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11. 7. 13. 12:38




‘나가수’ 최대의 수혜자가 임재범이라면, 최고로 의미있는 수혜자는 김범수라고 생각한다.  그는 노래 실력은 인정받으면서도 외모가 받쳐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송출연이 적은, 이른바 ‘얼굴없는 가수’였다가 ‘나가수’를 통해 얼굴을 제대로 찾았다. 예전에는 모든 가수가 노래를 잘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노래보다 외모가 빼어난 가수들, 재치있게 말 잘하는 가수들이 TV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의 출현이나 여기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가수는 무엇보다도 노래가 첫째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노래를 잘 하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드러나지 않았던 가수들의 존재감을 격상시켜 주었다.


김범수가 자신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감동적이었다. 노래 외적인 것 때문에 주눅들지 않아도 되는 무대에서 그는 혼신의 힘을 다 했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청중의 사랑 속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는 것에 편안해지자 그의 유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김범수가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나? 탄탄한 가창력에 예능감까지 인정받으니 대중은 더욱 열광하고, 그는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나는 그가 부른 ‘님과 함께’를  ‘나가수’ 최고의 무대로 친다. ‘얼굴없는 가수’에서 ‘비주얼 담당’으로 변신한 그가 당대의 남진이 즐겨입던 엘비스 프레슬리 풍의 옷을 입고, 아이돌에게나 어울릴법한  안경을 쓰고 나왔다.


처음부터 그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가 무대를 꽉 채웠다. 전주에 맞춰 절도있는 춤을 출 때  이미 승리의 전조가 느껴졌다.  이곳은 나의 무대라는 자부심,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진정성, 충분한 연습에서 나오는 자신감을 가지고 그는 무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의 간절함은 발성하는 음절 하나하나, 몸을 놀리는 동작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고스란히 관객석으로 전달되어, 가수와 청중이 하나가 되어 뛰고 즐기게 만들었다. 반짝이 의상과 장발이 난무하는, 70년대식 유랑극단으로 설정한 기획력도 돋보였다. 노래를 끝낸 그가  편곡자와 매니저 이름 뒤에 방청석을 향해 “여러분!”을 외칠 때 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 울컥 하고 치솟았다.  가난한 서커스단 소년이 ‘내가 가진 것은 이것 밖에 없어요’ , 마음을 다 해 서커스를 하며 신을 경배했다는 것처럼, 그것은 내가 가진 기량을 모두 쏟아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보내는 뜨거운 사랑의 고백이었다. 그의 고백에 청중들은 “김범수! 김범수!” 하는 연호로 화답했다. “청중들이 내 이름을 연호했어요.  나는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어요.” 아직도 감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몽롱한 표정의 그가 말한다. 나는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삶에 완전히 빨려들지 못한다. 하기싫은 숙제는 다니기 싫은 직장으로 바뀌었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채우지 못한 채 적당한 선에서 만족한 일상은  먼지 낀 유리창처럼 더께가 졌다. 한 번도 극한까지 나를 몰고 가지 못했기에 내가 얼마만한 능력을 지녔는지 꺼내볼 기회도 없었다. ‘이것이 삶의 전부일까,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비슷한 고민을 하며 떠밀리듯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김범수는 삶의 절정을 보여 주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자기 안에 들은 최고의 것을 꺼내고 싶다는 열정으로 가득찰 수 있고, 그 열정이 보는 사람들에게도 전염되어 우리 모두를 살아있음의 충만함으로 초대한다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우리가 박지성과 김연아, 현빈 같은 스타에게 열광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최고의 자기’가 된 사람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보는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한다. 그들이 도달한 경지와 성취, 매력이 우리 모두가 가 닿고 싶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살아가는 ‘자기실현’이라는 고지를 선취함으로써, 우리의 숨은 욕망에 불을 지르는 전령사들이다. 그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최고의 나’에 도전하느냐 마느냐, 그를 통해 뼛속까지 울려오는 삶의 기쁨에 빠져보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결단에 달려 있다. 나는 그 날의 감격을 생생하게 그려낸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24세에 세계챔피언이었다가 무하마드 알리에게 KO패를 한 뒤 은퇴하여 목사로 살던 조지 포먼이 45세에 다시 챔피언을 쟁취하며 토해낸 일성이다. 상대선수는 아들뻘의 마이클 무어,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큰 점수 차로 포먼을 이기고 있었지만,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있었다. 포먼은 오랜 숙원과 열망을 담아 상대의 귀에 왼쪽 훅을 터뜨리고, 턱에 강력한 해머 펀치를 가격해 무어를 매트에 쓰러뜨렸다. 40세가 다 되어 복귀하는 선수가 평범할 수는 없다고, 비범해야 한다는 각오아래, 나이보다 20년은 더 젊은 다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훈련의 쾌거였다. 드디어 심판이 포먼의 오른쪽 손을 번쩍 들었을 때, 장내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모든 관중이 펄쩍펄쩍 뛰었고,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 껴안았으며,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런 장면에 서고 싶다. 조지 포먼 그리고 범수처럼.


“나는 한 장소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행복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다수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기쁨의 소리였습니다. 승리는 바로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잠시지만, 그들은 완전한 자유를 맛보았고, 나는 그들에게 자유를 선사했다는 성취감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경기를 같이 지켜보았고 또 같은 감정을 느꼈던 사람들이 공유했던 그 순간을 잊게할 짓은 평생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알랜 줄로, ‘마흔 이후에 성공한 사람들’에서-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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