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야거, 프렌드시프트, 필맥,  2004


곤충학자인 지인이 곤충채집을 다녀왔다길래, 그 넓은 산중에서 어떻게 나비나 벌 한 마리를 채집하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다. 지인의 대답인즉, 어디쯤 가면 쓸만한 것이 있을 것같다는 감이 온다는 것이다. 그 대답을 들을 때는 설마~~ 했는데, 지금은 믿어진다. 책 한 권을 붙잡고 한 두페이지만 읽어도 아니 제목을 읽을 때부터, 나와 조우할 부분이 있는지를 알아보게 된 뒤의 일이다. 물론 산과 도서관은 다르지만, 훈련된 감각의 힘을 믿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


‘프렌드시프트’Friendshifts,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어쩐지 시대착오적인 단어가 되어버린 ‘우정’에 대한 책이다. 깜짝놀랄 만큼 새로운 내용은 없어도, 차분하고 진지한 접근에 공감하여, 새삼스럽게 ‘우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유려한 번역의 힘이 큰 것 같다.


프렌드시프트란, 우정이 삶의 단계에 따라, 또는 학교, 직장, 사는 곳이 바뀜에 따라 변한다는 뜻으로 저자가 만들어낸 단어이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 있으며 친구는 어떤 일을 겪고 있는가에 따라 우정의 중요도는 달라진다. 이는 프렌트시프트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정은 계속 존재하지만 움직인다.


우선 저자는 ‘그냥 아는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친구’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규명한다. 우정은 어떻게 싹트는가. 우선 얼굴을 자주 봐야 하고, 공통의 경험을 나누고, 처음 관계를 맺은 상황을 뛰어넘어 상호작용을 확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함께 한 시간이 중요하다. 친구와는 워낙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서로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다. 흥미로운 것은, 안면을 튼 뒤 진실한 친구가 되기까지 평균 3년이 걸린다는 조사결과가 있단다. 3년이란 시간이 대부분의 ‘아는 사이’에서 편의성이 거의 사라질만한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남녀관계가 진정한 사랑인지 일시적인 도취인지 판가름 나는 데에도 평균 3년이 걸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이역시 편리함을 전제로 한 상호작용을 넘어 실리와 관계없는 상황에서 시험을 거쳤기 때문이다. 신세대가 들으면 하품할 소리인지 몰라도, 나는 저자의 진중한 자세를 확인할 것같아 기분이 좋다.


아는 사이가 친구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미’이다. 살다보면 우리는 과중한 학업, 일, 가족에 대한 의무 등 너무 많은 책임에 시달린다. 따라서 함께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친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어른들에게도 ‘그냥 놀라’고 권한다. 어른이 되면 그저 심각하고 진지한 일만 한다. 취미조차 오페라를 보러간다든지 심각한 것만 있다. 그러나 드라이브를 하거나 뒤뜰에 앉아 있거나, 그냥 놀아보라.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이 부분은 ‘아티스트데이트’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인생의 주요 변화를 맞이하여, 우정에 관해 이런 관점이 있다고 얘기해준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지혜로운 팁들이 소중하다.

우선 결혼,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계기로 친구들과 멀어지기 쉬운데, 배우자가 있다해도 진정한 친구는 꼭 필요하다. 좋은 친구가 있으면 배우자에게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게 되고, 친구같은 배우자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사를 한 경우에는 이사한 사람이 남겨진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취하는 것이 순리이다. 

이사를 가는 것이 뒤에 남는 것보다 더 속 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더 좋은 자리를 찾아서, 갓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와 살림을 차리기 위해서,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기에 더 좋은 환경을 찾아서 이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남은 사람은 결국 같은 상황에 머물러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 부분에서 감탄했다. 참 미묘하고도 섬세한 팁이 아닌가.


승진도 친구관계에 변화를 일으킨다. 승진한 뒤로는 전에 어울리던 친구들이 편치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옛 친구와 새 친구를 아우르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승진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계속해서 친구를 바꿔야 할 것이다. 추억을 공유하는 것은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될 수 있는 한 많이, 변화된 생활에 옛 친구들을 끌어들여라.


남녀간의 이성친구에 대한 분석도 재미있었다. 남자들은 이성친구가 동성보다 자상하고 친근하고 덜 경쟁적이라는 이유로 이성 간의 우정에 호의적이었다. 반면 여자들은 이성 간의 우정에 낮은 점수를 주었다. 그런데 아기들이 만 두 살이 되면 이미, 이성 간의 우정이 덜 경쟁적이고 더 감성적인 양상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여자아이는 또래의 남자아이를 껴안고 뽀뽀한다. 남자아이들끼리 이런 행동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이성친구를 사귀게 되는 동기가 서로 다른 것도 흥미롭다. 남자는 ‘공통의 관심사’, ‘공통의 가치’, ‘서로에 대한 호감’순인데 반해, 여자는 ‘정서적 지지’, ‘공통의 관심사’가 우위였다. 여자가 좀 더 ‘관계지향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런 연구를 접할 때마다 난감하다. 나른하게 몸을 비벼오는 고양이 생각이 난다. ^^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일어나는 프렌드시프트는 부모-자식이라는 감독관계를 좀 더 우정에 가까운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배우자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생물학적인 의미의 부모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내 의견에 원군을 만난 셈이다.

책에 인용된 누군가의 의견에 박수를 보낸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좋은 변화가 생겼다. 우리 관계의 전제가 되었던 생각을 바꾸었다. 처음으로 우리는 서로를 동등한 관계로 대하고 있다. 그러나 엄마라는 신분과 감성을 잘 조절하는 덕분에 엄마라는 위치를 지키면서도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이제 우정이 끝나는 이유와, 우정이 계속되게 하는 힘을 소개하며 글을 맺기로 한다. 우정이 끝나는 이유는 우리가 상대에 거는 기대에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한 우정을 보면 친구에 대한 기대와 그 기대에 대한 상대의 반응이 하나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너무 무리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한다면 오늘날 같은 경쟁 사회에서 정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다. 덜 감정적인 우정이 유지하기 쉽다.


우리가 처음 친구를 사귀는 이유는 어떤 일을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우정이 계속되게 하는 힘은 친구의 품성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친구의 품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그 친구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에요.

- 그 친구는 아주 성숙해요. 아주 침착한 사람이지요.

- 그 친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 나는 그 친구의 유머감각이 좋아요.

- 그 친구는 내게 무척 잘해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모두 잘하고요.

- 그 친구는 모든 일에 해답을 갖고 있어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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