격에 비하면 공산권의 붕괴 따위는 일도 아니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엄청날 고령화 쓰나미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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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을 !!!
    행복하게 보내고 계시죠?^^

    2011.11.09 08:06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예~ 점점 새로운 기회가 열리기도 하고, 직접 만들기도 하면서 박진감있는 나날이네요. 토댁님도 잘 지내기를!

      2011.11.10 10:04 [ ADDR : EDIT/ DEL ]

좋은 삶/새알심2011. 10. 27. 14:15


언니가 활동하는 미술동호회에서 전시회가 있어서 대구에 다녀 왔다. 꽤 큰 공간을 부스로 나누어 개인공간이 주어져서 제법 전시회 하는 기분이 난다. 



언니의 두 아들, 키가 큰 줄은 알고 있었지만 카메라 프레임이 꽉 차는 조카들의 모습에 내가 다 뿌듯하다.
요즘같은 비주얼 시대에 정말 좋은 조건을 타고 났구나 싶다.






예를 들어 이 오른 쪽 저자, 어쩌면 이렇게 잘 생겼냐.ㅎㅎ
훤칠한 키에 지성미가 흘러 넘치는 수려한 용모가 정말 보기 좋다. 내 의지와 노력에 상관없이 이만한 여건을 타고난 것은 우연인가, 신의 선물인가, 특혜인가, 길게 보면 아무런 변수도 되지 않는 것일까?

전에 얼핏 보니 박민규의 소설 한 권이 '외모'를 해부하고 있던데 꼼꼼하게 읽고 싶어진다. 나이들면서 점점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단순히 외모가 아니라, 삶과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봐야겠지. 누군가 갖고 태어난 것, 그럼에도 중요하게 작동하지 못한 것, 결핍된 것, 가꾸는 것, 종국에 그 혹은 그녀라는 됨됨이에 대한 모든 것...


아무튼 내 아들의 입장이 되어 만땅 부러울 정도로 보기좋은 조카들의 모습이었다. ^^













언니는 무려 7년 동안이나 그림을 그려 왔다. 나는 6개월 그리고 집어 치웠는데...  여기에도 또 하나의 변수가 있구나.
오래도록 후벼 판다는 것.  너무 여러 가지 컨셉으로 전시하면 지저분하다고 심지어 한 가지 테마로 부스 전체를 채우자고 지도자가 말했단다.  전부 새로 그리기는 힘들어서 기존 그림과 새 그림을 반씩 섞었지만, 전문가의 전시 팁에서 크게 배우는 기분이었다. 내가 붉은 빛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선명한 체리의 향연이 보기 좋았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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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니분과 닮으셨어요. 분위기는 다르지만^^..
    제 자매사진을 보는 다른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하겠죠?

    선생님께서 가지신 그림과 시각예술에 대한 관심이 언니분을 통해서 묘하게 겹쳐집니다.
    창조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타고나신 것 같아요 ~~

    2011.10.27 17:43 [ ADDR : EDIT/ DEL : REPLY ]
    • 젠느와 우리 언니가 비슷한 점이 있네요.
      맏이로서 제일 선이 곱달까? ㅎㅎ

      자기다움에 대한 탐구!
      이건 젠느와 내가 닮은 것 같구요.

      오늘 민수효과의 베끼기 글에 나온 섬 이름
      욕지도가 새삼 와 닿네요.
      섬 이름이 '알고자 함'이라니!

      2011.10.28 10:55 신고 [ ADDR : EDIT/ DEL ]

좋은 삶/새알심2011. 9. 21. 12:01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았다. 스펙터클 위주의 사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별 기대없이 보았는데 꽤 볼만했다. 우선 모든 캐릭터가 생생했다. 지적이고 단아하면서도 성깔있어 보이는 문채원, 대사 몇 마디 없이 표정연기 만으로 존재감을 발산하는 류승룡, 키만 멀쑥한 책상물림으로 보이지만 내 여자를 위해서는 괴력을 발산하는  김무열 모두  자기 자리에서 빛났다. 

스토리 전개에도 그럴법하다는 개연성이 있었다. 청족 왕자 역할의 박기웅이 칼을 뽑으며 저항하는 문채원에게  “음, 이번에는 꽤 재미있는 애를 데려왔구나” 하며 흥미를 느끼는 장면 같은 것이다. 병자호란의 자세한 정황은 모르지만, 한 판 제대로 싸워 보려고 단단히 각오하고 침입했는데 너무나 어이없게 항복을 받아낸 승자의 심리가 읽혔다. 주인공 남이가 호랑이를 불러낸다는 설정도 재미있었다. 같이 영화를 본 아이들은 컴퓨터그래픽이 너무 드러난다고 했지만, 나는 그만하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시종일관 활 하나를 가지고 이끌어가는 장면도 억지스럽지가 않고 초점이 있어서 좋았다.


외계인의 말처럼 낯선 만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배우들의 노고를 보나, 능선을 가득 메운 기마병의 위용을 보나 갈수록 정교하고도 거대해지는 영화산업이 피부로 느껴졌다.  바로 이것이 롤프 옌센이 말하는 ‘드림소사이어티’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미래사회에는 현실보다 ‘드림’이 더 중요해진다는 분석이고, 영화를 비롯한 연예산업의 고속성장이 그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어차피 드림사회가 추세라면 할리우드를 비롯한 수입품의 ‘드림’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을 터, 이 영화는 내게 코리안판타지의 가능성으로 소중하게 다가왔다.


 우습게도 활극을 울면서 보았다. 주인공 남이 역의 박해일에게 감정이입이 된 탓이다. 언제부터인가 배우들이 목숨걸고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영화로 해서 박해일도 그 리스트에 올려야 할 것 같다. 박해일의 몰입과 헌신이 빚어내는 긴장감에 푹 빠져 있다가,  마지막 고비를 앞두고 높은 곳에서 산하를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어떤 장면 어떤 과제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든 그처럼 온 몸을 던지는 사투를 벌인 자만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이제는 네가 자인이 애비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 하나에 목숨을 건 오빠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듯, 제각기 품고 있는 신념 하나에 온 생애를 거는 자만이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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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난 일요일,
    영화가 끝나고 푸드코트에서 반반치킨과 쫄면을 시켰는데 아들이 제가 골라놓고도
    맛이 없다며 안 먹는다.
    전에는 빵도 잘 굽고 요리도 하려고 들더니, 요즘은 식탁에 물 하나도 안 떠놓는 것을
    째려보고 있던 차라 한 마디 했다.
    "이 다음에 손도 까딱 안하면서 음식 타박하면 대~박나겠다"

    우리의 유머쟁이 딸네미가 냉큼 받는다.
    "최종병기 음식이지 뭐"

    2011.09.21 12: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ㅅ^ 활을 재미있게 보셨네요. 저도 기대 안 하고 갔었는데
    어느 순간 국내 영화도 스토리는 물론, 액션신이나 장면의 아름다움이
    다른 어떤 나라와 견주어도 손색없다고 느껴집니다.. ㅎㅎ
    아포칼립토와 유사하다고 하던데 그 영화는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신념의 힘이 얼마나 큰지, 하나에 몰두하는 인간은 뭔가를 초월한 감동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번 보내주신 책은 잘 받았는데요^^
    제가 너무 정신이 없고 바빠 아직 손을 못 댔습니다. 거짓말 한 것 같아 죄송하구..
    저에게는 미탄님 책이 주변 조용한 상태에서 정좌하고 읽어야 할 것 같은,
    바이블 같은 느낌이라 손 대기 힘들었다고 하면.. 변명이라 들릴런지요^^
    오늘은 굳게 마음 먹고 한 장을 넘겨 보아야겠습니다. 꼭꼭 씹어 먹고 리뷰 적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11.09.26 15:28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가을 햇살 참 좋지요?
      몸과 마음 활짝 열어놓고
      좋은 계절 맘껏 향유하기 바래요.

      무슨 일을 숙제로 생각하면 더 하기가 싫을 테니^^
      짬날 때마다 서너 장씩 읽어보면서
      내 마음에 어떤 반향이 일어나는지 느껴보기 바래요.

      하고 싶은 말이 저절로 솟아오르기를 기대합니다. ㅎㅎ

      2011.09.27 12:00 [ ADDR : EDIT/ DEL ]
    • 답글에 힘입어 어제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들었어요. 순서도, 활자라는 제약도 관계 없이 술술 읽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블로그에서 이미 본 글도 있었지만
      흐름상 매우 매끄러워서
      만약 미탄님이 큰 맘먹고 며칠 동안 주루룩 쓴 글이다, 하셔도 믿었을 것 같아요.
      수동적 휴식을 하려는 저에게 행동을 깨우쳐 주신 글이었고, 얼른 펜을 들고 싶어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11.09.28 10:54 [ ADDR : EDIT/ DEL ]

좋은 삶/새알심2011. 9. 15. 11:55





목하 생애 첫 데이트 중인 딸, 최대의 난관에 부딪치다. 지금 하고 있는 승마 교관이 활동양도 많은 터에 밥을 못 먹어서 바짝 말랐다. 웃으면 코 양옆으로 힘줄이 드러난다. 전에 연예인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성형한 탓으로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딸은 원래 동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심란하니 더욱 그런가 엊그제는 제인구달 책을 빌려다 달라 하더니 급기야 동물원엘 가잔다.  연휴 끝날 서울 대공원에 사람들 엄청 많았다.

나도 딸에게 감화가 되는지 동물이 더욱 가깝게 다가 온다. 순한 기린과 명민해 보이는 사막여우.





호랑이 털의 무늬에 새삼 매료되다. 어느 것 하나 같지 않은 선들이 저마다의 길이와 두께와 모양을 가지고 만나 부드럽게 융화하며 만들어내는 도저한 품격, 웅혼한 기상에 감탄하다. 그래 바로 이것이 호랑이고 이것이 자연의 문양이야! 문득 호랑이 털을 닮은 고양이라도 한 마리 품고 싶어진다.

딸애는 동물의 새끼에게 우유를 먹일 수 있는 포육실도 무척 좋아했는데 포육실은 일찌감치 오후 4시에 문을 닫아 걸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며칠 간의 씨름 끝에 아이는 스스로 해결책에 도달했다. 생각보다 너무 여리고 감성적이어서 걱정했더니 이번에는 빠르게 균형잡힌 객관적 시각을 되찾아 나를 놀라게 했다. 아이들에게 너무 자유방임인 내가 가끔은 켕겼는데 그다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모녀라고 해도, 자기결정과 자기책임이라는  당연하고도 엄정한 인생원칙을 어쩔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우리 딸, 아프리카에 가고 싶단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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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살림하는사람

    제가 며칠 전 블로그 이웃이 빌려준 '아프리카초원학교'를 훑어보며 사진과 몇몇 메세지를 빠르게 읽어봤는데 안그래도 제 마음에 아프리카가 담겨졌어요. 저도 지금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따님의 마음에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내일 저희도 동물원에 가볼까봐요.

    2011.09.17 21:19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ㅎㅎ 이번에도 동물원에 가서
      서너 살 된 아기천사들만 바라보다 왔지요.^^

      2011.09.18 21:17 [ ADDR : EDIT/ DEL ]

좋은 삶/새알심2011. 8. 24. 13:57

3분 만에 옷을 산 적이 있다. 가격이 두 자릿수인 스웨터로, 결코 적지 않은 지출이었는데도 매장 안쪽으로 걸어가, 첫 번째 옷걸이에서 그 옷을 발견하고 입어본 후, 거울에 비쳐 보고 잠시 생각하는 데 총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빠른 결정이었지만, 그 날의 쇼핑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고, 예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검토를 끝냈다. 그 옷은 내가 잘 소화할 수 있는 검은색이었으며, 내 몸에 잘 맞았으며 울스웨터의 느낌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디자인이 독특해서 작가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내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살짝 비싼 편이었지만 앞에서 열거한 장점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남들보다 빠를 뿐 내가 할 수 있는 사고작용을 안 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나는 거의 모든 결정을 이런 식으로 하며 살아왔다. 서른을 코앞에 둔 어느날,  잡지를 보다가 풀무학원의 개교이념 “사람이 공부만 하면 도깨비요, 일만 하면 짐승이다.”에 반해서 그 지역으로 내려 가 20년을 사는 식이다. 결혼후 8년간 농사지으며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너무 힘이 들어서 바깥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신문에서 “글쓰기과외가 성행”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별로 글을 써 본 적이 없는데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외보다는 학원 형태가 나을 것 같아 글쓰기학원을 차렸다. 초등학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서 물어물어 가서 벌린 일인데도 학원은 꽤 잘 되었고,  4년 후에 학원을 확장할 때도 나는 똑같은 방식으로 결정하고 추진했다.


이것을 직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것을 가리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 굵직한 결정에서는 방향 자체가 틀린 적은 없고, 쇼핑에서는 가끔 실패한다. 나의 직관은 ‘자기중심성’에서 나온다. 나는 매사에 기호가 뚜렷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낼 수 있다. 워낙 느낌이 분명하니 무엇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성’의 전제는 ‘자기성찰’이다. 그런가하면 ‘자기중심성’의 결과는 ‘몰입’이다. 하고싶은 것을 행하면 자기결정에 푹 빠져 스스로 즐거움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사안에 따라 모두 다르므로 무조건 빠른 결정과 실행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에둘러 갈 시간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 누구라도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어 온 그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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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둘러 갈 시간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매번 미탄님 글은 핵심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미탄님 글이 자기중심적이라 새침한 느낌이 든다고 하지만
    자기 기호를 안다는 것, 자기성찰을 통한 자기중심성이 확고하다는 것은
    질투하게 되는 매력입니다. ^ㅅ^ 잘 읽었습니다.

    2011.09.02 17:29 [ ADDR : EDIT/ DEL : REPLY ]
    • ㅎㅎ 의견의 차이와는 별개로
      누군가와 제 글을 놓고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기분좋네요.^^

      2011.09.03 01:01 신고 [ ADDR : EDIT/ DEL ]

좋은 삶/새알심2011. 8. 17. 11:20

엄마만 다녀가시면 며칠 동안 우울하다. 엄마는 쉬지 않고 참견을 하신다. 가만히 계시다가 도움을 요청할 때만 도와주시면 감사의 말을 듣고 좋을 텐데, 엄마의 돌봄은 늘 넘친다. 엄마 앞에서 고개만 돌려도 “뭐 찾아?” 하는 말이 날아온다. 냉장고를 열어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림직도 한데 고작 서너 번이 한계다. 처음엔 “예! 예!” 하고 씩씩하게 대답도 한다. 그다음엔 침묵으로 무시한다. 그리곤 영락없이 핀잔을 하게 된다. 엄마의 말씀이란 것이 너무 뻔하거나, 끝도 없이 이어지거나,  스무 번쯤 들은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엊그제도 볶음밥을 드시면서 “볶음밥에 감자도 넣으면 좋다”고 하시는데 대고, “넣었어요,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하고 쏘아붙이고 말았다. 그래놓곤 죄송하고 민망해서 가슴이 답답하다.


이제 당신의 의견이 별로 요긴하지 않다는 것을 엄마라고 왜 모르랴! 그런데도 지청구를 받아가면서까지 사람살이에 참여하고 싶으신 것이다. 집에서는 며느리 눈치보느라, 별반 나을 것도 없는 딸들에게 순응하느라 엄마는 정신이 없나 보았다. 급기야 “늙었다고 죄인처럼 지내느라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어!” 하는 말씀에 가슴이 철렁한다. 젊은 것들 하는 짓이 아니꼬와도 꾹꾹 눌러 참느라 폭삭 삭아버린 엄마 심정이 집히는 것 같았다. 삶의 주무대에서 물러나 완벽한 배경이 된 자신이 어이가 없고, 지난 날이 일장춘몽으로 여겨질 때 나라도 그런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엄마에게 행한 숱한 핀잔을 듣는 처지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찔해진다. 내 의견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고 그저 자식들이 베푸는 시혜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더구나 내게는 자식이라면 수백 번이라도 참고 돌볼 수 있는 인내심과 모성도 없는데?


내가 그토록 엄마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은 딸이기도 하지만, 머지않아 내게도 닥칠 상황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자식을 돌보는 일 외에는 어떤 소일거리도 남겨놓지 않았으며, 당신을 위해서는 돈 쓸 줄도 모르고, 자식과 한 번도 분리되어 본 적이 없는 엄마는 완벽한 반면교사이다. ‘평생현역’이 되어야 해!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내 의견과 정보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야가 있어야 해.  절반만 엄마요, 절반은 인생선배가 될 꺼야. 언제까지나 내 시간과 정서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해!  늘어져있던 여름날을 화들짝 깨어나게 할 정도로 엄마의 한 마디는 강력했다. 준비가 없이는 두려울 정도로 암울한 고령의 날들은 엄마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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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셨어요?^^
    제목만 보고는 저 보고 말씀하시는 줄 알고 깜짝 놀랐지 뭐여욤..ㅎㅎ
    잘 지내셨죠?^^

    엄마는 ....
    우리 엄마는....

    2011.08.17 21: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토댁님, 잘 지내시지요?
      바쁘고 신경쓸 것이 많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조금씩이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하루를
      재편할 수 있기를 바래요!

      2011.08.18 12:27 [ ADDR : EDIT/ DEL ]

좋은 삶/새알심2011. 7. 13. 12:38




‘나가수’ 최대의 수혜자가 임재범이라면, 최고로 의미있는 수혜자는 김범수라고 생각한다.  그는 노래 실력은 인정받으면서도 외모가 받쳐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송출연이 적은, 이른바 ‘얼굴없는 가수’였다가 ‘나가수’를 통해 얼굴을 제대로 찾았다. 예전에는 모든 가수가 노래를 잘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노래보다 외모가 빼어난 가수들, 재치있게 말 잘하는 가수들이 TV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의 출현이나 여기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가수는 무엇보다도 노래가 첫째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노래를 잘 하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드러나지 않았던 가수들의 존재감을 격상시켜 주었다.


김범수가 자신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감동적이었다. 노래 외적인 것 때문에 주눅들지 않아도 되는 무대에서 그는 혼신의 힘을 다 했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청중의 사랑 속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는 것에 편안해지자 그의 유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김범수가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나? 탄탄한 가창력에 예능감까지 인정받으니 대중은 더욱 열광하고, 그는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나는 그가 부른 ‘님과 함께’를  ‘나가수’ 최고의 무대로 친다. ‘얼굴없는 가수’에서 ‘비주얼 담당’으로 변신한 그가 당대의 남진이 즐겨입던 엘비스 프레슬리 풍의 옷을 입고, 아이돌에게나 어울릴법한  안경을 쓰고 나왔다.


처음부터 그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가 무대를 꽉 채웠다. 전주에 맞춰 절도있는 춤을 출 때  이미 승리의 전조가 느껴졌다.  이곳은 나의 무대라는 자부심,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진정성, 충분한 연습에서 나오는 자신감을 가지고 그는 무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의 간절함은 발성하는 음절 하나하나, 몸을 놀리는 동작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고스란히 관객석으로 전달되어, 가수와 청중이 하나가 되어 뛰고 즐기게 만들었다. 반짝이 의상과 장발이 난무하는, 70년대식 유랑극단으로 설정한 기획력도 돋보였다. 노래를 끝낸 그가  편곡자와 매니저 이름 뒤에 방청석을 향해 “여러분!”을 외칠 때 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 울컥 하고 치솟았다.  가난한 서커스단 소년이 ‘내가 가진 것은 이것 밖에 없어요’ , 마음을 다 해 서커스를 하며 신을 경배했다는 것처럼, 그것은 내가 가진 기량을 모두 쏟아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보내는 뜨거운 사랑의 고백이었다. 그의 고백에 청중들은 “김범수! 김범수!” 하는 연호로 화답했다. “청중들이 내 이름을 연호했어요.  나는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어요.” 아직도 감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몽롱한 표정의 그가 말한다. 나는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삶에 완전히 빨려들지 못한다. 하기싫은 숙제는 다니기 싫은 직장으로 바뀌었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채우지 못한 채 적당한 선에서 만족한 일상은  먼지 낀 유리창처럼 더께가 졌다. 한 번도 극한까지 나를 몰고 가지 못했기에 내가 얼마만한 능력을 지녔는지 꺼내볼 기회도 없었다. ‘이것이 삶의 전부일까,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비슷한 고민을 하며 떠밀리듯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김범수는 삶의 절정을 보여 주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자기 안에 들은 최고의 것을 꺼내고 싶다는 열정으로 가득찰 수 있고, 그 열정이 보는 사람들에게도 전염되어 우리 모두를 살아있음의 충만함으로 초대한다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우리가 박지성과 김연아, 현빈 같은 스타에게 열광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최고의 자기’가 된 사람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보는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한다. 그들이 도달한 경지와 성취, 매력이 우리 모두가 가 닿고 싶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살아가는 ‘자기실현’이라는 고지를 선취함으로써, 우리의 숨은 욕망에 불을 지르는 전령사들이다. 그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최고의 나’에 도전하느냐 마느냐, 그를 통해 뼛속까지 울려오는 삶의 기쁨에 빠져보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결단에 달려 있다. 나는 그 날의 감격을 생생하게 그려낸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24세에 세계챔피언이었다가 무하마드 알리에게 KO패를 한 뒤 은퇴하여 목사로 살던 조지 포먼이 45세에 다시 챔피언을 쟁취하며 토해낸 일성이다. 상대선수는 아들뻘의 마이클 무어,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큰 점수 차로 포먼을 이기고 있었지만,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있었다. 포먼은 오랜 숙원과 열망을 담아 상대의 귀에 왼쪽 훅을 터뜨리고, 턱에 강력한 해머 펀치를 가격해 무어를 매트에 쓰러뜨렸다. 40세가 다 되어 복귀하는 선수가 평범할 수는 없다고, 비범해야 한다는 각오아래, 나이보다 20년은 더 젊은 다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훈련의 쾌거였다. 드디어 심판이 포먼의 오른쪽 손을 번쩍 들었을 때, 장내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모든 관중이 펄쩍펄쩍 뛰었고,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 껴안았으며,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런 장면에 서고 싶다. 조지 포먼 그리고 범수처럼.


“나는 한 장소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행복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다수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기쁨의 소리였습니다. 승리는 바로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잠시지만, 그들은 완전한 자유를 맛보았고, 나는 그들에게 자유를 선사했다는 성취감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경기를 같이 지켜보았고 또 같은 감정을 느꼈던 사람들이 공유했던 그 순간을 잊게할 짓은 평생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알랜 줄로, ‘마흔 이후에 성공한 사람들’에서-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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