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도착한 날 하필 비가 내렸다.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가느라 용을 쓰며 숙소를 찾아가는데 자꾸만 동네가 허름해진다. 완전히 어두워지기도 했지만 거리의 색깔이 유독 충충하다. 거지는 왜 그렇게 많은지, 여행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딸이 초조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airbnb였는데 이 아파트먼트의 주인이 쌈박한 실내사진을 올린 탓에 낚인 것이다.  드디어 찾았다. 좁은 입구를 들어서니 담배냄새가 코를 찌른다. 서둘러 창문을 열어놓고, "사진만 보고 숙소를 고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너무 기대를 해도 안 되겠지만 앞으로의 숙소에는 풀장 있는 곳이 세 군데나 되던데, 여기를 기점으로 점점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자"고 지원사격에 나선다. 다행히도 멤버 하나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면 불편하겠지만 우리 일행만 쓰니까 괜찮다고 대꾸해 준다. 삼층 짜리 좁게 올라간 아파트를 우리가 통째로 쓰는 것이다. 일층에 침실 하나와 샤워실, 이층에 부엌과 침실 하나, 삼층에 침실 두 개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나는 딸과 함께 이층에 자리잡았다. 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부엌이 가까워서 좋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비 오는 밤에 들어와서 그랬나 동네는 좀 허름하지만 아파트 자체는 리모델링을 해서 봐줄만하다. 뜨거운 물도 잘 나오고 수압도 좋다. 창문을 여니 바로 앞 건물이 빤히 보인다. 건물 사이에 틈이 없이 하나의 벽을 공유하며 딱 붙어있다. 오른 쪽의 멀끔한 아파트에서 아주머니가  바구니를 내리더니 흔들기 시작한다.  바구니는 이내 큰 폭으로 진자운동을 시작했고, 옆집의 좀 더 허름한 집 아래층에 사는 아기엄마가 그 바구니를 붙잡아 옷가지를 꺼낸다. 전에 어디선가는 5,6층 되는 건물에서 바구니를 내려 소포를 담아 올려가는 것도 본 적도 있는데 구수한 풍경이다. 바구니를 받은 집에는 고만고만한 사내아이가 셋이나 되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이 입던 옷을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동네에는 새가 많다. 창틀에도 수시로 내려와서 앉는다. 뒷집 베란다의 화분은 비둘기 세마리의 아지트다. 옹기종기 화분속에 몸을 붙이고 앉아있다. 터키에서는 사원에 가면 사원고양이가, 고고학박물관에는 박물관고양이가, 레스토랑에는 레스토랑고양이가 터줏대감인 것이 인상적인데 이 동네는 거기에 새를 하나 더 한 셈이다. 새 덕분에 허름한 외관 때문에 서운했던 마음이 풀어지는데 나를 더 혹하게 한 일이 일어났다.

 

 

 

 

 

일요일아침, 바깥이 소란하기에 내다보니 토마토, 감자, 오이 등속이 한 트럭씩 와서 쌓이고 있다. 외출하려고 보니 현관출입구가 좌판으로 막혀있다. 우리 숙소 바로 앞에 일요장이 선 것이다!  규모가 제법 커서 길게 뻗은 십자 도로를 꽉 채운 장터를 보니 부자가 된 것 같다. 이스탄불의 명동거리인 이스티크랄까지 5분 거리에 이렇게 푸짐한 장터가 서다니, 이 동네에서 장기체류하면 좋겠다. 비전있는 지역정치인이 나서서 거리를 정비하고, airbnb 동네로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시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거지노릇을 할 옷차림은 아닌데 벌써 구걸을 시작한 아이들이 안쓰러워서.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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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월 29일에서 5월 26일까지 터키에서 글쓰기여행 중입니다.
    여행 중에는 사진을 열심히 찍지만 돌아와서 들춰 볼 일은 거의 없지요.
    그래서 감흥이 남아있을 때 부지런히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아직은 얕은 상념이라 할지라도 파다보면 샘물이 고이겠지요.

    제 카페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카페에
    더 많은 포스팅이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writingsutra

    2015.05.08 22: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