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책2007. 12. 1. 15:49
 심산의 마운틴오딧세이, 풀빛, 2002

등산이라고 부를만한 산행을 해 본 것은 딱 한 번 뿐이다. 광천에 있는 오서산, 정상까지 3시간 정도 걸렸다. 그 유일한 경험에서도 사람들이 산에 가는 이유를 알 것같긴 했다. 제법 가파른 길을 헉헉 대고 올라간 끝에 눈 앞에 펼쳐지는 ‘세상’에 나는 환호했다. 야트막한 산이 중첩되며 골짜기마다 마을을 품고 있었고, 논밭과 나무들과 저수지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모두 내 발 아래 있었다.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모두가 발 아래 있다!”


산악시인 장호의 싯귀이자, 고상돈 대원이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무선교신한 구절을 온 몸으로 이해한 셈이다. 그러나 그뿐 등산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마운틴 오딧세이’를 펼쳐들었다.


처음부터 봉우리 이름과 등산용어, 등반가의 이름은 겅중겅중 뛰어가며 읽었다. 어차피 모르는 것에 신경쓰다 호흡을 놓치고 재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걱정은 기우였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여전히 등산장비 하나도 변변히 모르지만, 책은 정말 재미있었다. 산악문학 22편을 소개한 글의 길이가 적당하거니와, 심산의 박진감있는 문체도 한 몫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에 미친 사람들의 미친 스토리가 읽는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자신의 이름을 따온 봉우리에 묻힌 ‘난다 데비’의  이야기는 서막에 불과했다. 존재를 찾는 여행이라도 좋고, 모험도 좋고 방랑도 자유도 다 좋지만, 평범한 생활인이 보기에는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극한체험을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쳐진다.


5대륙 최고봉을 최초로 오르고도 모자라, 개썰매를 타고 북극횡단에 나선 오척단신의 일본인 탐험가 우에모라 나오미, 영하 52도의 살인적인 추위, 쩍쩍 갈라지는 빙원, 백곰의 습격, 끝없는 고독과의 싸움... 이쯤되면 ‘모험’은 그의 생존방식이다. ‘모험’에 의지해서만 연명할 수 있는 체질도 있는 모양이다. 1984년 2월 13일, 세계최초의 매킨리 동계 단독 등반 성공이라는 기록은 남고, 그는 소식이 끊긴다. 43세.


그런가하면 아이거북벽에 도전하다 숨진 두 친구를 대신하여 기어이 북벽에 오르는 정광식도 인상적이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회사 책상을 깨끗이 치우고, 이를 갈면서 아이거에 갈 것을 맹세한 끝에 그는 드디어 정상에 선다. 그리고 조그만 얼음구덩이를 파고 친구의 사진을 묻는다.  비교적 낮은 해발고도<3970m>에도 불구하고 숱한 생명들을 앗아가 ‘클라이머들의 공동묘지’라고 불리우는 아이거북벽, 바위벽이 부스러져 폭탄처럼 퍼붓고 벼락이 하켄을 때리는 눈보라 속에 갑옷처럼 빳빳하게 언 옷을 입고 북벽을 오르는 장면에서 할 말을 잃는다. 순해보이는 그의 얼굴 어디에 그런 오기와 근성이 들었을까. 때로 삶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1985년 5월, 페루 안데스의 시울라 그란데 서벽의 초등에 성공한 조 심슨과 사이먼 예이츠. 하산하던 그들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의 극한장면에 부딪치게 된다. 자일에 매달린 조는 다리가 부러졌고 확보를 보고있는 사이먼의 눈구덩이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그들은 이렇게 2시간을 버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사이먼은 친구의 자일을 자른다. 매달린 조는 자일 끝에 매달린 사이먼의 시체를 확보 삼아 크레바스를 빠져나가는 상상을 한다. 누가 누구를 탓하랴. 우리는 그들로 해서 인간심리라는 구덩이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조는 두 팔과 한쪽 다리를 버둥거리며 3일 밤낮동안 빙하를 기어 19kg을 소모하는 초인적인 사투를 벌인 끝에 베이스캠프로 살아돌아온다. 결국은 사이먼의 선택이 둘을 살린 셈이다.


이 책은, 그 어느 것에도 죽을만한 오기로 덤벼든 적 없는 지리멸렬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러고도 그저 클라이밍에서 그쳤다면, 워낙 등산과 관계가 먼 내게 금방 잊혀졌을 것이다. 책의 끝부분에 배치된 '클라이밍과 비즈니스', 나는 이로 해서 내 안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자기초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산사나이들 역시 산에 묻히지 못한 이상, 언젠가는 평지에서 새로운 정상을 찾아야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누구에게나 안나푸르나는 있다.


스포츠 클라이밍의 슈테판 글로바츠와 영업전문 컨설턴트 카이 페르지히가 함께 쓴,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는 위대한 등반가에게 배우는 9가지 마케팅 원칙이다. 글로바츠가 자신의 등반경험을 토로하면 곧바로 다음 장章에서 카르지히의 마케팅 강의가 이어진다.

이들은 ‘확실한 아이덴티티, 분명한 목표, 계속적인 동기부여’라는 자질이 클라이머와 사업가에게 동시에 요구된다는 데 동의한다.


“봉우리에 오르고자 하는 의욕과 어려운 암벽을 등반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 험난한 곳을 인지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능력, 탐험을 위해 갖추어야 할 준비의 필요성, 대원들과의 어려운 인간관계...” 가 어찌 등반과 사업에만 필수적이랴. 살아가는데 그것없이는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쓰디쓴 나이... '재능을 환전換錢하라' 이 책은 내게 이 문장으로 남았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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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년 이맘때, 1학년 2학기때 프레쉬맨세미나로 '서울 근교 등산 코스의이해' 과목을 들었었어요. 학교 뒷산(진짜 좋아요~ㅋㅋ), 북한산도 가고..그랬었는데
    기초 체력이 없어서 초반엔 좀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참 재미있었어요.
    올라갈땐 힘들었지만. 진짜 그 위에서 아래를 바라볼때 느낌이란!..

    구름의 그림자가 보이던 그날이 아직도 안잊혀 지네요...ㅎ
    이 글을 보니까 그때가 생각나서

    2007.12.01 19:29 [ ADDR : EDIT/ DEL : REPLY ]
    • '서울 근교 등산 코스의이해' ^^
      정말 환상적인 과목이네. 언젠가 그런 과목이 있었지~~ 하며 그리움에 목메는 시절이 온다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젊음을 맘껏 향유하기 위하여 오늘 하루도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한 일을 찾기를!

      2007.12.02 10:26 신고 [ ADDR : EDIT/ DEL ]
  2. 저는 아직도 책장에만 꽂혀져 있는데.
    조만간 한번 펼쳐들어봐야겠습니다. ^^

    우리도 언제 한번 등산 같이 하면 좋으련만.
    서울 와서는 통 산을 못 올라봤어요...
    그렇다고 제주에서 부지런히 다녔던건 아니지만. ;;;

    어쨌튼 마음이 꿈틀합니다....

    2007.12.03 22:20 [ ADDR : EDIT/ DEL : REPLY ]
    • 북리뷰를 위주로 하는 블로그 조금 돌아다녀보니, 내 수준이 그다지 빠지지는 않겠더라구. ^^ 어쨌든 꾸준히 해야되겠다 싶은데, 너무 댓글이 없으니, 꼭 유령 상대로 장사하는<?> 기분이 들어서 묘하네.

      2007.12.04 11:01 신고 [ ADDR : EDIT/ DEL ]