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풍경사진을 주로 찍었다. 특히 꽃과 나무, 넘실거리는 초록의 밀밭에 한 떨기 붉은 양귀비나 노란 들꽃을 배경으로 튀어나올 듯 진한 청남색은 내가 각별하게 좋아하는 조합이다. 이번에 풍경보다 사람을 많이 찍는 나를 발견했다. 딱히 우리 일행이 아니더라도 명백히 내 카메라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몇 년 전 나를 터키로 이끈 것은 카파도키아의 사진 한 장이었다. 기기묘묘한 모양의 바위에 굴을 뚫어 생활한 기독교인들의 자취는, 역사와 자연과 문화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환상의 극치였다. 그러나 막상 내 발로 딛은 카파도키아는 환상이 지나쳐 CG가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영화 속에 들어 와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덤덤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번에 가이드와 함께 로즈밸리를 트래킹하며 마음이 달라졌다.

 

 

 

잔잔한 들꽃이 깔린 우치히사르는 아늑했고, 버섯바위로 유명한 파샤바는 유머러스했고, 야생 포도나무와 산파(양념으로 쓰이는 그 파)가 깔린 로즈밸리 정상은 장엄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점프샷을 찍었다. 박자를 맞추기는 어려웠지만 그 또한 어떠리. 몇 번을 찍어도 음계처럼 엇갈리는 파고 덕분에 소리높여 웃는다. "이거 사과 나무에요" 가이드가 지나치며 무심히 한 말에 마침 나무에 대해 박식한 멤버가 이의를 제기하자 그 이후로는 가이드가 대폭 조심스러워졌다. 송편 모양의 어린 과실은 맛을 보아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과실을 잘근잘근 씹으며 살구라고 결론내렸다. 인근의 대학에서 한국어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우리 드라마 <>을 보고 진로를 결정했다고 한다. 가수로는 빅뱅과 케이윌을 좋아한다니, 케이윌처럼 덜 유명한 가수까지 챙겨서 좋아해 주는 것에 고맙기도 하고, 문화의 파급력에 새삼 놀라다.

 

 

나는 특히 우치히사르가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들꽃 카페트 사이에 지그재그로 난 조붓한 길이 아름다운데 그 길에 사람이 걸어갈 때 풍경이 완성되었다. 언제 봐도 신비로운 붓꽃더미 너머로 아롱대는 사람의 그림자가 좋다.

 

 

마침 TV에서 <삼시세끼>가 돌아간다. 박신혜가 게스트로 나온 분량이다. 때로 아무 대화도 없이 조용하게 밥을 먹는 출연진들.... 옥수수 모종 수 천 개를 심는 시간은 또 얼마나 힘들고 지루했을까. 드라마는 일상에서 지루함을 제거한 것이라고 했던가. 일상이 어찌 재미있기만 하랴. 반복되는 일상을 집약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하는 편집력이 있어 이 프로그램이 돋보인다. 500여 평의 밭에 각 출연진이 옥수수 모종을 심은 면적을 나누어 대비해 주는 것에 소리내어 웃는다.

 

 

이번 글쓰기여행에 참여한 멤버들이 <삼시세끼>의 편집자가 되면 좋겠다. 유머감각있는 편집자가 되어, 서로의 기대치가 달라 서걱거리기도 하고, 가끔 미묘한 갈등이 맴돌았으나 종국에는 차분하게 초심의 의미를 되새기며 깊어져간 그 시간의 의미를 집약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동행을 구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행의 도반처럼 그 말에 어울리는 사이가 어디 또 있으랴. 4주의 여행을 마치고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마무리멘트를 하는데 "사람이 천국인 것 같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원래 나는 다른 일은 모두 혼자 해도 여행만은 혼자 할 생각이 없었다. 늘 딸하고 같이 다니다가 이번에 확장시켜보니 소소한 갈등조차 재미있다. 아니, 애초에 그건 갈등이 아니라 표현방식의 차이였다. 앞으로 좀 더 유연하게, 좀 더 의미있게 글쓰기여행을 발전시켜 나갈 생각에 설렌다.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그 안에 사람이 들어있을 때 스토리가 생긴다. 보름달조차 휘영청 창공에 홀로 떠 있는 것보다 비스듬히 능선에 걸쳐 있는 것이 정답지 아니한가!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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