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늦도록 뜰에 앉아 있었다. 별은 없고, 노을이 오래도록 천천히 잦아 들고, 개구리가 울었다. 근처에서 나는,유명한 키안티클라시코를 한 병 샀다. 십일유로. 그저 거슬리지 않는다 뿐이지 이렇다할 풍미는 모르겠다. 여행이 끝나 가고 있구나. 두고 온 것들이 조금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여행은 좋았다. 베네치아처럼 자극이 너무 심하거나, 피로가 몰려 올 때, 딱 두 번쯤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여행에 심취하기도 처음이다.

무엇이든 새롭게 마음을 뛰게 하는 그 무엇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여행은 충분히 그 자리에 놓일 자격이 있다. 굳이 여행과 일상을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척럼 기질적으로나 상황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이? 흔한 말로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아예 둥지 자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여행처럼 살란다. 여행하며 살란다. 여행과 공저팀을 엮을 수 있다면 또 한 시절 역동적으로 흘러 가리라.

숙소에 새끼고양이가 한 마리 갇혀 있는데 어찌나 사람이 그리웠는지 딸이 안아주니 갸르릉 거리는 소리를 멈추질 않는다. 그예 목욕시켜서는 데리고 잔다. 한 시간 이상, 밤 늦도록 그리고 아침에도 일어나자 마자 또 갸르릉, 두 달쯤 되어 보인다고 하는데 그동안 쌓인 외로움 다 풀 모양이다. 어이구, 그 놈 호강하네, 하면서도 안 됐다. 우리 가고 나면 어떡할래?

11일 새벽 여섯 시, 모처럼 부지런을 떨어 산책을 나갔다. 아니나다를까 , 세상에서 가장 고운 명주실로 짠 비단 같은 안개가 골짜기에 드리워져 있다. 그러다가 해가 불쑥 구름 위로 솟아 오르니 일제히 안개가 밑으로 깔리며, 삼나무가 구름 위로 솟은 형국이 된다. 서울은 푹푹 찌는 날씨 한낮일 텐데 어인 호사란 말인가. 나는 서서히 여행에 중독되어 간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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