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5. 1. 30. 10:40

 

김병종 쓰고 김남식 찍다, 나무집예찬 , 열림원, 2014

정우열, 올드독의 제주일기 , 예담, 2014

 

 

 

책에 대해 알게 되면 될수록 사고 싶은 책이 없어진다. 말석이나마 글동네에서 생계를 해결하는 자로서 이러면 안되는데 싶지만 굳이 사지 않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읽어도 조금도 서운하지 않은 책이 너무 많다. 그러던 중 엊그제 보슬비를 맞으며 동네 서점으로 산책가서 발견한 두 권의 책은 오랜만에 뭉클거리는 감흥을 불러일으켰으니...... 김병종의 <나무집예찬>과 정우열의 <올드독의 제주일기>로 문체와 분위기는 딴판이었지만 동시에 강렬한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김병종은 십 오년 전에 팔당에 토담집을 하나 구했다. 그리고 칠 팔 년이 흐른 후에 그 자리에 한옥을 올렸다. 대학시절 스승인 서세옥의 성북동 한옥을 방문했을 때, “숫제 하나의 작품이었던 그 집에서 고요한 황홀을 느낀 뒤로 알게 모르게 품어 온 꿈을 이룬 것이다. 이제 재주 많던 미대생은 글 잘 쓰는 화가교수가 되었고, 현대의 미친 속도에서 이탈하여 햇빛과 바람과 빗방울의 시간 쪽으로 눈과 마음을 돌린다. 그것은 모든 것이 제 속도로 운행되던 유년시절과 무릇 삶이 이래야 한다는 본질로의 즐거운 퇴행이었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 온 자, 이 정도는 누려도 된다는 듯 그 집에는 저자가 상상할 수 있는 호사를 모조리 모아 놓았다.


밤이면 달이 물 위에서 떠올라 중천을 밝히는데,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것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마치 짐승의 숨소리 같은 달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듯 했다.” 뒷마당에는 35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천지의 노랑빛을 다 몰아 온 듯하다. 마당에 작은 기도방을 만들어 협선재(協善齋)라 이름 붙였다. 저자가 좋아하는 로마서 8장의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구절에서 따 온 것이다. 저자의 필적으로 써서 서각했다. TV와 컴퓨터 대신 작지만 강력한 오디오를 놓고 카라얀과 임방울과 한영애를 듣는다. 그럴 때 차와 블랙커피와 레드와인이 동무해 준다.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마당까지 끌어들여 사철 졸졸졸 낙수 소리를 듣는다. 돌담에 나비도 좀 날아왔으면 싶은 생각에 철로 만든 나비에 노란색을 칠해 올려 놓았다. 어디 그 뿐이랴. 닭과 개, 원숭이 같은 십이간지를 나무로 만들어 선반에 올려 두었다.


저자는 그 곳에서 시와 에세이와 일기를 섞어 놓은 듯한 글을 쓴다. 그리고 그것들을 불쏘시개로 삼아 군불을 땐다. 그림에 일가를 이루고, 다양한 재주와 관심사가 융합되어 연륜으로 버무려진 다음에, 나무집의 은근한 기운이 더해 진 탓일까. 저자의 글에 현자의 그것 같은 깊이가 너울댄다. 거기에 사진을 그림같이 찍어 놓는 김남식의 솜씨가 더해져 자꾸만 쓰다듬고 싶은 책 한 권이 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정우열도 만만치않은 호사가이다. 우선 11년간 같이 살아 온 개들과 바다수영을 하기 위해  제주로 이주했다는 것부터가 보통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정서와 심적 경제적 여유를 보여주지 않나?^^ 무심한 듯 정곡을 찌르는 문체와, 간단한 듯 많은 것을 보여주는 일러스트가 어울려 정신없이 읽히는 이 책에서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 부분이다.


“(개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래서 둘러업고 서울에 오던 수하물로 싣기 위해 케이지째 개의 무게를 달고, 추가요금을 지불하고, 그걸 들고 뒤뚱거리며 멀어지는 항공사 직원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웬만한 고난은 반드시 담담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 같다. 그건 내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이번엔 내 차례가 된 것뿐이다. 게다가 내 손에 있을 땐 아픔이었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진 순간 킬로그램당 이천원짜리 수하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 걸로 호들갑을 떨면 자신의 고통을 특수화하는 짓, 전문용어로 징징거림이 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짐짓 담담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맥락이 이렇다 보니 저절로 담담해진다는 의미다.”

 

오랜만에 가슴 떨리게 좋은 책이 둘 다 부러운 삶의 유형을 보여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책을 고를 때 대오각성할 수 있는 대단한 이론보다는 그렇게 따라 살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선망하는 기분이 들지 않고서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테니,  한 사람에게라도 다가가 마음깊이 번져갈 수 있는 책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제대로 사는 것이 필요하고, 보다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다면 내 삶부터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내 놓을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는 엄정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무엇보다 먼저 체중감량부터 해야 하는뎅....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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