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두 권 쓰고 나니 제대로 된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과 함께 책임감이 몰려왔던 것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독자들이 접하기 어려운 책을 읽고 안내하거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역할도 있을 터이니, 앞으로는 조금 딱딱하더라도 심도있는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을 때, 처음으로 떠 오른 분야가 철학이었다. 그야말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 당도한 셈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요한 철학자 48명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철학자 한 명당 세 장을 할애했으니 결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거의 모든 꼭지를 아주 쉬운 예화로 시작하고 있어 술술 읽힌다. 그러니 작정하고 철학입문서를 쓴 것 같다.  그것이 이 책의 특징이요 존재이유인 만큼 대단한 이론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막막하게만 보이던 철학이라는 봉우리를 일별할 기회를 준다고 할까, 철학의 난전이라고 할까, 제목에서 풍기는 포스만큼은 못 한 것도 사실이다. 어렵지않게 읽은 것은 고맙지만, 일말의 서운함도 없지 않던 차에 끝부분에서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저자는 자신이 소개한 48가지의 목소리 중에서 독자의 삶을 흔들어놓는 한 두 가지 목소리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너무나 소박한 기대치에 살짝 놀라는 동시에, 책이란 것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제껏 나는 온 몸으로 감응하는 책이 아니면 별 의미가 없다고 밀쳐놓곤 하였다. 이런 태도 때문에 책을 너무 가려 읽느라, 나의 지식흡입력이 위축되었는지도 모른다.  48명의 철학자 중에서 한 두 명만 만날 수 있어도 성공이라는 발상의 전환은 기분좋았다. 그로써 철학이라는 분야에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고, 그 한 두 명을 통해 좀 더 본격적인 탐구가 이루어질 터이니 이 아니 좋은 일인가!


그제서야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고맙게 느껴졌다. 책 뒤에 붙여진 여분의 추천도서 목록도 아주 요긴했다.  연달아 그의 저서 몇 권을  읽어 볼 요량이 들었으니, 이렇게 나는 ‘강신주’라는 저자와 접속하게 된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곳은 두 군데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의 자는 현덕玄德이다. 玄은 ‘검다’는 뜻이다. 또한 덕德은 득得이다. 득에 마음 심을 더 한 것이 덕이기에, 덕은 마음까지 잡아둘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단순히 도덕적인 품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덕이라면 탁월한 신하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고, 스승의 덕이라면 탁월한 제자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또한 유비는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이것을 ‘은밀한 밝음’이라고 한다”는 통치개념을 익혔다. 상대방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주는 속내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받들어 玄德 이라는 자를 사용했던 것이다. 유비가 신하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떻게 행동했는가는 책에서 직접 보라. 자칫 술수로 볼 수도 있지만,  신하의 마음을 얻기위해 이만한 전심을 기울이는 통치자라면 마음을 얻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무심히 알고 있던 玄德에 숨어있는 의미를 알게 된 것도 아주 흥미로웠다. 바로 이것이 공부하는 맛이리라.


두 번 째로는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가 눈에 띄었다. K-POP이 유행과 멋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선풍을 일으킬 정도로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활황을 이루고 있고, 갈수록 리얼리티 쇼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쇼나 방송을 보면서 즐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고도의 상술 아래 기획된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점, 직접 나서서 삶을 체험하는 것보다 리얼리티 쇼를 시청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의미있다면 큰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내게 ‘스펙터클의 사회’는  시의적절했다. 스쳐가는 생각을 사회적, 철학적 문제의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레퍼런스를 제공해 준 것이다.


스펙터클은 글자 그대로 황홀하고 매력적인 볼거리를 가리킨다. 발달한 대중매체는 대중매체 속의 이미지들을 현실 세계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여기서 일종의 착시효과가 생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나 자연 재난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 결국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이미지들에 길들여짐에 따라 스펙터클 사회의 거주민들은 점점 현실에 대한 방관자, 혹은 구경꾼으로 변하게 된다. ... 스펙터클 사회는 인간으로부터 상품에 대한 시각적 감각을 제외한 일체의 현실 감각을 박탈해 버린 거대한 매트릭스에 지나지 않는다.


강신주는 이 책을 마르크스로 끝맺으면서,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만이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모든 후손을 껴안는 것이 ‘진보’라고 못박고 있다. 겨우 철학 책 한 권 읽은 느낌으로 볼 때도, 좋은 철학이란 후대를 생각하는 미래지향성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저 코 앞에 닥친 문제, 발 밑의 어둠에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문제를  내 문제로 받아들이게 하는 확장성! 이것을 토대로 다시 내 삶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 지가 보이리라.  서서히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보니 내가 철학 책을 제대로 읽었나 보다.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