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미탄통신2007. 11. 2. 07:24
‘서울 북 인스티튜트’ 가 주최하는 강의를 듣고 왔습니다. 김영사 박은주 사장의 ‘출판브랜드전략’입니다. 출석부를 흘깃 보니, 32명의 참석자 가운데 3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출판사 종사자입니다. 이름을 들어본 모든 출판사가 망라되어 있었습니다.

박은주 사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으로 보입니다. 누군가 나이 지긋한 출판사 사장이 와 있는 것에 대해 민망하다는 표현을 3번이나 했을 정도입니다.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고 조분조분 이야기를 해서 살짝 졸립기도 했는데, 막상 강의내용은 자신감과 긍지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의 화법은 “~~을 하겠다”가 아니라, “~~~을 했습니다”이니까요. 가령 김영사의 슬로건은 “믿을 수 있는 책, 믿을 수 있는 회사”였답니다. 신뢰경영을 하기 위해, 세 가지 지침을 갖고있는데요. “정직하자, 존중하자, 나누어가지자”랍니다. 저자와 독자와 직원에게 정직한 방침들, 거래처 직원을 존중하기, 출판계에서 이만큼 컸으니까 출판계에서 하는 일은 무조건 후원하기... 등이 있습니다.

평범해보이는 이 원칙들을 제대로 지키기는 쉽지않겠지요. 그녀는 해 낸 것같습니다. 그러니까 김영사가 있고, 박은주가 있게 된걸텐데요. 가령 주요 담당자가 바뀌면 거래처에 일일이 편지를 보내서, 향응 금지등 회사원칙을 강조한답니다. 매월 12군데 이상의 NGO를 후원하고 있구요. 오죽하면, ‘신뢰경영’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판단아래 슬로건을 바꿨답니다. “세계로!  미래로! 책으로!”랍니다. 대단한 자신감과 실행력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김영사가 출간하는 책이 다양한 것 같아도 원칙은 딱 두 가지랍니다.
첫째, 전문지식을 대중화하는 책
둘째, 마음을 밝혀주는 책을 낸다는거지요.

이런 방침아래 과학의 대중화, 경제경영서의 대중화를 시도하여 기대이상의 히트를 쳤고, 3년 간의 유학생활에서 아동서에 눈떠 기획한, 앗! 시리즈도 재미를 보았다구요.
올해 발행한 책 중 성적이 좋았던 책의 기획과정을 상세하게 밝혀주기도 했는데요.
‘신도 버린 사람들’의 경우, 편집자가 원서에 없는 ‘아기얼굴’ 사진을 넣은 것이 결정적인 효자 역할을 했다고 하네요. “만들어진 신‘의 경우, 사장으로서 사회와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 강행한 경우랍니다. 안 팔려도 책임지겠다~~  사장이 좋은 게 그럴 때랍니다. ^^

김영사 내부에 스페인어 빼고는 외국어 커버능력이 있다든지, 어떤 책의 기획편집을 해나가다가도, 비슷한 책이 나왔다면 비용이 얼마가 들었든 중지시킨다는 판단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책은 진행하는 중에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기도 한다네요. 자기 컨텐츠의 힘이 미약한 경우랍니다. 이 부분에서 왜 공연히 켕기지요? ^^

브랜드라는 것이 쌓는데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이미지가 손상되는 데는 순식간이랍니다. 이 부분에서 재미있는 예를 들며, 이야기를 마칠게요.
탤런트 서갑숙의 “나도 때로는 ~~”이라는 책이 공전의 히트를 쳤지 않습니까?  무려 백만 부에 달하는 책이 나갔는데요, 문제는 이 책 이후로 출판사 ‘중앙 M&B'의 이미지가 손상되어, 좋은 필자들이 이 출판사를 기피하기 시작했답니다. 심지어 계약파기까지 나왔구요. 결국 ‘중앙 M&B'가 ‘랜덤하우스’로 흡수되었다는 소리 같은데, 이 부분을 잘 못 들었습니다. 아는 분의 확인 부탁드립니다.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는 여성 CEO의 유형을 확인한 기분입니다. 소탈하고 겸손함, 그러면서 결코 양보하지 않는 원칙을 가진 깐깐함,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한 분야에 매진해 온 의지력.... 아, 자신을 ‘마음전문가’라고 지칭한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음’에 대해서는 나도 관심이 많으니까요. 언뜻 느껴지는 금욕적인 강단이 혹시 독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같은 여자로서 개인적인 관심입니다. 누구 아는 분 있으시면 확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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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미탄통신2007. 11. 1. 08:52
미쳐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살아온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럴듯한 평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의례적인 반복을 혐오하여 싫증을 잘 느낍니다. 창조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허위의식과 상투성을 경계하여 사교적인 빈 말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자연히 구색맞추기 위한 모임을 거부합니다. 언어에 민감하여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이야기나누는 것을 극히 힘들어합니다. 매사에 의미를 따져보아 함량미달이면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대신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일이라면, 상식을 뛰어넘어 몰두합니다. 나의 단순함을 부끄러워한 적도 있습니다. 다분히 비현실적이고, 실속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몰입지수 높은 나의 성격이 자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즐거움을 생산할 수 있어 인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군가 나와 비슷한 기질을 가졌다면, 자신이 몰입했던 경험에서 강점을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기질을 거부하지 말고 조용히 따라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행히도 세상이 감성위주, 개성위주, 문화위주로 변하고 있어, 몰입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조건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뛰어난 사람들과 비교하여 섣부르게 좌절하지 말고, 한 시간 더, 한 번 더 노력하고 즐기며 나아가다보면, 우리도 어느 순간 르네상스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보고싶고 알고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분출, 바로 그것이 나중에 후세인들이 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된 정신운동의 본질이었습니다." - 시오노 나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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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범/가을 다 가기 전에...

    욕망의 '분출'이라는 것은 욕망에 충실하단 얘기겠죠?
    르네상스의 全人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군요..
    거부하지 말고, 다만 조용히 따라가라..
    세상 사람들 눈에 미련해보여도 그게 나의 순리이겠지요?

    2007.11.01 19:06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오~~
      얼마만의 댓글인지, 감개무량!
      모든 결핍, 모든 욕망의 산출물이 예술이고 나아가 인문학적 진흥의 집대성이라는거죠. 그 어느 때보다 욕망이 대접을 받는 시대가 아닌가싶네요. 시대와 맞아떨어지면 순식간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도 하구요.

      2007.11.01 20:32 [ ADDR : EDIT/ DEL ]

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13:03
5월의 끝, 신록에서 초록으로 가는 중. 사람으로 치면 막 사춘기를 벗어나, 풋내와 성숙한 내음이 뒤섞인 묘령의 나이.


어제 내린 비로 불어난 개울물이 힘차게 소리지르며 내려갑니다. 회색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푸른 하늘이 드러납니다. 산할아버지가 구름모자 쓰고 있는 지리산 줄기, 이모작을 하느라 누렇게 익은 보리와 밀이 초록색 배경 속에서, 이국적인 색채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좋은 계절의 아침공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숨을 들이마십니다. 이 풍경 속의 어떤 것을 내 글 속에 등장시켜줄까 부지런히 눈을 움직입니다. 우유빛 마아가렛, 붉디붉은 작약, 노란 붓꽃, 보라색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자주달개비의 향연. 낯선 이에게 꼬리를 흔드는 순한 강아지 몇 마리, 이따금 꿩 울음소리가 정적을 깹니다.


여기는 하동군 악양면 꽃뫼 자락의 황토집,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들이 공저를 쓰기 위해 저술여행을 왔습니다. 2박3일간 오로지 책쓰는 이야기만 하자는, 구본형소장님의 부드러운 엄명이 있었지요.


처음 해 보는 공저 실험이므로,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쓸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토론을 거듭하며 좋은 책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레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의견일치를 보게 되었지요. 한 사람씩 자기 사례에서 도출해낸 강점발견 방법에 대해 발표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피드백을 해주는 방식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기획은 형태를 갖추어가며 충실해졌습니다. 점차 자신감이 차오르며, 우리 모두 흡족하고 행복해졌습니다.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일을 가지고 이렇게 잘 놀 수 있다니, 늦도록 계속된 토론 사이사이 차분한 낙수 소리가 꿈결 같았습니다.


저술여행 일정이 끝나고, 일부 연구원은 또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2기 연구원 한 분이 남도에서 2기 단합대회를 주최하는, 넉넉한 마음씀을 보여주었거든요. 신안군에서 10분간 배를 타고 들어가는 '증도', 여기에서 나는 또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섬 전체의 해안을 빙 돌아가며 건물을 지어, 객실마다 전망을 확보한 기가 막힌 배치, 빼어난 감각을 자랑하는 고급 리조트에서 우리는 저마다 소중한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두고온 딸에게, 남자친구에게, 신혼의 아내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숙소와 풍광이 뛰어났습니다.


맨발로 해변을 걸었습니다. 신발들이 거추장스러워지자, 구소장님이 긴 막대기를 주워 신발을 줄줄이 꿰어서 2기 조교와 함께 어깨에 메었습니다. 그 뒤의 우리는 마치 원시적인 제례를 올리기 위해 추장을 따라가는 부족같았습니다. 물론 그 의식은, 꿈과 나다운 삶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지요. 자기를 내려놓으니, 재치있는 유머가 쏟아지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해변에 퍼졌습니다.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걸어간다는 흐뭇함에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


밤늦도록 해변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OB와 YB로 나누어 닭싸움을 하다가 모래사장에 곤두박질하기도 했습니다. 세대와 취향을 넘어, 노래가 섞이고 마음이 섞이고 시간이 무르익었습니다.


좋은 커뮤니티 하나가 이렇게 많은 기회와 자극과 만남과 즐거움을 줍니다. 수명연장과 자기실현의 시대에 커뮤니티의 중요성은 크게 부각됩니다. 그대를 더욱 그대답게 하는 커뮤니티를 찾아 보세요. 나는 찾았습니다. 일상의 안위보다 창조를 우선으로 하는 내게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보다 더 좋을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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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13:01
정혜신이라고 하는 필자를 아세요? 정신과 의사로서 특히 ‘남성심리’에 대해 많은 글을 썼지요. 그녀의 저서가 인물평전 중심으로 딱딱해보여 읽지않고 있다가, 우연히 블로그를 클릭했는데요. 이런~~ 이만한 필자를 이제야 발견하다니, 놀랍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정혜신의 키워드는 ‘공감’으로 보입니다. 사람은 물론 책과 영화와 연극에 ‘개별적으로’ 교감하는 수준이 빼어납니다.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인물에 대한 평전을 쓸 때, 컴퓨터 앞에 그 사람의 사진을 붙여놓고 글을 쓴다고 하네요. 글을 쓰기 위해 조사, 분석한 내용을 그 사람의 이미지 앞에서 걸러내는 행위가 흥미롭습니다.


이웃에 사는 화가 전용성의 그림에 맞추어 쓰는, ‘그림에세이’에서는 정혜신의 감성이 뚝뚝 떨어집니다. 전용성의 그림언어를 문자언어로 풀어쓰는 솜씨역시 ‘공감’의 영역일듯 싶은데요. 나는 이런 식의 이심전심이 제일 부럽습니다. 작가 양인자가 노랫말을 써놓으면, 남편인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이는데, 어쩌면 그렇게 자기 심정을 정확하게 곡으로 표현했는지 양인자는 놀라곤 했답니다. 정말 부러운 교감수준이지요?


정혜신의 실험정신은 독보적입니다. 2003년에 소극장에서 ‘감성콘서트’라는 이름으로 100분을 혼자 이끌었습니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인, 남성심리 분야에 정서적인 접근을 하고 싶었다는데요, 조근조근 생각보다 여리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야기하다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등병의 편지’와 ‘사랑밖에 난 몰라'.


남자들의 본심, 그 심연에 다다르기 위해 정혜신은 性의 영역도 탐사합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문학성으로 무장한 性에 대한 컬럼은 지독합니다. 거의 빨간 책 수준입니다. ^^ 아무리 전문직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해도, 근엄하기 그지없는 지식인사회에서 그만큼 대담하기도 쉽지않을것 같습니다.


정혜신의 대담함은 사회적인 관심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됩니다. 국가보안법이나 파병같이 굵직한 문제로부터 시사저널과 김승연회장 사건, 우리 사회의 집단적 무신경에 대해 경악하고 질타해마지 않습니다. 그녀의 관심은 전방위적으로 폭넓고, 그녀의 분석은 사회병리학을 해부하듯 예리합니다.


지성 감성 사회성을 두루 갖춘 복합적 시각, ‘중견남성’을 자기분야로 특화한 전문성, 언어구사력, 하고싶은 말을 뿜어내는 과감함, 그 총체적인 것으로 자리잡은 ‘정혜신’이라는 브랜드.... 나는 그녀가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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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13:00
방송작가의 대모 김수현작, “내 남자의 여자”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김수현 특유의 집요한 장치와 강한 캐릭터들이 버거워서 두 세 번 밖에 보지 않았지만, 통념상 ‘할머니’ 나이에 도달한 김수현의 감각이 더욱 날카로워진 것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화영으로 분장한 김희애의 감정몰입은 소름돋을만큼 대단했습니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TV 드라마에 흔치않은 팜므파탈 역이라 더욱 긴장했던 것같습니다. 기존의 단아하고 헌신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랑 앞에는 친구도 도덕도 없고, 오직 자신의 욕망만이 살아 꿈틀거리는, 그러나 사랑의 허상 앞에서는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솔직하고 외롭고 강렬한 인간 유형을 생생하게 살려냈습니다.


김수현은 실제 현실보다 드라마 속의 가상세계를 더욱 현실적으로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드라마가 그처럼 생생한 생명감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희애 역시 마흔의 나이에 이런 역할이 주어질줄은 몰랐다며, 맘껏 미모를 뽐내고 새로운 역할에 혼신의 힘을 다 한 것이 역력합니다. 그들은 일 속에 신들린 듯 몰입하고, 일과 놀이를, 일과 존재를, 결국 일과 삶을 하나로 통합시킨듯합니다. 그들처럼 일 속에서 놀 수 있다면, 삶이 하나의 놀이터가 되지 않을까요?


타임지가 2006년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블로그나 유튜브(YouTube), 마이스페이스(MySpace) 등을 통해 미디어 영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당신(You)'의 존재를 평가한 것이지요.


나는 이 기사를 개인주의 시대에 울려퍼지는 화려한 팡파레로 읽었습니다. 누구나 자기 취향에 따라 꾸밀 수 있는 블로그가 사회변혁의 추진력이고, 소수의 리더나 스타가 아니라, 張三李四의 개성과 감성이 최고라는 이야기니까요.


이 빛나는 개별성의 시대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의 삶이란, 나의 혼이 들어있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김수현과 김희애처럼, 스스로 즐기며 남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당신은 이 한 세상, 무엇을 하며 놀고 싶은가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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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12:49
9월 27일, 꽃무릇을 보러 선운사에 가다. 선운사에 불났다. 자갈밭과 풀밭, 산 속을 마다하지 않고, 어디에나 꽃무릇이 있다. 받쳐주는 이파리 하나없이 연녹색의 꽃대위에 달랑 하나씩 얹혀진 다홍색의 화관이 아주 독특하다. 제법 앙칼진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꽃무릇의 군무를 보며, 우거진 잡목숲을 걸었다. 이만한 호사가 없다.

9월 28일, 올가을을 어떻게 즐길까 궁리하다가, ‘전국의 걷기좋은 길 52’ 요런 책을 주문하다. 한 달에 두 번은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가을을 심호흡하리라.

9월 30일, 아들이 휴가를 왔다. 이등병 월급 6만6천원을 고스란히 모은 돈 45만원을 가지고 왔다. 그 귀한 돈을 고작 과자나 사먹으며 쓰고 싶지 않았단다. 여자친구와 알콩달콩 놀러다니더니, 엄마에게도 밥을 사겠단다. 그래서 골고루 얻어먹었다. GOP공사 파견수당 하루 400원을 음미하며 꼭꼭 씹어먹으니, 더욱 맛있다.

10월 2일, 인생목표를 총정리해 보는 것도 가을에 어울리는 일이다. 내 계획이 너무 막연한 것은 아닌지, 목표까지 가기위한 징검다리는 제대로 놓여졌는지, 나의 하루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최적의 시간표로 구성되어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음미하다.

10월 3일, 인디영화 ‘원스’ Once 관람.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한번쯤 찾아오는 소중한 만남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펼쳐보인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날 때 남자주인공이 목청높여 부르던 노래가 제일 가슴에 남는다. ‘무언가 내게 할 말이 있다면 지금 말해줘’ 혹시 이 영화의 주제는 아닐지. 덕분에 체코말 하나 배우다. 밀류유테베.
영화를 본 뒤,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비 속에 봉은사 산책. 경건하게 머리를 조아려 기도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세요. 제게 기회를 주세요. 제게 기회를 주세요.’

10월 4일, ‘혼자놀기’에는 거의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내가 취약한 부분은 ‘함께 놀기’이다. 가을이라 그런가, 미주알고주알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사람사이’가 그리워진다. 일상적인 소통과 위안이 가능한 소그룹 2개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궁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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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12:48
내 꿈 하나는 방방곡곡 문 닫은 방앗간을 헐값에 사
들여서 술집을 내는 것이다 내 고향 양지편 방앗간을
1호점으로 해서 '참새와 방앗간'을 백 개 천 개쯤 여
는 것이다
-중략-
하고많은 꿈 중에 내 꿈 하나는, 오도독오도독 생쌀
을 씹으며 돌아가는 서늘한 밤을 건네주고 싶은 것이
다 이미 멈춰버린 가슴속 발동기에 시동을 걸어주고,
어깨 처진 사람들의 등줄기나 사타구니에 왕겨 한 줌
집어넣는 것이다 웃통을 벗어 달빛을 털기도 하고 서
로의 옷에서 검불도 떼어주는 어깨동무의 밤길을 돌려
주고 싶은 것이다 논두렁이나 자갈길에 멈춰 서서 짐
승처럼 울부짖게 하는 것이다
- 이정록의 詩, ‘좋은 술집’에서 -


가끔 해 보는 구상이 있습니다. 집과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에 대한 생각이지요. 이 곳은 누구나 사람이 그리울 때 스스럼없이 나올 수 있는 카페입니다. 점차 단골 방문객끼리 책읽기와 글쓰기, 혹은 철학을 공부하는 소모임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꿈을 이룬 사람을 초빙하여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기쁘게 이야기하는 열화悅話살롱이고, 사회봉사와 체험활동을 연결하는 센터도 됩니다. 회원들의 예술적 창조물을 선보이는 전시관이며, 즐거운 놀이를 시도하는 실험실입니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끄집어내는 놀이터입니다. 그 모든 것입니다.


당연히 술이 없을 수 없겠지요. 때로 술은 자기방어를 느슨하게 해주어 천진한 어린아이가 되게 하여, 사회적인 역할과 관성에 눌려있던 꿈을 일깨워주는 묘약이니까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신 술은 느닷없이 가슴 속 발동기를 돌아가게 할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따뜻해져서 예열이 되거나, 앞서간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때문이지요. 이제껏 허비한 시간이 한탄스럽고, 어깨동무하며 걸어가는 길이 감격스러워, 짐승처럼 울부짖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존의 생각과 생활양식이 깨져나가는 ‘위대한 통곡의 날’이지요.


좋은 술집에는 좋은 관계가 있습니다. 작은 실수를 포용하고 큰 방향을 공유하는 관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주어진 혈연보다 폭넓고 의미있는 관계, 공존의 관계망에서 이심전심의 그리움까지, 우리는 언제까지나 관계에 목마른 5분 대기조입니다. 좋은 관계는 일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뿌옇던 유리창을 닦기라도 한듯, 오감을 일깨워 시간을 되살아나게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으로 남아줄 사람 서 너 명이면 충분합니다. 그 외곽으로 서로 이해하는 그룹 열 명 정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들에게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힘이 나옵니다. 더러 깨지고 상처받는다해도 다시 복원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좋은 관계는 일상의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고고하게 어려운 사이보다는, 직접 부대끼고 손잡을 수 있는 사이가 최고입니다. 불현듯 무료해지는 주말이나, 갑자기 허방을 딛듯 공허함에 놀랄 때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사이가 최고입니다.


좋은 술집 - 철학카페, 한 번 저질러볼까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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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08:55
밤기차로 부산에 왔습니다. 25년 전에 첫사랑과 같이 왔던 곳이군요.^^ 이번에는 딸과 함께입니다. 새벽 부산역사에서, 흘러간 영화포스터와 여배우 사진전을 봅니다. 옛 여배우들의 품격있는 아름다움에 감탄합니다. 버스를 타고 태종대에 갔습니다. 울창한 동백나무 숲을 비롯해서, 나무가 참 좋습니다. 짙은 옥색의 바다로 빨려들어갈 것같아서 내려다보기가 겁이 납니다.

오랜만에 헌책방거리의 정취에 젖어보기도 했습니다. 오쇼 라즈니쉬의 책 한 권과 이왕주 산문집 ‘쾌락의 옹호’를 샀습니다. 국제시장은 그야말로 ‘국제적’이군요. 전형적인 시장풍경 사이로 불쑥불쑥 일본풍, 인도풍의 소품들이 고개를 내미는 식입니다. 딸아이와 나는 깔깔거리며 옷가지 하나씩을 골랐습니다. ‘국제시장’에서 산 옷이라는 추억이 하나 생기는 순간입니다.

부대시설이 풍부한 곳을 고르면, 찜질방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조용한 한켠에서 책을 보다가, DVD룸에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스파이더맨’을 보았습니다. 오늘 고른 이 곳은 식당시설이 좋아서, 아침으로 먹은 구운 계란과 팥빙수, 점심으로 고른 제육덮밥이 모두 합격입니다.

마치 도보여행자처럼 많이 걸었습니다. 조금도 서둘지 않고 천천히 낯선 풍광에서의 일상을 즐겼습니다. 광안리의 야경과, 달맞이고개의 그리움과, 해운대의 아침바람을 모두 몸에 새겨넣었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화살표를 따라 관람해 나가다가, 문득 딸애가 “화살표가 없다!”고 철학적인 탄성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그럼 이제 스스로 결정하는거야? ”

문득 태종대에서 본 새가 떠오릅니다. 바람이 일렁이는 날씨였는데, 하늘 꼭대기에도 바람이 불고 있나 봅니다. 아까부터 새 몇 마리가 날개를 쫙 펴고 바람을 타고 있었거든요. 고개가 아프도록 올려다보아도, 언제까지나 새들은 날개짓 한 번 하지않고, 유유하게 비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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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를 읽는 듯 참 자유스럽고 맛있게 이야기 해주시네요.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의 풍경과 멋을 몰랐는데
    미탄님의 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잠시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

    2008.02.08 21: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마틴님의 글에서 부산여행 때의 제 코스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답니다. 저의 베스트여행3에 들어갈 정도로 참 편안하고 좋았던 기억이거든요.

      2008.02.08 22:08 신고 [ ADDR : EDIT/ DEL ]

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08:53
목요일에 편지를 드리게 된지 어느새 두 달이 지났습니다.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즐거운 작업이지만, 내 편지를 받아보는 그대에게는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7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고, 시대적인 분위기와 타고난 측은지심이 맞물려 20대를 농촌활동에 빠져 지냈습니다. 8년간 농사를 짓다보니, 힘이 들어서 초등학생 대상의 학원을 시작하여 13년간 운영했습니다. 삶의 국면마다 쉽게 한 결정이 아니고, 생의 기쁨과 나락을 골고루 맛보면서 사느라고 살았지만, 어느 자리에서도 승부를 보지 못하고 떠나왔습니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탓입니다. 그때그때 마음가는대로 살았지, 삶을 관통하는 철학을 갖지 못한 탓입니다. 나에 대한 투자에 전념하지 못했고, 업業이 아닌 직職의 사람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어제의 경험을 내일로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성취한 것이 없는데 날이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이 따로 없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자기비난에 오래 빠져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남아있는 시간에 큰 그림을 그려보게 되고,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르고 싶어합니다. 척박하나마 꾸준한 독서에서 얻은 성찰의 힘인듯 합니다.


오늘 나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절박하게 그대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살아보니 인생은 제법 길다. 그대가 살고 싶은 인생을 위해 꾸준히 준비해 나가면 끝내 이룰 수 있을만큼 길다. 삶을 관통하는 방향이 없이는 인생은 참을 수 없이 지루하고 허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라. 오늘 그 첫 발을 떼어라.”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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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08:52
대학1학년 때, 아들의 목표는 열 다섯 가지였습니다. 그 중의 첫 번째는 ‘여자친구 사귀기’였지요. 2학년이 되어 그 목표는 여덟 가지로 압축되었지만, 여전히 첫 번째는 ‘여자친구 사귀기’였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동아리의 멤버 한 명이 흑장미가 되어주었거든요.


아들과 여자친구는 신세대답게 알콩달콩 잘 지냈습니다. 매일 점심을 같이 먹고, 얼짱 각도로 찍은 사진을 판넬로 만들어 선물하기도 하면서. 그 애들의 놀이 중에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여자친구가 가수 이승환 마니아인 것을 배려한 놀이인데요, 아들이 여자친구에게서 이승환 CD를 한 장씩 빌려서 듣고, 그것에 대한 소감이나 관련 글을 써서 ‘이승환레터’를 만들어 되돌려 준다는 겁니다. 그것도 손으로 써서. 그 얘기를 듣고 감탄한 내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이 좋은거다. 니가 언제 또 그 짓을 하겠니.


아들이 군대에 간 지 67일이 되었습니다. 혼자 남은 여자친구가 종종 메일을 보내옵니다. 우울하다고, 중간고사 끝나고 읽을 책 좀 추천해달라고, 기분이 훠얼 나아졌다고, 재잘재잘대는 내용입니다. 그러더니 엊그제 이 적의 노래 ‘다행이다’를 보내왔습니다. 아름다운 노랫말입니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젊은 날의 나는 왜 그렇게 무미건조했을까,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연애-결혼-중산층의 삶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거부하느라, 말랑말랑한 연애감정 자체를 거부했었지요. 어머니의 삶으로 대변되는 여자의 삶에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었습니다. 자연히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날 일이 없었지요.


그러고도 오랫동안, 낭만적 사랑을 살짝 얕보는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이 예기치않은 매혹적인 상태에 메스를 갖다대는 식이었지요. 사랑은 뇌에 특수한 물질이 분비되는 화학반응이라서, 길어야 3년에 불과하대, 그걸 평생에 걸쳐 늘여놓은 것이 결혼제도이지. 사랑에 목매는 사람들을 의존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는 독립의식이 사랑과 배치된다고 생각했던걸까요.


“나 없는 곳에서 아프지 말아요.”
주인없는 아들의 미니홈피에 여자친구가 남긴 말을 보며, 나는 내 자세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은 그 순간 만으로 충분한 것이구나. 상처입을 것이 두려워 미리 방어벽을 칠 필요가 없는거였구나. 어린 연인들의 사랑에 관심을 갖기보다, 군 복무 중에 아들이 처하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 급급했던 내가 민망했습니다.


나와는 달리 아들이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 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때문이라는것”을 일찍 깨닫게 되어 다행입니다.


오래도록 내게는 ‘他者’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경미한 자폐증에 가까운 상태로 내 안에 갇혀 살았는데, 변화경영연구소와의 만남은 나를 깨고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원해온 삶의 방식이 여기에 있습니다. 애인보다 끔찍한 스승과 知己에 대한 꿈이 황홀합니다. 인격의 중심이 만나는 일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내가 진실로 존재한다면, 나의 삶 전체가 하나의 교류가 될터인데. 죽음이 앗아가기 전에 이 몸을 사람에게 주어라. 내가 소통입니다. 늦게나마 내가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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