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놀이2007. 12. 11. 15:49
 

빌 브라이슨, 나를 부르는 숲, 홍은택 옮김, 동아일보사, 2002


어젯밤에 갑자기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 세상과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이 사막이나 우주 한 복판에 나 혼자 내팽개쳐진 느낌, 무엇으로도 ‘나’라고 하는 존재를 확신할 수 없는 블랙홀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순간적으로 너무 절박하고 강력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아서 이 상태가 일정 기간 계속된다면 미치지 않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다행히도 곧바로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 순간이 내게 준 교훈은 대단했다.


아, 내가 이처럼 뒤늦게 깨닫는 ‘절대적인 고립감과 무력감’을 보통 사람들은 일찍부터 수시로 느끼나보구나. 그래서 그토록 인정과 소속에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는 거였구나. 딱히 관계뿐이 아니라, 예술과 스포츠 같은 모든 자기초월적인 행위의 동기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살아있다는 느낌, 나라고 하는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한 절박한 몸짓들이 아닐까. 그렇지! 지금 막 읽은 ‘나를 부르는 숲’의 등반도 그 중의 하나일꺼고.


가슴벅차게 살아있다는 희열을 맛보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사회가 용인하는 행위에 몰입하는거고,  어떤 사람들은 약물, 도벽, 인터넷, 쇼핑처럼 부정적인 중독까지도 가는 거구나. 심지어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 습관적으로 자해를 일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칼로 자기 팔을 긋는 순간 솟아오르는 새빨간 피를 보며 존재감을 확인한다는 것.


우리의 주인공 빌 브라이슨은 3,520km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선택했다. 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마을 끝에서 숲으로 사라져 가는 길을 발견한 순간 떠오른 생각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은밀하고 복합적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우리의 잠재의식은 아주 작은 단서로도 불쑥 현재화되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택은 실행에 비해서는 아주 쉬운 일이 아닌가.


매년 3, 4월에 2,000여 명의 등산객이 스프링어에서 캐터딘을 향해 출발하나, 종주에 성공하는 사람은 10%도 안 된다. 반은 전체 길이의 1/3도 안 되는 버지니아 주 중부까지도 못 간다. 1/4은 코앞의 노스캐롤라이나 주 까지도 못 간다. 무엇보다 20%가 등반 첫 주에 포기하고 만다. 어떤 사람은 불과 사흘 만에 등반을 포기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비싼 등산 장비를 갖가지로 구입하고선 등산을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아내의 강권에 못이겨 쫓겨왔다. 그는 사흘 뒤에 또 다시 등반을 포기했다.

“부인한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 걱정하는 주변사람에게 그는 대답했다. 이번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브라이슨은 1,392km를 주파했다. 전체 트레일의 39.5%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준비과정에서 허풍떤 것처럼 곰을 만난 것도 아니다. 겨우 순한 사슴 한 마리를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의 문장은 실제로 곰을 만난 것보다 더 박진감있고 흡입력이 있고 재미있다. ‘바라옵건대 멀찍이, 바람이 불어가는 쪽에서, 그리고 곰은 나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 만약 우리를 보고 다가온다면 카츠에게만 배타적으로 흥미를 느낀다는 조건’으로 곰을 만나고 싶어하는 식이다.


샘물가에서 말코손바닥사슴과 맞닥뜨린 장면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원주민 처녀라도 만난 듯 싶은가보다. ^^

‘완전히 성장한 암컷 같았다. 물을 마시러 왔다가 나를 의식하고 물가까지 오지 못한 채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 우리는 한참 서로를 마주봤는데, 서로 어떻게 할지 몰랐다. 이것이 분명 모험의 참맛이다. 또 훨씬 겸손하고 소박한 뭔가가 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시선을 맞추고 있는 데서 오는 존경스러운 상호 인정이 아니었을까.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한 터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지만 그놈은 조심스럽게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 나는 매혹됐다.’


주로 책 내용은 덩치크고 굼뜨고 투덜대기 좋아하는 친구 카츠, 그리고 산행에서 부딪치는 엉뚱한 동반자들과의 에피소드이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물에 빠지고, 예의없는 등반객들에게 똥침주고, 대피소를 만나 환호하는 그런 이야기들.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서 생각이 나온다고 했던가. 그들 역시 산행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숲의 아름다움과 거대함에 대한 경외심은 자연보존에 대한 정책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자발적인 고난과 격리는 일상생활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코카콜라 한 잔에 넋이 나가고, 흰 빵으로 거의 오르가즘을 느끼게 되는 식이다. 섬세한 브라이슨 뿐만 아니라 카트조차 문명세계의 천박함을 깨닫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광할하고 온전하며, 그 자체가 살아있어 방향을 알 수 없도록 만드는 숲... 그래서 혼란스럽고 두렵지만, 동시에 무한하고 온전한 우주인 숲만 보다가 다시 접한 현실의 세계, 즉 주유소와 월마트, 던킨 도넛츠,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 끔찍한 상업적 세계의 끝없는 현란함을 흉측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초원 크기만한 주차장이 딸린 쇼핑 몰을 바라보며 , 함부로 동시에 오줌을 갈긴다.


뛰어난 등반가의 영웅담이기 보다는, 이웃집 아저씨의 좌충우돌 산행기에 가까운 이 책은, 브라이슨의 뛰어난 입담과 감수성, 사회의식으로 해서 좋은 기행문학이 되었다. 2부의 이론적인 부분을 꼼꼼하게 읽지는 못했다. 저체온증과 나무에 대한 지식까지는 재미있었지만, 미국의 자연보호정책에 대한 비판까지 읽을 정도로 학구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자인 홍은택에게 관심이 간다. 그는 유학중에 우연히 부딪친 애팔래치아 등반객에게서 도발된 모험에의 꿈을, 이 책의 번역으로 풀며 달래다가, 기어이 자전거로 아메리카를 횡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에 관심이 없어서 읽지 않고 있던 그의 책도 읽어봐야겠다. 나도 도보여행에는 은근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데, 내 수준에서의 모험을 부추길지도 모른다. 이미 절반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좋은 책은 전염성이 강하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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