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길을 떠나면 내가 보여'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13.05.29 27일, 플리트비체
  2. 2013.05.26 스플리트 사진 (1)
  3. 2013.05.26 이십오일, 스플리트
  4. 2013.05.25 모스타르2
  5. 2013.05.25 24일 보스니아, 모스타르
  6. 2013.05.25 5월 23일, 두브로브니크
  7. 2013.05.23 잠이 오지 않는다
  8. 2013.05.21 화려하게 살아야 해!
  9. 2013.05.18 몰타에서 여행의 맛을 느끼다
  10. 2013.05.12 첫번 째 절경

 

 

 

 

 

 

 

 

 

 

 

 

전날에는 비에 묶여  마트 갔다가 밥 사 먹고 푹 쉬고 일찍 길을 나서다.  버스터미널에서 바라보는 스플리트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잠시 마음이 아리다. 

 

스플리트 아파트먼트의 주인은 젊은 친구였다.  고지식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처음에 숙박비를 낼 때  100유로 짜리를 내며  거스름돈을 언제 줄 거냐고 장난삼아 물었는데,  여권 기록도 안 하고 득달같이 잔돈부터 갖고 왔었다.


주민들이 주로 쓰고 있는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해서 부업처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손님용 방이 세 개인데  우리만 들어서 결국 저와 우리가 바로 옆방에 머무는 형국.  특히 서양사람들은 공동공간을 나눠 쓰는 것도 잘 하드만, 나는 이런 경우 굉장히 불편하다.  가장 나쁜 경우에 대한 상상력도 발달했고 해서 수시로 긴장한다.  아침에 딸이 보니 그 친구가 부엌에서 달랑 버터만 바른 빵을 먹고 있더란다. 그리곤 어딜 가는지 미리 인사하고 일찍 나간다.  운동 아니면 투잡이라도 뛸 정도로 이른 시각이었다.  인사를 하는데 나와 딸의 시선을 고루 잡으며 제대로 한다.  우리 밖에 들지 않았는데도 여전 무엇인가를 치우며 덜그럭 거리던 것도 기억나고,  보기드물게 참한 청년을 공연히 의심하고 거리를 둔 것이 미안하다.  어제처럼  심심한 날,  라이브카페라도 물어 같이 가서 맥주 한 잔 나누면 좋았을 것을,  여행이 중반을 넘어 서니, 풍광만 보고 다니는 여행에 색깔을 입히고 싶어 진다. 


플리트비체 가는 길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구름 이야기 그만 하려고 했는데,  나 원 참,  그렇게 황홀한 구름을, 그렇게 많이, 그렇게 가까이 본 적이 없으니 어찌 하랴. 4시간 반 거리,  절반은  그림같은 농촌이고, 절반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평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을 두 시간 이상 달리는데,  집도 없고 가축도 없다.  양 열 댓 마리에 말 한 마리가 그 평원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플리트비체,  거대한 호수가 몇 개의 산을 감싸고 돌며,  기기묘묘한 산자락과 어울려  도마뱀 서 너 마리의 형국을 하고 있는 듯,  물 속 세상이 훤히 비치는  맑은 물과  물보라를 흩날리는 폭포가 이어지며 천하의 절경을 이룬다.

 

이쯤 되면 자연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신음하게 만드는,  원시의 비경도 놀라웠지만,  구간을 오가는 페리의 속도도 인상적이었다.  천천히,  조금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끄러져 내려 가는 속도 덕분에  자연히 주변 풍경을 한 번 더 보게 되었으니,  작은 부두에 도착하여 스탭들이  두 개의 기둥에 밧줄을 다 묶을 때까지 단 한 명의 승객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 느린 속도의 가르침이 아니었을지.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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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내다 본 스플리트 항구의 낮과 밤. 막 자정을 넘긴 시간,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대형 크루즈 세 대가 출항하지도 않으면서 불을 휘황하게 켜 놓고 있고, 배낭 멘 사람이 하나 이 밤에 비를 맞고 간다.어느새 익숙해진 나를 본다. 도시 사이즈에 따라 며칠 묵다 보면 거리풍경이 바뀌는 패턴이 보이겠구나. 취향에 맞는 밥집과 술집정해놓고 인사 나누는 쥔장도 생기고... 두 어 달 정도 이렇게 부랑자 같이 살아도 좋으리. 붙박힌 삶,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삶을 견디는 최상의 방도일지도. 밤새 많이 오고 내일은 맑아야 할 텐데...



벽화와 스플리트 시가지, 사진이나 글이나 별로 신경 쓰지 못한 상태에서라도, 이만큼이라도 정리하며 움직이니 뿌듯하다. 핸폰으로는 제법 화질이 좋은데 큰 화면으론 어떨지, 나중 에 모니터로 볼 것도 기대되고.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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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쩜!!! 힘들게 찾아온 보람이 있네요 ㅋ
    선생님 블로그 주소가 없어서 찾느라 애먹었습니다~^^
    혼자 여행중이신거죠?
    대한민국 동남쪽 끄트머리 구석에서 살면서, 떠나고 싶다는 욕망을 한번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요즘 부쩍 갑갑(!)함을 느끼던 차에 선생님 여행 이야기를 읽게되는군요.
    제 오랜벗이자 선생이신 한 분은 일곱해째 십대아이들을 데리고 세계여행중이신데,
    왜 한번도 부럽지 않았나.. 생각해보니.. 혼자 떠난 여행이 아니어서 였나 봅니다.
    물론! 전 떠나지 못하겠지만
    혼자 떠나는 유럽 여행... 부럽습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2013.05.27 13: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모스타르에서 스플리트 까지는 딱 네 시간이 걸렸다. 어째  이십 오인승 정도의 중형차량이 왔나 했더니,  도로 폭이며, 산을 감싸고 도는 달팽이같은 도로에 딱 어울리는 차였다.  이용 승객도 많지 않은듯,  인근 도시까지 출근하는 젊은이들이 내린 다음에는 대 여섯 명이 타고 갔다. 엻한 시,도착은 했지만 워낙 여러 곳을 돌아 다니느라 스플리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지도 한 장도 없어서  무작정 움직이려는 참에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 왔다. 외국인이 조금 겉늙어 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나보다 불과  너댓 살 더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내 안의 어린 아이가  그를 할아버지로 여기게 했다. 그만큼 순하고 선량해 보이는 그의 인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할아버지의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주절주절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도를 짚어 가며 몇 마디 한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하는지  룸이라 쓰인 쪽지를 내밀곤,그 다음엔 일인에  십칠 유로, 이인에 삼십오 유로 라고 쓰인 쪽지를 내미는 식이었다. 아,참 이럴 때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픈지, 금방이라도 오케이 하고 싶었지만 따라 가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하는 양이나 삼십 오라는 숫자로 보아  거절하기도 싫고, 인정에 끌려가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대신 훨씬 약삭빨라 보이는 중년남성을 따라 갔다. 가격도 알려 주지 않고 무조건 방을 보고 결정하자니, 앞의 할아버지는 얼마나 고지식한 사람인가. 그의  아파트는 우리 집보다 넓었지만  시내로 난 창문이 작아서 답답했다.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를 찾으니 자기 친구라며한 집을 소개해 주는데, 스플리트 항구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보통 바다가 보이는 방이 십 유로는 더 하는데, 그간 파악한 크로아티아 물가로 보아 이 곳에서는 그 정도 호사를 해도 될 것 같았다.  이틀에 백십유로.  어제처럼 비가 오락가락 하다,볕이 났다 변덕을 부리더니 먹구름이 완전히 뒤덮은모습도 장관이다. 스플리트는 항구로 밀집된 관광지역이 전부란다. 여느 때처럼 무작정 골목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 것이 시가지를 한 바퀴  빙 돌아 오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항구에서 불과 이십 분만 벗어나도 외국인 구경 못 하는지  여전 쳐다 본다서구 주택가 특유의 한적함을 벗하며, 길 가의 고양이와 놀기도 하고, 할아버지들이 수십 명 모여 게임하며 즐기는 모습, 대형 마트 구경, 현대적인 시가지 구경을 했다. 보스니아 내젼의 희생자를 기리는 듯한 벽화도 보았다.  천 구백 구십 일년 아무 날 아무시,분까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상황의 추이를 벽화로 옮긴 것 같다. 광주항쟁이 절로 생각나는 장면이다. 이 쯤으로도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에 조금은 다가 서는 기분이다.내일도 그  할아버지는 호객행위를 하러 항구에 나가겠지.  세상이 넓다 하고 몰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도 어김없이 일상에  뿌리 내리고 있는 사람들, 나의 여행이 그에게 일상이듯이, 나의 일상 또한 어떤 바람 어떤 변덕 앞에서도 탄탄해야 하리라. 우리를 태우고 온 기사는 곧바로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을 태우더니  잠시도 쉬지 않고 모스타르로 출발했다. 그 꼬불거리는 산길을 네 시간이나 운전하고 곧바로 되짚어 그 길을 간 것이다.잠시 한량 노릇을 하고 있지만 일상의 엄정함에 정신이 번쩍 든다. 할아버지에게는 선전을, 기사에게는 무사운전을 기도드리고 싶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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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검색해 보니 보스니아 내전은 세르비에,이스람,크로아티아 계열 간의 알력이었다는데, 모스타르 구시가에는 총격이 남아 있는 건물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건물을 신축하면서도 구 건물의 한 벽면을 활용한 곳이 많아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아픈 기억을 잊지 말자는 의도였으면 좋겠지만, 어쩐지 아픔마저 관광상품화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인 심사인지? 사망연도가 모두 1993으로 되어 있는 한 묘지.



모스타르는 물가가 아주 싸서 신천지에라도 온듯한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렇게 고급스럽게 전시된 와인이 삼천원에서 칠천원 사이, 나는 와인 두 병을 사고, 딸애는 스포츠 샌들을 하나 장만. 샌들은 오십오 마르크, 그러니까 이게 얼마냐.내겐 너무 헷갈리는 통화들.




모스타르에서 스플리트로 넘어 가는 길은 최고의 경관을 선사했다. 아침 일곱 시 버스, 소나기가 한 줄금 지나 가더니 갖가지 모양의 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 굽이 한 굽이 버스가 산등성이를 올라갈 때마다 거의 정상에 이르렀는데, 산봉우리 하나를 삼켜 버린 뭉게 구름, 점점점, 쉼표같고 강아지똥 같이 똑똑 떨어진 구름, 용오름처럼 지상에서 천상으로 이어지는 구름커튼에 은근히 겁만 주고 사라지는 먹구름 형님의 위용...실로 섬세하고 장쾌한 구름쇼는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어서면서 최고의 해안길 드라이브로 변했다. 그동안 숱한 바다를 보았지만 이처럼 미동도 않는 거울은 처음이다. 거기에 아주 기일게 뻗은 뱀장어 섬의 미끈한 자태에 순한 짐승의 앞발처럼 뻗은 산자락에 여지없이 포진해 있는 지붕,지붕,지붕들... 네 시간 동안 지속된 장대한 파노라마는 유명한 나폴리의 아말피 해안 못지 않았으니,
그러니까 이런 길 열개만 발견하면 책 한 권 된다는 거지.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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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의 모스타르는  크로아티아와 인접하여  크로아티아 내에서  이동하는 사람들이 점 찍고 가는 곳이다.   보스니아 하면  수도인 사라예보가 일차세계대전의 발발지라는 것, 그리고  ㅡ내전ㅡ   이것 밖에 아는 것이 없는 곳에 와서 활보하자니  감회가 새릅다.  완연하게 소탈해진 차림새의 이들이  무얼 해서 먹고 사는지,  여가엔 무얼 하며 즐기는지, 어떤 역사를 거쳤는지 마구 궁금해지니, 여행은 최고의 학습동기를 부여한다. 여고 때 그 지겨웠던 세계사 시간도 생각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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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비가  오락가락,  빗속을 뚫고 용감하게  라파드 를 보러 가다  몸이 휘청일 정도의 강풍에 돌아오다.  

관광객 상대가 아니고 주민들이 가는  식당을 일삼아 찾아 다니는데 빗속에 한 건 건져서 기분이 좋다.  맛으로나 가격, 분위기 모든 면에서 관광지 특유의 살짝 부풀려진 것보다  월등 낫다.  스테이크가 90쿠나~18000원~  비교적  참한 가격이데다  올드팝이 흘러나오고, 건장한 사내들이 바에 선 채로 카드를 하며 술 한잔 하는 장면이 맘에 들어 스프에서 커피까지 골고루 챙겨 먹다.


숙소에  돌아오니  날이 활짝 개었다.  그럼 또 일을 만들어야지.  남들은 게이블카로 올라가는 스르지산에 오르자니 시시각각 뷰가 달라진다.   숙소 바로  위로 난 진입로는 주민이 아니면 절대 모를 정도로 은밀했지만 백년은 갈 만큼  탄탄하고 완만하게 잘 닦여져 있었다.  

나무에 가려져 있던 풍경이 드디어 완성되는 순간!  책과 사진으로 너무도 자주 접한,  크로아티아의 대표  풍광이 거기 있었다.  케이블카로 휭하니 올라간 것이 아니고, 아침 빗 속을 누비고 다니다  현지식당을 거친 긴 하루의 끝에 선물처럼 주어진 장면이라 더욱 소중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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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공간이동이다. 비행기로 열 시간, 페리로 열 시간 계속 이동한다. 그러면 낯선 풍경이 열린다.얼굴이 작고 코가 커서 어지간하면 다 미남미녀인 이탈리아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아저씨들은 저마다 배에 거대한 물풍선을 매달고 다니고, 아줌마들은 만화처럼 과장된 엉덩이를 하고 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식문화일 것이다. 전채, 첫번 째 요리,두번 째 요리, 디저트 해서 네 번의 식사를 한다고 알려진 그들, 음식양도 엄청 많아서 스파게티가 우리 나라에서 나오는 것의 네 배는되어 보인다. 그들의 식습관은 오랜 세월 흘러 오며 그들의 골수에 스며 든 것이다. 시간의 힘에 의해 올올이 그들의 것이 되었다. 이탈리아처럼 화려한 문명을 지닌 곳에서는 시간의 힘이 잘 느껴진다. 중후한 석조건물들은 물론, 한낮에 모조리 쉬는 모습을 보면, 시간에 의해 인증받은 오래 된 습관이 문화가 된 것이 보인다. 그래서 여행은 시간이동이기도 하다. 낯선 시공간에 와 있는 여행자는, 압박감을 느낀다. 어느새 여행도 중반, 돌아가서 살 일이 아득하다. 어젯밤에 페리를 타고 크로아티아로 넘어 왔다. 사진으로 너무나 익숙한 담갈색 지붕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산과 해안을 보니 또 새롭다. 내일 모레는 보스니아에 점 찍고 또 또 또 다른 나라들엘 간다. 이렇게 낯선 시공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가 고집하는, 혹은 우리에게 부여되는 삶의 방식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게 끝은 어니다. 우리 눈 앞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여전히 내 삶의 방식을 구축해야 하는 문제는 남는다. 갈수록 시선은 넓어지지만 돌아다녀 볼수록 소중한 것은 일상이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배는 그러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었지만, 이제는 배의 본질이 항해 못지 않게 안전한 귀항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라! 돌아 갈 곳이 없는 배란 얼마나 위험하고 끔찍한가! 마찬가지로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 마침 두브로브니크에 비가 온다. 퉁퉁 불은 아드리아 해 위로 번개가 치고, 레몬나무와 장미꽃과 채소가 가지런히 놓인 텃밭에도 후드득 비가 떨어진다. 이렇게 먼 나라에 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익숙하고 평안하다. 부엌을 쓸 수 있는 곳인지라 저녁에는 소고기전골을 해 먹었을 정도이다. 그런데 잠이 오질 않는다. 그림엽서속에 들어 와 있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이 순간역시 시시각각 흘러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 시간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항해노선과 기착지 모두를 갱신해야 할 시점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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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살아야 해, 레체의 밤처럼!
어느 여행서의 한 구절에 반해 레체를 첮아 나섰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의교통중심지 바리에서 기차로 두시간 동안 계속해서 고목을 넘어 괴목이 된 올리브밭이 펼쳐지기에 오래된 전원도시를 기대했더니 웬걸, 이제는 익숙해진 중세풍 골목에서도 그 중 기품있고 아티스틱한 풍경이 펼쳐지네요. 격조있는 석조건물마다 정교한 장식이 감탄을 자아내고, 베란다에 걸린 화분은 덩쿨이 되어 치렁치렁, 구석구석 수공예와 명품샵이 지역주민의 안목을 보여 줍니다.

중요한 건 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고, 닳아 빠진 로마나 나폴리보다 진짜 이탈리아에 접하는 맛입니다. 한 시에서 네 다섯시까지 가게가 모두 문을 닫고, 인적이 사라지고 햇살만이 지키는 적요함에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습니다. 반면 밤이 되니 도로를 메울 정도로 쏟아져나와 산책하고 어울리는 사람들에게서 문화, 가족, 여유, 향유, 카르페 디엠... 이런 말들을 피부로 느낍니다. 동양인이 낯선듯 흘깃거리는 시선을 느낄 정도로, 상업화되지 않은 것도 좋습니다. 토착민이 가는 식당은 음식값이 만만하여 날마다 정식을 즐기며 레체의 여유를 흉내내어 봅니다.

그런데 과연 화려하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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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블루라군에 다녀오는데 배 타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갈 때 한 시간 반, 라군에 머무는 시간이두 시간 반인 줄 알고 갔는데, 웬걸 돌아올 때는 한 시간 반이 아니라 무려 세 시간을 탔다. 몰타 전체를 일주한 것, 아이고,안 그래도 되는데,그야말로 too much 였다. 배멀미를 해서 속이 니글거리니고추장 생각이 간절하다. 슬레이마 선착장에서 야채를 사다 고추장 찍어 맥주를 마시는데 참 좋다.멀리 희끄무레한 궁전인지 성당인지 실루엣도 좋고, 정박하여 쉬고 있는 페리도 좋고, 손잡고 걸어가는 초로의 여행자 부부도 좋고, 느닷없이 물 위에 떠다니는 오리 한 마리도 좋다. 겨우 맥주 한 잔에,어스름 해지는 시간과 살랑이는 바람에 힘입어 마음이 한없이 넓어진다. 좋다! 바로 이것이 노천카페 문화의 근간이 되었을,외부로 열린 시선이요,, 생활의 여유로구나 싶다. 근데 문제는 내가 거리에서 무얼 먹으면 여행자가 아니라 부랑자 분위기가 난다는 것.


블루 라군 사진 한 장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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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나폴리, 쏘렌토 거쳐 시칠리아에 와 있다. 마피아의 본산지로 알려 져 있는 팔레르모는 중후한 매력이 돋보일 뿐, 멀쩡한 도시였다.^^ 이탈리아에서 제일 크다는,대부의 마지막 장면을 연출한 마시모 극장을 비롯해서,마피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도 뿌리가 있는 도시일 것이다. 이 곳에서 두
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소도시 트라파니에서 들어가는 에리체의 절경에 접하다.산등성이에 자리잡은 초미니 중세도시는 너무 관광지가 되어 버렸지만, 고산지대라 그런가 코앞까지 내려 온 구름이 바람결에 움직이는 켯속이 다 보인다.빠르게 움직이며 내게로 다가 와 부드럽게 몸을 뒤채는 광경은 거의 춤을 춘다고 밖에 말할 재간이 없다. 거기에 구절양장 몇 번이고 구부러진 길을 내려 오는 동안 펼쳐지는 풍광이 최고다. 부드럽게 휘어진 해안이 갈라 놓은,아찔하게 짙푸른 바다와 초록의 벌판, 하늘에는 춤추는 구름 떼,땅에는 레고블럭같이 귀여운 집과 들꽃 무더기, 집 떠난지 팔일만에 만난 최고의 십오분이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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