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책2012. 2. 2. 23:31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그녀는 잠자리의 눈을 가졌다. 만 개 이상으로 이루어진 겹눈을 지닌 잠자리처럼, 그녀는 무엇 하나를 보아도 내면과 외면, 과거와 미래까지 증폭시켜서 본다.  그러므로 그녀가 인생의 초록, 정념을 이기지 못하는 열일곱 살과 눈먼 팔십노인을 오버랩시킨 구상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늙는다는 건 어떤 기분이니?” 구성작가의 질문에 “니들 눈엔 우리가 다 늙은 사람으로 보이지? 우리 눈엔 너희가 다 늙을 사람으로 보인다!” 라고 대답해주라는 장씨 할아버지의 말처럼, 너무나 당연하되 대부분의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때는 싯다르타왕자가 생각나기도 한다.


초록에서 주황을 보며, 봄이 오면 가을이 올 것을 아는 사람은 구도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곧 가을이 올 테니 봄의 미망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해탈로 인도하고 싶을 것이다. 싯다르타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그녀는 작가가 되어, 이제 곧 가을이 와 온산이 주황으로 물들 것이니 초록을 맘껏 구가하라고 꼬드긴다. 열 일곱 살에 일을 저질러 아이를 낳은 부모와,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희귀병인 조로증에 걸려 열 일곱에 팔십노인의 신체를 하고 있다는 설정은 초록의 한 복판, 아름다움의 절정에 있기에 오히려 그런 줄을 모르는 젊음에게 청춘예찬을 설파하기 위한 극적인 설정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 흔치않은 설정을 살아 본 사람처럼 생생하고 능청맞게 그려낸다. 어떻게 80년생이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열일곱과 팔십, 소녀와 소년, 성공한 사람과 사회저변층 모두가 작가의 분신인 양 천연덕스러운 묘사에 기가 막힌다.


그 산들은 너무 높아서, 고도별로 다른 꽃이 핀다고.

같은 시간, 한 공간 안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식물들이 공존한다고 말이야.

그곳에는 사계가 함께 있어. 여름에도 가을이 있고, 가을에도 봄이 있대. 무슨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말이야.

그래서 내 멋대로 그렇게 정했어.

남들은 너를 ‘조로’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냥 너를 산이라고 부르겠다고.


누렇게 뜬 얼굴로 바퀴 달린 침대에 누워 택배처럼 어디론가 실려가는 할머니, 바나나 우유, 체리주스, 복숭아에이드 빛깔의 소변들,


아버지는 인생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란 단어에서 어쩐지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건 알았다. 그건 단순히 피로나 권력, 또는 타락의 냄새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그럴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그 입구에 서고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어른이란 말 속에서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그것은 다름아닌 외로움의 냄새였다.


시골사람들의 관계에는 애정이란 말이 생기기 전의 애정, 관심이란 말이 생기기 전의 관심 같은 게 건강하게 스며 있었다.


나는 내가 너무 괜찮아 보여서도, 지나치게 혐오감을 줘서도 안된단 걸 알았다. 사람들이 직시할 수 있을 정도의 불행, 기부프로그램을 움직이는 건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족이 임계점을 넘으면 만족이 아니라 감탄이 되니까. ‘아!’ 하는 순간의 탄성이 만들어내는 반향을 타고, 그 반향이 일으키는 가을 물결을 타고, 그 애가 내게 쓸려오길 바랐다.


그애 편지를 읽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많은 말을 익혔는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은 이미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새삼 새 말이 배우고 싶다고.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정념은 민폐야. 어디서든 항상 문제를 일으키지


만 개의 겹눈에 비친 모든 잔상에 이름을 지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혹여라도 그녀가 언어를 부리지 못했다면, 세상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부적응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사물과 사람의 이면을 봐 버리는 그녀, 다행히도 그녀는 ‘이야기의 편’이 되어, 결코 마르지 않는 샘물에 목을 축였고, 젊디젊은 그녀가 들려주는 노련한 이야기가 나는 마냥 기껍다.


위에 옮겨 적은 구절들처럼, 깊숙한 통찰에 맞춤한 표현도 다 좋지만, 나는 이 책을 각별하게 ‘노화’에 대한 문제제기로 읽었다. 앞서 장씨 할아버지의 말에서도 그랬지만, 주인공이 우연히 병원에서 들은 대화를 옮기는 부분에서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귀는 건 아니고, 한 여학생이 오랫동안 나이든 선생님을 존경하고 짝사랑했단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술에 취해 우연찮게 한 손으로 그분 뺨을 만졌는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너무 흐물흐물해서  화들짝 놀랐다는 것. 그 날 그 여학생은 늙음에 데인 것처럼 놀랐고, 그후로 더 이상 그 선생님이 남자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 이 부분에서 작가가 주인공의 입을 빌어 하는 말은, 한 발 앞서 늙은 이들이 절감하는 세상의 통념이라 하겠다.


그런데 저는 잘 이해가 안돼요. 나이 든 사람 피부에 탄력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머리가 세는 것도 이가 빠지고 눈이 나빠지고 주름이 느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다면서, 그 짧은 접촉 한번에, 마치 늙음이 자기에게 옮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정색하고 돌아설 정도면, 그 여자가 상상한 늙음이란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


늙음에 대한 통념에 일침을 놓는가 하면 이렇게 고즈넉한 지혜의 전수도 있다. 아직은 제대로 겪어보지 않았을 단계를 어쩌면 이렇게 능청맞게 표현할 수 있는지!


“나이란 건 말이다, 진짜 한번 제대로 먹어봐야 느껴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거 같아. 내 나이쯤 살다보면...... 음, 세월이 내 몸에서 기름기 쭉 빼가고 겨우 한줌, 진짜 요만큼, 깨달음이라는 걸 주는데 말이다, 그게 또 대단한 게 아니에요. 가만 봄 내가 이미 한번 들어봤거나 익히 알던 말들이고, 죄다.”

“그럼 저도 지금 아는 것을 나중에 한번 더 알게 돼요?”

“그럼.”

“근데 그게 달라요?”

“당연하지.”


그리곤 주인공의 꿈속에서 보여주는, 고령사회의 암울한 전망. 이 장면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장면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사실이나 개념을 형상화하는 이 도저한 기술.


점프는 몇 번이고 반복됐다. 나는 퉁-- 하고 날아오른 뒤 개운하게 웃고, 다시 퉁-- 하고 뛰어오르며 만세를 불렀다. 누가 그만하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라도 그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구 주위로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트램펄린 주위를 둥글게 에워싼 채 입을 벌리고 나를 올려다 봤다. 그런데 하나같이 이가 없고 눈동자가 하얬다. 나는 총에 맞은 새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하여 저자가 끝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일 꺼라고 짐작한다. ‘조로증’이 아니라해도 우리 모두 언젠가는 늙어갈 운명이 아니던가.


“우리는 살아가는 중이라고. 우리는 죽어가는 중이라고. 끊임없이, 하루하루, 살고 죽는 중이라고. ”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지만, 그렇기에 살아있는 하루하루가 절대의 의미를 가진다.


세상은 참...... 살아 있는 것투성이구나, 그지?


이 책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견할 이 엄청난 사실 앞에, 기적이 따로 없는 찬란한  생명 앞에 그토록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는, 심지어 파괴와 폭력을 일삼는 중생에게 주는 소설경전이다. 말씀이다. 태아였던 시절까지 기억하는 저자의 신공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었다. 저자가 공들여 숨겨놓은 메시지가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주오래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만난 그런 박자를, 누군가와 온전하게 합쳐지는 느낌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비로소 알아낸 기분이었다. 그건 누군가를 힘껏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였다.


이해라는 말, 예전에는 나도 참 싫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먼 곳에서 건네주는 따뜻한 악수가 먹먹했다. 터무니없단 걸 알면서도, 또 번번이 저항하면서도, 우리는 이해라는 단어의 모서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인간은 이렇게 이해를 바라는 존재로 태어나버리게 된 걸까? 그리고 왜 그토록 자기가 느낀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는 걸까?


이것은 죽어가는 주인공이 부모에게 선물로 주려고 쓴 글의 말미에서 다시 확인된다. 열 일곱 살의 부모가 만나는 장면을 숲 속에 배치하여,  태고의 아담과 이브로부터 전해 내려 온 생명의 기운을 강조하는 저자의 능력에 경탄을 보낸다. 마치 랩을 하듯 신명나게 주워 섬기는 대목에 홀린듯 붙박힌다. 그것은 청춘, 그것은 생명, 그것은 삶.


하늘은 높고, 매미의 매끈한 눈동자 위로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뭉게구름이 지나갔다. 산이 꾸는 꿈속에서, 매미들은 소리 죽여 노래했다. 그때 우리는 그걸 원했어. 그때 우리는 그게 필요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했어. 그때 우린 그걸 한번 더 했어. 그때 우린 그걸 계속했어. 그리고 우리는 그게 몹시,

‘좋았어.’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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