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14. 5. 30. 23:38

3 ~ 5일 간격으로 이동하다 보니 계속 새 도시를 검색하게 된다. 요즘은 다음 행선지인 아일랜드에 관심이 꽂혀 있는데 자료가 별로 없다.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 간 친구들의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일상스케치가 대부분으로, 아주 짧은 에피소드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자세한 사진으로 도배해 놓아 스크롤 압박이 크다. 애써 클릭했더니 반지를 잃어버렸다가 찾은 이야기면 허탈할 정도다. 갑갑한 마음에 처음으로 구글 검색을 시작했다. 대충 아는 단어만 보거나 어설프게 번역된 구절을 읽더라도 검색력을 키워 가는 것은 좋은 일이나, 여전히 그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이 도착하게 된다.

 

그 엉성한 자료 중에서도 바르샤바가 볼 것이 없다는 언급을 5번 이상 보아서 건너 뛰려고 했는데 교통편이 좋아서 오게 되었다. 그리곤 올드시티와 시내를 하루 둘러본 것 외엔 쇼핑몰을 더 많이 갔다. Zara, H&M, 잭울프스킨, 나이키, 맥도날드 .... 온갖 다국적기업이 포진하고 있는 쇼핑몰은 굳이 여기가 바르샤바라는 인식이 필요없다. 지도에 커다랗게 표시된 궁전이 너무도 소박한 한 동 짜리 건물일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바르샤바에 볼 것이 없다고 한 이유를 알았다. 지배자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의 화려함을 기준에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는 폴란드, 인류 최대의 대량학살을 경험한 아우슈비츠가 있는 곳이다. 딸과 나는 지갑을 여는 속도는 다르지만, 불행에 대한 감정이입이 지나친 것은 똑같아서 아우슈비츠가 있는 도시 크라크푸에 가지 않기로 했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면 바르샤바에서도 볼 것은 아주 많았을 것이다.

 

바르샤바의 역사지구는  조촐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지만 감탄을 자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가 어떤 건물 창문에 붙여진 나비 두 마리에 시선이 닿았다. 나비는 자유에 대한 상징이다. 피말리는 공포 속에 저벅저벅 다가 오는 독일군의 발소리를 듣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스쳐 갔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주인공이 숨어 있던 건물도 여기 어디 있다고 한다. 지도에는 의미있는 건물을 빨갛게 처리해 놓아 붉은 기운이 가득하지만, 어떤 건물도 내게 "의미있게" 다가 오지 못한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나도 그처럼 주관적인 인상에 기초한 포스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의 브리티시 뮤지엄에 가서 고양이 미이라 하나 기억하는 식이다.  새 도시에 발을 딛을 때 역사와 경제와 문화에는 무지하고, 교통편 같은 정보는 아주 재미없어 하니, 그저 내 눈에 들어 온 단편적인 장면만 볼 수 밖에 없었고, 거기에 기초한 인상 밖에 남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탈린의 올드시티는 파주의 영어마을보다 조금 크다는 혹평을 내리고,  바르샤바는 너무도 소박한 회색도시라는 코멘트 밖에 할 것이 없었는데, 이런 내 자세를  객관적으로 돌아 보게 된 것이다. 독자로서의 나는 엄연히 전체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나는 간략하게라도 그 도시의 전모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 도시 사람들은 주로 무얼 해서 먹고 사는지, 아니면 주로 무엇을 먹고 사는지^^, 여가는 어떻게 보내며, 사회적인 현안은 무엇인지,  둘러볼 만한 곳은 어디어디가 있는데 어떤 기질과 관심을 가진 사람은 이 곳을 둘러 보라든지......

 

 

포스팅을 할 때의 나와 자료를 찾아 볼 때의 내가 전혀 다른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작은 일이지만 번쩍 하고 전등이 켜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는 내가 재미없어 하던 객관적 정보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강생들의 글을 보는 관점에도 좀 더 엄격하게 독자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게 되었다. 독자로서의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에 감탄했는지를  필자인 내게 적용할 수 있다면, 성큼 커다란 발자국을 뗄 수 있지 않을지?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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