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길을 떠나면 내가 보여'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13.05.03 비현실적인 유럽여행
  2. 2012.11.18 달콤한 터키
  3. 2012.11.16 공항패션
  4. 2012.10.05 방콕은 죄악이다, 옥정호 (2)
  5. 2011.08.03 2011 통영, 담양 (2)
  6. 2011.02.20 여행은
  7. 2011.02.13 무이네 (4)
  8. 2011.02.12 대평원 (2)
  9. 2011.02.12 달랏 (2)
  10. 2011.02.12 베트남인상 (2)

5월 3일부터 6월 15일까지 동유럽으로 여행을 간다.

절반은 이탈리아에, 그리고 나머지는 몰타, 크로아티아 등 주변국에.

4월의 대형사건 이후, 눈 앞에 번연히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이상한 증세가 생겼다.

내가 정말 이 여행을 다녀 올 수 있을까 하는 기이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가방을 꾸렸고,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 오고 있으니 갔다 오게 되겠지.

50대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려고 계획한 일인데

역사와 문화의 본고장에 가서도 까막눈 노릇을 하려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게 생겼다.

책 댓 권 읽었어도 머리에서 뒤엉켜 더 아무 것도 모르겠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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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학원할 때 영국인강사가, 한국에는 돌솥비빔밥 밖에 없냐고 투덜댄 적이 있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식당에서 매번 선택하게 되는 메뉴가 돌솥비빔밥이었나 보다. 여행길에 우리는 터키음식이 프랑스,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요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최 그노무 케밥 밖에 없었던 탓이다. 웨이터가 의자를 빼 주는 지중해 연안의 고급레스토랑에서 먹은 양고기도 거슬리지만 않는 수준이었고, 유명한 항아리케밥도 그저 그랬다. 그리하여 18일간의 터키에서 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것은, 아바노스 시골장터의 트럭에서 먹은 케밥이 되었다.


오죽하면 영국인강사의 입장이 되어 우리 음식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보기까지 했을까. 우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음식을 떠올려 보았더니, 곰국, 갈비찜, 게장, 녹두전이 떠올랐다. 모두 어려서 명절마다 엄마가 해 주시던 음식인 것을 보면, 기억의 절반은 음식이라는 것이 맞다. 아무튼 이런 음식을 지방의 외국인강사가 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나도 그와 비슷한 입장이 되어 터키음식에 대한 갈급함을 품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한국음식이 세계3대 음식에 끼어야 마땅하다고 낄낄거리며, 진정한 터키음식에 대한 접근을 뒤로 미루어야만 했다.


 

 

 

 

터키음식이 다소 서운했다면 차 문화는 단연 인상적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이 차이를 마시고 있었다.  똑같은 유리컵 속에 담긴 말간 색깔에 중독될 지경이었다. 늦은 시간 차이를 마시며 두런거리는 중년 남자들을 보며 숙소에 들었는데, 아침 7시에도 여전히 차이를 마시는 사람들로 골목이 가득 차 있었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터키식 아침식사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었고, 무료로 제공하는 식당도 있었으며, 얼마나 생활 깊숙이 들어 와 있는지 곳곳에서 차이를 마시는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가 붙을 정도였다.  자신의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은  문턱에 차이를 올려 놓고 있었고, 실내에서 식사를 마친 어떤 사람은 실외로 자리를 옮겨 차이를 마셨다. 절묘하게 배 난간에 올려 놓은 찻잔을 보라.


이즈닉 같은 소도시에서는 맥주 한 잔 파는 곳은 찾을 길이 없고 대신 찻집으로 보이는 곳에서 모두 차이를 마시고 있었다. 이 노천 카페에서는 딱 하나 차이만 파는데 값은 겨우 0.5리라(300원, 보통 1리라는 하며 관광지에서는 3리라까지 보았다), 300원짜리 찻집이 재미있어서 세 번이나 가서는 두 세 잔씩 마셨다. 담배를 금기로 여기지 않는지 남자보다 여자가, 그것도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던 대신, 이런 찻집에는 모조리 남자뿐이었던 것도 흥미롭다. 도대체 문화가 뭐길래...


 

 

 

그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부르사 문화원을 찾는데 무척 고생했을 것이다. 30대 남자 둘이 우리가 내민 주소를 적은 쪽지를 들고 몇 번이나 물어봐 가며 앞장 서 주었다. 그들은 6시에 이미 어두워진 길을 십 여 분간 가파른 길을 걸어  흔쾌히  문화원 정문까지 데려다 주었다. 문득 입문과정 14기에 캘리포니아에서 왔던 수강생이 떠올랐다. 그녀는 모처럼 이런저런 글쓰기수업을 위해 고국을 방문했는데, 길을 물어보려고 말을 걸어도 질겁을 하고 외면하는 한국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심지어 새로 산 휴대폰을 화장실에 놓고 나간 뒤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불과 20미터 걸어갔다가 되돌아갔는데 없더라며 어이없어 하던 그녀는 우리나라에 만정이 떨어졌는지 마지막수업에 나타나지 않아 인사도 하지 못했다. 기대 이상의 호의에 접하고 보니 우리의 각박한 모습이 대비되어 살짝 울적해졌다.


부르사 문화원은 아담한 시골학교 같았다. 나무로 된 책걸상이 작은 정원에 가득했고, 낮은 건물에 열어놓은 창문 하나에 불빛이 환했다. 뜰에 앉아 세마 시간을 기다리는데 창문에 어른거리는 사람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Can you tea?" 하는 말이 날라 왔다. 딸이 잽싸게 다가가 차이 석 잔을 받아드는데 그들이 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Can you hand?" 그 뒤부터는 그들은 어법에는 맞지 않지만 한없이 따스한 말보다 더 다정한 몸짓으로 연신 차를 날라다 주었다. 심지어 절반쯤 식어있는 차를 뜨거운 것으로 바꿔주기까지 했다.


 

 

 

 

 

 

 

차이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식이다. 터키에 달콤한 후식이 발달되어 있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종류가 많았고 후식만을 취급하는 가게도 많았다. 기름에 튀긴 과자를 설탕에 졸이고도 모자라, 뜨거운 버터로 다시 한 번 튀겼을 것 같이 엄청나게 달고 기름진 맛에 놀라 서 너 가지 밖에 시도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그래도 어느새 제일 앞줄의 네모난 바클라바에 익숙해졌다. 이토록 차문화와 후식이  발달했다는 것은, 그들이 식후의 담소시간에 두는 비중이 엄청나다는 증거일 것, 여기저기에서 접한 터키 사람들의 환대와 달콤한 바클라바가 겹쳐진다. 프랜차이즈라도 되는지 후식전문점 간판에 ‘delight’라고 쓰인 것을 몇 번이나 보았다. 내 집에 온 손님을 신이 보내준 선물로 여긴다는 터키 사람들에게 딱 어울린다 싶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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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부터 18일간 아이들과 터키에 다녀 왔다.

이스탄불을 필두로 페티에, 보드룸, 이즈닉까지 9개 도시를 돌았는데, 광활한 대자연과 품격있는 유적에 어울리는 넉넉한 사람들에게 반해 버렸다. 고양이와 공생하는 라이프스타일이며 그 풍성한 야채는 또 어떻고... 벌써 터키가 그립다.

 

여행의 일등 공신인 딸, 뛰어난 검색력에 공간감각과 현실감각을 타고나서 여행기획자로도 아주 잘 어울린다.

터키 의상을 사 입고는 카메라를 들이대자마자 절묘한 자세를 보여주는 센스!

 

원래는 요런 스타일임.

파묵 칼레 뒤편의 고대도시에서 "유적! 내가 잠깐 올려 놓을게'하며 들고 다니던 과일봉지를 올려놓는 장면.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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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코 앞에 있는 사람만 식별되는 어둠 속에 핸폰의 프래쉬 기능이 큰 도움이 되었다. 엄마도 계신데 다행히 오르막이 심하지는 않았다. 잘 정비된 나무계단을 10여 분 오르니 갑자기 천상에 도달한 기분이다. 희부염하니 점차 넓어지는 시야가 온통 구름바다였다. 병풍처럼 야트막한 산, 아니 이제는 구름바다에 떠 있는 섬이라고 불러야 할 것들이 삼중사중으로 겹쳐 서 있는 틈새마다 운무가 가득 차 돌연 차원이 다른 세계에 들어 선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나는 것도 벅차긴 했다. 아무리 흐린 날에도 구름 위는 맑다더니, 눈을 가늘게 떠야 할 정도로 강렬한 직사광선을 받아 더욱 찬연하게 빛나는 뭉게구름은, 당장이라도 그 위로 신선이 나타날 것처럼 환상적이었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해 조그만 비행기 창문이라는 한계가 없다. 이 쪽 저 쪽을 보아도 온통 구름바다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며 제일 먼뎃산의 색깔이 변하는 것을 보는 재미에, 멀리서 들리는 컹컹 제법 늑대를 닮은 개 짖는 소리에, 꼬끼오 아련한 BGM은 내 몸에 각인된 익숙한 기억을 일깨우며 훨씬 친근한 흥취를 자아낸다.


 

 

 

 

 

 

게다가 운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몽글몽글 서로 뭉치며 올라오는가 하면, 얇게 펼쳐져 제일 얕은 섬을 집어삼켰다. 성질급한 쪽은 동영상으로 찍어도 될 만큼 빠르게 일어서고 펼쳐지며 움직이는 한바탕 파노라마를 보여 주었다. 딸이 “빠름, 빠름, 빠름, 국사봉 운무!” 하고 노래를 불렀다.


1박 기차여행을 계획하며 애초 코스는 내장산과 선운사였다. 내장산은 단풍이 이른 대신 인근의 구절초 군락지가 땡겼고, 선운사의 꽃무릇은 피크타임이 지났다고 해도 나 볼 것은 남아 있으려니 했다. 그랬던 것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정읍의 산외한우마을에서 부터였다. 내장산에 들렀다가 저녁을 먹으러 산외마을엘 갔겠다, 관광안내소 직원의 말과는 달리 이 마을에는 숙소가 없었다. 다행히도 식당에서 모텔 하나를 소개받아 픽업차량을 탔다. 우리가 구절초를 보려던 옥정호 부근이라는 말만 듣고 간 숙소는 놀랍게도 정읍을 넘어 임실 땅이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은 국면이 나타나는 이것이 여행의 맛이거니  룰루랄라  주인의 권유대로 다음날 새벽에 국사봉에 오르기로 했다.


국사봉! 그렇게 우연히 출사지로 유명한 최고의 전망대에 오르게 된 것인데, 내게는 각별하게 잊지 못할 곳이 되었다. 얼마 전부터 자꾸만 운무사진과 부딪혔다. 설악산일 때도 있었고, 옥정호 사진도 보았다. 새벽 물안개를 높은 곳에서 보면 이런 절경이 나온다네, 한 번 보고 싶었지만 차를 없앤 뒤로 순발력이 엄청 줄어들어 마음도 먹지 않았다. 그리곤 소박하고 만만한 코스를 잡았던 것인데 우연의 힘이 나를 운무에게 몰아 주었으니 어찌 신기하지 않으랴!


 

 

 

 

 

 

 

한없는 감회에 젖어 구름바다를 탐닉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시각각 풍경은 변하고 있었다. 사이좋게 겹쳐 선 쌍둥이 산의 정중앙에서 솟아오른 해가 화살을 쏘아대며, 아침햇살이 운해를 벌겋게 물들일 것이 기대되었지만, 옷을 얇게 입고 가서 제법 추웠고 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내려오고야 말았다. 이 곳은 일찌감치 올라와 몇 시간을 머물더라도 그 때마다 풍요로운 장면을 보여 주겠구나, 언제고 단단한 준비를 갖추어 다시 오리라 마음먹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이제부터가 진짜 볼 거리인데 왜 벌써 내려 가?” 하신다. 그 말투가 어찌나 친근하고 따뜻한지 묘한 감동에 젖는다. 새벽 출사, 같은 것에 꽂히는 사람들끼리 느끼는 우호감이란 이리도 빠르고 깊을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좀 전의 전망대에서 내 연배의 두 남자분이 지극정성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한껏 우의를 담아 인사를 하고 오지 않았던가!


딸: “(옥)정호야, 잘 있어라. 정말 아쉽구나”

나: “(옥)택연이하고 종씨네”

딸: “안돼, 안돼, 싫어!”


딸도 못내 아쉬운지 너스레를 떤다. 진정 두고 오기 아까운 곳이었다. 해외여행과 레저스포츠를 평생과업으로 여기고 있는 딸은, 국내여행에 대한 편견을 바꿔 놓은 곳이었다며, “엄마, 이제 가구 사지 마. 우리 히피처럼 살자” 한껏 고조되어 있다. 나도 디카의 갑갑함에 질려 카메라 욕심이 부쩍 늘었으니 우리 모두 성큼 큰 걸음을 떼어 놓은 셈이다. 어느 분야고 한 걸음만 나아가면 갈수록 보폭이 커져,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원하는 고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소신을 강화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산외 한우마을은 생각보다 컸다. 정읍에서 논두렁 밭두렁을 한 시간이나 달려 간 촌구석에 숨어 있는 특화된 마을이었다. 수십 군데의 정육점식 식당 중에서 하필이면 그 곳에 들어갔고, 임실에 있는 모텔에서 우리를 데리러 왔다. 새벽 등산은 차가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새벽부터 한 탕이라도 뛸 생각이 있는 안주인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국사봉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 나의 작은 로망 하나를 실현시켜 준 것을 생각하면, 내가 몸을 던지는 순간 신도 따라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믿게 된다.


아침을 먹고 나왔어도 아직 8시 반 밖에 안 되었다. 집에서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확률이 높다. 방금 국사봉에서 운해를 보며 감탄하고 온 눈이라, 산기슭에 조금 남아 있는 안개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한 발만 나가면 감흥에 감흥이 꼬리를 물고, 꽉꽉 눌러 담은 고봉밥처럼 꽉 찬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집에만 있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직무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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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베이스에 그대로 두면 두 번 다시 들여다 볼 일 없지만, 이렇게라도 정리해 놓으면 가끔 보게 된다.

아까운 사진 몇 장 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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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탄님, 안녕하셨어요~^^
    걱정거리 생기고 마음이 살풋 부대낀다 싶으면 블로그에 링크된 여러 이름중에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에 손이 갑니다..

    '내가 몸을 던지는 순간 신도 따라 움직인다'
    그곳이 어느 곳이든, 어떤 삶이든 중요한 건 '내가 몸을 던진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몸을 던져야, 기꺼이 그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야 신도 따라 움직여주고 나도 무언가 소중한 것들을 배우고 그렇게 인생이 또 한 걸음 살아지는 것일듯 합니다.
    괴로움은... 그렇게 풍덩 뛰어들지 못하고 삶의 어떤 고비들에서 갈팡질팡.. 주저주저하며 고민만 하고 있을때가 제일 괴로운 것 같아요. 어떤 결정이 됐든 결정하고, 그 뒤에는 내 선택속으로 기꺼이 풍덩! 뛰어들면 잘 헤쳐나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힘납니다.

    감사해요. ^^
    백만년만에 찾아와서 갑작스레 쭝얼거리고 갑니다만... 늘 여기, 이렇게 계셔주셔서 감사해요. 건강하세요.

    2012.11.12 23: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지요?
      무슨 걱정거리가 있나 보네요.
      그럼요, 어느 쪽으로도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보다
      조금 미심쩍더라도 행동에 들어가면,
      적어도 한 가지 옵션에 대한 경험치가 생기잖아요.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가리라 믿어요.

      나는 글쓰기 카페 활동하느라 블로그가 여벌이었는데
      최근에 터키에 꽂혀서 블로그 주제를 그 쪽으로 좁힐 생각을 하고 있네요.

      2012.11.16 22:10 신고 [ ADDR : EDIT/ DEL ]





 





소매물도의 등대섬, 통영에서 배로 한 시간 10분 거리인 소매물도의 절경이다. 물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섬과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또 하나의 섬에 기암절벽과 하얀 등대, 무슨 연구소라도 되는지 태극기가 휘날리는 낮은 건물의 초록색 지붕, 해안에서 등대로 가는 조붓한 길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물때가 안 맞아 등대섬에 가지 못했다. 등대섬으로 가는 물길이 자못 신비하게 보인다.





소매물도 선착장과 등대섬 주변의 바닷물은 이제껏 내가 본 것 중 가장 깨끗하고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그러나 보고만 있어도 마음까지 씻기는 것 같은 청량함, 자연은 그 자체로 치유적이다. 마냥 바라만 보고 싶은 등대섬을 아쉽게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도 참 좋았다. 동백나무가 울창한 소롯길을 따라 소매물도를 반 바퀴 도는 코스인데, 유명한 담양 메타쉐콰이어 길이 너무 짧아서 한숨이 나온 것에 비하면 좀 더 알려져도 좋겠다. 도장포 '바람의 언덕'에도 그랬고 이 길에도 거의 고목이 된 동백이 즐비하다. 꽃이 피면 얼마나 더 좋을까!





 

 


소매물도 가는 길도 아주 좋았다.  거대한 가시연꽃처럼 뾰족한 물비늘을 찰랑이며 평온하게 이어지던 바다는, 소매물도에 거의 다 간 지점에서 비경을 보여 주었다.  평지처럼 낮고 긴 산이 있는 섬 전체를 운무가 감싸고 있는가하면, 아침햇살을 받아 바다가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신천지를 찾아나선 탐험대에게 약속의 땅이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지표라도 본듯 감격이 차올랐다. 내가 너에게 가슴뛰는 삶을 허락하노라! 누군가의 은밀한 속삭임처럼 설레이고 벅찬 광경이었다. 사진이 너무 안 나왔는데, 저 사진의 백 배 천 배 환한 햇살아래 안그래도 은색으로 빛나는 바다에 보석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뒤척이며 반짝이는 물결이라니!  보석바다!  선연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나는 탐욕스러울 만큼 집요하게 그 풍경을 눈 속에 마음 속에 쟁여 넣었다. 소매물도 가는 길은  내 마음의 보석바다로 기억될 것이다.  아침 6시 반 첫 배를 탔기에 가능했던 풍경들이다.





 

 



외도 가는 배 안에서의 내 모습, 아들이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찍어 주었다.  커다란 얼굴이 이제 축축 늘어지기까지 해서 사진을 훑어보기도 괴로울 지경인데, 한 장 건졌다.^^






ㅋㅋ 살림꾼인 우리 따님, 내가 회를 너무 많이 떴다고 새침했나 보다. ㅎㅎ  서호시장에서 회를 뜨는데 식성좋고 손크고 구색맞추기 좋아하는 내가 광어, 전어, 멍게, 전복을 골랐다. 장사하는 아주머니께서 얼마나 후한지 전어를 1킬로 시켰는데 거의 2킬로가 다 되게 담더니 많긴 많다. 결국 남겼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니라 너무 많이 준 아주머니 때문이라구! ^^









담양의 명옥헌 전경, 배롱나무를 좋아하는 내게 배롱나무가 흐드러진다는 옛 선비의 정원 명옥헌은 오랜 로망이었다. 생각보다 규모는 좀 더 작았지만,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름드리로 굵어진 배롱나무에서 물먹은 꽃뭉치가 뚝뚝 떨어지는 풍경 만으로  좋았다. 한가운데 조그만 방을 앉힌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작은 숲은 조용하고  은밀했다. 규모는 작지만  세월이 느껴지는 고즈넉한 분위기 만으로도 충분히 평화롭고 신비했다. 이 곳에서는 미물조차 다른 품성을 갖게 되는지 저 나비가 한참동안 딸애 팔뚝에 앉았다 날아갔다. 사진으로 남겨놓지 못해 서운.





명옥헌에 비하면 소쇄원은 훨씬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 관리인이 있고 입장료도 1000원 받는 식. '소쇄'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라지, 발을 담그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작은 계곡에, 비 그친 하늘에 뜬 달을 가리키는 '제월당' , 거센 바람이 몰고 지나간 뒤의 맑음을 뜻하는 '광풍각'을 지어놓고 인근의 선비들이 모두 모여 풍류를 즐겼다지. 예전뿐만 아니라 요즘에도 한다 하는 식자들이 모두 이 곳을 다녀갔다고, 작고한 건축가 김수근은 새 건물을 구상할 때면 꼭 이 곳에 와서 한달씩 머물렀다 갔다는 해설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낮은 돌담 아래 소슬한 햇살을 받고 있는 오래 된 꽃들, 작은 쪽문으로 나가면 문득 숨어있는 애틋한 공간, 돌로 쌓아올린 작은 꽃밭이 있는 후정을 내다보는 툇마루... 모조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두고 오기 아까워 한참을 물가에 앉아 있었다. 선비의 정원에 꼭 한 번  가 보리라던 내 오랜 그리움은 결국 내 삶의 지향을 보여준다. 학문과 예술, 사람과 소통, 자연과 풍류...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 시간을 쪼개어 어떻게 이것들을 배치할 것인가, 지극히 구체적인 질문이 가슴 속에 엉켜든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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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진만 좇아다녀 봐도 하루 여행을 따라 다닌듯 하네요. 물이 정말 맑고 깨끗하네요. 근데 그보다 더 부러운건 회네요. 갑자기 회가 많이 땡기네요 ^^

    2011.08.13 12: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쉐아르님은 소쇄원과 명옥헌 같은 옛 선비의 정원도
      아주 좋아하실듯 해요.^^

      2011.08.15 20:33 [ ADDR : EDIT/ DEL ]

01


여행은 서바이벌이다.  이제껏 살아온 연륜대신 여행에서 요구되는 감각에 기초하여 새로운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우리 가족 중에서는 단연코 딸이 제왕이다. 딸은 스스로 말하길 ‘치사할 정도로 빠른 돈계산’을 필두로, 기획력과 공간감각을 타고났다. 그런 강점에 기초하여 게스트하우스 운영이 꿈이라니, 이번 여행은 그녀의 워밍업에 다름아니었다. 거기에 비하면 순둥이 아들이나 귀찮은 것 딱 질색인 나는 그저 딸애의 결정을 따르는 신민일 뿐이었다. 그렇다보니 판도는 딸의 총감독아래 아들은 진행을 맡고, 나는 방관자적인 참여자로 정해졌다.


아들과 딸은 여행을 떠나기전 경쟁적으로 여행지에 대한 조사를 해댔다.  나는 아이들이 짠 코스를 브리핑받고 길을 나섰다. 세밀한 계획보다 낯선 풍광에 맞닥뜨리는 의외성을 즐기는 쪽인데다 아이들을 믿거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현지에서 애들 뒤를 따라다니다 보니 이건 아니었다. 매사를 아이들의 정보에 의지하다 보니 자주 의기소침해지곤 했다. 지리나 교통 같은 초보적인 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노약자가 된 것같은 무력감을 안겨주었다.


가끔 개인적인 선물을 살 때라든지 회계를 맡은 아들에게서 돈을 타낼 때는 특히 기분이 묘했다.  -안되겠어서 따로 환전을 해서 쓰고 다니다가 돈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20불 정도로 많지는 않았지만 이래저래 죽을 맛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주머니를 찰 수도 없었던 것이, 워낙 계산이 느리고 귀찮았기 때문이다. 베트남 화폐 2만‘동’이 1달러이다 보니, 단위가 너무 커서 헷갈렸다. 식사 한 번 잘 하고 나면 백만동이 나오는 식이었다. 호텔 같은 곳에서는 달러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돈과 달러, 베트남돈이 섞여 끝까지 말이 헛나오곤 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책임을 맡았으면 그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아예 신경을 끄고 따라다녀서 그랬을 것이다. 꼼꼼한 아들도 신경깨나 쓰이는듯 했다. 여기에 비하면 딸은 우리가 겨우 하나를 보는 사이에 서너가지를 동시에 보거나 우리에게 장기배낭여행자 수준의 근검절약과 극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숙소를 정할 때 나는 서너군데만 돌아보면 충분하다. 그 정도면 시세가 나오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수위가 나온다. 나는 후딱 정하고 기분좋게 만족한다. 딸애는 무려 열군데도 좋았다. 어지간한 곳이 나와도 또 다른 곳을 보고 싶어했다. 딸애의 기질과 결정을 존중해주다가 나중에는 화가 나서 내맘대로 정해 버렸다. 그러다보니 조금 나은 곳으로 결정하면 딸애가 조용해지고, 후진 곳에 묵게 되면 내가 짜증을 냈다.


엄마가 딸에 비해서 소비성이 높은 것이 켕겨서 처음엔 내 성향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의견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그쪽도 명절 직후의 연휴가 성수기인지라 숙소를 잡기가 쉽지 않았는데, 죽어라하고 돌아다니다가 같은 가격에 제일 못 한 곳을 고르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 본 곳이 제일 괜찮아서 돌아갔지만 이미 차버렸고, 후반에도 괜찮은 곳이 있었지만 너무 멀어서 돌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때다 하고 한 마디 했다. “무조건 사례를 많이 모으고 신중한 결정을 하는 것이 늘 옳은 것은 아니야.  일에는 경중이라는 게 있으니, 오랫동안 살 집을 구하는 것과 2,3일 묵을 숙소를 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 능소능대라고 하듯이 일의 비중에 따라 유연한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고, 이만하면 되었다 싶은 기준을 빨리 정하고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살다보면 네 기질상 이런 상황에 자주 부딪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나대로 너무 빠른 결정 때문에 힘들 수도 있겠지. 결국 자기스타일대로 살되 자기가 결정한 것에 책임지고 누릴 수 있으면 되겠지만, 네가 너무 강하니 이번 일을 잘 기억해두면 좋겠어.”



그 때는 이렇게 우아하게 말하지 못했다. 딸의 현실감각과 신중함, 준비능력- 빨랫줄까지 준비해왔다-에 한참 못 미치는 내가 돌아봐지고, 주도성이 넘어가는 데 대해 예민해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지금 글을 쓰다 보니 확연하게 정리가 된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내가 딸에게 어떤 역할을 해 줄 수 있을지 좋은 경험을 한 느낌이다. 딸에 비하면 아들은 자기주장이 너무 없었다. 내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상대방의 의견에 따라주는 타입이어서 문제를 일으키진 않지만 그 또한 답답한 노릇이었다. 늘 양보만 하다보면 자기욕구는 어떻게 풀 것이며, 자기표현과 주도성은 또 어디에서 배운단 말인가. 조용히 자기 일을 알아서 하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줄은 몰랐다. 아직 아들에게는 이런 우려를 표현하지 못했다. 아이들 또한 내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는 못했으리라. 여행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어디쯤에서 멈춰야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여행후반부에 이르자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인정하고 배려하는데 아주 능숙해졌다. 그리하여 여행은 자기표현의 기술, 소통의 기술을 훈련시켜준다는 두 번째 정의가 떠올랐다. 그밖에도 여행은 나의 무지와 게으름을 아프게 깨닫게 해 주었다.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탐구심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부쩍 여행에 대한 우선순위가 높아졌다. 앞으로 자주 떠나고 싶어질 것 같다. 여행은 몸을 다른 데로 옮기는 게 아니라 생각을 옮기는 것이라고 하니, 계속해서 자기를 혁신하고 싶은 사람은 기꺼이 여행과 친해져야 하리라.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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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짱과 무이네 둘 다 파도가 거센 해변도시인데, 나짱 해안은 조용하고 무이네 해안은 해양스포츠 족의 요람이었다. 나짱에는 도로 건너편으로 고층호텔이 많아 누구나 바다를 즐길 수 있다면, 무이네는 딴판이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해안으로는 방갈로형 리조트가 포진하고 있어 길에서는 아예 바다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같은 레벨의 숙소라 해도 바다를 볼 수 있으면  10불이 더 비쌌다. 그건 그렇다치지만 리조트를 통하지 않고는 바다로 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디고 한 군데 리조트에 묵어야만 거기에 면한 바다를 통해 해변을 향유할 수 있으니, 길고 아름다운 해안을 불과 몇 십 군데의 리조트가 분할 소유하고 있는 셈이었다. 바다와 접한 땅을 소유한 것만으로 자연을 독점하다니 모르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본의 위력과 불공평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열 군데 이상을 들러도 리조트에는 방이 없었다. 물어보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지 입도 떼기 전에 두 팔로 가위표를 만들어보이는 곳도 있었다. 겨우 하루 방을 얻을 수 있었다. 하루에 82불짜리 '풀문Fullmoon'은 아주 훌륭했다. 꽃과 야자수가 비쳐 햇살에 일렁이며 오묘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풀장에서  수영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아침식사도 간소하지만 고급스러웠다.






'풀문'이 만족스러웠던 것과는 별개로 불합리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연조차 돈을 가진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암담한 미래로 날아온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수려한 자연에  딱 하루 접속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부족이었다. 우리는 길 건너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25불-, 해안 쪽으로 딱 한 군데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 -35불 '홍디', 여기도 괜찮다- 

아침에 무이네 해변에서 낚시질하고 있는 베트남사람들을 보자니 정말 낯설었다. 그들은 이 해변에서 완전히 이방인이었다. 종업원이나 과일행상으로만  어울리는 사람들.







13일간 둘러본 베트남은 천혜의 자연을 가진 곳이었다. 가격경쟁력 있겠다 이 관광자원이 공평하게 관리된다면 베트남 사람 대다수가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현실은 딴판인 것이다. 정글을 누비고 심지어 땅굴을 파 가면서 세계제일의 강국 미국을 무릎꿇린 베트남은 이제 없었다. 무이네 해변에서 상징적으로 확인되듯, 자본의 위력과 상업주의의 간계는 전쟁보다 더 무서울 것 같았다. 나는 무이네 바닷가에서 베트남을 생각했다.  막 떠오른 해에게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아침 바다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10킬로에 달한다는 긴 해안에 접한 거대한 바다의 수평선이 지워져 아스라히 먼 곳에 떠 있는 배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누구라도 이 바다에 접한다면 자연의 경이로움을 받아들이고 살아있음을 자축하리라. 이 바다는 베트남 최고의 자산일 수도 있었다.

밤바다는 곱절로 두려웠다. 이 바다는 내가 자주 접한 서해와 확실히 달랐다.  거대한 칠흑의 바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내 무지와 게으름, 나밖에 모르는 자기중심성, 내가 허비한 세월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내 왜소함에 진저리를 치다보니 저절로 우리나라에 시집온 베트남 이주여성들이 떠올랐다. 막상 베트남에 와 보니 제 나이의 두 배에 가까운 사람과 인신매매에 가까운 국제결혼을 하는 여성들은 산골에 사는  일부 빈곤계층일 것 같았다. 여유있는 곳도 많이 보았고, 멋부린 여성들도 많았다. 거기에 여성들도 저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보면 주도성과 활동력도 많이 개발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말도 안 되는 결혼을 한 것만으로 모자라 알콜중독이나 정신병력을 가진 남편에 의해 비참한 죽임을 당한 여성들라니!  나는 밤바다를 보며 그런 베트남 여성들과 그 어미를 위해 기도했다. 그처럼 비인간적인 결혼악습이 하루속히 없어지기를, 이 나라에 유능한 계획경제가 가능하기를 간구했다. '알면 보인다'는 말이 회자되었듯,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도 사실일 것이다. 이제 무언가 베트남에 대해 접하게 되면 부쩍 귀에 잘 들어올 것 같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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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느 곳에 가든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곤 해요. 저들은 일하는데 나는 논다.. 저들은 힘겨운데 나는 안락하다.. 크게 사치할만큼 내가 여유로운 형편인 것도 아닌데, 단지 어느 순간에고 '쉬는 행위' 자체를 죄스러워하도록 내가 너무 세뇌당해있는건 아닌가.. 싶을만큼 여행지에서 마음 불편해하는 내가 이상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도덕적이어야한다'는 강박이 너무 강해서, 더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려 애쓰는지도 모르겠고요.
    언젠가는. 제대로. 떠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죄의식이나 강박같은건 벗어놓고, '나도 절박해서 이렇게라도 숨쉬지 않으면 안되기에 떠났다'는 심정으로 당당하게 여행하고 싶어요.

    아열대의 기후, 해변휴양지로는 한번도 여행을 못가봐서 사진만 봐도 가슴이 설레요.
    휴~.

    2011.02.13 22: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렇다면 나는 놀 것 다 놀고, 맛있는 것 다 탐하고,
      극히 일부분의 문제의식과 연민을 갖고 있는 셈이네요.^^
      똑순맘이 너무 착하고 사회적인 공감대가 발달해서 그런데요,
      내가 튼튼해야 의식도 활동도 있는 것이니 똑순맘 말대로, 당당하게 여행하기를 바래요.

      2011.02.14 13:29 신고 [ ADDR : EDIT/ DEL ]
    • 저도 잠시 그런 마음들로 우울해하는 것에 그칠뿐, 놀 것 다 놀고, 맛있는 것 다 탐하고 옵니다..
      공정무역처럼 현지주민들께 최대한 공평한 '공정여행'이란것도 있다하던데 혹시 해외에 갈 일이 있다면 그쪽도 알아보고 싶어요.
      그나저나 제가 즐겨보는 블로그들에 요즘 여행기가 많아서 넘 맘이 싱숭생숭해요. 우~~~ㅇ 저도 떠나고파요!! ^^

      2011.02.16 15:52 신고 [ ADDR : EDIT/ DEL ]
    • 미탄

      공정여행 이라고 하니 하자센터의 트래블러즈맵 이 생각나
      링크해 봅니다.
      http://2010.haja.net/cakephp/app/newsletter/view/cno:43250
      고딩 학교부적응자들을 위한 도시대안학교로 출발해서
      그들이 커서 사회적기업 인큐베어터로 거듭난 하자센터,
      그 중 잘 나가는 사회적기업인데
      어쩌면 하자에서 벌리는 일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네이밍이 좋은지 볼때마다 감탄하네요!

      평화가 감당할 수 있을 무렵 온 가족이 여행가는
      장면을 떠올리며 우선 이번 주말에는
      병천순대-상록리조트 강추!^^
      상록리조트 사이즈가 딱 연수만해서리...

      2011.02.17 14:11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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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짱에서 달랏으로 넘어오는 길이 고원의 긴장을 보여주었다면, 달랏에서 무이네 가는 길은 평원의 장엄함 그 자체였다. 빙글빙글 산간지역을 돌아나오던 길이 언제부터인가 평평해지기 시작했다. 무이네에 사막이 있다더니 지형이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듬성듬성 작은 나무가 서 있을 뿐인 붉은 평원이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불쑥 소떼와 호수가 나왔다. 베트남에서 이런 풍광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베트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고작 두 어 가지에 불과했다. 그건 다른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나의 무지와 게으름이 부끄러웠다. 한없이 넓고 커다란 자연 앞에 서니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우우~~ 이 광활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탐구심도 경외심도 없이 그냥 매일 시간이나 축내는 밥버러지로 살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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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평원은 무이네에 도착한 다음날 '화이트샌드'를 가는 길에도 계속되었다.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타고갔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바다를 끼고 한참을 달리던 오토바이는 내게 다시 한 번 붉은 평원의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이 곳은 어제 오던 곳보다 커다란 나무가 많았다. 평원에 적응력이 좋은 수종인지 한 그루가 집채만큼 컸다. 몇 그루만 모여있어도 숲을 이루곤 했다. 그리고 한 무더기의 묘지. 그 광활한 평원에 무덤을 쓴 사람들.





숙소에서 45분간 오토바이로 달린 끝에 사막에 도착했다. 어느 쪽을 보아도 너른 평원이 20분이나 계속되었다. 오토바이로 붉은 들판을 달리다보니 남의 땅인데도 대지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자연과 사람, 생명에 대한 경외심에 낡은 것을 버리고 거듭나고 싶어졌다. 23살의 의학도였던 체게바라가 오토바이로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한 뒤, 민중의 비참한 삶에 눈떠 혁명가로 거듭난 것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드디어 사막에 도착했다. 사막치곤 미니사이즈이지만 형태는 다 갖추고 있다.











숙소 앞에서 말 거는 사람 오토바이를 무심히 탔는데, 어쩌면 세 사람 다 그렇게 착한지. 두 손을 뒤로 돌려 짐칸을 붙잡았다가 팔이 아프거나 속력을 낼 때면 운전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조금만 얹고 가도 뜨끈한 열기가 느껴져 다시 손을 뒤로 돌려야 했다. 그 따스한 온기를 통해 운전자와 내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이 작은 남자와 그 동족의 안위를 빌었다. 편도 45분 걸리는 거리, 사막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고 7불을 받아갔다. 그것가지고 어떻게 생활하느냐고 아이들이 한참을 두런거렸다.

여행작가 오소희는 여행을 네 단계로 나누어 놓았단다. 1. 어디를 가든 나만 들여다보기 2. 현지에 있는 사람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3. 나를 열어 그들과 관계맺기  4.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그 곳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나는 사실 현지에 대한 이해와 현지인과의 소통없이 단지 관광을 위한 여행의 허망함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많지 않은 경험이지만 뉴질랜드와 필리핀에서 현지인들과 따뜻한 우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인이 된 아이들과 처음 가는 여행이라 의외로 내부변수가 많았다.^^  내 안의 문제에 휘둘리느라 외부로 열릴 겨를이 없었다. 오소희의 분류에 의하면 겨우 2단계에 머문 셈이다. 13일간 그다지 아끼지 않았는데도 1인당 경비가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 여행이 경비보다는 발심과 기획력의 문제임이 확인된다. 여행을 일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를, 그리고 오소희가 말하는 경지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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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원과 사막. 자연을 만나지 않으면 깨닫기 어려운 것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여행을 많이 해본 편은 아니지만 남편은 특히 해외여행을 거의 해보지 못했기에, 회사를 옮기는 동안 잠시 짬을 내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했어요. 아쉽게도 여건이 안맞아 그리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떠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저도, 남편도 삶에서 그런 시간이 참 필요할 것 같아요.

    여행작가 오소희씨를 저도 참 좋아한답니다. ^^
    (그녀의 블로그 '태평양의 끝 http://blog.naver.com/endofpacific 도 아주 즐겨보고있어요~)
    여행기는 첫 책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밖에 실은 못봤는데,
    36개월된 아들을 데리고 터키로 1달간 다녀온 베낭여행 이야기가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었는지요. 어린 아들과의 대화를 담은 책도 참 고맙고 재미있게 봤고요.

    저는 아직 오소희씨의 분류에 따르자면 1번 여행밖에 못하고 있어요.
    어딜가나 저를 생각하고, 함께 간 사람과의 관계, 혹은 함께 오지도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기 일쑤고요.
    그래도 여행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1번의 시간도 제게는 귀한 시간이고, 비일상의 즐거움이 참 크고요.. 무엇보다 자연이 있으니까요. 거기서 얻는 뭉클한 감동은 얼마나 힘이 센지요.
    평원과 사막의 풍경을 담고 오신 미탄님의 마음이 얼마나 뭉클하고 먹먹했을지... 느껴지는 것 같아요.

    2011.02.13 22: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럼요, 여행보다 더 좋은 게 쉽지 않지요.
      변경연에서 10대 풍광을 많이 쓰잖아요?
      여행 빼 놓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거듭 놀란답니다.

      오소희씨 블로그에도 가 봐야겠어요.
      수강생 하나가 그이의 블로그이웃 미팅에 참여한 사진이
      좋아 보이더라구요.
      그리고 주변에서 아직 어린 아들이 다 잊어버리면 아까워서
      어떡하냐는 질문에 그녀가 한 대답이 인상적이어서요.
      -기억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었지요.

      2011.02.14 13:35 신고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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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이 저만큼 보이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커다란 나무 사이로 뾰족한 벽돌색 지붕을 인 집들의 모습에, 여기가 베트남 맞나 싶었다.  알고보니 프랑스사람들이 휴양지로 개발한 곳이란다. 과일, 화훼재배에 적합한 서늘한 날씨, 독특한 풍광으로 하여 베트남 최고의 신혼여행지이며, '중부고원의 보석'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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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수인 '쓰언후엉'을 중심으로 고급호텔이 즐비했다. 그 중 예쁜 레스토랑을 골라 뷔페를 먹었다. 거기 물가로 18불이면 어지간한 가격인데, 베트남음식도 양식도 가짓수가 적고 조촐해서 기대만 못했다. 호수의 물은 좀 더러웠는데 워낙 구름이 좋아서 사진이 실체보다 훨씬 낫다.  해발 1400미터라더니 정말 구름이 내려와 있는 느낌이 든다. 소수민족 마을에 갔을 때는 이런 느낌이 좀 더 강했다.



바로 위에 구름이 떠 있어서 구름그림자가 그대로 내려앉았다. 만일 저 구름이 먹구름이었다면 딱 구름모양으로 비가 내리는 것을 볼뻔했다. ^^  이들의 묘지는 시멘트로 평평한 모양인데, 울타리를 친 것이 흥미로웠다. 망자에게도 집을 지어준 셈이다. 나중에 므이네 가는 길의 대평원에 띄엄띄엄 있는 묘지는 장엄했다. 끝없이 펼쳐진 붉은 평원의 낮은 묘지들은 충분히 낯설고 결연해서 삶의 끝에 가 닿는 기분이었다. 이것을 보러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짱에서 달랏오는 길의 운무와 더불어 이번 여행의 최고 풍광인데 둘 다 사진을 찍지 못했으니 가슴에 담아두어야 하리라.





코끼리 폭포의 위용, 주위에 있는 바위의 오묘한 모양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밤에 달랏시장에 모인 인파를 보니 입이 쩍 벌어진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베트남사람들도 아주 많았다. 노점상을 단속하는 경찰이 타고 온 트럭에는 '개별용달'이라고 써 있었다. 중고차에 한글이 쓰여진 것을 그대로 둔다는 말을 듣긴 했어도 경찰차까지 그렇다니 신기하다. 심지어 '코아관광'의 '관'자를 거꾸로 붙인 관광버스도 보았다. 의도인지 실수인지 우리는 몸을 뒤집어가며 '관'자를 발음하는 시늉을 내며 깔깔거렸다- 이 곳에는 여행자를 위한 숙소도 많고, 카페도 많다. 태국의 카오산로드가 이렇다할 관광자원이 없이, 전세계에서 모인 배낭여행자가 여행자를 부르듯이, 이 곳도 여행자의 거리가 될 소지가 충분했다.





달랏은 내게 가격대비 킹왕짱인^^ fortune hotel로 해서 더욱 기억에 남을 것이다. 서글서글한 안주인은 내가 들고간 노란 꽃다발을 보고 반색을 했고, 안내를 맡은 아가씨는 다소곳하고 순하기가 60년대에서 날아온 시골언니 같이 정겨웠다. 깨끗한 침실과 실속있는 아침식사가 불과  35불!  3성급호텔이었는데 우리가 나오면서 곧바로 성수기 가격으로 올리긴 했다.






노을이 지고, 설날을 맞이하는 불꽃놀이가 오래 계속되었다. 그렇게 달랏에서의 밤이 깊어갔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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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 베트남 여행기 재밌어요~.
    쓸데없는 걱정과 겁으로 여행을 안하는 편인데,
    저도 가보고 싶어지네요~. +_+

    2011.02.14 08: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이렇게라도 선별을 해 두지 않으면 한번도 떠들어보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 정리를 해 보았지 별로 공은 들이지 못했는데
      읽어주어서 고마워요.
      베트남~ 그야말로 가격대비 최고네요.^^

      2011.02.14 13:38 신고 [ ADDR : EDIT/ DEL ]

2011. 1/29~2/10 에 아이들과 베트남에 다녀왔다. 비정규직의 주머니사정에 적합했을 뿐^^ 베트남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월남전, 오토바이행렬, 우리나라에 시집온 이주여성 등 두세 가지밖에 없었다. 직접 접한 베트남은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중층적인 모습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호치민 시내는  번잡하고, 오토바이 매연으로 가득했을지 몰라도, 나짱이나 달랏, 므이네 같은 휴양도시들은 천혜의 자원을 자랑하고 있었다.  유럽의 전원도시같은 풍광을 자랑하는가하면, 평원과 사막을 감추고 있었고, 해양스포츠의 요람이기도 했다.

1. 노란 꽃

처음으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노란 꽃이었다. 나짱에 들어서는데 두 집 걸러 한 집이 꽃집이었다. 빳빳하게 잘 키운 노란 국화가 집집마다 가득했다. 저렇게 많은 꽃을 어떻게 다 소비할지 걱정이 될 정도로 많았다. 가만히 보니 명절을 맞이하며 노란 꽃으로 집을 장식하는 풍습이 있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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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있는 집은 현관 앞에 커다란 국화화분을 놓고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찬거리와 함께 국화다발을 사 들고 다녔다. 채소전에 야채와 함께 놓인 국화는 작은 감동이었다. 이처럼 생활 속에 꽃을 끌어들인 민족이라니, 나는 단박에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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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상가든 가정집이든 입구에 노란 꽃그림으로 장식을 하고 있었다.  위 화분 같은 것도 눈에 많이 띄었다. 노란 꽃에 주술을 걸다?  나도 슬며시 신명이 돌아 노란 꽃다발을 하나 사 들고 다녔다. 나짱에서 달랏으로 움직일 때도 들고 갔더니 호텔 안주인이 내 꽃을 가리키며 반가워 죽는다.


2.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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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오토바이 행렬은 소문대로 굉장했다. 도시와 시골,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호치민에서도 버스를 그리 많이 본 것 같지 않다. 오로지 오토바이, 또 오토바이. 택시나 관광버스를 타면 오토바이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기 일쑤고, 오토바이족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크락숀 소리가 따가웠다. 오토바이와 보행자가 뒤섞이는 모습을 보며 이들에게서 오토바이 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고산지대를 비롯하여 지역적으로 주거지가 흩어져 있다, 보기보다 성격이 급하고 주도적이다?

어쨌든 이들의 오토바이 문화는 새로운 방식의 관광을 탄생시켰다. 고산지대를 오토바이로 달리는 '이지라이더'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다. 나짱에서 달랏 가는 길이 아름답다고 딸애는 이지라이더로 가기를 원했다.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라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것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 되었다. 그 길은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해발 천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난 구절양장의 좁은 길을 꺾어질 때마다 바위에서 폭포가 쏟아졌고, 2,3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운무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커다란 고사목이 희미하게 비치는 운무의 바다는 마치 딴 세상에라도 온 듯 환상적이었다. 나중에 달랏에 도착한 뒤 너무 아쉬워서 이 길을 다시 오토바이로 갈 것인가를 의논했지만, 휴유~~ 목숨걸고 가면 모를까 만용을 부리기엔 너무나 위험한 코스였다. 마침 카메라를 짐칸에 실어 사진 한 장 없는 것도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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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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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람들은  많은 것을 거리에서 해결한다. 우선 카페와 식당, 아침식사도 사 먹는 것이 추세인지 아침부터 거리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커피와 두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더 많다. 물이 안 좋다더니 차 문화가 발달한 것 같다. 거리에 달랑 재봉틀 한 대를 놓으면 옷수리점이고, 벽에 거울을 걸고 의자 하나 놓으면 이발소다. 너무 재미있어서 아들 머리를 깎으려고 몇 번을 별렀는데 동선이 안 맞아서 못 했다. 이들의 가옥구조는 거실이 거리를 향해 배치되어 있어 현관문만 열면 그또한 거리카페가 된다. 이들의 민족성은 아주 개방적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차례상까지 거리에 내 놓은 것을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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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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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영향인지 베트남에서는 바케트가 쌀국수 못지않은 주식이다. 어딜 가나 바케트를 갈라 각종 고기와 야채를 넣은 '반미'가 있다. 바케트만 사면 한 개에 2000동-100원-  정도 하고, '반미'는 10000동에서 15000동 하는데 아주 맛있다. 한 번은 어떤 휴게실에 들어서자 마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바케트를 직접 구워 반미를 만들어 팔고 있었던 것. 그 곳에서 먹은 반미는 정말 최고였다. 바삭하고 고소하게 씹히는 첫 맛이 그립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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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쳐녀시절에 친한 후배들과 중국의 쿤밍을 여행한 적이 있었어요. 지도를 보면 베트남 바로 위에 있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역이예요.
    젊고 자유롭고 또 조금 더 어리숙하고 순수했던 시절의.. 두고두고 오래오래 떠올리게 되는 참 아릅답고 행복한 여행이었지요.
    미탄님 사진과 이야기를 보니 쿤밍생각이 다시 나요. 풍광도, 거리도, 먹거리도 닮은 구석이 많아요.. 노점에서 사먹던 쌀국수와 빵들이 참 맛있었는데. 음~ 다시 먹고파요....!^^

    2011.02.13 23: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도 호치민 시내에서는 필리핀이나 캄보디아와 비슷해서
      잠시 후회했을 정도랍니다.
      이제 동남아는 그만 가려구요~~ ^^

      ㅎㅎ '처녀시절'이라는 말이 참 정겹게 들리네요.

      2011.02.14 13:4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