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관계의 재구성, 궁리, 2006


이 책이 나온 직후에 읽으려고 펴들었을 때는 별 감흥을 받지 못했다. 지나치게 원칙적인 이야기들을 지나치게 진지한 문체로 쓰고 있어서 내 안에 치고 들어오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전 우연히 컴퓨터에서 저자가 인터뷰하고 있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야구를 예로 들어가며 답하고 있는 모습이 건강한 매력을 뿜고 있었다. 지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몸을 쓸 줄 알 것같은, 마치 잘 자란 나무처럼 보기가 좋았다. ^^ 그래서 다시 저자의 책을 펴보았다.


이 책은 시간의 축으로는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를, 관계의 축으로는 아버지, 형제, 친구, 배우자 문제를 영화를 배경으로 풀어보는 책이다. 다분히 상식적인 이야기도 많고, 여전히 이론적인 접근이 impact가 강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보기드물게 진지한 저자라는 느낌에 신뢰가 갔고, 몇 가지 중요한 관점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이든 필요할 때 내게 온다고 했던가, 마침 내가 골돌하게 생각하던 영역을 두 번째 시도한 독서에서 찾아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것은 바로 ‘사람 사이’라는 개념이다.


사람사이, 즉 관계에 관한 한 나는 참 철부지 중에서도 철부지에 불과하다. 농촌에서 전업주부였던 8년, 읍으로 나와 학원을 운영하던 13년간, 나는 그 영역에서 성장을 멈추었다. 이 책의 도움을 받아 생각해보니, 완벽한 상대와 완벽한 친밀감을 나누는 유아적 환상에 빠져 있었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대체로 함량미달이라고 생각되는 주변인물들에게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나 자신이 함량미달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어지간히 자기중심적인 셈이다. 거기에다 사교적인 성향도 없어놓으니 거의 어울림이 없었다. 이처럼 소통에 대한 욕구를 차단하고 있다가 어쩌다 내 기준에 적합한 사람을 만나면, 이번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접근하고 나를 열어놓는 식이었다. 그야말로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는 백치 수준이라고 할밖에. ㅠ.ㅠ


하지현은 청년시기, 친구관계, 부부... 꼭지에서 면면히 사람사이의 적정거리에 대해 강조한다. 인간의 근본적 충동은 누군가 중요한 대상을 찾는 것이지만, 일심동체에 대한 환상은 유아적이라는 것이다. 유아시절 어머니와 가졌던 그 완벽한 일체감을 성인기에도 기대하는 사람은 일반적인 친밀감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심동체’는 없다!  ‘나다움’과 ‘너다움’의 경계를 유지할 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어떤 관계라고 해도 똑같은 농도의 감정이 여일하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성숙한 관계는 일종의 경쟁관계라고 말한다. 한 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는 일방적인 관계여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요구수준이 너무 낮으면 지루해하고 과도한 요구를 받으면 성취욕을 느끼는 식으로,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에 대한 영향력의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감정과 도전이 출렁대고 부딪치고 다시 조절되는 ‘틈새’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상대가 원하고 내가 원하는 최적의 거리를 산출하고 유지하고 만족하는 능력이 성숙한 사람의 요건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관계의 ‘기역’자도 몰랐던 셈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무조건 내 마음을 받아주어야 하고, 한 번 확인된 호감은 언제 어디서라도 균질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내 눈에 띈 부분만을 이상화하고 거기에 내 희망사항을 아낌없이 투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의 전체 모습을 보고나면 혼자 실망하고 곧바로 그 사람을 평가절하해 버리고는 마음을 접는 식이었다.


어느 영화의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관계에서 이해해야 할 첫째 조건은 ‘타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타협의 범위와 시기와 힘을 조율하는 곳은 ‘사. 람. 사. 이’라는 공간이다.  너무 늦게 겨우 요만큼 깨달은 것으로,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살아있는 한 사람은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니, 너무 늦된 것에 주눅들지는 말자. 大器晩成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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