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는 빅 토커big talker를 존중하고 육성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모든 일을 가능한 한 크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가능한 한 크게 표현하는 것을 토크 빅talk big 이라 하고, 그런 사람을 빅토커big talker라고 한다. 현실은 점점 말의 리드를 받기 때문에 빅토커에게는 행복을 끌어당기는 힘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말을 앞세우는 것을 경계하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나는 어려서 동화 ‘큰바위얼굴’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젠가 마을 산의 바위 형상을 닮은 위인이 나타나 삶의 지혜를 알려 줄 것이라는 전설을 들으며 컸다. 그 전설을 마음에 품은 주인공은 평생동안 ‘큰바위얼굴’을 찾아 헤매며 살았다. 그를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자기수련을 게을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 날 주인공이 무슨 얘기인가 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 서 있을 때였다. 마침 황금빛 햇살이 마을을 둘러싼 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와 주인공을 함께 비췄을 때, 누군가 “똑같다! 큰 바위얼굴이다!”라고 소리쳤다. 주인공은 ‘큰바위얼굴’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오랫동안 그를 흠모하며 살아오는 동안 자기 자신이 그와 같은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똑같다! 바로 그가 큰바위 얼굴이다!”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읽으며 어린 내 마음이 두근거렸다. 깨끗하고 한적한 시골마을, 찬란한 저녁 햇살이 비치는 가운데 바위산 아래 서 있는 한 인물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후에도 여러 번 책 속의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거듭하며 내 안에 ‘존경받는 중요한 인물’에 대한 동경이 자리잡았을 것이다. 성격급하고 직관적이라 엄벙덤벙 일을 저지르고 살아오면서도 바위산이 있는 마을에 사는 한 소년의 마음을 잊지는 않았다.  주로 책을 통해 배움을 얻고 공감을 얻다보니 책을 읽던 중에 감격에 겨울 때가 많다. 어떤 구절에 깊이 공감하면 머리카락이 쭈뼛 서면서 온 몸의 솜털이 오소소 일어서는 듯  전율이 온다. 

좋은 저자들에 대한 신뢰와 부러움이 나를 이끌고 간다. 그들을 통해 유일하고 고유한 삶을 추구하는 에너지를 계속 수혈받고 있으므로 지치지 않는다. 책으로 쓰고 싶은 아이템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바빠지고, 엉뚱한 구상이 떠올라서 피식 웃기도 한다. 주로 나이든 사람들이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방안에 대한 것들이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을 벤치마킹해서 소수가 모여 공동거주를 실험하는 것도 재미있겠고, 육아도우미를 필요로 하는 맞벌이부부와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시니어세대가 어울려 사는 단지를 형성해도 좋겠다. 가족형 놀이동산과 연계한 시니어타운도 환상적일 것 같다.

놀이동산에는 매표 및 관리, 식당운영, 경비와 청소 등 나이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오래도록 일할 수 있으니 좋고,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을 계속 접할 수 있어서 좋고, 가족들이 다니러 오기에도 좋을 것이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게으르기도 하고 업무수행능력이 취약하므로 쉽사리 시작하지는 못하겠지만, 하고 싶은 일이 계속 떠오르는 덕분에 활기차게 살 수 있다. 절대로 자화자찬이 아닌 것을 알아주리라 믿는다.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힘의 원천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확신이 있고 추구하는 지향점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 어느 분야에서고 혹독한 훈련과정을 힘들다 생각하지 않고 일정한 성취를 해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자기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을 상정해놓고, 그 인물과 비슷해지기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큰바위얼굴’의 비밀이요, 빅토커의 원동력이 아닐까.

결국 인생에 대한 기대치가 필요하다. 명확한 그림이 필요하다.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얻게 된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이 막연하게 잘 살고 싶다고 생각만 하는 사람은 자원과 에너지를 분산시켜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어쩌다 뒷발로 잡은 행운마저도 지켜내지 못한다. 기대감은 인생에 막강한 파워를 행사한다. 모든 것은 의도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기대치를 갖고 세상을 대할 때 많은 것이 달라진다.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며, 훈련을 계속할수록 내 안의 잠재력을 더 많이 발현시킬 수 있다. 우연을 가장한 기회를 알아볼 수 있으며, 스스로 믿는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나를 헌신하는 순간 신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의 정체이다. 

의도를 갖느냐 안 갖느냐의 여부가 당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결정하는 첫 단추이다. 상상할 수 있는 한 커다란 꿈을 꾸라.  ‘꿈은 보이는 곳에 있되 손에 닿는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그대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꿈이 아니면 그대의 마음을 뛰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라. 그것에 대해 큰 목소리로 이야기함으로써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잠재의식을 세뇌시켜라. 그대의 상상력과 실행력이 이 세상에 펼쳐놓는 그대의 이야기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면 삶도 멈춘다. 날마다 그대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정교하게 다듬다보면, 어느 날 그대는 너무도 익숙한 그 장면에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머물게 될 것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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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똑같다! 큰 바위얼굴이다!”에 지금도 소름이 쫙~ 돋네요
    첫줄의 빅토커라는 단어를 보면서 "끌어당김의법칙"이 딱 생각났는데 ^^ 다음줄에 있네요.

    2010.10.05 15: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그 말씀은 알통님도 큰 바위얼굴에게 감정이입의 경험이 있다는 말씀?^^
      글의 의미를 잘 챙겨서 읽어주시네요.
      자주 놀러오삼~~

      2010.10.05 23:16 [ ADDR : EDIT/ DEL ]
  2. 두 번째 책의 초고를 완성하고, 편집진의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역시 전문가들이 다르더라구요.
    제 원고의 차별화를 위해 핵심을 짚어주네요.
    2주일 동안 다듬어서 다시 보내기로 했지만 서둘지 않으려구요.
    지금의 내게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원고를 쓰고 싶습니다.

    그동안 너무 격조한듯하여 다른 곳에 보낼 원고를 올려 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맑고 밝고 풍요로운 가을 되시기 바래요.

    2010.10.05 21: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모든 글을 볼때 그러는 건 아닌데.. 요즘 들어 미탄님 블로그 글을 볼때는 (특히 제호를 단 글을 볼때는)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시작과 구성, 마무리까지 유심히 보게 됩니다. 제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거든요. 그저 토해놓기만 하는 제 글과 비교되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 라는 희망도 갖구요^^

    2010.10.05 23:38 [ ADDR : EDIT/ DEL : REPLY ]
    • 블로그에는 '토해놓는' 단계의 초고라고 생각하고
      마음편하게, 양적으로 많이, 단숨에
      글 올리는 것도 괜찮아요.
      양 속에 질이 있다! 도 사실인 것 같구요,
      얕은 땅이라도 자꾸 쟁기질을 해 주면
      예기치않은 보물을 발견할 확률도 커지는 거지요.

      내 글이 별 것 아니라는 것 알고 있구요,
      당근 젠느님도 저자가 될 수 있고 말고지요.^^

      2010.10.06 14:58 신고 [ ADDR : EDIT/ DEL ]

동네 시장에 단골 정육점이 있다. 처음에는 그 중 큰 곳이라 무심히 들어섰는데 볼수록 예사롭지가 않았다. 우선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 남자이다. 칼질하는 사람이 두 사람, 계란을 파는 젊은이가 한 사람, 그리고 어쩌다 보이는 나이 지긋한 사람이 그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정육점에 대한 내 이미지를 깨트리는 것이었다. 보통 정육점이라는 곳이 편안한 체격과 붙임성 좋은 중년부인네가 점령하고 있는 곳이 아니었든가. 그런데 하나같이 우람한 체격을 가진 남자 넷이 일하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낯설었다.


바로 이런 것들이다.  청장년 서 너 명이 입을 모아 "어서 오세요!" 소리치는 것은 인사라기 보다는 구령에 가까웠다. 달랑 인사만 던지고는 보통 소매점에서 있을 법한 담소로 이어나가지 않고 침묵 속에 고기만 써는 두 남자의 모습이 경건하기 짝이 없다. 고기를 다루는 직업이 이렇게 전문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동작은 자신감있고 거침이 없다. 게다가 두 남자의 팔 근육이 장난이 아니다.  조명도 붉고 진열장 속의 고기도 붉은 장면 속에서 힘줄이 툭툭 불거진 두 팔이 고기를 써는 모습은 충분히 그로테스크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섹시했다.^^ 머리에 무스를 발라 치켜세운 젊은 쪽보다, 40대 중반의 살짝 우울해 보이는 사람에게 마음이 갔다.


근처의 수퍼마켓보다 값이 싼데도 육질이 좋은 편이라 나는 당연히 그 정육점의 단골이 되었다.  드나든지 1년이 되어오지만 “전지 한 근 주세요!” 하는 식의 말 밖에 나눈 적이 없다. 그런데 며칠 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지 한 근 주세요!” 했겠다, 언제나 정성스레 무스를 바르는 남자가 물어 왔다.

“어떻게 드실 건데요?”

“고추장 양념이요.”

대답하는 순간, 등을 돌리고 일하고 있던 다른 한 사람이 몸을 돌려 나를 쳐다 보았다. 2초 쯤 우리의 시선이 부딪쳤다. 찌리릿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런! 그도 나를, 내 목소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뿐, 전지 한 근을 사들고 돌아섰지만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 나를 ‘개별적으로’ 바라봐 준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어떤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한 번 곰곰이 떠올려보라. 그 중 소중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조차 그들에게 백프로 집중하고 있는지를. 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머리 속으로 이런저런 삶의 현안에 대해 궁리하곤 했다. 친정어머니의 치아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갈수록 내가 엄마의 말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서글퍼지곤 했다. 그런데 단 2초에 불과했지만, 정육점 남자의 ‘시선’은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었다는 것이 짜릿하도록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김찬호의 ‘생애의 발견’에서 본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박재동화백의 제자가 TV에 나와서 한 말이라고 한다. 고교시절, 그는 소문난 문제아였다. 그 날도 친구 한 명과 같이 교무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벌을 받고 있었단다. 오가는 선생님들이 머리를 쥐어박으며 ‘이 놈들, 또 왔느냐’며 핀잔을 줄 때, 박재동화백이 그들을 미술실로 데리고 갔다. ‘어이쿠! 선생님께서 제대로 혼내시려나 보다’ 하고 바짝 긴장하고 있을 때, 박화백은 그들을 앉혀 놓고 초상화를 한 장씩 그려주었다고 한다. 아무 말도 없이 긴 시간 자신들을 응시해 준 그 시선이 백 마디의 훈계보다 더 마음에 남았다고, 그는 말했다.


누군가를 온전히 바라본다는 것! 나는 정육점의 작은 사건에서 이것을 배웠다. 그가 누구이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온 마음을 기울여 집중하기! 그것만이 내가 온전하게 살아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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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근에 '글쓰기' 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있던 중에 미탄님의 글을 읽으니, 참 좋습니다. 그 찌릿 ~ 하는 순간이 저에게도 제 일인양 느껴졌어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신 문장을 하나하나 다시 보게 됩니다. 의식을 놓치지 않고 사물을 명징하게 바라보는 것.. 공지영이 말했던 글쓰기의 기본전제였는데요. 저는 연습을 참 많이 해야될것 같습니다.

    2010.01.24 12:00 [ ADDR : EDIT/ DEL : REPLY ]
    • 왜요, 젠느님에게서도 순간에서 의미를 잡아채는 '촉'이 느껴지던걸요.^^
      어느 날 초등 때 본 어머니의 모습, 그 장면에서 이끌어낸 의미와 다짐이 일품이었답니다.

      2010.01.24 23:08 신고 [ ADDR : EDIT/ DEL ]
  2. 블로그 잘 둘러보고갑니다.
    요즘 장난식으로 밤에 노트에 끄적이듯이 블로그에 글을 적어보고있는데
    이런글을 보니 저도 한번 나만이 아닌 읽는사람에게도 무엇을 전해줄 수 있는
    글다운 글을 적어볼까 하게하는 글이네요
    고마워요

    2011.12.07 02: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제 글이 하늘님에게 다가갔다니 제가 더 고맙지요.^^
      무엇이든 쓰기 시작해 보세요.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후회하고 결단하는
      모든 것이 언어로 되어 있기에 막강한 변화를 가져온답니다.
      매일 조금씩 쓰기에는 블로그가 최고구요.

      2011.12.07 15:12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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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의 전체  사진  by 안삼화


충북 괴산군에 행복숲이라는 곳이 있다. 지난 주말에 한 모임에서 그 곳으로 엠티를 다녀 왔다. 마을에서 행복숲으로 올라가는 소롯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제껏 내가 본 하늘 중에서 가장 높은 가을하늘에 부드럽게 풀린 구름이 한가롭게 산책하고 있었다.  햇살이 어찌나 투명한지 그 햇살 아래 몸을 말리고 있는 밭 작물까지 말갛게 속이 비칠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청명한 공기에 나 자신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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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숲은 김용규씨가 공동체를 준비하고 있는 곳이다. 그는 최근에 숲에서 얻은 깨달음을 '숲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으로 펴냈으며, 산나님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http://bookino.net/300
수려한 괴산호의 모습과 열강하고 있는 용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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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용규님의 도움말을 들으며 행복숲을 탐방했다. 숲을 사랑하여 드디어 숲의 말을 알아듣고, 숲과 정을 통하게 된 산사나이의 통찰력은 놀라웠다. 숲이 인간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인간의 말로 번역하는 그의  '생태경영'이 성공하리라는 믿음이 갔다. 그의 숲은 아름다웠고,  그의 강의와 에너지는 감탄스러웠지만, 여기에서는 그가 주도한 두 가지의 '생태놀이'를 소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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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놀이는 통나무를 활용한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기다란 통나무에 죽 올라선 우리에게 그는 '모자 쓴 사람이 오른 쪽으로 가라'거나, '연령순으로 서라'거나 하는 다양한 미션을 던진다. 떨어지면 악어가 득시글거리는 늪으로 추락한다고 생각하란다.

우리는 혼연일체가 되어 옆사람을 넘겨주기 위해 꾀를 모으고 힘을 보탰다.  자리를 바꾸기 위해서는 서로의 팔을 단단히 엮거나 지지해주면서 서로 의지하고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그 단순한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했다.  부등켜 안은 채로 땅으로 떨어질 때면 아쉬움이 터져 나왔다. 통나무라는 간단한 도구 하나 만으로 대단한 집중과 흥취를 이끌어낸 통나무놀이는 놀이 그 자체로도 훌륭했다. 하지만  내게는 "서로 껴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했다.

나중에 진행된 의자놀이는 더욱 강렬했다.  우리는 둥근 형태로 서로의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깝게 붙어 섰다. 그리고 우향우를 한 후, 리더의 구령에 맞춰 일시에 뒷 사람의 무릎에 앉았다. 앉아 보니 의외로 편안하고 견고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때  리더가 사인을 한 가지 보내겠다고 말한다. 사인이라고 말한 것은 조심하라는 신호였을 뿐, 리더는 둥글게 서로의 무릎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슬쩍 밀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옆으로 무너졌다.  바닥에 널부러진 순간 부딪친 팔이 아픈 것도 아랑곳없이 탄성이 새어 나왔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전부 무너진다!"

이 생태놀이의 메시지는 몇 시간에 걸친 강의나 몇 권의 책보다도 위력이 컸다. 애초에는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고안되었겠지만,  내게는 역시 관계성에 대한 깨달음으로 왔다! 개인주의를 독립적인 태도라고 여기며 마치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살아 온 내게는 충격적인 액티비티였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모두 속절없이  무너질 정도로 우리가 단단히 연결된 존재라는 것이 피부로 다가왔다.

인류라는 것은 수없이 많은 가닥으로 이루어진 로프와 같은 것이다.

'메이킹 머니 해피'에서 읽은 한 구절이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로프의 가닥이다. 로프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긴 가닥들과 단단한 꼬임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당신이 긴 가닥이라면 당신의 동료 가닥들과 단단히 꼬여야 한다. 그것이 인류라는 로프의 가닥을 강하게 만들 수 있게 하는 당신의 역할이다.


사람에게 다가가고 사람을 배려하는 습관과 기술이 치명적으로 약한 나, 결과적으로 취약하기 그지없는 내 관계망에 대해서 한숨이 나왔다.  설마 늦지는 않았겠지. 지금부터라도 정성을 다 해 사람에게 다가서고, 사람을 키워야 한다. 사람들과 엮여서 살아야 한다. '메이킹 머니 해피'의 또 다른 구절이 무시무시한 협박으로 들리지 않도록 말이다.

당신이 남들과 더불어 꼬이지 않은 짧은 가닥에 불과하다면 당신은 먼지와 같이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지푸라기가 되어버릴 것이다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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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괴산에 다녀오셨군요. 제가 갔을 땐 좀 추워서, 나중에 볕좋은 날 오면 더 좋겠다 생각했었는데..여태 못가고 있네요.
    근데 드디어 <100호>를 쓰셨군요. 축하드립니다!!!
    큰 것 한 방 하는 사람보다 뭔가를 장기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저는 제일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100호 발간, 충분히 자랑스러워하실만한 일이어요~

    2009.10.20 19: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집짓기 전에 가 보고 두 번 째 간 것이었는데,
      아기자기하고도 멋스러운 산방에 홀딱 반하고,
      숲은 물론 주변 풍광도 훨씬 멋있어 보였어요.
      산주의 눈썰미가 다시 보이더라구요.

      축하 감사드립니다.
      그것이 모여 책 한 권이 되었네요.
      생각하면 감격스러운 일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책이 한 달 만에 퇴출될 것을 생각하면 기운이 빠지기도 한답니다.^^

      2009.10.21 09:10 [ ADDR : EDIT/ DEL ]
  2. 수꾸

    100호 글쓰심 축하~~!!드려요.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이 깊이 와 닿습니다. 제가 추구했던 그리고 추구하는 삶이 '행복 숲'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미탄 선생님 체험을 통해 더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더욱이 옥동자를 탄생시키셨다니 더없이 축하드리며, 함께 기뻐합니다. 기운 많이 내시구여~ 다음 대작 기다립니다.^^

    2009.10.21 15:27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수꾸님의 격려, 감사드립니다.
      책은 나온 건 아니구요,
      제목만 정하면 됩니다.

      오늘은 어째 좀 우울해서 그림판에서 한참 놀았더니
      좀 나아졌어요.
      평화롭고 따땃한 가을날 되시기 바랍니다.^^

      2009.10.21 23:01 [ ADDR : EDIT/ DEL ]
  3. 시이라젠느

    미탄님, 저도 용규님의 몸을 쓰는 놀이 2가지에 나름 느낀점이 많았답니다.
    또, 그가 설명하는 숲의 생명체들의 서로를 견제하면서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 또한
    가슴에 와 닿더군요.

    요즘은 갑작스런(^^) 여러가지 경험으로 제 사고의 패러다임도 저 개인에서 너와나, 우리로 조금씩 바뀌는것 같습니다.

    '개인주의를 독립적인 태도라고 여기며 마치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살아 온 내게는 충격적인 액티비티' 라고 표현하신 부분이 전 참 공감이 됩니다.
    이번주 들어서 읽기 시작한 '유러피안드림'의 주 맥락과도 닿아있다는 생각입니다. 미탄님께서는 '관계'로 해석하셨고, '유러피안드림'에서는 조금 더 사회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있긴 하나, 본질에서는 같은것 아닌가 하네요.

    언제 한번 그림판 그림 블로그에 올려주세요. 한동안 못본거 같아요.
    미탄님의 열린마음이 형상화된 그림을 보고싶은데요 ~

    2009.10.22 07:19 [ ADDR : EDIT/ DEL : REPLY ]
    • 시이라젠느

      댓글쓰고 아카데미 게시판봤더니, 미탄님의 그림이 올려져있네요.. 이거 웬지 이심전심 통하는 기분인데요 ~

      2009.10.22 07:21 [ ADDR : EDIT/ DEL ]
    • 미탄

      독립성과 친밀감의 균형이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구요.
      저처럼 '뚱~~'한 사람도 가끔은,
      더 나이가 들고 고립되게 되면 친밀감을 얻기 위해
      목매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요.^^

      강독회에서 일 주일에 한권씩 책을 읽는 건가요?
      굉장히 도움이 되겠는걸요.

      ㅎㅎ 유치찬란한 그림이나마
      스토리를 구상하며 손을 놀리다보면
      조금은 기분전환이 된답니다. ^^

      2009.10.22 10:18 [ ADDR : EDIT/ DEL ]
  4. @햇살


    너무 오랫만에 들렀네요.
    가을소풍 다녀오셨군요~^^
    저는 근무가 맞질 않아 참석 못했습니다. ㅎㅎ
    즐거운 분위기 너무 좋아보여요 !!

    풍성한 가을 보내고 계시죠?

    2009.10.22 15:58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햇살님, 잘 지내지요?
      꿈벗모임에 간 것이 아니고, 작은 모임에서 따로
      갔어요. 용규님도 일정이 겹쳐서 아주 바빠보였어요.

      2009.10.22 22:11 [ ADDR : EDIT/ DEL ]
  5. 뷰티오키드

    미탄님, '100호' 저도 축하드려요.
    미탄님의 최근 글들이 엠티 후기이면서 용규님얘기면서 관계에 관한 것들이어서
    제겐 귀에 마음에 쏙쏙 들어옵니다. 읽으며 함께 설래고 함께 진지해지고 함께 한숨
    쉬어지는 제 에너지가 느껴지시길....^^

    2009.10.23 10:39 [ ADDR : EDIT/ DEL : REPLY ]
    • 뷰오님, 축하 고마워요.
      어쩐지 댓글이 마음에 와서 '착' 달라붙는 느낌인데요.^^
      에~~ 설레는 이유 진지해지는 마음 한숨쉬어지는 내막에
      대해 비밀댓글로 다시 부탁해요~~^^

      2009.10.24 07:47 신고 [ ADDR : EDIT/ DEL ]
  6. 언냐 100호를 추카추카~~~
    저 오늘 me갑니다. 부부..서로 소통하기 하러...
    맞아요, 서로 껴안지 않으면 죽음이다!!..

    저 숲에 아이들과 한 번 가 보고 싶네요.
    전 바다 보다 숲이 좋더라구요~~~

    즐건 주말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2009.10.23 13: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정말 부지런하세요.
      ㅎㅎ 토댁님은 부군과 '건강한 소통'을 이루는
      대표주자일 것 같은데, 오히려 신선하네요.^^
      소기의 목적을 이루시고, 잘 다녀오세요~~

      2009.10.24 07:49 신고 [ ADDR : EDIT/ DEL ]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관계 지향적이라고 한다. 남자들은 일, 스포츠, 취미로 관심사가 분산되는데 비해 여자들은 이성과의 관계성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로빈 노우드의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은 병적으로 사랑에 의존하는 여자들에 대한 책이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이 어느 정도 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이 책의 서문에 나오는 이런 구절로부터 자유로운 여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사랑하는 것이 고통을 수반할 때 우리는 지나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한 친구가, 그에 대한 화제로 시종할 때 우리들은 너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불쾌감이나 짜증, 냉담한 태도나 말을 그의 불행한 유년시절 탓으로 돌리고 모든 것을 용서할 때, 그리고 그의 세라피스트가 되려고 할 때 우리는 너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다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감정적인 교감을 나누지 못하면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느낀다. 이처럼 관계 중심적이다 보니 관계에 대해 갖고 있는 미신이 없을 수 없다. 그 중의 하나가 ‘한 번 맺어진 관계는 언제까지나 똑같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관계는 한결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항상 출렁대며 변화하는 것이다. 앤 머로우 린드버그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언제나 같은 농도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고,  앤드류 매튜스도 ‘관계의 달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인간관계는 사업과 같다. 아무런 변화 없이 정체해 있는 게 아니라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는 것이다. 관계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깨닫는 바가 없음을 의미한다.”


부부를 예로 들어보자면 젊은 날의 부부는 강한 육체적 친밀감과 육아를 기반으로 통합되어 있다. 그러나 40대 정도가 되면 부부 각자의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대두된다. 이 시기에는 부부 간에 제각기 다른 취향을 인정하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이 관계유지에 도움이 된다.  노년이 되면 부부는 다시 젊은 날처럼 새로운 친밀감의 욕구를 느끼게 된다. 건강과 고독에 대한 염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각각의 단계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부부는 성공하겠지만, 변화의 리듬을 타지 못하는 부부는 많은 갈등을 겪을지도 모른다.


부모자식 관계나 우정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앤드류 매튜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물 같은 조류의 흐름이 있다. 성숙한 사람들은 사랑이 물같이 자유롭게 흐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랑의 기복에 휩쓸리지 않는다. 단단한 자기중심을 가지고 조류의 흐름을 관찰하다가 기꺼이 몸을 던져 써핑을 즐긴다.

 

하지현은 ‘관계의 재구성’에서 성숙한 관계는 일종의 경쟁관계라고 말한다. 한 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는 일방적인 관계여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요구수준이 너무 낮으면 지루해하고 과도한 요구를 받으면 성취욕을 느끼는 식으로,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에 대한 영향력의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적당한 거리!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일심동체’가 아니라 ‘적당한 거리’였던 것이다.


유아기에 엄마와 가졌던 완전한 합일을 성인기에도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감정과 도전이 출렁대고 부딪치고 다시 조절되는 ‘틈새’에 주목하라. 사. 람. 사. 이, 그래서 人間이다.  상대가 원하고 내가 원하는 최적의 거리를 산출하고 유지하고 만족하는 능력이 성숙한 사람의 요건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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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랜만에 댓글 답니다. 요즘은 관계가 중요한 화두인가 봅니다. 나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어느새 미탄님의 Second Life도 99호가 되었군요. 다음번이면 드디어 100호... 축하드립니다. 이쯤되면 엮어서 책으로 내셔도 될 것 같은데요 ^^

    2009.10.07 07:2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앗! 쉐아르님. 잘 지내시지요?
      요즘 통 나들이를 안 다니는데도
      이렇게 방문해주시니 더 고맙습니다.^^

      저도 "어! 다음에 100회네, 조금 신경써서 써 봐야겠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구소에서 두 건의 공저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관계와 1인마케팅에 대한 것이에요.
      그 두 주제에 대해 공부 좀 해 보려구요.

      저는 출간계약을 하고 6월말에 탈고를 했는데
      편집자가 너무 바빠서^^
      자꾸 지연되고 있네요.
      그래도 10월말에는 나올듯 합니다.

      2009.10.07 20:28 [ ADDR : EDIT/ DEL ]
  2. 수꾸

    미탄 선생님 100번째 글이 기다려 집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실 수 있으시기를 기원드리며, 돌아보며는 아득하리만큼 돌아 온 시간과 길이 가물거립니다. 지금껏 많은 관계지움속에서 발밑도 보지 아니하고 달려왔지만 남아 있는것은 허공 속에 빈몸 뿐이네요. 선생님이 공부하고자 하시는 내용을 제가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미탄 선생님 책 얼른 보고싶네요.언제나 따시게 지내시구여~~^^

    2009.10.17 10:36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느새 따신 것이 좋은 계절이 되었네요.
      수꾸님의 따신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허공 속에 빈 몸이라는 표현이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말 무언가를 가진 사람은 드물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 생에서 정말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한참 생각해 보아야 할 꺼구요.

      저도 가진 것이라곤
      생각하고 표현할 줄 알고 더 나아가고자 하는
      이 한 몸 밖에 없던 걸요.^^

      2009.10.20 13:27 신고 [ ADDR : EDIT/ DEL ]

 

누군가 절대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은 물론 돈이 없다는 뜻이지만, 그의 주변에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뜻도 된다.  노숙자를 예로 들어 보자. 아마 그는 계속되는 실패와 불운에 지쳐 모든 것을 잃은 처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거리로 나앉지 까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가 생기고,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시작하는 결연함이 나온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도종환이 ‘폐허 이후’에서 노래했듯,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서는 심리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기회가 나온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의 하나는, 자기 주변에서 쉽게 조언과 상담을 구할 수 있고, 전심전력을 다해 기꺼이 도움을 제공하는  인재집단의 존재였다고 한다. 이럴 때 인재집단이란 단순히 발이 넓은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저 ‘친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을 넘어 서로 배우고 성장을 자극하는 사이를 말한다. 또 나의 지위에서 비롯된 인맥도 곤란하다. 나의 지위에서 비롯된 인맥은 내 지위가 사라지면 하루아침에 같이 사라진다. ‘제3의 인생’의 저자 김창기 씨는 19년간 재직했던 신문사를 그만둔 후, 기자라는 직업에서 오던 후광이 일시에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격의 없이 만나 속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다섯 명 이내로 줄었다고 한다. 그러니 ‘내 지위’가 아닌 ‘나’의 진면목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처럼 삶의 고락을 함께 함으로써 개인의 삶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정신의학에서는 ‘의미있는 타인’이라 부른다고 한다. 서로에게 친밀감과 조언과 정보를 제공하는 ‘의미있는 타인’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대니얼 핑크의 ‘프리에이전트의 시대’에서 이상적인 네트워크의 모델을 보았다. 그는 프리에이전트의 고립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서로 연대할 것을 권하고 있는데, 이른바 Free Agent Nation 클럽이 ‘어떤 면에서는 이사회 모임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집단 치료법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 곳에서는 ‘고객 찾기와 의미의 추구를 결합하며, 진실성의 강한 충동과 사교성의 욕구가 동시에 충족’ 된다.

어떤 모임이 ‘이사회 모임’ 같기도 하고 ‘집단 치료법’ 같기도 하다는 것은 의미가 심장하다. 그것은 서로의 개인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를 모두 이해하고 서로 돕고자하는 그룹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는 회원들 간에 ‘전인격적’인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일부분이 아닌 전체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사교성은 물론 고객 찾기도 해결한다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가. 그 표현을 접하는 순간, 내 안에 이상적인 커뮤니티에 대한 모델이 날아와 박혔다.

자크 아탈리는 ‘인간적인 길’에서, ‘가난함이란 지금까지는 '갖지' 못한 것이었으나, 가까운 장래에는 '소속되지' 못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의 권력과 부는 물질적 재산이나 생산수단에 한정되지 않고, 건강, 지식, 다른 사람과 맺고 있는 관계, 자신이 소속된 네트워크와 소통하게 해 주는 언어로 말미암아 풍요롭게 된다’고 한다.

나는 그의 말이 오늘날에도 이미 사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가난이 퇴치되고 갈수록 사회가 다양해지는 요즘, 개인에게 가치 있는 재화가 더 이상 경제적인 것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풍요로움 즉 富가 나온다고 설파한 아탈리의 혜안에 감탄한다. 앞서 말한
Free Agent Nation 클럽 같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면 富의 원천이 되고도 남을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이럴 때의 富는 경제적인 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소속감과 친밀감에 대한 욕구, 다른 사람을 돕는 데서 오는 만족감, 지속적인 성장을 자극하는 격조있고 완성된 풍요로움이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부유한지 다시 한 번 나의 네트워크지수를 돌아보게 된다. 그대는 얼마나 부유한가?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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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

    프리에이전트 클럽이라,,, 이런 인간관계가 있으면 좋겠어요. 서로 생각을 나누고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긴밀한 네트워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자산이자 기쁨일 것 같아요..^^ 소속감이나 발전, 상호성에 대한 다양한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모임, 정말 멋져요~!!

    2009.09.28 01:54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제 글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초록님의 공감댓글 하나가 프리에이전트클럽으로
      가는 첫걸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블로그 주소 좀 알려주세요.
      아직 안 하고 계시면 제가 티스토리 초대장 보내드릴까요?

      2009.09.28 08:04 [ ADDR : EDIT/ DEL ]
  2. 가을이 깊어가고, 명절이 곧 다가옵니다.
    시골내려가기 전에 명절인사 드리는 마음으로 조금은 술렁술렁 왔다가 또 따끔한 얘기에 콕 찔리고 말았어요.
    부모와 아이의 관계도 그럴 것 같아요.
    물질적으로는 궁핍하더라도 마음만큼은, 사랑만큼은 넘치게 줄 수 있다면 아이들은 그 사랑과 믿음안에서 풍요롭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관계를 내 아이와, 내 가족을 넘어 친구들과 이웃들 안에서도 만들어가며 살고 싶습니다.

    2009.09.30 14: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지난 번 명절에 똑순이가 엄마를 안 떨어져서
      효자노릇 했다는 글을 본 것이 기억나네요.
      올해는 부쩍 커서
      또 어떤 풍경을 그려냈을지요?

      명절인사를 하러 와 주다니,
      감동입니다요.^^
      평소의 똑순맘 글에서 풍기는 이미지라면,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을 거에요!

      2009.10.05 15:02 [ ADDR : EDIT/ DEL ]
  3. 즐거운 한가위 보내셨는지요?
    토댁이 아이들과 열심히 묵고 뒹구는 통에 잔득 넉넉해진 풍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허걱!!
    이제 열심히 다이어트 할꺼라고 결심은 해 봅니다만,
    워낙 먹은대로 살로 가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말이죰..ㅋㅋ

    인연을 만들어 가고 알아가는 가는 이 곳이 제겐 참 소중한 곳입니다.
    꼭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알아가는 곳은 아니지만,
    나만의 네트워크 넓혀나가기 충분히 좋은 곳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09.10.05 09: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예~~ 토댁님도 추석 잘 보내셨지요?
      아직 아이들이 한참 손 갈 때라,
      명절이면 더 바쁠 것 같아요.

      블로그 세상도 '또 하나의 세상' 맞지요.
      이제 온라인을 타고,
      공통관심사와 이끌림을 찾아
      어디든 가는 세상이 되었네요.

      토댁님도, 연휴 모드에서 다시 작업 모드로
      돌아오셨겠네요. 힘차게 가을2부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참, 토댁님이 제 출간에 관심을 많이 가져 주셨는데요~~
      편집자 개인사정으로 조금 지연되었는데
      10월 중에는 나올 것 같습니다.

      2009.10.05 15:06 [ ADDR : EDIT/ DEL ]
  4. 비밀댓글입니다

    2009.10.05 09:51 [ ADDR : EDIT/ DEL : REPLY ]

9월 13일에 방영된 SBS스페셜 ‘매력DNA'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보았다. 제작진은 5명의 대학생을 모집하여 특정장소를 찾아가는 간단한 미션을 맡긴다. 그리고 첫 번 째 길찾기가 끝난 후 멤버들 간에 매력순위를 투표하게 하고는, 그 결과를 당사자들에게 거꾸로 알려준다. 적극적이고 재치 있는 태도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에게 꼴찌를 했다고 하고, 반대로 제일 낮은 표를 받은 사람에게 가장 큰 지지를 받았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두 번 째 길찾기를 하게 한다.


두 번 째 길찾기를 하는 참가자들의 태도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제일 매력있다는 말을 들은 참가자는 훨씬 적극적이고 유머러스한 태도로 길찾기를 주도하여 ‘정말로’ 매력있는 사람이 되었다. 반면에 처음에 매력적인 태도를 보였던 사람은 뒷전에 서서 사태를 관망하는 쪽을 택했다. 이 간단한 실험은 자기이미지가 어떻게 태도의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안정적인 자기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매사에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


소극적이거나 자신감이 없고 부정적인 자기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갇혀 있다. 자기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전전긍긍하느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장점을 표출하지 못한다. 사소한 실수를 확대해석하여 과도하게 힘들어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의 세계로 들어서지 못한다. 그러니 건강한 관계를 맺기 어렵고, 발전적인 기회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사례와 경험이 누적되면 인생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인생이 성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인생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삶의 기본은 자기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관계는 내가 나와 맺고 있는 관계를 드러낼 뿐이다.


키스 하라리와 아일린 도냐휴 로빈슨이 쓴 ‘나는 어떤 사람일까? ’에는 강력하고 안정된 핵심 자기감을 찾아가는 데 대한 팁이 많이 나와 있다. 저자들은 우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것을 권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를 통합할 수 있다면, 나에 대해 더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친밀감과 유대감을 크게 발달시킬 수 있다.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인의 입장에 서봄으로써, 우리를 언짢게 하는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베풀 수 있게 해 준다.


저자들은 ‘진정한 나’는 내적 자기 이미지와 외적 자기 이미지의 중간쯤에 있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내 성격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한다. 당신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소망과 두려움, 감정과 집착을 가장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의 연인과 친구는 당신의 내면에 숨겨진 사실도 알고 있고,  당신이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 나타내는 표현과 행동도 보고 있다. 이 두 가지 관점을 결합한 것이 당신의 개인적인  의견보다 훨씬 공정하고 완벽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라. 그럼으로써 우선 자신에 대해 알라. 그리고 계속해서 최선의 방식으로 주변 상황에 적응해 나가라.  ‘나, 마이크로 코스모스’에 의하면 뇌의 신경세포는 거의 평생 동안 새로 생겨난다고 한다. 그 결과 성격도 언제고 변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이 될 지 각자 자유롭게 정해야 한다. 이제 문제는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 가 아니라, “나는 누가 될 수 있는가”이다. 성격심리학자인 고든 올포트 역시 성격을 고정된 특질들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성장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be가 아닌  becoming이다.


내적 이미지와 외적 이미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이다.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고 성공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거기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이렇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창조하여, 그 이미지에 부합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를 생생하게 떠올리는 사람은 이상적인 자기와 현재의 자기 사이의 차이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공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그대, 자신이 원하는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자기이미지부터 구축하라. 여기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이 나온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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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

    공감이 갑니다. 그리고 위에서 칭찬을 들은 대학생의 경우처럼, 자기이미지를 새롭게 만드는데도 어떤 계기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미 부정적인 자기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있다면 첫번째 틀을 깨기가 어려우니까요..^^;

    2009.09.21 01:10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초록님, 반갑습니다.
      닉네임이 참 좋아요.
      저도 산책을 할 때마다 이 세상에 초록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생각하거든요.^^

      말씀하신 '계기'와 '기질'은 그야말로 닭과 알의 관계인 것 같아요. '계기'가 바람직한 토대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보이거든요.
      실제로 자신감 부족한 사람들이 환경 순서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계기'는 내 마음대로 안되지만
      '기질'은 내 노력과 훈련으로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외부에서 주어지는 계기보다
      내적으로 배우고 깨닫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중에 제일 좋은 방법은 책읽기라고 생각하구요.

      자기이미지가 튼실하지 못하면 사랑이-최고의 계기-
      찾아와도 강박적 사랑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제 주된 관심사라 말이 길어졌네요.
      자주 놀러오세요~~

      2009.09.21 09:07 [ ADDR : EDIT/ DEL ]
  2. 얼마만에 틀었는지 모를 티비에서 이 장면 봤었어요!
    흥미로운 실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미탄님이 포스팅해주시니 반갑네요~. +_+ /

    다른사람이 바라보는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주변 사람에게 내가 어떻냐고 물어봐도 대답에 곤란해하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어떻냐니;;;라는 반응이랄까요. ^^
    그냥 딱 하고 떠오르는 걸 말해달라고해도 딱히 없나보더라구요. 생각해보니 저도 누군가 그렇게 물으면 혹시나 내가 한 말에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을까해서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딱히 어떠하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도 하더라구요. 관찰력과 표현력 부족일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누군가를 어떤 말로 표현해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역시 주변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강한 호기심이 생기는군요~!

    2009.09.22 11: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관찰력과 표현력 그리고 개방성의 문제인 것은
      분명해 보이네요.^^

      맞아요.
      의외로 사람들이 막연한 느낌은 있는데
      그것을 말로 정리하는 것 특히
      그것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을 힘들어 하더라구요.

      조금 방법을 궁리해 본다면,
      주관식 질문이 아니라
      객관식 질문을 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어떠니? 하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한다면
      1번이 나은지 2번이 나은지는 물어볼 수 있겠지요.

      그조차 물어보기가 뭣하다면
      나 혼자 태도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민감하게
      '느껴' 보는 수 밖에 없겠지요.

      생각하면 사람이란, 관계란,
      얼마나 단순한지요.
      그저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여주면
      모든 것이 ok라고 생각해요.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가
      내 그릇의 정도인 거지요.
      연륜의 힘도 크구요.

      그러면서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반응을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것이 없이 좌지우지 되는 것도 위험하다 싶네요.

      ㅎㅎ 나이만 많지
      나도 관계지능이 떨어지는 터라
      이제 시작인데요.

      꾸준히 포스팅할 터이니,
      자주 놀러오삼~~

      2009.09.21 12:51 [ ADDR : EDIT/ DEL ]
  3. 뷰티오키드

    미탄님~ 흥미로운 글이네요.
    미탄님의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는 어떤걸까 궁금해져요^^
    꼭 답을 달아주시라는 예긴 아니고^^ 마니마니 궁금하다는 저의 간절한 바램일 뿐이고!!^^

    2009.09.22 16:41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평범에 꽂히다' 이런 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뷰오님이야말로 내면의 갈등과 혼란이 없지
      않을 것 같은데요? ^^

      2009.09.23 07:59 [ ADDR : EDIT/ DEL ]
  4. 뷰티오키드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미탄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도 저의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를
    생각해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미탄님의 이상적인 자기이미지는 어떤 걸까
    궁금해졌었더랬죠.

    2009.09.23 21:29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뷰오님.
      꼼꼼하게 읽어주어서 고마워요.
      저번에 뷰오님이 '평범하기로' 작정했다는 말이
      떠올라서 추리해 본 거에요.^^
      이상적인 자기이미지를 포함해서
      자기이미지에 대한 생각이 많으신 것이 아닌가 하구요~~

      2009.09.24 00:01 신고 [ ADDR : EDIT/ DEL ]

 

엄밀히 말해서 사람이 하는 일에  ‘객관’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람이 자신의 주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감정을 수반한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하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이렇게 해서 세상 모든 일은 관계의 문제가 된다. 나와의 관계를 비롯해서 가족, 친구, 동료, 이웃, 상인, 버스기사, 정지해 있는 내 차를 추돌한 운전자, 블로그이웃 등 관계가 아닌 것이 있으면 말해 보라. 

일회적으로 스쳐가는 관계는 제외하고,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끝난 관계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그것을 잘 유지해 나갈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여기에 대한 내 대답은 매력, 진정성, 유익 중의 한 가지는 있어야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중에서 매력이라는 단어에 이끌린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끌리는 마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진정성의 의미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매력은 진정성의 방식, 진정성의 분위기와 동의어니까 말이다.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고 있지 않은가. 매력이 결여된 진정성은 안쓰러울 뿐이다.

매력魅力의 ‘매’자는 ‘도깨비 매’다. 도깨비같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이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극히 모호하고 변덕맞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스타일’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타일의 멋을 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에게’에서 배웠다. 그녀에 의하면 “스타일이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그런 줄 아는 것이 스타일이다. 진짜가 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진짜인 사람은 그 누구든 스타일이 있다”고 한다.  진짜가 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진짜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답게’ 사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배용준의 감성, 박진영의 도발, 유재석의 편안함처럼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최선을 추구할 때  매력이 뿜어져 나온다.

 시오노 나나미 역시 스타일에 있어서 타인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는 것이 많으니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그녀는 우리네 범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마키아벨리의 생애에 대해 글을 쓸 때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위해, 그가 앉았던 의자를 고증하여 만드는 식이다.  메디치 가 문장이 새겨진 천을 복원하여 입힌 긴 의자 위에 누워 독서삼매를 즐기기도 했다. 대학시절 배우 게리 쿠퍼가 죽자 喪中이라고 학교에도 결석했다는 그녀,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의식을 동원하여 경건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몰입함으로써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래서 스타일은 자존감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차별의식, 내 감정에 빠지고 탐닉하는 자기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자세가 나온다. 자기존중을 넘어 자기도취에 이를 정도로 자기를 사랑하는 나르시스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주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그러니 매력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답게 사는 일에 헌신할 일이다. 나에게 지독하게 몰입하여 나의 세계를 일구는 몸짓이 다른 사람에게도 생의 의지를 추동할 때, 그 때 매력은 완성된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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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앨리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인사를 하네요^^...)
    참, 신기해요. 한선생님 글을 오래만에 들려 읽으면 어느 순간 제가 생각했던 주제랄까..(사실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사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ㅋㅋ) ..뭐 그런게 비슷해서요. 오늘 신문에서 우연히 SBS에서 하는 다큐비슷한 것인데 '매력'에 관한 프로가 한다는 TV방송안내면을 읽었거든요. 그래서, 순간 사람의 매력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들린 이곳에서 같은 주제의 글을 접했어요. 넘 기쁘고 놀랍네요 ㅎㅎ 정말 무한한 자기애가 있는 사람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책이 곧 나온다고 하셨지요? 혹시 팬사인회랄까 그런 것을 하면 꼭 알려주세요. 어떤 얘기들을 담으셨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글로써 소통할 수 있다는게 넘 신기해요. 편안한 주말 되세요.

    2009.09.12 22:46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사람이 누군가를 '잘' 안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전혀 아닐 수도 있을 거구요. 5%만 안다고 여겨도, 5%의 범주 내에서의 소통이 의미없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요즘에야 깨달은 건데요.
      보통 여자들이 '전부'를 기대하기 때문에, 50%나 70%의 소통을 nothing으로 치부하는 습성이 있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주위에 널린 30%나 40%를 즐기지 못하는 것도 문제구요, 더 심한 폐해는!
      '전부'를 달라고 요청하다가 70%를 무위로 돌려버리기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요!

      ㅎㅎ 방송정보가 고마워서 말이 길어졌네요. 남들은 다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내 깨달음이 소중해서 에고. 민망해라^^ 연구소의 사자프로젝트에 유용할 것 같아서 꼭 챙겨 볼게요. 고마워요~~

      2009.09.13 10:33 [ ADDR : EDIT/ DEL ]
  2. 뷰티오키드

    미탄님. 저 어제 수업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을 수료했습니다.^^
    시원섭섭하다고나 할까요.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대했던 수업이었고
    제겐 기나긴 10주의 대장정^^이었던것 같아요.
    잊지못할 여름의 추억이 탄생했네요.

    무엇보다 좋은건 이제 정식 나우사 멤버가 되었다는 겁니다.
    회장님께 맨 먼저 신고인사 드리러 들렀어용~
    욕심부리지않고 정직한 5%의 진실도 소중히 껴안고 가도록 노력할께요.

    참, 마현화랑 가는 날 제가 선릉역 근처에 일보러 가는데 혹시 시간과 여건이 허락되면
    갑작스럽게 미탄님을 뵐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나룻배님껜 말씀드려놨는데..확실치않아 ...임시 자리라도 확보되면 ...뵐께요.

    2009.09.17 09:13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예, 뷰오님.
      5기에는 뷰오님도 계시고, 언어화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아서 유독 가까운 느낌이 들어요.
      긴 눈팅 기간이 있었던 만큼 어떤 느낌과 자극이 남았는지 궁금하네요.
      시원하게 트인 곳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은데...
      내일 일은 '혹시'라고 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시간을 맞춰보시면 어떨지요.

      참가하는 쪽으로 계획을 세우시고 일정을 추진하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소모임 짱에게 댓글도 다시구요.
      내일 뵐께요~~^^

      2009.09.17 09:43 [ ADDR : EDIT/ DEL ]
  3. 이쁜이

    안녕하세요 ㅎㅎ 네이버에 소개된 글읽고 방문했어요~
    저는 좀 제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상처내는 타입이라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데요
    한명석님의 글을 읽으면서 위로가 좀 되는 것 같애요^^
    글을 읽으면서 코멘트 다는 일이 잘 없는데 한명석님은 매력쟁이인듯~^^

    2011.10.09 19:51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안녕하세요?
      2년 전에 쓴 글을 읽어주셨네요.

      매력쟁이는 못되지만^^ 자기답게 사는 것이 인생 최고의
      성공이요, 비전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고습관을 알고 있다면 벗어날 수도 있겠지요.

      좋은 가을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2011.10.09 20:16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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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에 수업이 없는 딸과 하루 종일 데굴거렸다. 우리는 가을에 접어들며 방안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한 햇살 안에 나란히 누워 ‘노튼’시리즈를 한 권씩 보았다. 피터 게더스가 쓴  ‘파리에 간 고양이’, ‘프로방스에 간 고양이’,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얘기이다.

빅히트를 친 고양이 이야기가 있다는 소리는 얼핏 들었다. 우연히 딸이 그 책을 빌려와 낄낄대며 읽기 시작했다.  딸이 고양이 노튼이 얼마나 영리하고 귀여운지를 떠들어댈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노튼이 죽었다고 펑펑 우는 것을 보고서 마음이 움직였다. 딸을 이해하는 차원에서라도 한 번 읽어볼까? 하는 기분이 든 것이다.


과연 품위있고 영리한 고양이였다. 사랑받을 줄 알고, 자기 값어치를 올릴 줄 아는 고양이였다. 하지만 내게는 고양이보다 저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해마다 4월이면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연말이면 10년째 프랑스 깡촌인 굴트에 가서 휴가를 즐기고, 수틀리면^^ 1년 정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3백년 묵은 돌집에 가서 사는 남자. 그는 삶의 의식을 즐기고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 마음에 또 하나의 풍경이 날아 와 꽂혔다. 부러운 것이 많은 사람은 적어도 권태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출판사의 발행인이자 작가인 저자는  서른 살에 6주 된 노튼을 선물받아 16년 동안 함께 살았다. 그는 노튼을 ‘위험할 정도로’ 사랑했다. 노튼 역시 그를 사랑했기에 이만한 작품이 탄생했을 것이다.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노튼을 유명인사<?>로 만들어, 노튼이 죽었을 때 유수한 신문의 부고란에 실릴 정도였다.


딸과 나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책을 읽었다.  가끔 각자 읽고 있는 부분에서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면 서로에게 말해 주며 키득거렸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9월의 어느 날, 방 안 가득한 가을햇살 아래  딸과 무언가를 공유하는 기분이 감미로웠다. 무언가 스멀스멀 가슴에 차오르는가 하면, 피부를 간질이는 기분이었다. 딸도 같은 기분인지,

“엄마랑 같은 거 읽으니까 좋다” 고 하는데, 문득  가슴 한 켠이 아려 온다.


지금 이 순간 역시 지나가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언제고 아이가 자기 가정을 꾸리고 우리 생활이 갈려지면, 우리가 두 어 달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할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한 때 완벽한 한 몸이었고, 지금 이렇게 가까운데 언제고 멀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소홀한 딸이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1주일에 전화 한 번 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터이니 말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시집살이하랴 학원하랴 바빠서 살갑게 아껴주지 못했다. 또 내가 좀 무뚝뚝한가. 딸도 나 닮아서 건조한 면이 있는데다가, 분노가 많은 편이라 부딪칠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런 우리가 이만한 소통과 평화를 이루어 냈으니 뿌듯하기 그지없다. 아! 인생은 아름다워. 그래. 행복을 느낄 수는 있어도 붙잡을 수는 없으리라.  순간순간을 맘껏 호흡하되 연연하지 말자. 행복을 껴안기만 하고 매달리지는 않는 거야. 내 생각이 신통해서 빙긋 웃음이 머금어지는데, 딸이 와서 내 무릎 위에 앉았다 간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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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냐..
    딸이란 그런 건가요?
    더 사랑해달라, 더 표현해달라 보채는 쩡은이가 가끔 부담스러워 외면하고 싶을떄가 있답니다.
    지금 제게 젤 힘든 것이 그것인 것 같아요.
    내 맘의 딸과의 소통....

    ps. inuit님께서 내신 책과 관련해 두 분에게 책을 미리 주신대요. 20일까지 리뷰를 쓰는데 그리뷰가 아마 마케팅 용으로 쓰이나 봐요. 언냐가 한번 해 봐 주시면 어떨까..한 번 생각 해 봤습니다. ^^ http://inuit.co.kr/1778 입니당.

    2009.09.10 00: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1인 몇 역을 하느라고 힘들겠지만,
      사랑해 달라고 보챌 때 맘껏 사랑해 주시기를!
      엄마의 인정이 없이도 잘 살아가는 때가
      생각보다 빨리 오던걸요.^^

      이누잇님 책 리뷰와 관련해서 나를 기억해 준 것은
      고맙지만, 나보다 훨씬 충실하고 열정적으로 참여할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2009.09.11 01:32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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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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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끔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번거로워서 건너 뛰고 맙니다.
    그런데 어제처럼 핸폰 사진으로나마 몇 장면을 연결해서
    스토리라인이 생각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그림에 대한 욕구를 조금이나마 채워주기 때문인가 봅니다.

    일상에서 건져올린 장면과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
    단골 사이트 세 군데에 올리고 나니 정작 내 블로그에까지 올리기가
    뻘쭘하더라구요.^^
    그래서 주춤거리다가,
    어쩌다 놀러오시는 분들 보시라고 그냥 올립니다.
    이 다음에 내가 찾아보기 쉬우라고 Second Life 카테고리에 넣었구요.

    2009.08.23 18: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언냐는 이렇게 늘 즐거운 하루 보내시는군요.
    작은 일상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생 자체를 즐기는 하루!!!

    울 언냐 넘 멋지심...

    근데 언냐 번개언제 하남요? 7월 지나 8월도 다 가는디....^^

    2009.08.24 14: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아! 토댁님 잘 지내시지요?
      늘 바쁘고 언제나 열심히...

      안 그래도 원고를 넘긴지 오래 되었는데 출판사 자체 사정으로 느긋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스트레스 만땅 받고 있답니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한 쪽으로 제껴 놓기로 했답니다. 설마 올해 안에야 나오겠지요.^^

      2009.08.25 07:23 [ ADDR : EDIT/ DEL ]

 

일본의 마시야마 다즈코는 60세가 넘어 처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녀는 1917년 기후 현 도쿠야마 마을에서 태어나 1936년에 같은 마을의 마시야마 도쿠지로와 결혼하여 1남1녀를 두었다. 남편은 전쟁에 소집되어 1945년 5월 미얀마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녀는 전쟁이 끝난 후 시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고 민박을 운영하며 지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녀는 1977년 도쿠야마 마을에 댐이 건설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셔터만 누르면 누구라도 촬영이 가능한 코니카를 구해서 수몰되어 가는 고향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들을 촬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행방불명된 남편이 갑자기 돌아왔을 때 마을이 사라진 것에 대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그녀가 사진을 찍게 된 동기를 들으니 마음이 짠하다. 행방불명된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면 제삿날 혼이라도 와서 둘러볼 텐데 이주하게 되면 남편이 찾아올 길이 없다는 안타까움...  이런 동기로 시작한 사진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촬영 그 자체의 즐거움에 빠지게 된 것 같다. 어느날 문득 돌아보니 모아놓은 사진이 7만 장이 넘었다니 말이다.


사진전과 사진집을 통해 그녀의 사진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도쿠야마 사진 아줌마’의 존재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년 동안 촬영해온 사진들을 모아서 만든 ‘마시야마 다즈코-도쿠야마 마을 사진전기록’에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일본인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직도 눈 덮인 산에 흐드러지게 핀 목련과 벚꽃, 봄이면 어린 머위 꽃줄기를 비롯하여 풍성한 산나물, 여름이면 개구리가 우는 강가에서의 물놀이, 밤을 줍고 송이를 따는 가을과,  가스카 신사의 봄축제가 열리는 정월.  사진집에는 잇몸을 드러내고 허물없이 웃는 마을 사람들이 산과 개울 그리고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활기차고 즐거운 정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도쿠야마 마을이 정식으로 지도에서 사라진 것은 1987년 3월 31일이다. 그녀는 그 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마을로 돌아가 공사 진행 과정을 촬영했으며 댐이 완성된 후인 2006년 3월 7일에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눈에 익은 풍경과 친근한 이웃의 모습을 소박하게 담아 세 권의 사진집을 펴냄으로써 흥미로운 더큐멘터리로 만들었다. 그녀의 삶은 카메라 한 대만 있으면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댐 건설처럼 극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누구에게나 기록할만한 일상이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나는 지금부터 10년, 20년간 내가 나이 들어 가는 과정을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으로 낱낱이 기록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럴 수 있다면 다방면으로 심지어  마케팅에도 유용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와 똑같은 생각을 실행으로 옮긴 사람이 있었다. 단 글이 아닌 사진으로.


쓰치다 히로미는 1986년부터 10년에 걸쳐 매일 아침 자신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하여 ‘Aging’이라는 시리즈를 발표했다. 매일매일 계속되는 촬영으로 얻은 3,000장이 넘는 사진더미 속에서 우리는  ‘aging’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예는 예술이라는 것을 좀 더 가까이 느끼게 해 준다.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련학과를 다니면서 오랜 시간 규칙을 훈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보다는 무언가에 흠뻑 빠져들어 열중하는 것이 오히려 예술의 본질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Ellen J Langer가 ‘예술가가 되려면’에서 말한 것처럼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저 예술을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공식적으로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라도 충분히 예술적인 경험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심리학자인 그녀는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면서, 배우지 않고 스스로 터득하는 예술 un-taught art을 지향한다. 그녀의 참신한 견해에 접하고 기분이 좋던 차에 곧바로 마시야마 다즈코를 알게 되었다. 아주 기분좋은 ‘동시성’이었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7만 장을 찍어대는 정열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무상의 정열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을 찾아라! 당신만의 un-taught art를 발굴하라. 새로운 삶이 시작될 지도 모른다.



참고도서 : 이자와 고타로, ‘사진을 즐기다’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9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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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퀴리

    밤바람, 아침공기가 차가와 지더군요.
    하긴,...처서!라니까....(이크, 가을!!!!)....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찾아오니까....

    정현종 시인의 `섬`이란 시 한편이 떠오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미탄님!
    어찌하다보니, 절기가 바뀌면 인사드리게 되네요.
    글, 참 좋습니다. `사진을 즐기다` 읽고 싶어집니다.
    좋은 휴일 되세요.

    2009.08.23 16:32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ㅎㅎ 글이라기보다는 '자료'에 가까워요.
      호흡이 긴 글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
      이 정도 길이의 글은 그냥 본문 인용으로
      채워지기도 하네요.
      그래서 블로깅도 뜸하구요.

      참 세월 빠르지요?
      설거지 하고 산책 나가서,
      맘먹고 사색에 빠져 보려구요.
      무엇이 지나가고 있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를요~~

      잘 지내시기를!!

      2009.08.23 18:50 [ ADDR : EDIT/ DEL ]
  2. 푸른 퀴리

    배우지 않고 스스로 터득하는 예술 unㅡtaught art,
    삶이 곧 예술이 되는 경지...나이 듦의 지혜, 경지,..에 다다르셨나봅니다.
    ㅎㅎ.

    저~만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신 정열ㅡ마음에, 몸에, 담아갑니다.
    뽀송뽀송한 가을공기와 함께....

    새학기를 시작한 학생들처럼, 나는 학생이다,,,,또 배웁니다.
    하늘올려다보니, 너무 푸르러요..!

    2009.08.28 16:36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예, 정말이지 요즘은 더울 틈도 없이 여름이 가고,
      안 그래도 빠른 가을은 달려가듯이 가 버리는 것 같아요.
      가끔은 흐르는 시간 앞에서 먹먹할 때가 있는데,
      나한테 목표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살리고,
      세상에 내가 살아 있음을 알리고,
      비슷한 기질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놀고 싶군요.^^

      2009.08.29 18:24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