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유럽 3개월/독일2014. 7. 27. 06:21

 

 

 

 

 

시내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간다. 집 모양도 비슷하고, 다들 맥주잔 하나씩 들고 앉은 것도 비슷하고, 어디서부터가 독일인지 굳이 가릴 필요가 없다. 잘츠부르크에서  7시 방향으로 30분, 풍경이 점점 정교해지다가 드디어 탄성 한 마디 나올 때, 거기가 베르히테스가덴이다. 4개국에 걸쳐 우람한 위용을 자랑하는 알프스 중에서 독일 바이에른주에 해당한다해서 바이에른알프스라 불리는 곳.

 

타운은 아주 작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커다란 마트가 두 개, 스포츠용품 가게가 하나, 숙박업소가 전부다. 흔한 관광지가 아니라 산 속 마을에 온 듯, 수려한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절로 마음이 풀어진다. 전통복장으로 단장하고 나들이가는 할머니 모습과 베르히테스가덴은 꼭 닮았다. 머리를 땋아서  이마 앞으로 한 바퀴 두르고, 볕에 타고 세월에 쪼그라든 팔뚝에 뽕소매 블라우스를 입힌 자태가 고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흔쾌히 응해 주신다. 나이드신 분들이 사진 찍히는 것 싫어하는데 할머니의 자연스러운 개방성이 참 좋다. 할머니!  저는 그런 블라우스 초등 6학년 때 입어본 게 전부에요!

 

 

 

 

 

 

 

 

 

 

 

 

 

 

베르히테스가덴에서 제일 유명한 쾨니히호수,  '왕의 호수'라는 뜻에 걸맞게 깎아지른 암벽의 호위를 받으며 길게 누워 있다.  바위 아니면 침엽수 단일 수종으로 이루어져  정갈하고 기품있는 산에서 호수로 떨어지는 폭포가 일품이다. 만년설이 마블링처럼 끼어있는 바위산도 멋드러진데, 덕분에 멋진 에코를 들려주기도 한다.  중간에 배를 세운 선장이 트럼펫을 한 소절 불면 메아리가 똑같이 화답하고, 또 한 소절 불면 어린 학생이 선생님의 연주를 따라하듯 정확하게 돌아온다.  낭창낭창 흔들리는 청록의 수면 위에서 듣는 자연의 트럼펫 소리가 로렐라이의 노랫소리처럼 나를 빨아들인다. 선장은 이내 모자를 돌리며 팁을 유도해서 내 감동을 제 부업거리로 삼아버렸지만, 쾨니히 최고의 뷰포인트인  성 바르톨로메수도원을 지나 내린 선착장에서 이 메아리는 나를 제대로 사로잡았다.

 

아무리봐도 여전히 눈길을 사로잡는, 바위산에 흩뿌리는 폭포줄기 아래 초원에 소 여나믄 마리가 있는데 꼭 워낭소리 같은 것이 끝없이 계속되는 거다.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것 같다는 고전적인 표현이 절로 생각나는 소리, 청아하고 영롱한 실로폰 소리 같은 것이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데 홀려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 소리가 정확하게 어떤 소리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자연 밖에 없는데, 바위산 밖에 없는데, 메아리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지......

 

 

 

 

 

 

 

 

 

 

 

 

 

 

 

쾨니히호수에서 돌아오는 유람선에서 소나기를 두 번이나 만났다. 해가 쨍 나는가 하면 청록색 수면을 세차게 두드리는 빗줄기가 거셌다. 그 와중에 우비로 무장하고 카약을 타는 사람들도 있드만 우리는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예너반(Jennerbahn)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히틀러의 별장이 있는 캘슈타인하우스도 유명한데 그 곳대신 예너반을 택한 것.

 

편도 30분이니 케이블카치고는 꽤 오래 간다.  1874m의 예너반에서 바라보는 주변 고봉이며 눈아래 트래킹 길의 풍경이 볼만하다. 그새 날씨는 개었지만 구름은 좀처럼 걷혀주지 않았다.  약이라도 올리듯이 감질나게 하나씩 봉우리의 자태를 엿보게 해 준다.  하지만 태클이 없으면 무슨 재미랴.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운무로 가린 상태,  내가 구름 속에 있구나 싶은 상태에서 벗어나 조금씩 봉우리가 보일 때마다 우리는 환호했다.  옷을 완전히 벗은 것보다 벗기 직전의 여자가 가장 섹시하다든가, 과연 운무 실크옷을 슬쩍 흘러내리는 봉우리는 신비로웠다. 이제 근방에서 가장 높고 가장 멋진 위용을 자랑하는 바츠만산(2713m)만 보면 된다. 쾨니히의 성 바르톨로메 수도원에서 동쪽으로 쳐다보면, 거대한 암벽의 섬세한 뼈대마다 만년설을 새겨넣어 그 중 아름다운 바로 그 산이다.

 

이십 여 분 정상에서 보초를 섰을까, 내려가야 할 케이블카 시간 때문에 더 이상은 기다리지 못할 그 시점에 바츠만은 아주 조금 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운무가 걷히는가 하면 또 다시 채워지며 한 번도 전모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름답게 상상 속에서 완성되는!  이만하면 되었다, 우리는 기꺼이 만족하며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중에 수많은 고도에 트래킹길이 개발되어 있고,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저녁에도 예너반이 눈에 어려 동영상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겨울에는 이 곳이 스키장으로 변모한다. 케이블카에 스키를 매달고 올라가 그 경사심한 곳을 스키로 내려오는 사람들!  스포츠가 인간의  탐험의욕을 정례화한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 강하게 밀려온다. 축구도 안 보는 몸치로서는 대단한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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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에는 화창하게 날씨가 개어, 우리가 선택한 조촐하고 한적한 호수 힌터제와 아주 잘 어울렸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 곳이 모두 바다였을지도 모르지. 산맥이 융기하며 골짜기마다 갇힌 바닷물은 기기묘묘한 모양의 호수가 되어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이 산세가 잘츠부르크 근교 잘츠카머구트까지 연결되는 것일까. 그 곳도 여기 만큼이나 아름다운 호수마을인데? 여행은 나를 고고지질학까지 끌고 가려나 보다.

 

유럽의 대부분이 그랬지만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접경지역인 이 곳은 유독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어릴 때부터 나를 표현하고 구현하는데 익숙한 환경, 내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위험요소가 없다고 판단하는 곳, 만에 하나 사고가 터진다면 공권력이 보호와 중재를 해 주리라 신뢰가 있는 곳, 그리하여 공포와 적의와 부산스러움대신 일상의 여유와 개인의 자유가 존재하는 곳.

 

숙소의 주인아지매도 딱 산골사람이다. 침실이 두 개인 아파트먼트라 청소하기 싫으면 침실 하나는 닫아놓아도 상관없는데 그런 잔머리대신 순한 웃음을 지녔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가 오지 않자 남편에게 우리를 데려다 주라고 부탁하며 "잘츠부르크까지는 가지 마!" 하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베르히테스가덴을 떠난다.  사흘 만에 어느새 눈에 익은 산봉우리가 정답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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