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질문하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론과 선례와 정신적 물질적 여건과 상상력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다. 인문학의 꽃인 철학은 온몸으로 이 질문들의 포화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마냥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철학에 드디어 손이 가다.


이 책은 내가 철학입문서에 기대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쉽고 친절한 문체로 철학이라는 거대한 몸통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워준다.  두께도 적당하고 목차는 명료하다. ‘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로 이루어진 구성이 만만해 보여 빨리 읽고 싶어진다. 이것도 재능인데 그러고 보니 이 저자의 책 제목이 뛰어난 것이 많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상처받지 않을 권리’,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모두 읽고 싶은 생각이 확 들게 만드는 제목들이다.


우선 저자는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며 1부를 시작한다.  철학은 삶을 낯설게 보는 것이란다. 왜 그래야 하느냐면 어차피 삶이란 서서히 낯설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에, 훗날 맞부딪칠 불편과 당혹에 대비하여 미리 삶을 낯설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단다. 하긴 모든 것이 변하고 흘러 간다. 천사같이 방싯거리며 웃던 아기가 괴물처럼 자글거리는 주름살로 뒤덮인 노파가 되고, 한 때 분신같던 사람들이 얼마든지 남보다 더 멀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죽음이라는, 그야말로 낯선 경계를 넘어가야만 한다. 보통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떠올렸다가도 잊어버리지만 철학자들은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통해 프레임 하나씩 마련한 사람들이다.  이어 철학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입장- 우발성과 필연성에 대한 설명도 쉽고 설득력있었다.


2부에서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인 사랑, 가족, 국가, 자본주의 같은 것들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소개한다. 삶과 떨어진 철학은 공허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극히 일상적인 주제를 가지고 철학적 사조를 소개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강신주는  뛰어난 저자들이 흔히 그렇듯 예화사용의 명수이다. 가족의 의미를 뒤집기 위해 거론된 카프카는 섬찟하고, 국가주의의 허상에 빗대어진 스톡홀름증후군은 탁월하다. 요소요소 꼭 필요한 곳에서 인용된 철학자들의 기본개념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좀 더 알고 싶어진다. 이름만 들어도 아득했던 들뢰즈 조차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들뢰즈 못지 않게 이상한 이름을 가진 가라타니 고진도 확실하게 기억해 두었다.


저자는 철학이 고유명사의 학문이라고 한다. 저마다 자신의 프레임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짧게짧게 소개된 철학자들만 보아도 알겠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자신의 어법으로 펼쳐보이고 있었다. 그 많은 철학자들의 개념이해만 하기에도 벅찬 일이겠다. 그러나 철학의 목적은 제아무리 뛰어난 철학자라 하더라도 답습하고 추종하는 것이 아니고, 될 수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갖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만의 능선에 올라 자신만의 정상을 발견하기 위해 자기 삶을 스스로 채찍질하는 일! 그는 말한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건 자기욕망이라고.


3부에서는 불교와 놀이와 타자에 대해 가벼운 소개를 하고 있다. 현대철학의 주요 주제가 ‘타자’와 ‘차이’라는 것이 땡긴다. 이렇게 한 발을 딛었으니 다음에는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함축적인 문장 하나만 옮겨보자. “홀로 있는 사람은 의미가 없다.”


에필로그도 아주 인상적이다. 책의 서두였던 ‘낯설게 보기’를 다시 가져와서는, 우리가 삶을 낯설게 보는 이유는 우리가 넘어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넘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고, 우리 삶과 마찬가지로 철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이기 때문이다. 나도 자주 해 보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그가 콕 박아 준다.


얇지만 실속있게 꽉 찬 책을 읽은 것이 고마워서 인터뷰 기사를 하나 찾아 보았다. 투박하고 듬직해 보이는 얼굴이 거리의 철학자답다. 고1때 지리산에 가서 은하수를 보고, “삶이 참 작은 거구나” 생각했던 경험이 자신을 철학으로 이끌었단다. 그 때부터 삶을 낯설게 본 셈이니, 철학의 시작은 ‘클리나멘’을 잡아채는 것이련가!

 


인터뷰 ‘정재승이 만난 사람- 강신주’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cont=6029&title=001013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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