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새알심2011. 4. 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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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돌아가신지 14년,  새삼스레 아버지의 부재를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그것이 서러워 가만히 산소 주변을 돌아보았다. 산소쓸 때 애들아빠가 사다심은 스무 뿌리 철쭉 중에서 댓 그루 남은 것이 거의 관목수준이 되었다. 죽은 사람이야 그렇다쳐도 산 사람도 함께 하지 않는 세월이 철쭉 덤불로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무언가 될 것 같은 기대주가 아니라, 아버지의 총애에 보답하지 못하여 안쓰러운 어이없는 중년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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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아버지 성품 만큼이나 온화하고 따스하여, 사람들은 봄나들이 나온듯 경쾌하게 나무를 베고, 석축공사를 하고, 듬성해진 곳에 잔디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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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산소쓸 때 누군가 합장이 가능하다 하니, "난 안 죽을 거야" 하시던 엄마, 이제 시시각각 늙으신다.  2주만에 한달만에 뵐 때마다 엄마는 속절없이 늙어가신다. 77세, 언니의 시어머니께서 85세에 치매 기운이 있으시다는 것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엄마의 생애는 빠른 속도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세상에, 앞으로 겨우 몇년만 엄마가 온전히 엄마일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막힌 일이다. 나또한 그 길을 고스란히 밟아야 한다니 그건 또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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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안 가지고 가서 사진이 부실하다. 아버지 산소가 좀 내려앉고 잔디가 많이 죽었더라며 이번에 손보는데 오빠가 앞장섰다. 젊어서 '좀 놀았던' 그, 오죽하면 오빠 고등학교 다닐 때 오빠보다 아버지가 더 많이 학교에 갔다는 농담이 전해온다.  받은 것이 있으니 나오는 것이 있구나. 인부들까지 스무 명의 식사 준비를 해 온 큰 올케도 애 많이 썼다. 보쌈에 북어찜에 육개장, 갖가지 나물에 밑반찬이 뷔페가 따로 없다. 한 사람의 수고로 스무 명이 맛있게 먹었다. 나는 전업주부 시절 시골잔치 할 때 이후로는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문득 내 몸을 움직여 여러 사람을 해 먹이고 싶어진다.  내 살을 베어 세상을 먹이는 차원을 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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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에는 날씨가 너무 화창했고, 분위기 또한 그래서 행여 눈물이 나오면 참 어색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무심한 마음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그렇게 담담했는데 절하느라 이마를 땅에 댔다가 떼는 순간 아버지의 봉분과 눈이 마주쳤다. 석축을 둘러 더욱 오뚝해진 아버지의 봉분 그 아래 아버지, 착실하게 썩어 문드러졌을 광경이 떠오르며 진저리가 쳐졌다. 나또한 언제고 그런 처지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산다는 것이 허망하고 두려워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죽음을 무서워하면서 사는 것처럼 살고 있지 못한 내가 한심해서 눈물이 더해졌다. 돌아가신지 14년 후에도 그들먹하게 모인 자손의 절을 받고 계신 아버지가 대단하게 여겨졌다. 지금처럼 사소하고 지리멸렬하게 살다가는 누가 내 죽음을 슬퍼하고, 누가 내 죽음을 기억해줄 것인가. 지금 당장 달라져야 한다는 각성이 나를 적셨다. 그러니 아버지는 진토가 되어서도 아버지 노릇을 해 주신 셈이다.  나는 비로소 아버지 1주기에 글쓰던 마음으로 돌아가  소주 한 잔을 아버지 산소에 가만히 끼얹었다.


아버지 1주기에


이제 당신의 생신을 지우고

기일을 기억해야 하는데

그 날, 중앙병원 영안실에서

당신의 함자 위에 놓인 故자가

아직도 막막합니다.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먹고싶어”

“아아 내가 니 애비를 굶겨 보냈다”

엄마의 통곡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내게 당신의 누이가

새침해져 말했습니다.

“곡해라

딸의 곡소리는 저승길을 밝혀준단다“

아버지

이제 당신께 해 드릴 일이

곡밖에 없을진대

어찌 못 울겠습니까

울고 또 울리다

목을 놓아 울리다

아버지 저승길 밝아지라고


태어나서 한 번 가는 길

그러나 상상이라도 한 번 했더라면,

남당리로 온천으로 열 번만 모셨어도

이리 한스럽진 않으리다.


천원을 달라면 이천원을 주시던 우리 아버지

농활한답시고 근 십년을

수상쩍게 떠돌아도

공부 잘 한 내 둘째딸

뭐가 되도 되겠거니

제 자리 찾겠거니

무조건 믿어주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 영전에

소주 한 잔 올립니다.

아버지

편히 주무세요.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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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키

    선생님, 이 글 읽고 저 울었어요. 저희 아버지도 언젠가 그렇게 내 곁을 떠나겠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나네요. ㅠㅠ

    2011.04.06 01:10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사람은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듯 행동하다
      결국 한번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다는 말이 가슴을 치는
      시절이네요.
      사고력과 실행력을 두루 갖춘 재키는 여기에서 예외지만요.^^

      2011.04.06 11:54 [ ADDR : EDIT/ DEL ]
  2. 비밀댓글입니다

    2011.04.06 16:06 [ ADDR : EDIT/ DEL : REPLY ]
    • 에고~~ '존경'은 얼굴 뜨거워지는 어휘구요
      차분한 격려에 자세를 바로 하게 되네요
      함께 놀러오세요.
      내가 미리미리 벚꽃 개화 과정을 생중계해야겠군요.^^

      2011.04.06 23:34 신고 [ ADDR : EDIT/ DEL ]
  3. 아, 이런, 어쩌자고 저는 이 화창한 봄날에 이 글을 읽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까. 저는 무섭게도 가끔 아무것도 없이 외로움에 치를 떨며 살고 있는 제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려 봅니다. 그가 죽으면 나는 얼마나 울까. 내 마음은 어떨까. 그렇게 '나'만 생각한 그의 죽음을 떠올려 봅니다. 따뜻하지도 좋은 추억도 제게 많이 남기지 못한 제 아버지이지만 또 그만큼 어려운 세상에 맨주먹으로 굳세게 아버지 노릇했던 그를 저는 아직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나봅니다. 안스럽지만 시간 여유가 있는 오늘도 저는 아버지를 뵈러 가지 않았습니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인데, 그것이 얼마나 한이 될지 저는 모르고 있나 봅니다. 아, 이 화창한 봄날 뭔가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2011.04.16 17:05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라는 토로에서 살림님의 고운
      마음을 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내게 엄마를 부탁하고 가셨다는 사명감을 느꼈는데
      그조차 세월 앞에 흐릿해질 때가 많지요.
      나는 엄마에게 종종 무심하고 심지어 무례해지면서
      아이들이 내게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늘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우리네 부모님도
      내가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 지 생각을 불러일으키구요.

      사람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하는지라
      --이타적인 동기조차 자신의 삶을 완성하려는 데서 출발.
      살림님의 '나'만 생각한다는 자각이
      오히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것 같아
      미덥게 느껴지는데요.^^

      2011.04.17 07:09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