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4. 11. 3. 09:32

 

 

 

 

 

이준익, 봉준호, 김한민....  천만 관객을 동원한 감독들이 입을 모아 이 영화를 추천하고 있었다. 게다가 설경구, 박해일 투톱이면 당연히 봐 주어야 하리라, 검색 한 줄 안 하고 무조건 가서 본 영화는 과연 대단했다. 보기 드물게 중층적이라 어느 갈래로 보아도 될 만큼 의미성이 짙고,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상상력은 절묘하고, 화면은 깔끔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출중했다. 한 마디로 '물건'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이 김일성과의 회담 리허설을 하기 위해 무명배우 설경구를 김일성으로 변신시키는 부분에서 7,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몸서리를 쳤으리라. 남산이나 남영동 어디쯤일 조사실에서, 대본을 맡은 운동권 학생은 꼭 욕조에 들어가서 글을 쓰고 있었다. 음습하게 밀폐된 공간에서 짜장면으로 몸집을 부풀려가며, 설경구는 완벽하게 김일성으로 거듭난다. 그러다가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 창 밖으로 데모대가 지나가는 풍경들이 이미 김일성에 빙의된 그에게는 평양시내에서 자신을 환호하는 인민으로 보이는데......


 

 

 

데모대와 평양 사이에 딱 한 컷, 회색 배경 속의 설경구를 보여주고 이내 화사한 꽃을 들고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으로 바뀌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담긴 엄청난 이야기가 놀라워, 보여준다는 것- 이미지의 위력을 톡톡히 느꼈다. 북한 아이처럼 분장한 아들 태식은 꽃잎처럼 섬세했고, “남조선은 희망이 없어!” 하는 대사는 칼같이 날카로웠다.


 

 

 

설경구 역의 김성근은 맨날 배역도 빼앗기는 단역배우였다. 그러다가 중앙정보부의 집요한 조련에 의해 자신을 진짜 김일성으로 여기는 망상에 빠진다. 김일성의 눈으로 남조선에 툭툭 던지는 말에 뼈가 들어있거니와, 단 한 번 맡아본 배역 같은 배역에 집착하는 배우 혹은 직업인의 코드로 봐도 의미심장하다. “당신 잘 했어. 내가 봤으니까 이제 그만 하라는 연기선생의 말처럼, 그에게는 누군가의 박수가 절실했던 것이다. 게다가 영화의 앞뒤를 장식하는 리어왕의 대사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무게감을 주며 예술이라는 경지까지 우리를 끌고 간다.


 

 

 

이처럼 시대와 직업, 가면과 역할..... 같이 중층적인 코드를 가지고 끝내 가 닿는 곳은 아버지라는 세 글자이다. 어린 아들 앞에서 버벅거린 경험을 만회하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병치레에 지쳐 위대하신 수령동지가 뭐 이런 일까지 신경쓰냐는 아들의 빈정거림에 대고 치던 대사. “수령은 아버지가 아이니?”


 

 

 

설경구...... 연기를 잘 하는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배우라는 단어 앞에 큰 대자를 붙여주고 싶다. 박해일도 각별하게 좋아하게 되었다. 최근에 본 <제보자>가 비교적 썰렁썰렁 쉽게 만들었다는 인상인데 유독 그에게만 이르면 화면에서 긴장감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해준 감독은 말할 것도 없다. 감히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다. 그의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를 찾아봐야겠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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