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5. 3. 4. 00:22

 

 

 

지난 토요일에는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글쓰기수업이 있었지요. 다들 촌음을 아껴 쓰는 분들이라 시간이 그리 잡혔고, 한 달에 한 번 안 해 본 일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쾌히 수락했습니다. 5시에 택시를 불러 타고 수원역에서 전철을 탔는데, 아직 달궈지지 않은 전철 안이 좀 추운 거에요. 사람들과 붙어 앉는 것을 싫어하는지라 좋아라 하고 가장자리에 앉았는데 문이 열릴 때마다 차가운 기운이 몰려들어 몇 번을 망설이다 다음 칸으로 가서 사람들 틈새에 앉았습니다. 한결 따뜻했어요. 이런! 추운 겨울 남들이 따뜻할까봐 뚝뚝 떨어져 지낸다는 심보 사나운 양처럼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지 않는 나로서는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막 오른쪽에 앉았던 여자분이 내려서인지 왼쪽의 승객과 닿은 팔뚝이 따땃하니 너무 좋았어요. 고양이처럼 온기를 즐기다가 문득 쳐다보니 남자분! 아차 싶어 5센티미터쯤 떨어져 앉았습니다.


 

 

 

그 날의 수업내용은 직관적인 글쓰기였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쓰든 그냥 쓰든 문장을 쓰는 그 순간에는 어디서 오는지 모를 표현이 내 손을 타고 짠!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나는 글쓰기의 본질이 직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나탈리 골드버그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강조한 그것에 갈수록 빠지게 되네요. 그 때도 도입부의 설명을 거쳐 <10분 글쓰기>를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평소에 고심해서 쓰던 글보다 훨씬 살아있고 촘촘한 글이 나온 거지요.


 

 

 

수업을 마치고 인근의 대학로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적어도 5년은 된 것 같아요. 오랜만에 보는 마로니에 공원이 멋모르고 흘려보낸 청춘처럼 애틋하고 정겹습니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적당한 카페에 앉았지요. 내가 대학로에서 수업이 끝나니 모처럼 공연을 함께 보자고 아이들을 불러 두었는데 애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딸은 마음이 있었는데 아들이 응하지 않아 같이 주저앉은 거지요. 그 과정에서 시원스레 말이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끝내 침묵으로 응대하는 아들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않아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아직도 이른 시각인 11시의 토요일, 대학로의 카페에 앉은 예기치않은 시간에 문득 외로움이라는 낯선 감정이 끼어 듭니다.


 

 

 

저는 원래 다정다감하지도 않지만 나이들면서 더욱 외롭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되었는데요, 사람과 어울리는 진짜 맛을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아서 좋다는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통에 대한 열망도 수업에서 푸는데, 뭐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탐구심이 있는 대화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 만나는 인간관계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실로 오랜만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출몰한 거지요. 저 쪽 테이블에 각각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하나씩 데려와 따로 앉히고, 두 명의 여성이 마주 앉습니다. 나른한 권태와 심드렁한 분위기가 나에게까지 느껴질 것 같더니  조근조근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지금 내 앞에 누군가 있다면 행복할까? 이내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완벽한 이해와 소통이지, 거기까지 가는 동안 겪어야 할 잡다한 신경씀을  버텨낼 것 같지가 않아서요. 그런데도 허전한 거지요. 살짝 울적한 기분으로 볼펜을 붙잡고 마구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조용하게 20대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글로 써 놓으면 기정사실이 될까봐 살짝살짝 피력하며 그렇게 두 장을 썼습니다. 가슴 한 쪽이 먹먹한 이 감정에 대해서도요. 그냥 있는대로 얕은 감정을 쓰기 시작했는데, 문장이 하도 심심해서 ', 글쓰기 선생 맞아?' 이러면서 쓰기를 계속했는데 어김없이 글쓰기는 해결사가 되어 주었습니다.


 

 

 

누구와 같이 있는다고 해서 꼭 이상적인 시간이 되는 건 아니지. 심지어 오늘 아이들이 나왔다고 해도 종종 그랬듯 껄끄러운 장면이 있었을 수도 있고.  일찌감치 하루 일과를 마쳤겠다,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토요일이 내 손 안에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이야! 문득 아까 수업에서 살아있는 매 순간 재미있기를 바란다고 글을 쓴 멤버가 떠오릅니다. 작은 키에 대학원생처럼 앳되지만 이미 40대로 노모님과 둘이 사는 그녀, 신기하게도 역사책을 읽는 것이 취미인지라 한 번 썼다하면 몇 장짜리 글이 좌르르 펼쳐지는 서사적인 시각을 가진 그녀가 재미있게 사는 데 내가 일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 때나 툭툭 세계사를 언급하며 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자원이거든요. 읽고 쓰기를 좋아한다는 것 한 가지만 갖고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보여주고, 격려하고 싶어집니다. 이것은 내가 구본형선생님에게서 받은 것이고, 나도 인생 후배들에게 기꺼이 주고 싶은 거지요.


 

 

 

그러자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후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경로를 더욱 힘차게 걸어가고 싶어집니다. 어느새 카페에 세 시간이나 앉아 있었네요. 북적거리기 시작한 카페를 나오니 거리에도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게시판에 도배가 된 공연포스터 중에서 하나를 골라 걸어갑니다. 서툴지만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아이들이 이뻐서 만원 짜리를 하나 집어주고, 사진도 찍습니다. 아름드리 나무에 실핏줄처럼 퍼져 간 가지가 그 자체로 작품입니다. 온갖 풍상을 겪으며 이렇게 늠름하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성공이지요. 하늘을 가득 채우며 뻗어간 가지 끝이 뭉툭해 진 것이 수 천 개의 등불을 켜고 있는 것처럼 아름다워서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내가 고른 뮤지컬의 출연진은 스타가 되기에는 좀 부족해 보이지만 막귀에게는 충분한 음악을 들려 주어서, 머리를 흔들며 열심히 보고 집에 오니 저녁 7, 아들은 혼자 근처의 산에 갔다 왔다고 하네요. 다 살아가는 자기 방식이 있는 거지, 내가 원한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 끓일 일은 애초에 없었던 거지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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