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미탄통신'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07.10.14 네 안에 사람을 들여라
  2. 2007.10.14 시로 읽는 봄
  3. 2007.10.14 누구도 결코 가난하지 않다
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08:51
나는 참 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읽고쓰는 약간의 인문적 능력을 제외하고는, 정말 지지리도 솜씨가 없습니다. 문화평론가 정여울이, 자신이 글을 쓰지 않고 있을 때는 금치산자같이 느껴진다고 한 말을 보고,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서지요.


당연히 음치이고 기계치이지만, 그보다 치명적인 것은 관계치라고 봐야합니다. 어떻게 사람을 사귀고, 어떻게 친밀해지는지 나는 잘 모릅니다. 친밀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까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를 모르니까 버겁게 느끼는거지요.


어쩌다 모임에 나가면,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입을 다물고 있기 일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명상을 해야할 정도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가 썰렁해지는 분위기에 뻘쭘하지요.


그러다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습니다. 열 번을 만나도 매번 볼 때마다 처음 보는 사람같다고 합니다. 더 이상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나름대로 행동수칙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원래 실전에 약한 사람이 이론은 빠삭하잖아요? ^^


첫째, 자의식을 내려놓자.
내가 하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내 행동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 너무 신경쓰지 말자. 설령 분위기 파악을 못하거나 사소한 실수를 했다고 해도, 내 실수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다. 끌어안고 있어야 도움이 되지 않는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자. 쾌망快忘!


둘째,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저 사람은 관계지능이 참 뛰어나구나. 흠, 공주병이군.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나는 그 자리에 몰입하기보다, 관찰을 즐기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친밀함을 나누는 대상이다.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껴안아라. 네 앞에 한 사람이 없으면, 온 인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네 안에 사람을 들여라.


셋째, 건강한 관심을 표명하자.
나는 주제있는 이야기는 잘 하는데, 일상적인 대화에는 젬병이다. 성격이 워낙 뚝뚝한데다, 어지간한 일상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재치있는 화제가 떠오를 리가 없다. 멀뚱멀뚱 ^^ 이럴 때는 상대방에게 적절한 질문을 하면 좋을 것같다. 대화를 잘 이끌지 못한다해도, ‘잘 듣는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은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을 표현하는 습관을 익히면 굉장한 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동의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다.


넷째, 유머에 대해 연구하자.
세상에 웃음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있을까. 함께 웃는 사이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유머는 낯섬, 억울함, 괴로움을 비틀어 그 틈새를 보게 해 준다. 유머가 있으면 어떤 불행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웃음은 논리와 이성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모든게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게 해준다. 비판적이거나 방어적이면 웃을 수 없다. 어떤 상처와 기억을 갖고있건, 우리는 웃음 속에서 하나가 된다. 많이 웃어라. 좋은 삶을 이루는 요건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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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08:49
수원 서호에 봄이 짙어졌습니다. 수채화의 연한 실루엣이 점점 진해지고 있습니다. 쌀밥처럼 하얗던 이팝나무 꽃이 지더니, 꽃보다 고운 메타세콰이어 새 순이 일제히 쏟아져나오고, 소나무마다 하늘로 손가락을 세운 ‘푸른 욕’조차 싱그럽습니다. 모니터에 지친 눈을 해방시켜, 아무 생각없이 먼 곳을 바라보다가, 휘날리는 벚꽃비에 문득 무엇인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천천히 걸으면 상념이 깊어지고, 빨리 걷는 것에만 몰두하면, 흥건해지는 땀이 기분좋습니다. 쉰 번이나 맞이해도 봄은 여전히 좋습니다. ^^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봄바람 불고 또 불어도
삭정이 가슴에서 꽃을 꺼낼 수 없는 건
두근거림이 없기 때문
두근거려보니 알겠다”


자연은 모든 것이 다 의연합니다. 쓸데 없는 자의식이나 경쟁심리, 패배감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느티나무 고목부터 조그만 들꽃까지, 저마다 스스로 존재합니다. 완벽한 자아상입니다. 그래서 나는 제비꽃이 좋습니다.


“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다”


봄은 겨울을 딛고 옵니다. 길었던 겨울 때문에 봄이 더욱 빛납니다. 묵은 일기를 보니 너무 오랫동안 너무 똑같은 자괴감에 빠져 세월을 허송했습니다. 아아,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저절로 한탄이 나옵니다. 이제 더 이상 방황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봄은 무조건 살라는 지상명령입니다.


“왜 노랑멧부리새를 좋아하나요
그냥요
왜 오래된 사랑을 나비처럼 놓아주나요
그냥요
왜 어제 본 영화를 다시 보나요
그냥요
건널목에 언덕길에 무덤가에
잎눈, 잎눈, 잎눈 돋는다
사는 데에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되는
그냥, 봄”


화서역 쪽으로 꺾어지면, 커다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복숭아 나무가 두 그루 불쑥 나타납니다. 유치할 정도로 선연한 도화桃花의 교태에 깜짝 놀랍니다. 이제 익숙해질법도 한데 볼 때마다 놀랍니다. 봄은 숨겨진 욕망입니다.


“복사꽃 픠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무처오는 하늬바람우에 혼령있는 하눌이어. 피가 잘 도라... 아무 病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좀 슬픈 일좀, 있어야겠다”





--- 위에 인용된 시는 순서대로 반칠환의 “두근거려보니 알겠다”와 “통째로”, 김수우의 “우수, 이후”, 서정주의 “봄”입니다. 너무 빨리 여름날씨가 되어버려, 글을 쓸 때의 흥취가 덜하지만 그냥 보냅니다.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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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08:45
모든 인간은 지상의 것을 빌려 쓰고 지나갈 뿐이다. 생에 대한 겸손함과 순결성의 힘만 있다면 누구도 결코 가난하지 않다. 지금 어려운 시대에 힘겹다고 느끼거나 자신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직 남아있는, 어쩌면 자신이 이룬 몇 안 되는 진실의 알갱이인 최소한의 현실을 소중히 붙들고 빛이 나도록 닦는 일로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전경린의 ‘붉은 리본, 96쪽에서-



제 컴퓨터 앞에 붙여있는 글귀입니다. ‘앞만 보고 걸어왔는데, 칡덩굴처럼 얽혀있는’ 현실이 한탄스러울 때면 이 글귀를 읽습니다. 두 번 세 번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전경린이 제게 주술을 불어넣는가 봅니다. 이 주술의 힘이 당신에게도 유효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생의 장면에 ‘나’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돈과 명예 아무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유일함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나’를 바로세우는 일에 애써야 할 것입니다. ‘나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의 결연함이 저를 뭉클하게 합니다.


당신에게 남은 최소의 알갱이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끝내 포기할 수 없는 바로 그것! 그것은 나를 믿어주는 어머니의 기도일수도 있고, 마지막 남은 오기나 자존심일수도 있고, 기어이 이루고 싶은 풍광 한 자락일수도 있습니다. 몇 안되나마 알갱이가 남아있다는 것을 소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함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순결성이 있다면, 누구도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어떠세요? 새해에는 최소한의 현실을 붙들고 빛이 나도록 닦아보는 것이?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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